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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꼭 닮은 '대학 난개발',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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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꼭 닮은 '대학 난개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터뷰] 연세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반대하는 조한혜정 교수

친환경 개발 사업이냐 무분별한 토건 사업이냐.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두고 벌어진 논쟁 구도다. 최근 이와 비슷한 개발 논쟁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교 정문에서 시작하는 기다란 중앙 도로를 파헤쳐, 지하에는 주차장 등을 만들고 지상에는 녹지 공간을 조성하려는 캠퍼스 전면 공사가 진행되면서다.

'차 없는 거리'라는 표어 아래 시작된 이 개발 사업의 이름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다. 연세대 정갑영 총장은 '제3의 창학'을 내세우며 '임기 중에 반드시 공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도 있다. 그 때문인지 900억 원이 투입될 건축 설계안은 입찰 공지 21일 만에 선정됐다. 법이 정한 최단 기간에 만이다.

공사는 방학 중에 돌연 시작됐다. 지난 8월 말, 교정으로 들어온 굴착기와 기중기 등 건설 장비는 수십 년 전부터 교정에 뿌리내려온 은행나무와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가치가 큰 나무는 다른 곳에 잠시 이식해 둘 것이라고 학교 측은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의구심을 풀지 않는다. 이식될 거라던 나무들이 밑동만 남겨놓고 대부분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놀란 학생들과 교수, 동문들은 '4대강을 꼭 닮은 졸속 난개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정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의 추억이 깃든,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던, 수십 년 된 다종다양한 나무들이 뿌리내린 유서 깊은 공간을 그리 부족하지도 않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파헤쳐선 안 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일부 교수와 학생은 공사 장비가 미처 베어내지 못한 마지막 남은 은행나무 주변에 리본을 달고 주변 천막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다.

'안전' 문제도 불거졌다. 이 대학의 일부 교수들이 사업구간에서 7미터가량 떨어진 공대 건물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위험성이 제기되자 연세대는 지난달 13일부터 뒤늦게 안전 진단에 들어갔다. 개발을 추진 중인 '백양로건설사업단' 측은 "사업 계획 단계에서부터 안전성 문제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며 "안전 진단은 일부 교수들의 우려를 불식하고 학내 소통의 한 과정으로 실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생태·안전 문제와 함께 '소통 부재' 문제도 떠올랐다. 연세대 측은 백양로 재개발 사업에 대해 학생·교직원·동문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78퍼센트의 응답자가 '찬성'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 관련 회의도 200회 이상 진행하고, 각종 설명회도 수차례 진행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말한다. 학내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한 것은 '차 없는 백양로'였을 뿐, '나무 없는 백양로'나 '백양로의 주차장화'는 아니었단 것이다.

이처럼 연세대 백양로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수많은 토건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프레시안>이 한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개발 논쟁에 주목한 이유다. 지난 16일, 백양로 프로젝트를 반대하며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학과)를 만났다. 조한 교수는 "백양로 프로젝트는 충분한 논의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되는 토건 사업의 전형"이라며 "대학 교정마저 수익자부담원리에 따르는 공간으로 굳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연세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불침번을 서며 지키고 있는 마지막 남은 은행나무. 이들은 이 나무를 '막둥이'라고 부른다. ⓒ프레시안(최형락)

"친환경 사업? 어떻게 하면 '차를 덜 탈까' 고민해야 친환경"

프레시안 :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에 대해 연세대학교에서는 '차 없는 거리'를 만드는 사업이라고 한다. 친환경 교정, 즉 에코 캠퍼스라는 표어도 내세우고 있다. 개발 사업이 언제부터인가 '친환경'이란 단어와 조합되는 분위기다.

조한혜정 : '차 없는 백양로'라는 큰 틀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에코 캠퍼스'라는 표어에도 동의한다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사업 기조다. 또 연세대 캠퍼스에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연세대를 다니던 1960년대 말에는 학생 수가 2~3000명 정도였다. 지금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곳에서 생활한다. 과거에 비해 구성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교정이 좁아졌다.

