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에서 두 갈래로 나뉩니다.
1팀은 심한 비탈을 내려가 희운각을 지나 무너미 고개에서 공룡능선으로 올라섭니다.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과 철제 로프가 설치된 암릉을 지납니다. 신선대를 지나고 범봉을 지나 마등령삼거리까지 공룡능선은 힘이 들지만 장쾌하고 웅혼합니다. 암릉 사이를 돌고 돌아 가는 길은 "과연 공룡능선이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비선대계곡과 화채능선을 뒤로하고 오세암을 향합니다. 돌을 쌓아 만든 계단길을 한참 내려가면 독경소리가 들리고 바로 오세암입니다. 전설이 어린 동자전을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영시암이 보이고 맑디맑은 계곡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어느새 백담사입니다.
▲ 공룡능선 운해 Ⓒ설악산국립공원 |
2팀은 소청을 내려섭니다. 작년에 새롭게 단장한 소청대피소를 지나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봉정암에서 잠시 다리쉼을 합니다. 사자바위를 지나 쌍폭으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입니다. 수많은 철 계단과 다리를 조심스레 건넙니다. 내설악의 아름다운 계곡과 시원한 물소리에 가슴 시원해집니다.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은 암벽위에 뿌리내린 소나무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합니다. 어느덧 수렴동대피소입니다. 영시암의 샘물에 목을 축이고 계곡과 연달아선 숲길 걷다보면 백담사입니다.
백담사에서 첫날 산행을 마감합니다. 버스를 타고 용대리로 이동합니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더운물에 샤워하고 하루를 함께한 도반들과 술잔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첫날을 마무리합니다.
둘째 날은 게으름을 피우며 여유롭게 일어납니다. 산책도 하고 자유로운 아침시간을 보내고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진부령 흘리마을로 이동합니다. 백두대간 남쪽구간의 종착지인 진부령을 향하여 걸음을 디딥니다. 천천히 걸으며 어제의 장거리 산행으로 인한 근육들을 풀어줍니다. 641.8봉에 오릅니다. 멀리 민통선 안쪽에 자리한 향로봉이 눈앞에 자리합니다. 아쉬움을 담고 진부령으로 향합니다. 진부령 표지석이 보입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길을 이어져 있습니다. 언젠간 가야 할 길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진부령에서 산행을 마칩니다. 산행일은 9월 28(토)~29(일)일이며 27일(금) 밤 서울을 출발합니다.
▲ 설악의 기상 Ⓒ설악산국립공원 |
[교장선생님의 산행지 설명]
백두대간학교를 시작한지 벌써 3년이 다 되었습니다. 시월이면 만 3년입니다. 비개방 구간, 난이도가 매우 높은 구간 그리고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수 없는 구간 등을 제외하고는 백두대간의 대부분 구간을 걸었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하셨던 분들은, 앞서 말씀드린 몇 구간들을 제외하고는 백두대간의 산길을 모두 걸으셨다 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약 1,650km에 이르는 큰 산줄기입니다. 남한 구간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입니다. 시작을 지리산에서 했으니 설악 지나고 진부령에 이르러야만 그 걸음이 마무리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9월 산행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산 설악입니다.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華山)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 산입니다. 서리뫼(霜嶽)라고 불린 금강산(1638m)에 견주어 설뫼(雪嶽)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잊힌 이름이지만 말입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어 북쪽으로는 향로봉, 금강산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점봉산, 오대산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설악산(雪嶽山. 1,708m)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1982년 8월에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설악산은 온대 중부지방의 대표적 원시림 지역으로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물로는 사향노루, 산양, 곰, 하늘다람쥐, 여우, 수달 등 희귀종을 포함하여 총 39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습니다.
곰과 사향노루 등은 멸종의 길을 갔지만 산양은 다행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약 100~200마리 정도가 설악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산양은 1900년대 초만 해도 전국의 어느 산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설악산에서도 예전에는 한 해에 수백 마리 씩 잡았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다소 과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만큼 산양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설악산에는 포유류 외에도 62종의 조류와 각종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식생 분포 또한 다양합니다. 대청봉 지역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눈잣나무와 눈주목은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방계 고산식물입니다. 그 밖에 소나무, 벚나무, 개박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눈측백, 금강초롱꽃, 금강분취 등 총 882종의 관다발식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65종이 특산식물이고, 56종이 희귀식물입니다.
