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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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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누구인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한발 물러서고 그 대안을 찾아 헤맬 때 미셸 푸코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의 대안으로서 현대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사상적 기준으로 다가왔고 철학적 전개의 중심을 제시했던 인물이다.

푸코가 콜레즈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 교수로 있을 때 '사상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던 사실은 그의 사유가 철학적 쟁점에 대한 논쟁을 동반한 논증에 점철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철학을 연장으로 사용하는 실천의 철학자였다. 마찬가지로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열한 번째 시간에는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과감히 선언했던 푸코의 철학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수자로서 푸코와 그의 운동 : 미시권력을 파악하기까지

박민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푸코의 학창시절 외로웠다고 한다. 성적 소수자로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것을 내면으로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일종의 악이라고 지시되면서 교정의 대상이 되는 성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푸코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실존의 문제가 절실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병리학처럼 다른 사람의 심리분석을 통해 대상에 병리적 접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다른 형태의 대안으로서 심리학을 했다.

푸코는 공산당에 입당한 경험이 있었고, 68혁명 당시에는 프랑스에 없었고 아프리카 튀니지의 튀니스에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유럽 외부의 소외되고 배제된 타자이자 주변으로 밀려난 곳에 실제로 있으면서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겪었다. 오히려 프랑스보다 제3세계에서 운동을 지켜보면서 68혁명을 또 다른 입장에서 더 넓고 포괄적으로 억압과 착취, 지배에 저항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푸코는 68혁명 이후 전 세계의 이슈가 있는 곳에 항상 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사르트르, 들뢰즈, 이브몽땅(공산당원), 시몬느 시뇨레 등 투사 동지들이 항상 함께 했다.

그러다가 1968년 말에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얼마 후, 1971년 '감옥정보 그룹' 발간을 추진한다. 당시 유럽사회 처벌의 공간이었던 감옥이 어떠한 논리로 사람을 가두는가,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배재된 인간들을 주조해내는가를 관찰했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 중 동성애자로 쫓기다가 감옥에 들어온 후 자살하는 사례, 장발장처럼 생활고에 배고픔에 저지른 범죄에 의해 평생 낙인찍히며 그 사람의 신병을 사회체제가 보장해 주지 않다보니 결국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에 대해 푸코는 관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자기 스스로 그것을 진술하고 수기를 기록하고 직접 출간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하게 하는 적극적인 방식을 취한다. 푸코는 '왜 사람들의 영혼이 끊임없이 추적되고 감시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푸코는 자신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 중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열거했다. 그것으로 재판소, 경찰, 병원, 요양소, 학교, 군대, 신문, 텔레비전, 국가를 든다. 이 사회의 기존 질서를 옹호하고 수립 권력에 직접 지배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관과 단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이런 파악은 푸코로 하여금 국가와 정부 사법기관 등이 우리를 장악하고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이유는 직접적 체제나 기관이라기보다는 더 미세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했다. 내 신체 정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의 미세한 원인을 푸코는 '미시권력'이라고 한다.

이런 국가권력현상(power)에서 권력은 거시적 차원은 'state'에 해당하지만, 미시적 차원은 'body'에 해당한다. 우리 몸에 샅샅이 작용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차원의 권력을 폭로하는 것이 푸코의 의도이다. 곧 '억압'을 얘기하는 것. 그런데 푸코는 억압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권력을 얘기한다. 인간의 지식, 앎이라는 영역과 긴밀히 얽혀서 억압당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억압이 아니어서 억압당하는 줄 모르게 만드는 상태의 '미시적 권력'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는 것. 푸코는 이것을 폭로한다.

- 우리의 삶에 모세관처럼 샅샅이 퍼져있는 권력, 곧 현대 권력 -

푸코에게는 시기적으로 학문적 관심도에 따라 고고학기—계보학기—윤리학기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썼을 당시까지가 푸코에게 있어서 고고학기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문제에 대해 역사학적 관점과 인식의 틀의 입장에서 연구. 푸코 초기의 연구경향을 보인다.

1972년 『담론의 질서』에서 1975년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 1:앎의 의지』 이런 책까지, 권력에 집중했던 계보학 시절인데 권력을 폭로하는 활발한 운동 시절이다.