그러나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차 없는 백양로'란 문구가 가진 가치를 담지 못한 사업이다. 차는 그대로 들어온다. 일부 구간에서만 지하로 갈 뿐이다. 교정의 '상징'과도 같던 은행나무들을 다 베어 가며 대규모 주차장이 진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진정한 에코라면 '어떻게 하면 차를 더 적게 탈까'를 고민하고, 자동차가 없이 학교를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맞다.

잘려나간 은행나무가 보며 기금 낸 동문들 "이 난개발에 내가 돈을…"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교수. 지난 16일 만난 그는 "대학에서라도 개발 사업을 진행하며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토론을 진행하고, 그를 통해 중지를 모아내는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은행나무가 베어져 나간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한혜정 : 예상 못했던 일이라 더 그랬다. 이보다 사소한 일로도 전체 학생들에게 공지 이메일을 보내는 학교가, 이번에는 '개강을 하면 공사가 시작돼 있을 것'이란 양해의 말 한마디 학생들에게 하지 않았다.

개학 후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폐허가 된 교정을 보며, '이게 뭐지? 학교에 학생들은 대체 뭐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학생들은 '이제 학교에 정을 안 붙여야지' 식의 자포자기 태도도 보인다.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이라면 반대 시위를 했을 학생들이, 지금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특히 중앙도서관 앞에 있던 '미친 벚꽃나무'가 사라진 것에 속상해하는 학생들이 많다. 한 나무에서 다양한 색의 꽃이 피어나 인기가 많았던 나무다.

동문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총동문회에서는 지금도 백양로 프로젝트에 쓰일 돈을 모금하고 있다. 그간의 관행으로, 많은 동문들이 '창립 130주년'이란 명분만 보고 자동으로 기금을 냈다. 그러다 백양로 나무가 다 잘려나가고 교정이 황폐해진 모습을 보며, '내가 이렇게 난개발에 돈을 냈구나'란 사실에 놀란 동문이 많다.

꼭 이렇게 나무를 다 베어가며 땅을 파내야 할까. 주차장이 정말 필요하다면 교정 외곽에 있는 야구장에 주차장을 짓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공모하기만 했어도 '졸속'이라는 비판은 안 받았을 것이다.

소통에 대한 경험도, 믿음도 없는 '토건적' 사고방식

프레시안 : 연세대에선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말한다. 설문조사 결과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개발을 찬성했다는 것이다.

조한혜정 : 연세대에선 '차 없는 거리를 원하니?' 수준의 질문만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밝혔고, 연세대는 이를 근거로 토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재개발을 원하냐'고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원주민들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는 건설 회사들과 다르지 않다. 정갑영 총장은 '임기 중 끝마치겠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이런 모습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4대강 사업을 끝마치려고 무모한 토건 사업을 강행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토건 사업을 진행하는 쪽에선 항상 '통일되지 못할 그 많은 의견을 언제 다 듣고 있느냐'고 말한다. '어차피 사람들은 생각이 다 다르니, 이런 사업은 빨리 진행하는 게 낫다', '끝나고 나면 다들 좋아할 거다'는 식의 토건적 사고방식이 한국 사회에 횡행한다. 소통에 대한 믿음도 없고 제대로 된 소통을 일상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다.

▲ 16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모습. 개발을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세운 천막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고작 나무 몇 그루라고? 그것이 '역사'다"

프레시안 : 일각에선 고작 '나무 몇 그루'라고도 얘기한다. 대학도 '경쟁력'이 중요해진 시대에, 고작 나무 몇 그루를 가지고 중차대한 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다.

조한혜정 : 단지 나무 몇 그루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대학 생활을 하는 2년 또는 4년의 시간 동안 캠퍼스를 매일같이 오가며 추억을 만든다. 시간이 흐른 후에 캠퍼스를 다시 찾아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는 사람도 많다. 특히 연세대처럼 유서 깊은 대학에선 나무 한 그루 한그루가 소중하다.