산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건강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건강만을 위해 걷는다면 굳이 산을 찾지 않아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습니다. 강가도 찾을 수 있고, 숲도 걸을 수 있습니다. 헬스클럽(Gym)을 찾아 걷고, 뛰며 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산을 찾는 것은 앞에서 거론한 풀과 꽃, 나무들을 포함하여 산에 사는 수많은 생명들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묵묵히 생명들을 품고 키우고 살려온 산을 만나고, 산의 소리를 듣기 위한 것입니다. 그 만남들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내 마음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길은 그저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저 산길을 따라 걷는 이들을 그저 산길을 돌아 나올 뿐이지만, 마음길 따라 걷는 이들은 산길에 머물러 있으되 마음의 강을 지나는 것입니다. 산의 소리를 듣고, 산 너머에 있는 것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길은 함께 걷더라도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홀로 걷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높고 낮은 산들, 깊은 숲들을 지나는 것은 그 산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기운을 만나고, 그 산을 품고 경외하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하늘의 뜻이 발현되는 신성한 공간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하늘의 뜻이냐면, 생명을 점지하고 품어 살리는 하늘의 뜻이고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품고 있는 모든 산들의 중심에 백두대간이 있고, 그 백두대간의 처음에 백두산(白頭山)이 있는 것입니다. 백두산은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백두대간의 남쪽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지리산(智異山)은 '사람 사는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늘의 지혜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백두대간은 그저 큰 산줄기가 아니라 하늘의 정신이 깃들고 흐르는 생명의 줄기였던 것입니다. 즉 하늘의 뜻이 발현되는 하늘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리산 천왕봉 오르기 직전에 개천문(開天門)과 통천문(通天門)이 있는 이유입니다. 지리산이 이 땅에 있는 산임에는 틀림없지만, 거기서부터는 하늘에 속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대청봉 Ⓒ백두대간학교 |
그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신성하고 숭고한 산' 설악산이 있는 것입니다. 설악을 지나며 산을 느끼고 마음을 만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산행 코스는 매우 어렵습니다. 두 코스로 나누었지만 두 코스 모두 쉽지 않습니다. 공룡능선을 걷느냐 걷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두 코스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덜 힘든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길 지나면 산을 느끼고 마음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 새벽 오색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첫날 산행은 구간 별로 약 15시간, 12시간 동안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둘째 날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의 걸음입니다. 흘리마을로 들어가 백두대간의 남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진부령까지 걷습니다. 흘리마을은 금강산 줄기가 아쉬움에 몸을 내려놓은 곳입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마산봉은 금강산의 끝줄기에 자리한 산입니다. 마산봉 붙들고 그 산줄기 따라 흐르면 금강산으로 흐르고 백두산에 가 닿을 수 있습니다.
흘리마을의 가을은 억새와 코스모스로 출렁이고 흔들립니다. 오는 바람에 억새 출렁이면 마음도 출렁이고, 가는 바람에 코스모스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립니다. 백두대간의 끝 진부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어찌 마음 흔들리고 출렁이지 않겠습니까.
진부령은 한계령, 미시령과 더불어 설악의 준령으로 손꼽히지만 다른 고개와 달리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은 탓에 이런저런 가게들이 모여 들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고갯마루가 아니라 읍 정도 되는 여느 작은 마을에 들어선 듯합니다. 장이라도 열리면 장터에 들어선 듯 착각을 할 정도로 번다합니다.
고갯마루는 번다하지만 길은 끊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끊어져 있기에 더 번다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흐르지 못한 길이 아쉬워 사람들 모여 헛헛한 마음 달래느라 말입니다. 길은 이어져 있으나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 고갯마루에서 사람들로 인해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는 백두대간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분단을 넘어 다시 또 흐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구간소개]
-산행코스 : <1일차 1팀> 오색-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봉-희운각-무너미고개-공룡능선
-마등령삼거리-오세암-영시암-백담사-(버스 이동)-용대리
<1일차 2팀> 오색-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봉-봉정암-수령동대피소-영시암
-백담사-(버스 이동)-용대리
<2일차> 흘리-눈물고개-641.8봉-소로길-진부령
-산행거리 : 1일차 1팀 약 20km(도상거리/버스 이동 7.2km)
1일차 2팀 약 17.9km(도상거리/버스 이동 7.2km)
2일차 약 4.1km(도상거리)
-소요시간 : 1일차 1팀 약 15시간
1일차 2팀 약 12시간
2일차 3시간, 버스 이동 30분
-난 이 도 : 1일차 1팀 상상(★★★)
1일차 2팀 상하(★★★)
2일차 하하(★)
▲ <설악산 1박2일> 산행로 Ⓒ백두대간학교 |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 두 분이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산악가이드 이철승 선생님은 백두대간 종주 등 산행경력 30년의 공인 숲길체험지도사이고, 엄재용 선생님은 백두대간을 3회 종주한 공인 숲길체험지도사입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4152-1055입니다.
출발일은 9월 27일 금요일 밤입니다.
23:00 덕수궁 대한문 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 2번 출구)
23:30 사당역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 출구)
23:40 양재역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 출구)
*산행지가 강원도인 관계로 이번 산행에서는 죽전과 신갈은 정차하지 않습니다.
<산행일정>
<1일차>
03:00 오색탐방지원센터 도착 - 산행 준비/스트레칭
03:30 오색탐방지원센터 출발 - 산행 시작
07:30 대청봉
07:50 중청대피소 - 아침식사
08:30 소청봉
<1팀>
10:00 희운각대피소
12:00 범봉 부근에서 점심식사
15:00 마등령 삼거리
16:20 오세암
17:30 영시암
18:30 백담사 - 산행 마감(버스 이동)
19:00 용대리 - 숙소 도착(메아리국민호텔)/방 배정 후 저녁식사
<2팀>
10:00 봉정암
12:00 쌍용폭포 부근에서 점심식사
14:00 수렴동대피소
14:30 영시암
15:30 백담사 - 산행 마감(버스 이동)
16:30 용대리 - 숙소 도착(메아리국민호텔)/ 방 배정 후 휴식
19:00 저녁 식사 - 메아리가든(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033-462-4613)
능이백숙과 황태구이, 시원한 옥수수막걸리를 곁들여 뒤풀이
22:00 숙소 - 꿈나라로
<2일차>
06:00 기상
자유시간 - 산책 등
08:00 아침식사 - 시원한 황태해장국
09:00 용대리 출발 - 버스 이동
09:30 흘리 도착 - 스트레칭 후 출발
11:00 641.8봉
12:00 진부령 - 산행 마감
12:30 점심식사 - 황태세상
황태찜과 더덕막걸리로 뒤풀이
14:30 서울로 출발
17:00 서울 도착 예정
*상기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범봉 운해 Ⓒ설악산국립공원 |
[산행 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의, 우의, 스틱, 물통, 여벌 옷, 간식(장거리 산행입니다. 넉넉하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그리고 반드시 1일차 점심도시락을 싸 오시기 바랍니다.
