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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진보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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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진보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민교협의 정치시평] 지식인의 '사회적 연대'

이 땅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연대를 어찌 바라볼 것인가. 혹은 80년대와 90년대 초 강한 울림을 가졌던 이른바 '민중과 지식인'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가. 그것이 유효하지 않다면 이제 지식인의 더 이상의 사회적 참여는 무의미한가. 지식인의 사회적 참여라는 말도 고색창연하다면, 지식인의 '사회연대'라고 고쳐 부르자. 그렇다면 지식인의 혹은 학자들의 사회연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요즘 다시 80년대 초로 회귀한 듯하다고 하고, 심지어 유신체제로 퇴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른바 매개조직들- 합법성과 정치적 정당성 및 여론형성 기능이란 자원을 가지고 사회운동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법적인 조력을 가하거나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돼주는 사회단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특히 노동위원회)이 그러하고, 대한문 시위장소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저녁 미사를 올리는 가톨릭 신부와 수녀들이 그렇고, 또 민교협 등 비판적 진보적 교수단체들도 일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요즘의 사회적 풍경들 속에서 사회적 연대라는 화두를 던지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 진보를 넘어서,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의를 주로 민교협과 학술운동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

민주화 이행 이후 운동 지형

1987년 창립된 민교협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으로 양분된 '사회운동필드'에서 일종의 '매개조직'이다. 즉 1989년 경실련 창립을 필두로 이른바 시민운동이 기존의 노동 등 민중운동과 재야민주화 및 민족운동에 대해서 분리 정립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민중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개념인 '시민'을 내세웠고, 민족, 민중, 민주의 이른바 삼민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담론과 일반민주주의를 자신의 프레임으로 내세웠다. 일견 '민주주의'라는 마스트프레임(master frame) 하에서 공존할 것 같기도 한 이들 민중 프레임과 시민 프레임은 하지만 정치체제를 바라보는 인식에서부터, 우리사회 체제에 대한 규정, 그리고 조직화의 방식과 집합행동 레퍼투아르까지 모두 달랐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내의 서걱거림과 사회운동의 분기와 분열도 시작되었다.

1991년 민중운동과 급진민주주의 진영은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와 명지대생 강경대의 경찰진압 치사 사건을 기폭제로 하여 6월 항쟁의 재연을 꿈꾸는 5월 투쟁을 전개했지만, 패배로 끝났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반대중, 특히 중간층의 이반이라고 본다.

하지만 필자는 이 중간층 '이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90년대 초반 중산층들은 이미 만들어진 직선제 대통령제를 통해서 체제의 변화, 혹은 정치권력의 교체를 생각하는 이른바 '개혁'지향적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정한 정도 사회적 자유화 혹은 민주화를 원했다. 즉 임혁백, 최장집 등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중간층의 보수화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한국사회 중간층이 가진 민주적 열망과 개혁적 지향이 오히려 민주화 이행 이후 26년간 사회운동지형을 휘감은 최대의 열기였다.

그리고 그 열기는 참여민주주의적 지향과 선거민주주의의 결합으로 나타났다. 시민운동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이들 정부는 온건성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시민운동단체들을 배양하고 후원하고, 나아가 특정한 단체와는 유착되기도 했다. 운동엘리트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반면 역시 마찬가지로 이제야 전국적 대중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한 민중운동은 찬밥 신세였다. 아니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바뀐 정부 하에서 다음의 선거를 기다리기엔 '생존권'싸움이 절박했던, 말 그대로 '기층민중'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민주화 이행 이후 계속 싸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신생 민주주의를 믿고서 말이다.

하지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즉 전노협은 1990년 1월 20일 창립날 이전부터 '불법노조'로 규정돼버렸고 정부는 공안대책회의를 소집하였다. 전농, 전빈련 등 대중조직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87년 9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쳐 만들어진 2000 여 개의 민주노조를 기반으로 한 독립노조 진영은 이행이후 체제의 가시였다. 그리고 공안드라이브로 몰아가기 좋은 호재였다. 만약, 시민사회가 침묵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또 자유주의 야당정치 세력이 노동을 대변하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전노협은 탄압받았고, 궤멸 지경이었다. 정권은 전노협 아닌 사무업종노조들에 속속 노조 신고필증을 내주면서, 새로운 노조모델을 제시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을 압박하고, 노동은 고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민중운동의 전투성을 비판하고, 제도적 합법적 온건한 집합행동으로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들은 기층민중의 생존권 문제와 분배의 문제를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제도정치의 용렬한 이념적 색채를 비판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적 정치민주화, 정치적 진보만 외쳤다. 그것이 '공공선'이었다. 이른바 '일반민주주의'만의 절대적 가치가 돼버렸다. 민중의 생존권요구는 '부분의 요구'이고, 민주주의와는 왠지 구분되는, 거리가 먼 어떤 것이었다.

사회운동의 매개조직들

이런 사회운동지형의 양분 속에서 매개조직들(intermediate organizations) 의 역할이 특히 중요했다. 이를테면 민교협과 민변이다. 그리고 '5가'로 대표되는 종교단체들도 그들 중 일부다. 이중 민변은 정치적 민주주의 하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꾀하도록 민중진영을 엄호하고, 또 문제에 대한 법적 프레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실제적인 법구제 활동들, 즉 구속 투옥 기소된 노동자 등에 대한 변호활동도 주도했다. 그들이 한 역할, 무시 못한다.

전노협과 민교협의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민교협 자체가 매개조직으로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사이에서 거리를 메우거나 노동의 이슈를 시민사회의 이슈로 만드는 노력(때로는 희석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고, 민교협은 노동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노동을 엄호했다. 가장 큰 기여는 민교협과 연구자들이 여러 사회 활동가들과 만든 '전노협 후원회'일 것이다. 전노협 후원회는 노조업무조사로 노조활동기금이 고갈된 전노협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전노협 후원회는 구속노동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명활동에 나섰고, 나아가 사회적 여론을 친노동적으로 만드는 노력도 기울였다.

