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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트릴레마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24> 연재를 마치며

시간은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기억의 덩어리들이다. 시간은 구불구불한 길처럼 나에게로 왔다가 다시 멀어져 가는 불순한 반복이다. 시간은 우리를 과거라는 흔적 속에 떨어뜨려 놓고 미래라는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달려가는 무한한 확산이다. 시간은 공간을 무작위로 감고 있는, 끊어짐과 뭉침이 존재하는 울퉁불퉁한 띠와 같다. 어느 순간 그것은 끊어질 듯 존재감이 없다가 어느 순간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둘둘 뭉쳐 아주 느리게 지나가거나 아예 멈춰 서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아름답게 한다. ― 노태맹(시인) ―

1.

이제 길고도 길었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유달리 다사다난했던 2012년 말을 보내고 또 2013년을 맞으면서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도 많은 성원이 있었던 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계경제 위기의 본질과 패러다임의 실체 그리고 그 방향과 미래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동안 수세기를 넘어 끝없이 계속되었던 좌우대립의 논쟁과 설전들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해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이것은 단순히 이론의 문제만이 아니고 현실적인 수많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패러다임의 연구는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좌우 대립 자체를 쌍방이 지식이 부족한 소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논리를 경청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자세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마녀사냥'으로 몰아서 철저히 고립 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묵수적(墨守的)이고 교조적(敎條的)인 진영논리에 빠져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권력 획득을 위해 모인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들을 '모르면서 무시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세상의 불행이 시작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과 같이 독과점 기업들의 횡포가 심한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산업들도 많은데 이른바 진보진영에 있다는 사람들이 무작정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경제개방을 반대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독과점 기업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데도 개방을 반대하면 결국 독점기업들의 초과이윤만 키워주거나 정경유착이 심화되고 나아가 국제경쟁력도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재벌을 배척한다고 하면서도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또 무슨 이유입니까? 개방을 하되 면밀히 검토하여 선별적으로 접근하면 될 일인데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입니다. 이런 무식한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인 혼동 속에서 사회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진보 개념이 제대로 정립이 안 되는 것이지요. 또 한국경제는 이미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경제가 아니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점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은 신중상주의로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나라임도 잊어서도 안 됩니다. 무역을 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면 안 되지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진리(truth)'를 궁구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균형추를 상실할 때 그것을 바로 잡도록 하는 실천적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지식인의 문제는 복잡합니다. 저도 세계인이기 이전에 한국인이기 때문에 세계경제나 패러다임의 고민과 한반도의 고민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와 같은 위대한 문호처럼 세계인의 문제만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의 주된 관심은 한국의 성공입니다.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비굴할 수밖에 없는 문제지요.

한국은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것도 고려해야하고 세계 경제의 주요국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유지해가는 것도 한국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은 외압(外壓)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것도 항상 살펴야 합니다. 그것은 한국 지식인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트릴레마(trilemm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말이 원래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는 일반적으로 삼중고(三重苦)라는 뜻으로 ① 물가안정(Price Stability) ② 경기부양(Economic Stimulus, pump-priming) ③ 국제수지(Balance of Payments) 개선 등의 세 가지를 가리키는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즉 물가 안정에 치중하면 경기가 침체되고, 경기를 부양하려 하면 인플레이션의 유발(물가 불안정)과 국제수지 악화가 초래될 위험성이 있는 등 서로 물고 물려서 정책선택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화(Globalization), 민주주의(Democracy), 국민국가(National State)도 같은 경우입니다. 세계화를 추진하려고 하면 민주주의나 국민국가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세계화나 국민국가를 포기해야한다는 것이죠. 또 국민국가로서 민족 자결권을 수호하려면 민주주의나 세계화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민주주의와 세계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철저히 민주적인 국제정치공동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망상(妄想)입니다. 국민국가들 사이에는 차이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에는 금융의 세계화로 인하여 경제파탄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어있습니다. 아르헨티나, 한국, 러시아, 태국, 터키(2001), 그리스, 스페인 등 수많은 나라에서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인데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일찍이 넉시(Ragna Nukse)는 "외국 자본은 누구나 빌릴 수 있지만 그것은 마치 비가 오면 바로 돌려줘야 하는 우산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적자재정이 심각한데도 해외자본을 빌려서 '빚으로 경제를 운영하다가' 경제침체가 계속되어 어느 날 갑자기 해외자본이 돈줄을 끊어버리면(sudden stop), 그 경제는 그대로 주저앉게 되는 것이죠.(1) 물론 미국의 달러($)와 같이 국제 기축통화(Key currency)는 일부 예외일 수 있습니다. 안되면 달러를 찍어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인 나라가 자국 화폐가 아니라 달러로 빚을 지고 있다면 이것은 언제든지 심각한 문제가 터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긴 글을 통해서, 저는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해왔습니다. 그 시작부터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또 그것이 왜 현재의 세계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를 여러분들께 분석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세계는 제가 분석하고 제시하는 대안들을 제대로 수용할 지는 의문입니다.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용될지는 몰라도 현재의 패러다임으로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드리는 대안들을 한국경제나 사회가 바로 수용하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령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한답시고 재벌을 해체해버리면 이들은 결국 외국의 재벌기업들에 의해 먹히고 맙니다. 그러면 집안의 도둑을 잡으려고 더 큰 외부의 도둑을 끌어들이는 꼴이 됩니다. 이것이 세계경제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고민들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보면 선진국과 후진국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일의 패러다임(Monistic Paradigm)은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일본은 일본식의 독특한 자본주의 운영방식을 통해서 역동적인 수출정책으로 서구를 따라 잡았고, 중국은 한국형 모델을 기반으로 민간투자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후 급속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주요 아시아 경제성장국들은 GATT나 WTO의 근본정신과 위배되는 중상주의적 모델을 통해서 경제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중동지역도 세계경제로부터 철저히 자국의 자원과 산업을 보호하면서 자신의 경제를 지키고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인 『동아시아의 기적』(1993)에서도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경제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는 달리 정부의 주도가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원천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2)