[식사 및 숙박 안내]
*식사
-1일차 아침은 제공합니다(맛있고 넉넉한 김밥, 식수, 간식 약간).
-1일차 점심은 직접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나머지 식사는 모두 현지에서 제공합니다.
*숙박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위해 1실에 2인 ~ 3인을 기준으로 숙박합니다.
(단, 큰방인 경우 3인 이상이 숙박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은 침대가 있는 숙소 배정
<백두대간걸작선> 제34강 <설악산 1박2일> 참가비는 20만원입니다(여유로운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 등을 고려하였습니다. 왕복 교통비, 4회 식사와 뒤풀이, 강의비, 가이드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백두대간학교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십시오(산행에 관한 문의는 이철승 선생님에게 해주세요. 010-8727-0202). 아울러 백두대간학교 카페에도 많이 놀러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http://cafe.naver.com/baekdudaeganschool)^^
☞참가신청 바로가기
▲ 마등령의 아침 Ⓒ설악산국립공원 |
[산행자료]
[설악산] 1,708m.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霜嶽]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雪嶽]라고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오대산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
백두대간의 한계령-공룡능선-미시령을 중심으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 속초지역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식생 분포도 다양해 온대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원시림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대청봉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눈잣나무와 눈주목은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방계 고산식물이다.
그 밖에 소나무·벚나무·개박달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눈측백·금강초롱꽃·금강분취 등 총 882종의 관다발식물이 분포하며 이 가운데 65종이 특산식물, 56종이 희귀식물이다.
동물은 사향노루·산양·곰·하늘다람쥐·여우·수달 등 희귀종을 포함하여 총 39종의 포유류와 62종의 조류 및 각종 파충류·양서류·어류·곤충 등이 서식한다. 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82년 8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보존지역·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195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산
<동국여지승람>의 양양도호부편에 "설악은 부의 서북쪽 50리에 있는 진산이며 매우 높고 가파르다. 8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지었다"라고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때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산이었다. 인제현편에는 오늘의 장수대 부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수록되어 있다. "한계산. 현의 동쪽 50리에 있다. 산위에 성이 있다(한계고성을 말함). 냇물이 성안으로부터 흘러나와서 곧 폭포를 이루어 내려가니 흐름이 수백척의 높이에 달려있으므로 바라보면 흰 무지개가 하늘에서 드리워진 것 같다(대승폭을 말하는 듯). 원통역으로부터 동쪽은 좌우쪽이 다 큰 산이어서(서북릉과 가리봉을 말함) 동부가 깊숙하고 산골물은 가로세로 흘러서 건너는 것이 무려 36번이나 된다(한계천과 자양천을 말함). 소나무와 잣나무가 모두 높아서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다(오늘날에도 이런 나무들이 많이 남아있다). 또 그 남쪽에는 봉우리가 절벽을 이루었는데 그 높이가 천길이나 되어서 기괴하기가 형언할 수 없다(하늘벽을 말함)"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이 금강산에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설악산이 우리의 레저문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이다. 지금 설악산은 국내등산과 레저를 운위할 때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이며 연간 수백만 명이 계곡과 능선, 암벽과 빙폭을 누비는 레저활동의 메카가 되었다. 레저를 알며 즐기는 연령층의 대부분은 일출이라면 대청봉, 빙폭이라면 토왕성, 암릉 종주라면 공룡과 용아장성, 능선 종주라면 미시령에서 한계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안산에서 대청에 이르는 서북능선을 떠올린다. 폭포와 소라면 대승폭과 12선녀탕, 계곡산행이라면 내설악 구곡담, 가야동, 암벽 산행이라면 천화대, 눈사태라면 설악을 떠올린다. 4계절 어느 때 찾아도 찾는 이에게 깔끔하면서도 장중한, 그러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한 설악산의 얼굴은 다양하기만 하다.
▲ 가을 설악 Ⓒ설악산국립공원 |
-설악의 8기
*천후지동(天侯地動) - 하절기면 비가 많이 내려 뇌성이 일어나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하늘이 온통 찢어지듯 울부짖고 땅이 갈라지듯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의 신비와 울림의 기이로움.