연세대 교정엔 시인 윤동주의 시비가 있고,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한 역사가 뿌리내려 있다. 역사의 나이테가 새겨진 백양로를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 장면 자체로 엄숙해지기도 하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연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자산이다.

대학 교정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광장'의 기능을 해야 한단 점에서도 대규모 개발 사업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진행해야 맞다. 대학은 창조적 소통이 가능한 공공 지대, 즉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가 살아 있는 공간이어야 옳다. 민주적 소통과 토론을 통해 창의적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작은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마저 '수익자 부담 원칙' 따라선 안 돼"

프레시안 : 요즘 대학이 그런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조한혜정 : '수익자 부담 원칙'이 대학가마저 잠식하면서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대학'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대학의 기능, 캠퍼스의 기능이 급격히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백양로 프로젝트만 해도, 공사비 3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세브란스 병원에 그에 할당하는 주차 공간을 내어준다는 계획도 잡혔다. '점유'와 '공유'란 개념보단 '사유란 개념이 대학가를 잠식하고 있다.

이는 대학 자체가 한마디로 '장사가 되는 장사'가 되면서 대학생 수를 늘려온 결과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토건 사업을 덩달아 키우며, 낙후한 공간을 고쳐 쓰기보다 새 건물을 증축하는 추세가 형성됐다. 굳이 새 걸 왜 만드나. 지금도 비어 있는 공간이 적지 않다. 공간 이용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할 뿐이다.

▲ 16일 연세대학교 교정 모습. 중앙에 난 기다린 길이 '백양로'다. ⓒ프레시안(최형락)

"비용을 지불해야 공간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버려야"

프레시안 :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바뀌는 것 같다.

조한혜정 : 1980~90년대까지는 학생들이 빈 강의실 등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학교가 '집'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런데 교실에 비싼 영상 기자재가 들어가면서 수업이 끝난 후엔 교실 문을 잠그게 됐다. 점유 또는 공유하는 공간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이 죽치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자치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마저도 어떤 조직에 소속돼 있을 때 편안히 사용 가능한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학생들도 소비 사회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어딘가에 편안히 앉아 쉬거나 책을 보기 위해선 커피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돈이 없거나 쓰고 싶지 않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대학 교정 안에서마저 공공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들이 콘서트 장소 대여와 같은 수익 사업을 벌이면서, 주말이면 표를 사고 오는 사람들이 교정의 주인처럼 되었다. 결국 과거엔 모든 공간이 학생 공간이고 '여기만 학생 공간이 아니다' 식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공간이 비용을 부담하는 누군가의 관리 공간이고, 학생 자치 공간만 학생 거라는 식으로 바뀐 셈이다.

▲ 16일 연세대학교 교정 모습. 철제 펜스가 세워졌다. ⓒ프레시안(최형락)

"다양성 존중한 토론 통해 중지를 모아내는 민주적 의사소통, 가능하다"

조한혜정 : 굉장히 유서깊은 지역에 손을 댈 때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나 살아 있을 때 다 해야 한다'거나 '내 임기 중에 끝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졸속으로 추진된다. '일단 대충 해놓고 나중에 문제가 있으면 뜯어고치지'란 근시안적 생각도 하게 된다.

이곳은 오랜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이런 곳을 '재창조'하려는 사업을 단기간에 확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100년이란 시간은 내다봤어야 했다. 진정으로 '차 없는 거리', 즉 친환경 캠퍼스를 만들 거라면, 연세대에 쌓인 훌륭한 과학·기술 자원을 활용해 태양광 등을 이용한 친환경 셔틀버스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4대강과 청계천은 개발의 나쁜 모델(대표 사례)이 됐다. 대학가에서라도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아낼 수 있는 민주적인 시민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연세대 백양로 프로젝트가 좋은 개발 사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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