따라서 선진국은 자기에게만 유리한 패러다임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른 바 규제 완화(정부간섭 배제), 무역 및 금융자유화, 민영화 등으로 요약되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 신자유주의 심볼)는 "세계화로 개발도상국들을 가난에서 구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세상을 호도해왔습니다. 여기에 현대의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의 한 사람인 제프리 삭스(Jeffery Sachs)와 앤드류 워너(Andrew Warner)도 오류 투성이의 논문으로 크게 거들었습니다.(3) 그러나 결과를 보면 전혀 다릅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가장 빈곤한 지역의 격차가 2배였는데 현재의 그 비율은 20배라고 합니다. 나라별로 본다면, 부국(富國)과 빈국(貧國)의 격차는 80여배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4) 어떤 경우라도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죠. 하버드 대학의 프리쳇(Pritchett)은 이것을 디버전스(Divergence)라고 부릅니다. 하나는 부자의 길로 하나는 가난의 길로 다시는 돌아와 만날 수 없는 큰 강을 건너는 커다란 분기점(分岐點)이라는 의미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진정 후진국 또는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그들에게 유리한 경제모델과 패러다임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경제개발 모형을 좀 더 제대로 연구 분석하여 이들 나라들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제적 성공을 이룬 국가들 예컨대 타이완, 중국, 모리셔스(Mauritius) 등은 한국형 모델임을 세계인들은 명심하여야 합니다.

▲ 아름다운 한국 이미지

다만 저는 현재 한국인의 입장과 세계 민중의 입장은 같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보면, 세계 경제 상황을 이대로 두는 것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일'이지요. 저개발 국가들이 일정 수준의 빈곤 상황이 유지되면 한국에는 유리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경쟁국들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미국과 남유럽에서 경제위기가 터지니 그마나 한국경제가 더욱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을 보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중국과 한국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한국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세계 평화를 운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불평등이 심화되면 결국 그것이 부메랑(boomerang)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세계열강(列强)으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세계 민중의 입장에 서는 것도 크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골치 아픈 일입니다. 일단은 제가 사는 이 땅이 먼저 안정되어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세계인이기 이전에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 과거와 현재 한국 이미지

이 점에 있어서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이 말하는 '여우와 고슴도치'의 비유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자는 여우형과 고슴도치형이 있다는 것이죠.(5) 고슴도치형 이론가는 경제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시장 자유화나 또는 정부주도의 정책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고 여우형 이론가들은 시장의 기능을 일부 존중하지만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교과서의 해답이 불확실하다고 보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슴도치형의 이론가들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이론적 업적을 달성해도 여러 경제문제들을 교과서적이고 판에 박힌 논리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디 경제만의 문제였습니까?

2.

오래 전에 탄자니아 마라톤 선수 존 스티브 아쿠와리(John Stephen Akhwari)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당시 부상에도 불구 완주에 성공했던 사람입니다.

아쿠와리가 신호음과 함께 출발하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넘어져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넘어지면서도 절뚝거리며 한 발짝씩 뛰는데 온몸에 땀과 피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몸으로 길고도 긴 마라톤 코스를 달리고 또 달립니다.

마침내 아쿠와리는 결승선에 골인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물론 꼴찌로 들어온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의 입가엔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취재진과 수천 명의 관중들이 그가 도착할 때가지 그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부상도 심한데 왜 그렇게 열심히 뛰었습니까? "

아쿠와리는 대답했습니다.