그 이후 1982년 『주체의 해석학』이후 주체에 대해 집중하던 시기로 『성의 역사 2, 3』을 집필하기도 한다. 주체의 양식을 모색하던 시기로 윤리학기라고 할 수 있다.
▲ 푸코

푸코에게 철학의 의미와 사유 여정, 그리고 계보학

푸코는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철학은 곧 철학적 활동"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1984년 죽기 전 『성의 역사 2』에서 철학은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이라고 하기도 한다.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 등 푸코가 얘기한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실질적으로 푸코 자신의 철학에 해당되면서 푸코 철학의 진면목을 대변하는 말은 "연장통"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세계를 변형시키는 도구로써의 철학이라고 했다.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는 말이 바로 연장통을 의미한다. 세계를 변혁하고 폭발시키는 연장으로 철학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이다.

푸코의 신조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이기도 하다. 변형은 자기가 다르게 되는 것이고 곧 생성을 뜻할 것이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다는 것이 내가 다르게 된다는 말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른 나로 변한다는 실존적 문제이기 보다는 내가 내 테두리 바깥으로 나가서 타자의 영역으로 간다는 것이다. 변형은 곧 배재되고 소외되었던 타자로 가는 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규정을 푸코는 '에토스(ethos ; ethics:윤리학)'라고 한다. 자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는 우리 삶의 태도이다. 다른 사람에게 규칙처럼 다가가는 윤리적인 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의 활성화로 변형이 가능해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니체가 신을 왜 죽였을까? 인간을 자기의 행위와 가치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가둔 신을 죽였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초인(Übermensch)'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초인은 현대인의 모습이어야 하고 그 핵심은 기존의 관습 관행 습관적 사고들에 대해 칼날대고 저항하는 모습이다. 니체는 이런 형태의 삶을 지지했다.

이런 니체 의식의 직접적 계승자는 푸코다. 푸코는 먼저 하이데거를 접하고 하이데거에 의해 해석된 니체를 접하면서 누구나 알고 있다는 보편적 인식 틀을 거부한다. 고고학기의 작업이 그렇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고대, 근대, 현대의 인식 틀인 '에피스테메(episteme)'가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에피스테메는 주어진 한 시기에 인식론적 제 형상, 과학, 형식화된 체계를 발생시키는 담론적 실천의 총체로써 주어진 시대의 제 과학을 담론적 규칙성의 수준에서 분석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총체를 말한다. 푸코가 고고학기 얻었던 중요한 면모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의 개념을 살피며 얻은 고고학시기 결론은 르네상스시기에는 광기를 인간의 중요한 능력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시기에는 광인으로 몰고 배제의 대상으로 악과 결부시켰고, 근대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정신병리학으로 치부했다. 이 때 푸코는 니체의 생각 이어받아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체험으로 질서정연함을 강조하는 아폴론적 사고가 아닌, 인간의 본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사고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광기를 배제하면서 아폴론적 인간의 이성능력만 발전시켜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타락해 갔다는 점에 동조한다. 광기가 중세 때 까지는 인간의 신적인 능력, 신의 계시를 받는 독자적 능력이라 여겨졌는데 이후 '정신착란(déraison;탈 이성상태)'이라고 불려지게 된다. 이성 중심적 사고로 광기를 배제하는 모습이다. 푸코는 광기를 배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그들이 말하는 광기에 더 가깝다고 본 것이다.

'계보학(genealogy)'은 니체가 제시했다. 니체는 계보학을 색상에 비유하면 회색이라고 했다. 같은 사태에 대한 여러 해석의 덧 씌워짐은 회색과 같다. 자명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해석이 깔려있는 것이다. 고로 자명한 사태와 해석은 없다. 계보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한 모습이다. 그것은 매사에 꼼꼼하고 끈질기게 자료를 섭렵한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확립된 사실과 일치하는 작은 진실을 축적한다. 계보학은 관념적인 의미현상이나 불확실한 목적론들로 된 메타역사학적 전개와 대립된다. 또 그것은 '기원(Ursprung)'의 추구와 대립된다.

푸코는 사람들의 겹겹해석을 살피고 기존문헌을 살피면서 문헌 안의 개념 현상, 사물의 본질을 탐색하는데 보편적 본질을 찾지는 않는다. 계보학은 어떤 분류로 갈라져 나왔는가를 살피는 것뿐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차용했지만 푸코 자신은 1차 문헌의 '날 것'을 스스로 탐구하는 것을 지향했다. 기존의 덧씌워진 해석과 개념을 벗겨내려 한 것이다. 대표적 저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가 계보학 시기에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

'파레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기)'라는 말이 있다. 윤리학기에는 푸코가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완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였다. 시대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자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인은 자신을 아는 일에 몰두(인식중심)하지만 고대인은 자신을 만드는 일에 몰두(창조중심)한다. 기존 니체의 문제의식이었던 작은 진실을 발견하고 구축해나가는 방향을 추구하면서 우리 삶의 소소한 문제로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에 대해서 역사를 써보겠다는 것이 푸코의 계보학적 특성이다.