*거암동석(巨岩動石) - 흔들바위와 같은 거암괴석이 움직이는 신기로움
*백두구혈(百斗毆穴) - 북면 용대리 외가평에서 백담사로 가는 백담계곡에 하식작용에 의해 구혈을 형성하고 있어 학이 날아간 흔적이라 불리기도 하는 구혈의 기이함
*전석동혈(轉石洞穴) - 외설악의 계조암은 대표적인 전석동혈로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있어 하나의 자연동굴을 이루고 있는 신비로움
*수직절리(垂稙節理) - 암질과 구조의 차이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이루어져 내설악의 12선녀탕, 하늘벽과 같이 험준한 지형과 외설악의 천불동계곡등, 모두 신비롭고 다양한 절리에 천태만상의 형상
*유다탕폭(有多湯瀑) - 12선녀탕과 같이 쏟아지는 물에 반석이 패여 큰 바위확이된 탕의 기이함
*금강유혈(金剛有穴) - 비로봉의 금강굴과 큰 석산에 구멍이 생긴 기이함
*동계설경(冬季雪景) -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쌓이고 쌓여 11월부터 3월까지 백설이 만연하다.
-설악의 8경
*용비승천(龍飛昇天)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며 최장인 대승폭포를 비롯하여 쌍폭, 소승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육담폭포, 오련폭포, 천당폭, 독주폭포 등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물줄기가 낙하하고 무지개가 발생하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이 황홀하며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승하는 듯한 선경이 장관이다.
*설악무해(雪嶽霧海)
하절기이면 산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안개에 쌓여 구름위에 솟아있는 대청봉의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며 또한 안개 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산봉우리에 앉으면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 해 그 조화는 8경중 제일이다.
*칠색유홍(七色有紅)
겨울철에 쉬지 않고 낙하하는 폭포수에 햇살이 반사되어 비수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발생하고 또한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홍해황엽(紅海黃葉)
만산에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누런 잎에 쌓여 골짜기마다 금수강산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선경이다.
*춘만척촉(春滿擲蜀)
대청봉 남측에 발달한 진달래와 철쭉군락을 비롯하여 백화가 온 산을 덮어서 4월에서 7월이면 꽃들이 만발하여 가득하니 상상 할 수 없는 진경이며 비길 데 없는 풍경이고 행인의 눈을 어리게 한다.
*월야선봉(月夜仙峰)
가을 밤하늘이 밝을 때 둥근달이 중천에 뜨면 기암괴석의 모습이 난무하는 선녀같이 보이는 절경은 설악팔경에 빼놓을 수 없는 야경이다.
*만산향훈(滿山香薰)
춘삼월부터 산천초목이 소생하면 그윽한 향기가 산에 충만하며 바람이 불면 향긋한 냄새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데 특히 대청봉, 화채봉, 오색계곡에 발생하는 눈향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보는 풍경도 좋고 여흥을 돋우어 준다.
*개화설경(開花雪景)
겨울철이 오면 온 산이 흰색으로 물드는데 나무나 기암절벽에 눈이 쌓이면 온갖 형태의 눈꽃이 피어 절경을 이룬다.
-설악산 동식물
설악산 일원의 생물상은 기후와 특성에 따라 내설악과 외설악이 각기 다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내설악은 내륙성 기후로 완만한 경사와 두터운 토양층으로 이뤄져 숲이 무성하고 동물의 서식이 풍부한 반면 외설악은 해양성 기후로 지세가 급경사를 이루고 탐방 객의 발길이 찾아 동물의 서식이 적은 편이다. 동물은 총 1,562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
반달가슴곰(329호), 황조롱이(323호), 사향노루(216호), 붉은배새매(323호), 하늘다람쥐(328호), 산양(217호), 수달(330호), 크낙새(197호), 어름치(259호)
*양서류 - 설악산에는 2목 5과 10종의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다. 도룡, 꼬리 치레 도롱뇽,두꺼비, 물두꺼비, 무당개구리, 청개구리, 산개구리, 아무르산 개구리, 옴개구리 등
*파충류 - 설악산에는 도마뱀류가 1과 1속 3종, 뱀류가 2목 4과 8속 10종이 서식하고 있다. 줄장지뱀, 장지뱀, 아무르장지뱀, 대륙유혈목이, 유혈목이, 구렁이, 누룩뱀, 능구렁이, 실뱀, 무자치, 살모사, 까치살모사, 쇠살모사 등
*담수어류 - 설악산 수계에는 총 61종 및 아종이 확인되고 잇다.
*곤충류 - 설악산은 북방계와 남방계의 교차지점으로 1,400여 종의 풍부한 곤충상과 희귀종, 특산종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식물 분포종은 총 1,013종으로 신갈나무, 소나무, 단풍나무가 가장 많이 분포하며 희귀식물56종, 특산식물 65종이 서식하고 있다.
*희귀식물 - 노란 만병초, 눈측백, 흰싸리 등
*특산식물 - 설악눈주목, 금강초롱, 솜다리 등
*모데미풀 - 미나리 아제비 과에 속하는 한국특산 식물로 5월에 흰색 꽃이 피는 다년초이며 오색약수터에서 점봉산으로 향하는 계곡에서 자라지만 수가 적다.
*연잎꿩의 다리 - 미나리 아제비 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잎자루가 잎 뒷면에 붙어 연꽃의 잎 같이 방패모양을 하는 한국식물이다. 화채봉 능선을 따라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한계령풀 -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2년초로 뿌리가 땅 속 깊이 곧추 들어가고 5월에 황색 꽃이 피며 꽃밑에 사마귀처럼 생긴 포엽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6월에 구슬같이 열매를 맺으며 월동 준비에 들어가는 조춘식물이다. 점봉산, 한계령에 분포하는 북방인자이다.
