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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사태,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에서였다면…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사회적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독일, 수입의 40% 세금인데 조세 저항 없는 이유")

사회 구성원 누구나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를 결합

20세기 초반 독일의 학자들은 경제를 자유방임으로 방치할 경우 "시장의 권력화가 가중되어 각각의 경제주체 간 자유로운 경쟁이 파괴될 것이다"라고 보았다. 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작업이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로 나타났는데, 여기서 말하는 질서의 핵심은 '경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경쟁의 자유는 개별 경제주체들 사이에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할 때에만 작동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영업의 자유와 같이 상대 경제주체에 대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질서자유주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질서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둔다. 또 이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독일의 대기업들이 나치 정권을 지원했던 일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경제에 대해 지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그 배경이 되었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처음으로 독일의 경제학자 뮐러-아르막에 의해 '자유시장경제'나 '국가계획경제'와는 다른 제3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즉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를 결합한 것이다. 이를 아데나워 총리 시절의 에르하르트 연방경제장관이 기독민주당(CDU, 줄여서 기민당)의 강령으로 채택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회민주당(SPD, 줄여서 사민당)은 이 용어 대신에 '민주적 사회주의'란 말을 사용하다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 채택 이후 점차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소들을 받아들였고, 1990년대 이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노총(DGB)도 1996년 드레스덴 강령 이후 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용어는 모든 주체가 받아들이는 단일한 개념이라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적 교정 장치를 가진 시장경제"로 사회 정책과 시장경제가 조화를 유지하는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즉 높은 생산성과 충분한 재화의 공급이라는 자유시장경제의 장점과 그러한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예방하고자 하는 사회국가의 요소들(자본권력의 제한, 노동에 대한 권리 보장, 분배의 정의, 종합적 사회복지 등)을 결합한 것이다.

여기서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자유로운 가격 결정이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법적 기반을 바탕으로 창업, 소비, 계약, 직업 등에 대한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다. 동시에 정부의 경쟁 정책에 힘입어 경제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고, 특히 거대 민간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와 독과점 행위는 엄격하게 통제된다.

국가의 과제는 공정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감시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생각은 시장경제가 정부의 독과점 금지 정책에 대한 의무를 다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기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필요한 경우 경기 부양책, 고용 정책, 복지 정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교정해야 한다.

남양유업 파문 일어난 한국, 독일의 과거와 비슷

올해 상반기 남양유업이 대리점들에 대해 저지른 강매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왜 '사회적 시장경제'가 필요한지 그 당위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먼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리점에서는 지난 1월에 이미 남양유업의 그러한 부당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국가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그러한 사실들이 SNS를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다음에야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고, 또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양유업의 회장은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그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대표가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들이 근절될 수 있을까?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비공식 고용(비정규직과 유사)의 비중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공식 고용'이란 법적으로든 관행상으로든 노동법, 소득과세, 사회보장, 고용 관련(해고 시 사전 통지, 퇴직금, 유급 병가, 유급 휴가 등)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자리를 일컫는다.

이러한 비공식 고용을 유발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규제 자체의 부재(약 20%)와 규제의 미준수(약 80%)가 그것이다. 즉 수많은 비공식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물론 법이나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경우 사용자가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마치 독일에서 사회적 시장경제가 처음 등장하던 시대적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처럼 시장의 권력화가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각의 경제주체 간 자유로운 경쟁은 사라지고 갑을관계와 같은 상하관계가 자리를 잡은 형국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경제적 권력 남용이나 오용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시장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표방하지만,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의 권력이, 개인에 비해 기업의 권력이 우월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유경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난한 개인이나 취약한 중소기업은 각각 기업이나 대기업이 제시하는 일방적인 거래 조건을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거대 기업들의 불공정하거나 독과점적인 횡포들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사회적 약자들이 강자들의 부당한 거래 조건을 거부할 수 있고 자유로운 경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복지 시스템의 구축은 안정된 일자리의 창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경제 민주화란 그 어떤 거창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실업이나 장애, 질병 등 여러 가지 사정이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이며, 그 핵심은 대기업들의 불공정·독과점 행위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시스템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사회적 부담을 나누어짐으로써 사회 구성원 누구나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공동체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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