고고학기에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확실히 했다고 한다면 계보학기에는 '장치 dispositif'='장치(apparatus)'라는 개념에 매진했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혹은 '배치(arrangement)'라고 번역된다. 이 장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것과 연관하여 마치 기계처럼 이루어져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으로 계속 우리에게 사물처럼 작용한다. 권력과 함께 같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섹슈얼리티도 장치이고 감옥과 같은 것도 장치이다.

『감시와 처벌』과 규율권력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장치를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고 칭한다. 규율권력은 전체 우리 사회에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대한 폭로가 『감시와 처벌』의 주 내용이다. 푸코의 저작에는 아주 미세한 지식들이 텍스트에 촘촘히 들어가 있다. 딱 떨어지게 정리하여 규정하기 보다는 애매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가져다가 해석하라는 태도이다. 저자를 지우는 글쓰기 방식이다.

푸코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는 장소로 인식되는 감옥이라는 것을 기재로 자신의 폭로를 이어나간다. 『감시와 처벌』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장면은 다미앵의 처형 장면으로 "사형수를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단지를 드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쇠집게로 지닌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푸코는 판옵티콘을 설명한다. 'Panopticon(pan여기저기 다 있다+optic시각+on~하는 존재) 이것은 중앙 감시망 탑으로 중앙 감시탑에 모든 수감자의 그림자(실루엣)가 다 비쳐서 확인되지만, 중앙의 탑에는 누가 있는지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유이며 규율권력(체계)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이다.
▲ 박민미 교수

『감시와 처벌』의 내용

1부 신체형

1. 수형자의 신체 2. 신체형의 호화로움

신체의 가해지는 고문의 형태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좀 더 규칙적이고 법칙적, 유순해진 처벌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체형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자유주의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간화의 결과가 신체형의 소멸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신체형의 소멸의 이유는 형벌의 대상과 목표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시와 처벌의 첫 번째 가설이다. 변형된 양상을 설명하자면 작동하는 권력의 작용 방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은 결국 미시적으로 작동하는데 우리의 부자유를 낳는 것은 감옥이라는 장치의 영향이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떻게 살펴봐야 하는가?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분석하는 체계는 다음과 같다. (1) 권력에 대해서는 폭력과 관념의 대립, 소유권에 대한 비유적 표현, 계약이나 정복의 모형을 버려야 하고, (2) 지식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과 '이해관계가 없는' 것 간의 대립, 인식의 모형과 주체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푸코가 이미 감시와 처벌에서 중요하게 보는 시각은 기존의 권력관, 즉 권력을 소유로 보는(혹은 양도 가능한) 사회계약설의 입장이 아니다.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양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현상 속에 미세한 망의 장치처럼 작동하는 권력현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에 대해 법률로써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라는 안정된 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부 처벌

1. 일반화한 처벌 2. 유순해진 처벌

사람들을 일정한 척도와 기준에 부합하는 과정으로 처벌을 생각한다. 18세기에 관찰되던 현상 중 하나는 형벌의 완화이다. 이렇듯 형벌이 완화되는 것에 대해 푸코는 규율권력은 별도의 메카니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흐름과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가 권력의 변화를 추구하는 큰 배경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군주권의 자의성에 제한을 가하고(사법개혁과정에서 관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 재산권에 도전하는 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에게 처벌의 효과를 분명히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군주에 대한 저항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사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처벌이 유순해지는 과정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반드시 개입되어 있었다.

처벌의 본보기라는 기능은 항상 고려되었다. 신체형 중심의 처벌 제도에서의 본보기는 범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적 표현 방법으로서, 범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압하는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후 고전주의시기로 넘어오면서 본보기의 징벌이란 이제 과시적인 의식이 아니고, 범죄를 방지하는 데 뜻을 둔 기호가 되었다.

신체적 형벌에서 유순해진 형벌로의 이행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라는 측면과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범죄의 방지를 목표로 하는 전략이 짜여 진 것이었다.