*설악눈주목 - 주목과에 속하는 고산성인 상록관목으로 주목에 유사하나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를 내려 포기를 만드는 점이 다르다.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의 눈잣나무 군락 속에 섞여 산다.
*금강애기나리 - 백함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강원도 이남의 심산 정상 가까운 숲속에 나는 한국특산 식물이다. 잎밑이 줄기를 싸고 잎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꽃은 황록색 바탕에 자색 반점이 있고 7~8월에 핀다.
-오색약수(五色藥水)
약 150여 년 전 성국사 승려가 반석위에서 용출되는 천맥을 발견하고 무심히 한 모금 마신 결과 약수로 판명되었다. 당시에 성국사에 오색화가 피는 특이한 수목이 있기에 이후 오색약수라 칭하게 되었다.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과 그 남쪽 점봉산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다. 오색천(양양 남대천의 지류) 개울가의 한 너럭바위 암반에서 약수가 솟는다. 3개의 구멍에서 솟는데, 위쪽의 약수는 철분이 많고 아래쪽 2개의 구멍은 탄산질이 많다. 하루 용출량은 1,500ℓ 정도이고, 물맛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며,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 ·빈혈 등에 효력이 있고 특히 메밀꽃 피는 가을철에 탁효가 있다고 한다.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 km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다섯 빛깔 전설의 땅, 오색(五色)
한계령이라 부르니 그저 서운한 땅이 바로 남설악의 오색이다. 소동라령을 한양길로 삼았던 시절에는 오색역(五色驛)이 있었다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지금은 없어졌다"는 간략한 기록으로 남는다. 역로는 비록 끊어졌지만 남설악의 절경에 앞장을 서는 오색의 명성이 사람 발길을 끊임없이 불러들여 예나 지금 이나 인파가 모이는 곳이다. 호사스런 건물을 줄지어 지어놓고 아예 마을 하나가 몽땅 관광으로 밥을 먹고 산다.
오색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다섯이다. 신통하게도 골물이 흐르는 골짜기 너럭바위에서 솟아나는 오색약수 역시 그 맛이 다섯이라 하고, 보물 제497호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성국사터의 다른 이름 또한 돌빛마저 다섯 빛깔을 낸다하여 오색석사(五色石寺)다. '다섯 전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다섯 빛깔의 꽃이 핀다는 오색화(五色花) 전설이다. 오색이란 마을 이름도 다섯 빛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거의 정설이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1937년 양양의 전재우 군수가 세 빛깔의 꽃이 피는 나무를 옮겨 심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해방 무렵까지도 지금의 관터 마을 앞의 길턱에 있었던 세 빛깔의 꽃이 피는 나무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직도 곳곳에 흔하다.
▲ 흘리마을의 가을 Ⓒ백두대간학교 |
[대청봉(大靑峰)] 1,707.9m.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설악산의 최고봉. 남한에서는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정상은 심한 기온 차와, 낮은 온도를 비롯해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낮게 자라 있어 설악산국립공원과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예전에는 청봉(靑峰)·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화채릉·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이 있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 7월이면 진달래·철쭉·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대청봉 표지석이 있다.
이전에는 정상에 제단이 설치되어 제단 가운데에 설악상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嶽上峰國司天王佛神之位), 좌측에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山神中道神靈), 우측에 설악산신령(雪嶽山神靈), 위패를 모셨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대청봉이라 음각된 자연석표시석만 남아있다.
[중청] 1,676m. 설악산의 제2봉으로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는 주봉인 대청봉, 남쪽으로는 소청봉, 서쪽으로는 끝청봉과 각각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동해를 마주보고 있다.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에 현재 중청대피소가 있다.
[소청] 1,633m.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실제로는 봉우리가 아닌 중청봉이 끝나는 지점의 언덕이다. 속초시 설악동쪽에서 시작되는 천불동계곡 등산로와 인제군 용대리에서 시작되는 백담계곡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희운각(喜雲閣)] 양폭산장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지점이자, 무너미고개 바로 위에 위치한다. 원래는 고작 30명이 묵을 수 있는 조그마한 대피소였으며 그후 신관을 지어 7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으므로 설악을 등반하는 애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옛 희운각산장은 산악인 희운 김태묵 씨가 사재를 털어 지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현대식 시설로 다시 지었다.
[무너미고개] 1,060m. 무너미고개는 '물 나눌 고개'의 우리말이라 한다. 물을 나누다, 물을 가르다. 물이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자분수령'에 의해 청봉에서 같은 빗물로 태어났지만, 이들의 운명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용아장성을 감싸든 가야동계곡과, 천불동계곡을 나누는 무너미고개. 각자 서해와 동해로 흘러간다.
[공룡능선] 1,708m. 나한봉-큰새령-1,275봉-범봉(천화대)-신선대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 불린다. 공룡릉은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 구간을 가리킨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옛 문헌을 보면 지금의 대청봉이 있는 양양, 속초의 산만을 '설악'이라 제한하였고 귀때기청봉이 있는 인제쪽의 산을 '한계산'이라 따로 지칭했다. 그 예로 안산 남쪽 장수대 부근에 있는 한계산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진부령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북주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수많은 암봉들로 구성된 공룡능선인데 이 코스가 바로 북주릉의 등뼈 역할을 하는 공룡능선을 가장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능선은 1963년 겨울, 당시 한국의 암벽등반 선구자이던 선우증옥, 정규현, 채태웅씨 등이 처음으로 완등한 이후 산악인들로부터 각광을 받다가 최근엔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등산로가 잘 닦여있다.