"내 나라는 나를 경주에서 출발만 하라고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 완주를 하라고 나를 이곳에 보낸 것입니다 (My country did not send me to Mexico to start the race. They sent me to finish)"

어쩌면 인생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완성해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깊고 깊은 의미를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해도 '내가 세상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죽을 때까지는 완성해 가야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필자 김운회 동양대 교수


학업보국(學業報國 : 학업을 통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

그 동안 이 네 글자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와 이제 반백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 날의 생각과 가치가 항상 같지 않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 그대를 진정 사랑했는데 지금 우리 사랑은 왜 변해만 가는지"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삶과 사랑의 다양한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넓게 그리고 높게 보면 볼수록 더 복잡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 악의 축으로 여겨졌던 그 많은 것들이 다들 저마다의 논리와 정의가 있고 또한 곡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나름대로 한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원래 관심은 역사(History)였지만 경제학을 전공하여 공부했다는 것은 제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작은 사업을 실제로 해보면서 여러 실험들을 해본 것도 제게는 사회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제가 마르크스(좌파) 경제학을 깊이 공부한 이후 서울대학교의 우파 경제학 대가인 스승과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과의 논쟁에서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 자체가 서로 워낙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는 한국경제와는 달리 그분은 한국경제에 큰 희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당시 좌파는 한국경제가 이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우파 경제학의 현란한 개념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가치적이고 구조적이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데 반해서 우파 경제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사실적이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그 이론들을 모르고서 논쟁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파 경제학을 모르고서 세상을 재단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우파 경제학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후배들에게 좌파경제학은 물론 근대경제학(우파 경제학)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한국 사회를 보다 냉철하게 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들을 보고 통계를 찾고 개념들을 익혔습니다. 덕분에 좌우파 경제학과 경제학의 대부분의 분야들을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절의 독서량은 제가 불혹(不惑)이 지난 후 읽은 전체 책의 양보다 더 많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경제(經濟)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는 혁명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경제는 혁명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경제란 선진 경제가 간 길들을 결국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이 길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고 믿었던 그 많은 것들도 때로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경제기적인 한국 경제는 그 수많은 부조리(不條理)의 결과이고 그것이 그나마도 개선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긴 세월을 증오했던 이들이 갑자기 심복의 총탄에 쓰러져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고 또는 어느 날 초라하고 힘없는 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청문회장에 끌려 나오는 것을 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생각보다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점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길었군요.

이번에 연재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는 제가 이승의 삶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남은 인생의 숙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의 준비도 충분하지 못했고 그 동안 해온 연구들도 마무리를 못했고 공부도 만족스럽지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핑계 같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위기에 접어들었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에서는 극심한 좌우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일단 서둘러 발표한 것입니다.

이 글이 여러분께 또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는지는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또 제가 거창하게 내어 걸었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에서 보여주는 그 패러다임이 마법사의 주문 같은 해결책이기를 기대한 많은 분들에게는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시다. 잘못된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새로운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설계한 것만으로도 어쩌면 제 할 일은 다 한 셈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시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나 패러다임들의 실현 가능성도 현실 속에서 검토하는 일들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용기를 북돋워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언젠가 연구가 되는대로 세계인들이 세계경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경제학 원론>으로 다시 여러분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012년 12월 金 雲 會 드림

□ 필자주석

1. 예를 들면, 세계화는 개별국가가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정치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비유하자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둘 중 하나로 줄어든다. 다른 맛들 특히 국내 상품은 모두 추방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Dani Rodrik <자본주의 새판짜기(The Globalization Paradox)> (21세기 북스 펴냄, 2011) 20∼21쪽, 193쪽, 273∼300쪽 등을 참고.

2. Dani Rodrik 앞의 책, 298쪽, 221∼225쪽 참고. 세계은행 보고서의 원 제목은 <The East Asian Miracle :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1993)>. 특히 한국은 국내시장을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유치산업을 보호하였고, 한국의 기업들이 신기술을 충분히 습득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진입을 막았다. 보호받는 산업들은 정부주도로 수출산업으로 성장하였고 정부는 수출보조금을 통해서 이들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왔다.

3. Jeffery Sachs and Andrew Warner, "Economic Reform and the Process of Global Integration",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1(1995), pp1∼95. 이 논문은 무역시장을 개방한 나라가 개방하지 않은 나라에 비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2.45% 빠르게 성장한 것으로 무역시장의 개방을 통해서 2배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세계화 또는 개방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문제는 여러 국가를 개방국가와 폐쇄 국가로 단순 이분법으로 분류한 데에 있다. 예를 들면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개방국가라고 하는데 이들 나라가 1980년대 이전까지는 철저한 보호 무역주의 국가였던 것을 망각하고 분석한 것이다.

4. Angus Maddison, Growth and Introduction in the World Economy : the Roots of Modernity(Washington, DC :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2004), Table 2. 및 Lant Pritchett, "Divergence, Big tim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 Vol.11 no.3(Summer 1997), pp3∼17.

5. Dani Rodrik, 앞의 책, 180쪽. 로드릭은 주로 프리드먼류의 이론가들이나 시장 주의자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로드릭의 견해도 근본적으로는 서구 경제 중심에서만 고찰하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우형이라는 것은 필자가 앞서 말했던 여러 가지 정치·경제·사회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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