처벌의 방법은 기술적이고 공학적으로 작동한다. 몇 가지를 얘기하면 (1) 가능한 한 자의적이 아닐 것. 법은 사필귀정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권력은 부드러운 자연의 힘처럼 자신이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작용해야 한다.(법 집행의 필연성) (2) 형벌과 그것의 불이익이라는 표상이 범죄와 범죄에 따르는 쾌락에 관한 표상에 비해서 훨씬 더 선명하도록 해야 한다. (3) 결국 형벌의 시간적 조정과 배분의 효용성이 문제된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권리 박탈 상태는 일시적인 고통의 형벌보다 훨씬 더 죄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4) 징벌은 특히 다른 사람들을, 즉 죄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과정은 모두 사회 관련된 사람들에게 응당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감옥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5) 그런 점에서 교묘한 경제적 광고 효과가 생겨난다. 범죄가 행해지면 지체 없이 처벌이 따르게 되고, 형벌이 집행되는 현장에 아이들이 찾아올 수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시민 교육의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것이야말로 '법의 정원', 치안 박물관에서의 산교육인 것이다. (6)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범죄에 관한 전통적인 담론은 전도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를 영웅시하는 찬양 대신에, 가시적 형벌이자, 수다스러운 형벌로서, 모든 것을 입에 올려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설득한다. 즉, 모든 징벌은 바로 교훈담이다.



3부 규율

1. 순종적인 신체로 만들고 2. 효과적인 훈육 방법을 쓰면서 3. 일망감시 방법(판옵티시즘)

고전주의 시대의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규율이 지배의 일반적 양식이 되었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바로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규율, 훈련의 위계 질서화 된 감시를 통해 권력은 하나의 물건으로서 소유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소유물로서 양도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작용한다. 더욱더 교묘하게 '물리적'으로 될수록 표면적으로는 한층 덜 '신체 중심적'으로 되는 그러한 권력인 것이다. - 규율권력 -

규율 중심적인 장치가 만들어 짐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 놓으면서 가두어 놓아진 사람들이 새로운 신체로 변모되는 이른바 '규율적 신체'가 된다.

권력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다.

권력 경제학은 처벌에서 이전에는 본보기, 전시와 교육 효과를 노렸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는 '감옥 장치'(사법기관 및 법률집행 원리와 결부)는 위법자의 고통을 줄이거나 위법자의 인간성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법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고통 및 인간성을 돌보는 효과를 낳으며 '인간'이라는 척도, 인간 과학을 작동시킨다. 그러면서도 장시간 동안 위법자의 인체에 영향을 끼치며 강도 높은 규율 권력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이 '감옥 장치'를 둘러싸고 '행형 장치'(경찰과 같은 관할 영역에 포함)가 있다. 감옥 장치가 위법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행형 장치'는 위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비행자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적한다. 이 '행형 장치'를 작동시킴으로써 비행자의 정신과 인체에 작동하는 권력 기술을 드리운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작용하는 구조에 있다. 그래서 감옥은 단지 감옥에 갇힐 대상인 범법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 권력과 관련하여 폭로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4부 감옥

1.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 2. 위법행위와 비행 3. 감옥체계

감옥이라는 것은 처벌이 교훈의 효과에 쓰기보다는 오히려 죄인을 꼭꼭 숨겨둔다.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 푸코이다. 이렇게 해서 작동한, 만들어진 효과는 무엇일까?

이 규율 권력의 핵심적인 모델은 바로 '판옵티콘'이다. 이 권력 기술은 수감자가 스스로 권력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 없이 권력이 영원히 승리하는 모델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재판 위원회인 전체화 메커니즘 속에서 생산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공중도덕의 수준을 높인다. 이 장치는 감옥장치이면서 행형장치이고 넓게는 예를 들어 군대, 학교, 회사(마치 대기업 삼성과 같은)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작동하는 '규범(정상, normal)'이라는 척도는 '권력-지식'을 가동시키며 '인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리고 앎을 생산하는 권력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은 자발적으로 권력에 예속화되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피지배자 일반에 대한 규범이 법을 대체하여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샅샅이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규율권력의 사회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규율권력이 항상 사회에서 작동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든 간에 이 작동의 방식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규율권력은 특정방식으로 행위 하도록 우리의 신체를 제조하고 있지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저항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 미시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시 물리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의 문제에 대해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푸코의 실천적 방식은 감옥을 관찰하고 폭로하며 위법자라고 지칭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말하게 하고 이것을 팸플릿으로 옮긴다. 그리고 감옥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실천을 한다기보다는 배제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계보학적으로 증명해 나갔다. 인간을 배제하는 메카니즘에 대해서 드러내고 폭로하는 지식인의 실천을 푸코 스스로 '특수 지식인'이라고 지칭한다. 사르트르가 모든 민중을 대변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상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푸코는 자신이 알고 있는 특별한 앎을 총 가동하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에 저항하게끔 하는 지식인이다. 그 과정은 그의 저술에 집약되어있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비판