[나한봉]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첫 봉우리다. 정상부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암릉을 이룬다. 등산로는 누운 향나무의 뿌리들로 빼곡하다. 나한봉 정상에 서면 1,275봉과 천화대가 바로 앞에 펼쳐지며 멀리 대청봉과 서북릉이 검푸른 모습으로 하늘과 경계선을 긋는다. 서북릉 앞으로 한줄기 험악한 산자락이 길게 늘어지는데 이것이 용아장성릉이다. 안개에 잠긴 내설악 백담계곡이 거대한 호수가 되어 숨죽이며 출렁인다. 외설악 화채능선의 끄트머리에 암봉군으로 형성된 집선봉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다. '나한'은 불교용어로 '오백나한(五百羅漢)'의 준말이다. 나한봉은 뽀쪽뽀쪽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수많은 (약 500개로 헤아려짐) 봉우리가 좁게는 서쪽 아래에 세워진 오세암을, 넓게는 마귀로부터 사바세계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비선대(飛仙臺)] 설악산을 가장 대표하는 곳이라면 서슴지 않고, 천불동계곡을 꼽을 수 있다. 설악의 모든 절경이 이 천불동 안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불동계곡은 설악동에서 와선대, 비선대, 양폭산장을 거쳐서 죽음의 계곡 직전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일천의 부처가 늘어서 있다는 이름의 이 계곡에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와선대를 비롯해 비선대, 금강굴, 장군봉,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 등 어느 곳이든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특히 와선대는 천불동계곡을 찾아드는 입구, 신흥사 서쪽 4km 지점에 있으며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천연의 암반대석으로 옛날 신선이 놀던 곳이라 한다. 와선대의 반석은 높이가 약 3척, 폭이 약 10여 간이 되므로 여기서 70~80명의 사람들이 앉아 놀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 바위 위에 손톱이 긴 늙은 선녀인 마고선이 신선들과 함께 석대 위에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서 동천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하여 와선대라고 불리운다.
와선대에서 계류를 따라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비선대에 이르며,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비가 많이 내리면 비선대 반석 위로 흘러 몇 번이나 꺽이는 폭포를 이룬다. 연속된 바위에 폭포를 이루는 광경은 흡사 우의 자락이 펄럭이는 것 같으며, 마고선녀가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하는 설에 의해 비선대라 한다.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 명승지로서 설악의 8경 중 하나에 속한다.
기암절벽 사이에 한 장의 넓은 바위가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계곡 쪽에서는 미륵봉(일명 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허리에 금강굴이 보인다. 와선대에 누워서 주변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이 곳에서 남쪽으로 천불동계곡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있다.
[마등령(馬等嶺)] 1,320m. 강원 인제군 북면(北面)과 속초시 경계에 있는 고개.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만 지도에도 '馬等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옛 기록에는 모두 '麻登嶺'으로 속초의 <설악산 뿌리>에도 마등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산이 너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서 올라야 오를 수 있다 하여 유래했다.
설악산 대청봉까지 공룡능선이라 부르는 암릉의 기점이다.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함께 태백산령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였다. 지금은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 백담계곡과 동해로 흐르는 천불동계곡의 비선대를 잇는 대표적 등산로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중심부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봉의 조망이 일품이다.
-오세암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13) 자장(慈藏. 590~658)이 이 곳에 선실(禪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普雨)가 이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의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856년(고종 2) 남호가 해인사의 <고려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1부는 오대산 상원사에, 1부는 이 곳에 봉안하였다. 1888년(고종 25)에는 백하가 2층 법당을 짓고 응진전을 건립하여 16나한상과 각종 탱화를 조성, 봉안하는 등 크게 중건하였다. 그뒤 6·25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수선 도량과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법당 뒤로는 관음봉·동자봉이, 오른쪽으로는 공룡릉이 올려다 보이며, 인근에 내설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만경대가 있다.
-봉정암(鳳頂庵)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1,244m)에 위치하는 암자로서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봉정암은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 부속암자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5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하다. 해발 1,244m에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암자로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예전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었으나 근래 많은 건물을 증축했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31호인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643년(선덕여왕12)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용아장성(龍牙長城)] 봉정암 사리탑을 기점으로, 동으로는 가야동계곡과 만경대, 공룡능선을 거느리고 서로는 수렴동, 구곡담 계곡을 끼고 서북 주릉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내설악의 그 중심에 자리한 용아장성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는 뜻이다.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봉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있다.
이처럼 용아장성은 험하고 날카로운 산세로 인해 숙련된 클라이머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절에 관계없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항상 출입금지구역이다.
