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도 검찰이 정상적인 조직인가?' 중앙일보 사설의 제목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의 핵심으로 알려진 윤석열 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전격적으로 업무에서 배제되고 난 직후 검찰의 '혼란상(?)'을 지적한 것처럼 보인다. 윤 팀장은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성향의 글들을 올리거나 리트윗한 것을 발견하고 영장을 신청하여 해당직원을 체포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부 보고나 결재 없이 진행했다는 의미다. 검찰청법은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하고 있고 국정원직원법은 직원 체포 시 기관통보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면서 검찰이 계속 이런 수사 갈등을 보인다면 정상적인 조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기간 동안 수만 건(현재 발견된 것만)의 정치적인 글 즉 선거 개입한 글들을 트윗 또는 리트윗 했다는 새로 발견된 사실보다 수사팀이 보고하거나 통보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들이 '훨씬' 중요했나보다. 하지만 따져보자. 대한민국이 택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주권의 주체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그들의 대리인을 뽑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국가정보기관의 직원들이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수만 건의 글들을 올렸다면, 공권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붕괴시키려 했다고 봐야 한다. 경악스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우선 이에 대해 취재하고 지적했을 것이다. 절차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게다가 중앙일보는 수사팀이 명백한 선거개입이라고 보는 글들을 굳이 정치적 성향의 글이라고 표현했다. 개념의 물 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또 국정원직원법에 따라 기관 통보를 하면서 체포 영장 신청 등의 체포 절차를 진행했다면 체포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현실은 무시한다. 국정원은 수사의 대상이고 원장은 수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미 댓글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직원들에게 진술을 거부하라고 지시했다. 체포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고도 하지 않는가. 설사 절차를 지켜 우여곡절 끝에 체포했더라도 국정원은 그새 시간을 끌고 수많은 증거들을 조직적으로 삭제했을 것이다. 국정원 수사를 하지 말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국정원 수사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이 수사에 개입하여 발생시키고 있는 문제를 중앙일보는 검찰의 혼란으로 몰아갔다. 소위 국정원 선거개입 프레임을 검찰 내부 갈등이라는 양시양비론 프레임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정감사에서 윤 팀장은 조영곤 검사장 집에 찾아가 보고하고 영장신청을 건의 했는데 검사장이 승인을 미뤄 직접 영장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상 진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검사들끼리의 난타전이라고 몰아 간 조선일보, 폭로 공방이라고 표현한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중앙일보는 '하극상', '항명'이라 규정했다. 진실과 본질 규명은 뒷전에 물리고 수사가 '혼란'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미지만 형성해내고 있다. 수사의 신뢰성이 추락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이런 국정원 수사의 초점을 흐리려는 시도는 조선일보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자식' 의혹보도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마치 특종인 양 채 전 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명백한 근거는 없었다. 아니 최초 보도에서는 당사자인 채 전 총장이나 Y 여인에 대해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기본도 무시했다. 별 근거 없이 단지 의혹만을 제기해놓고 채 전 총장이 사실임을 부정하니, 그럼 채 전 총장보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입증하란다. 언론의 횡포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의혹 제기는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새누리당과 이에 동조하는 언론들의 주고받기 식의 의제 확대 재생산과 이에 호응하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는 채 전 총장의 사임을 불러 왔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선거 개입으로 기소하지 않았다면 채 전 총장에 대한 의혹 제기가 있었을까? 정치적 의도가 개입했다고 의심받는 이유다.
채 전 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느냐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설사 사실이라 해도 이해 당사자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 불과하다. 혹자는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이 이로 인해 공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면 사생활에 불과하다. 공인의 사생활이 불가침의 영역은 아니지만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사생활이 공적 업무 수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보호 대상이다. 조선일보는 아무런 논란이 없던 채 전 총장과 달리, 친자확인 소송 중이고 확인을 거부했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정치권이 문제제기 하자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라고 대놓고 옹호했음을 잊었을까?
또 의혹 제기 과정에서 '혼외 자식' 의혹을 받은 아이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아이에 관한 불법 정보 취득이 있었다는 의혹, 아이의 신원이 공개되면서 받게 될 불이익 등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검찰총장 낙마만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채 전 총장은 사임했다. 사임 이후 검찰의 현실은 윤 팀장의 국정원 직원 체포 건이 거부되고 이들 언론의 표현대로 '거사'처럼 진행하지 않고는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언론의 모습은 Y 여인 숙소 앞에 진치고 앉아 사실상 그를 집 안에 가두고 소위 귀를 문에 안의 소리를 듣는 '벽치기'까지 감행하는 엽기적인 행태에서 절정을 이룬다.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 댓글을 달았다고 의심받은 국정원 직원의 집 앞을 막아섰다고 인권침해를 운운하던 신문들이 앞장섰음은 물론이다. 주민들의 항의로 아파트 앞으로 후퇴하고, 번갈아 근무(?) 서며 언론사들끼리 기사 공유를 하기로 약속하는 풀제를 도입하는 지혜(?)를 발휘했다고 한다. 한숨만 나올 뿐이다.
요즘 신문 산업은 위기다. 위기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는 신뢰성 상실이다. 사안의 중요도도 판단하지 못하는 언론, 정치적 색깔 더하기에 치중하는 언론, 이해관계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언론 이들은 자멸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이러고도 언론이 정상적인 조직인가?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경구가 저절로 떠오르는 시절이다.
하지만 권언유착의 언론들이 저널리즘의 기초도 지키지 않고 정파적으로만 보도하는 현실을 한탄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수용자가 바로 선 언론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언론의 옥석을 가리는 적극적 행동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비록 작지만 좋은 언론은 존재하고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언론들을 키우는 것은 언론에게 정론을 요구하는 수용자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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