사람들은 자신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메카니즘에 살고 있으면서 거기에 젖어 수동적으로 살게 된다. 예속된 삶이다. 스스로 판옵티콘에 갇혀있으면서 갇힘을 모른다. 규율권력은 개인과 개인을 개인화라는 형태로 미세하게 갈라놓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라고 할 때 이 노동자에 대해 관찰하는 세부적인 리스트가 우리를 규제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테스트, 시험, 규정을 들이댄다.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푸코는 사람들을 세밀화하고 쪼개고 분류하면서 갈라 놓이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차이를 주목한다. 개인화의 면모로 규율권력은 한편 사람을 개인화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규율권력은 사람들을 전체화하는 권력이다. 하나의 특정한 규준으로서의 이상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그래서 저항 조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흘러간다.

이런 사회모습을 『감시와 처벌』에서는 규율권력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이후의 저서들에서는 최근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 이후에는 규율권력만을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논리가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에서는 1%를 위한 사회나 질서를 지칭하면서 경제나 금융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나 푸코는 규율권력이라는 모판을 신자유주의 질서에도 적용을 한다. 사람들을 인구차원에서 안전을 내세우며 국가의 통치를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이 사회의 모든 결과물의 책임을 각각의 당사자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안에 있는 통치자는 아무런 잘못과 책임이 없다.

이 때 중심되는 비판의 포인트는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에 있다. 자유주의 초기 시대에는 평등과 법의 이념을 강조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상황으로 내 몬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메카니즘인 '경쟁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차이가 구획된다. 이전에는 규율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정상적 인간에 대해 측정되고 비교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 타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위의 위치를 가지기 위해 가치 측정되는 형태로 속성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권력모델이라 할 수 있는 한 사회 안에 작동하는 권력이 평등하게 법치아래에서 잘 작동하여 우리 사회가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푸코의 가장 큰 폭로이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불평등, 차이를 구획하는 권력은 작동하고 있다. 이 때 권력은 비가시적이지만 끝없이 작동하는 장치로서 우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저항하는 길은 무엇인가? 푸코는 '대항 품행'을 든다. 그리고 대항 품행의 실천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파레지아', 즉 '진리 말하기'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다. 사회적 위계, 서열 등의 차이를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기.

박민미 교수는 장치처럼 작동하는 방식에 저항하는 방법이 혁명이었고, 혹은 제어하는 것이 기존 부르주아 사회, 사회주의 사회까지의 저항의 신념이었다면 현 시대에 저항적 실천의 방식을 물었을 때, 규율권력에서는 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진단하는 특수지식인의 실천이 되겠고, 현실 질서 속에서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전체적인 질서를 자본주의로 집약했다고 할 때 그 저항의 방식은 기존과는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 때 다른 사람과의 차이는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와 다르다.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배재를 위한 차이이고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과는 다른 차이를 생성해내는 지평이다.

이 사회가 경쟁 일변도로 가고 인권에 대해 몰이해가 사회에 만연해 있을 때, 서로 연합이라는 것을 조직하면서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주체적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중요하다.

강의 말미에 박민미 교수는 푸코의 평생의 문제의식을 잘 요약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을 거론하면서(『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 정일준 역, 새물결, 1999) 푸코는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권리체계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고, 우리사회가 과연 민주적인 사회인지, 감옥이 신체형에서 과연 유순해 졌는지,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하면서 현실에서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규칙과 질서와 보이지 않는 힘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폭로하는 태도가 푸코 평생의 연구의 핵심적 태도라고 설명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오늘의 강연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사회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습관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중의 모습과 달리, 철학 강좌를 듣거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공론의 장을 펼치는 이런 모습들도 소소하지만 푸코가 생각했던 자유로워지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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