-가야동계곡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 있는 계곡. 외설악의 희운각대피소 앞에 있는 무너미고개에서 내설악의 수렴동대피소 뒤쪽까지 6㎞에 걸쳐 이어진다. 예전에는 개골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희운각대피소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나 폭포와 소(沼)가 많고 냇물을 수십 번 건너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물이 급격히 불어나 위험한 계곡이다. 수렴동대피소에서 계곡으로 20분쯤 오르면 천왕문이 나오고 왼쪽으로 돌아 용아장성의 북벽을 보며 계류가 이어진다. 와룡연을 지나면 왼쪽에는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에는 봉정암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희운각대피소로 오르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십이선녀탕계곡과 함께 설악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영시암
영시는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 조선조의 당쟁은 때로는 나라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많은 선비들이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갔고, 화를 피하기 위해 첩첩산중으로 피했다. 숙종16년(1689)에 있었던 기사환국(己巳換局)은 왕비 인현왕후 민씨가 폐출되고 장희빈이 중전으로 승격되면서 정권이 노론에서 남인으로 넘어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숙종의 비 민씨는 아기를 낳지 못해 늘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데 임금의 총애를 받은 후궁 장희빈은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가 원자(原子)로 책봉되었다. 장희빈을 사랑하던 숙종은 그녀를 왕비로 승격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이 반대하였고, 그래서 숙종은 이들을 숙청하고 남인을 등용했다. 희빈이 낳은 아이의 세자 책봉문제가 나오자 노론의 총수 송시열은 "임금의 보령이 이제 겨우 29세시고 중전은 23세로 아직 젊으신데, 후궁의 아들로 세자를 책봉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극구 반대했다. 숙종은 송시열의 말을 묵살하고 그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정권을 남인에게 넘긴 것이다.숙청된 노론 중 김수항(金壽恒)이 있었다. 그의 아들 김창흡은 어지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를 하겠다고 암자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시암이다. 그런데 이 암자를 세우지 6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하녀가 호랑이한테 물려죽고 만다. 이후 김창흡은 암자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혼란한 시대의 뒷면에 존재하는 슬픈 사연이다.
-백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18)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가 있었는데 주위의 산에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앞뒤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이 이전과 달라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노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전으로 미루어 보면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전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등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前)대통령 내외가 대(對)국민사과성명 발표 후 이 절에 은거했다가 1990년 12월 30일에 연희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부령(陳富嶺)] 529m. 강원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고개. 소양강(昭陽江)의 지류인 북천(北川)과 간성읍으로 흐르는 같은 이름의 소하천, 즉 북천의 분수계가 되어 있다. 간성~한계리 국도가 지나는 이 고개는 태백의 여러 고개 중에서는 높이가 가장 낮다. 그러나 잿마루에 올라서면 동해와 태백산지 사면의 수해(樹海)가 눈 아래에 펼쳐지고, 구곡양장의 고갯길이 장장 16km에 걸쳐 이어진다. 인제 쪽에 원통리, 간성 쪽에 진부리가 있어 각각 영하취락(嶺下聚落)을 이룬다.
<수성지>에 보면, 간성에서 영서로 통하는 고갯길이 매우 좁고 험하여 인조 10년(1632)에 관에서 역승(役僧)을 모집하여 처음 개설했다고 한다. 1632년은 <수성지>의 저자 택당 이식이 간성현감으로 재직할 무렵이다. 당시의 노동의 주체가 역승이라 했으니 이는 진부령 아래의 큰 절 건봉사 승려들이 대부분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후 1930년 차량이 통행하게끔 보수하였고, 1981년 지방도에서 46번 국도로 승격, 87년~89년 확장공사 후 오늘에 이르며 표시석과 향로봉전적비는 확포장 공사 당시 지금 이곳에 이전 설치하였고 2005년 대형표시석이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한계령, 미시령과 더불어 설악의 준령으로 손꼽히지만 진부령길은 여느 고개와는 견줄 바 없이 녹록하고 수더분하다. 높지 않으니 가파르지 않고, 가파르지 않으니 험하지 않다. 길도 슬슬 몇 구비 돌다 보면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고, 고갯마루에는 버스가 서는 차부가 있었는가 하면 이런 저런 가게들이 마을을 이루어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로는 통 믿기질 않았었다. 고갯마루가 이미 마을을 이루었으니 예로부터 부르기를 '조쟁이'라 하였다. 지난 날,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곡물이 마주 올라와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선다'는 내력으로 얻은 이름이다.
요즘 부르는 이름으로 조쟁이는 흘3리다. 현주소는 고성군 간성읍을 따른다. 본래 금강산 아래 아름다운 바닷가 고을이던 고성과 간성이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었다. 고성은 북녘 땅이 되고 간성은 남녘 땅이 되고. 남녘 땅에 붙여진 고성군의 명칭은 다만 창졸한 사이에 코앞의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향수를 다독이는 이름이다.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하늘 아래 첫 동네 흘리는 비록 간성읍을 따르지만 워낙 외진 곳이라 따로 흘리출장소를 두었다. 간성이래도 흘리는 품 밖의 간성이다.
-진부령유별시비
1633년 1월 이식 선생이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에 선생을 배웅하기 위해 눈 덮인 진부령 고갯마루까지 배를 주리며 따라온 군민들의 인정에 대하여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남긴 시라고 한다.
[향로봉(香爐峰)] 1,296.3m. 강원 인제군·고성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고 험준한 산머리에 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구름이 걸쳐 있어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신라시대에는 가리라봉(迦里羅峰), 조선시대에는 마기라산(磨耆羅山)으로도 불리었다.