노동 민중과 학술운동

학술운동 역시 90년대 초 상당히 활발했다. 부문학문별로 기존의 학문단체들에 대항적 의미가 있는 '비판적' 학술단체들이 속속 결성됐다.

비판적 학회란 80년대 말 이후 '산업사회연구회'(산사연)을 모태로 하여, 한국 학계의 우경적이고 보수적인학회들 사이에서 각 분과별로 비판적 학회들 나아가 학술운동단체로서의 학회들이 하나씩 생겨났는데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사회학회의 대당으로 비판사회학회, 그리고 한국정치학회의 대당으로 한국정치연구회, 그리고 역사연구회 등 거의 대부분의 분과학문단체들이 결성됐다.

그리고 비판적 학회들의 연합단체인 학단협(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움은 해마다 열리면서 산하 수십개의 학회가 참여하였고, 더불어 매 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의제 설정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기본적으로 친노동 친민중적 접근의 시각을 통해서, 노동 및 민중적 현실을 이론화하고 나아가 노동 및 민중적 요구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들과 정당성의 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활발히 했다. 비판사회학회의 전신이 바로 '산업사회연구회'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지금- 노동, 연대, 지식인

지금은 소위 비판적 학회들도 기존의 학회들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 학회 사람들 역시 경력관리하고 출판논문 편수 늘이며 대학에 자리 잡고, 또 대학에 자리잡은 이들은 거기서 실적쌓아 재임용되고 연구재단 펀딩 받아서 자기 대학원생들 먹여 살리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에는 학계와 학교 사정이 갈수록 열악해진 탓도 있다. 교수들의 비정규직화와 고용불안정성의 증가, 대학의 법인화와 상업화, 학문이 국가관리기구에 종속된 시스템 등.

덩달아 학술운동이라는 말도 자취를 감췄다. 한국의 운동 전체가 위축되면서 학술운동 및 비판적 학문 역시 위축된다. 하지만 운동이 위축될수록 비판의 기능은 살아나야한다. 비판의 기능을 하는 지식인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역할을 주지 않으면서 운동의 위축은 더욱 가속화되는 것 아닌지 싶다. 아무리 지식인을 먹물이네 어쩌네 해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지식들이 운동의 주요한 근거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니.

지금의 민교협을 봐도 그렇다. 민교협의 교수들을 그때마다 집회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할 뿐, 그들을 운동의 근거를 제공할 지식생산자로 보지 않는 듯하다. 즉 '교수들'이라는 이름표가 필요한 게 아닌지, 그나마 이름이 있는 '민교협'이라는 간판이 필요한 것 아닌지. 한국의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과 운동조직들, 나아가 투쟁하는 사람들 역시 이 구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나아가 지식과 이론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다.

한국의 민중과 지식인 관계를 다시 화두로 꺼낼 판이다. 그게 후지다면, 운동에서 지식생산자의 역할, 이념과 이론의 역할에 대해서라도. 무식과 무지로선 절대 사회운동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나아가 이 사회를 전복하거나, 나아가 체제를 재구성하려는 생각은 제출되지 못한다. 실천은 이론이라는 무기와 함께 하지 않으면 방향과 좌표없는 ㅡ악무한적인 말 그대로 '운동'일 뿐일테니.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운동 그 자체가 '방향'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운동 그자체가 '올바름'을 보증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이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운동에선 반지성주의가 판친다. 갈수록 그 경향성이 심해진다. 대중뿐 아니라 활동가들조차도 먹물스럽지 않기 위해 안간힘쓰고 자신의 '지식인'투를 세탁하기 위해 애쓴다. 대중이 활동가를 잡아먹는 꼴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골방안 샌님이 되는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거나 스스로 들어간다. 자신을 '먹물'이라고 자조한다.

이제와서 다시, 아주 오래된 화두인 그리고 이미 폐기처분되어야할 것같은 '민중과 지식인'의 구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혹은 그람시적 의미의 유기적 지식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정리하여야할까. 전문적 지식기사가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으로 세상에 대해서 발언할 수는 없을까. 전문적 지식인은 결국 한계적인 지식인인가. 그리고 나아가 지식인의 사회적 발언과 사회참여는 왜 축소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한국사회가 갈수록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없고 대책없는 정의가 말라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뻐드렁할만큼 뻐드렁하게 뻗치면서 성장할 뿐 반성할 줄 모른다.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괴물로 변모하고, 선거민주주의는 선거만의 민주주의로 바뀌면서 민중과 멀어지고 있다.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은 우파세력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지식인들의 책임도 크다. 스스로 민주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사실은 그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미룬 채, 그것만을 유일대안으로 대중에게 강요한 점, 대중의 현실에 대해서 눈감은 점, 연대의식을 스스로 내팽개친 점 등.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볼 눈과 자신을 위해 외쳐줄 입과 들어줄 귀를 잃은 소수자 대중의 삶은 절망으로 채색되고 있다. OECD 최고의 자살률, 교육불평등, 노동자들의 죽음, 복지부재의 어처구니없는 비극들, 그리고 세계 최하위의 여성평등률 등.

'정치적' 진보 하나만 외친 민주주의의 결과다. 이제 정치적 진보 이전에 '사회적 연대'를 생각해봐야한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말이다.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조금은 더 사회에, 그리고 이 사회 안의 민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길 바란다.

각주: 이 글은 지난 10월 29일 민교협의 내부워크샵에서 발표된 간단한 발제문을 수정 가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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