6 ·25전쟁 중 격전지의 하나로 수복지구이며 산의 북쪽 사면에 휴전선이 지난다.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으며, 민통선에 인접하여 희귀생물대가 형성되어 있다.
해발 500m부터 서어나무군락, 700m부터 사스래나무와 함박꽃나무 군락, 정상은 미역줄나무와 다래덩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사작전도로를 따라 향로봉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지루하고 산행의 묘미는 전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향로봉 정상에 서면 북녁 산하와, 남쪽의 설악산, 서쪽으로는 한북정맥과 대암산, 동쪽으로는 간성의 들판과 동해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삼재령] 진부령 이후 백두대간은 칠절봉 둥글봉 향로봉 고성재에 이어 남한 구역의 끝인 삼재령으로 이어진다. 삼칠령이라고도 부른다. 진부령에서 삼재령까지 도상거리는 26㎞ 남짓, 남한 쪽 백두대간인 지리산 천왕봉으로부터는 도상 662㎞, 실제 900㎞가량 떨어져 있다. 삼재령은 인제와 고성이 걸쳐있는데 고개로 동쪽으로는 외금강, 북쪽으로는 내금강으로 통한다.
삼재령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태봉의 궁예가 과거 북원의 양길을 떠나 강릉으로 갔다가 개성으로 향한 대장정 중 삼재령을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전문가들은 태백 고개 중 가장 낮은 해발 450m 가량의 삼재령을 거쳐 철원으로 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재령을 넘어 인제를 거쳐 양구와 화천 등을 지나 철원에 도착했다면 궁예의 흔적이 DMZ 대부분의 지역을 거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집-10월 제주도 산행]
*가을맞이 특별산행이 10월 제주도에서 2박3일간 열릴 예정입니다. 제주도까지는 각자 항공편(또는 배편)으로 이동해서 제주공항에서 모일 계획입니다. 특히 항공편으로 참가하실 분은 지금부터 예약을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예약은 빠를수록 편리하고 이점이 많다고 합니다. 10월 말 주말편은 특히 예약이 어려우니 서둘러주십시오. 제주도 특별산행 참가자는 먼저 반드시 항공편을 예약하시고 참가신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주도 산행일은 10월 25(금)~27(일)일(2박3일)이며 10월 25일 김포에서 제주로 출발하는 항공편은 오전 6시 15분에서 8시 사이에 50여 편이 있고, 27일 제주에서 김포로 귀항하는 항공편도 오후 6시 이후에 50여 편이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달에 공지하겠습니다.
-산행일 : 10월 25(금)~27(일)일(2박3일)
-주요일정 : 1일차 : 윗세오름 산행(영실-윗세오름-남벽-윗세오름-어리목)
2일차 : 한라산 산행(성판악-백록담-관음사)
3일차 : 사려니 숲길, 돌문화공원 탐방
-참가비 : 33만원(2박8식 비용, 가이드비, 강의비 등, 도내 교통비 등 포함, 항공료 불포함)
-집결시각/장소 : 10월 25일 오전 9시 30분 제주공항
-해산시각/장소 : 10월 27일 오후 5시 30분 제주공항
최창남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 전문가이며 작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2008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인문학적 산행기를 <프레시안>에 연재했습니다.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였으며 <노동의 새벽>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등 민중가요들을 작곡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때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백두대간을 걸어야 하나요?"
백두대간이 아니더라도 산은 지천이고 발 닿는 곳마다 길인데 굳이 힘들게 백두대간을 걸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본래 산길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길 따라 걷는 것이니 굳이 백두대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하나로 잇는 큰 산줄기이기 때문에 굳이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길 따라 걷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백두대간이 부르고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만이 백두대간 1,625km, 남한 구간 684km의 깊은 산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운 생명의 땅입니다. 생명을 품어 키운 자비심과 지혜가 깃든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신성하고 거룩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산의 이름이 백두산이어야만 하고, 남쪽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인 산의 이름은 지리산이어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백두산(白頭山)은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이고, 지리산(智異山)은 '머물면 사람 사는 세속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얻게 되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은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걷는 길입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이어진 신심과 평화의 길 '산티아고'를 걷는 것처럼 제각기 마음에 담긴 신심으로 걷는 하늘길이다. 평화를 얻고 누리고 지키는 생명길입니다. 그러니 어찌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품고 걷는 자만이 백두대간과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속살을 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합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도반들과 함께 산길 걸어 온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백두대간 남한구간 약 684km 중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비법정탐방로로 지정하고 있는 79.9km를 제외하면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약 604km 정도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법 많이 걸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3기를 마치면, 비법정탐방로와 험난하고 힘든 코스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걷지 못한 다른 구간들을 걷고 싶으신 분들은 대간 종주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의 산행 코스를 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초보자 코스와 중상급자 코스를 철저히 분리하였습니다.
둘째, 초보자들을 위한 산행을 늘렸습니다. 산행거리도 이전보다 짧게 조정하였고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트레킹 여행의 의미를 담아 겨울의 끝인 2월에는 초급자들을 위한 1박2일 산행도 계획하였습니다.
셋째, 중상급자들을 위해 1박2일 산행을 3회로 늘렸습니다. 평소에 혼자서는 산행하기 쉽 지 않은 종주 산행을 포함했습니다.(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종주 등)
넷째, 산행 구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간별 난이도 표시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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