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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주인이 되는 이상국가를 꿈꾸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8> 사회계약론 넘어가기 - 루소

자식 5명을 고아원에 보냈지만, 교육학의 명저 『에밀』을 쓴 루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주례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의 제8강에서는 김광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의 강의로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사회계약론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종교전쟁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제노바 공화국으로 이주한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어머니 없이 친척들의 손에서 주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방랑의 시간을 보냈다. 루소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독학으로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켰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학문예술론』, 『인간불평등기원론』은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공모의 응모작이었다. 두 저술 모두 당시 기준으로 급진적인 사상과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담고 있었다.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하는가'라는 논제에 대하여 루소는 오늘날의 우리들이나 당시 계몽주의자들의 상식과는 반대로, "학문과 예술의 발달은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켜 왔다"고 논증하여 현상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차지했다. 루소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온갖 스캔들과 그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고백을 담아 그의 드라마틱한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도 두꺼운 분량의 책 한 권이 나올 것이다. 수십년 간 동거한 하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5명의 아이들을 루소는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이후 이러한 행동에 대해 그가 자서전에서 변명을 했다지만 '아빠 루소'와 『에밀』을 쓴 '교육자 루소'를 동시에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 루소는 홉스나 로크와 달리 필연성이 지배하는 '자연상태'를 부정적인 전쟁상태로 보지도 않고, 오히려 '사회상태'를 비판적으로 보기도 했다. 루소는 여러 곳에서 자연인의 삶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그들을 욕망에 사로잡힌 동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에게 자연인의 삶은 "집도 가족도 없이 자유롭게 혼자 살면서 자연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평화로운 삶"이다. 물론 이 자연상태는 역사성과는 상관없는 추론의 결과이지만, 루소의 이러한 성향은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철학 내에서 루소가 가지는 독특한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에밀』에서처럼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시스템을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보지 않는 루소식 공화주의의 단초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일반의지'에 근거한 주권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얻는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사회계약론』에 담긴 루소의 근본 질문은 '이 타락한 인간사회에 어떠한 정치체제를 구성할 때 인간이 자연 상태의 선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래서『사회계약론』에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법률을 있을 수 있는 형태로 파악할 경우에 사회질서 속에 어떤 정당하고도 확고한 정치의 원칙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다. 결국 그 고민은 법률이 인정하는 집단의 정의와 개인의 이익이 어떻게 결합하고 조화될 수 있는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호 선생에 따르면 이 저작이 지나치게 짧고 압축적이어서 이것만으로는 루소의 사회철학적 구상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 담긴 그의 사상이 그의 대표작인 『에밀』에도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그의 기본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저술의 비체계성으로 인해 루소에 대한 평가는 "계몽주의적 개인주의부터 극단적인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루소가 이해하는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와 "모든 입법체계의 목표는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가 그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개인의 예속이 국가라는 정치체의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며, 평등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은 평등 없이는 자유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루소는 정부를 민주정, 귀족정, 군주정 또는 왕정, 그리고 수많은 혼합정체로 나누었다. 루소는 민주정은 소국(小國)에 적합하고, 귀족정은 중간 정도의 크기를 가진 국가에, 군주정은 대국(大國)에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루소에게 있어 민주정에서 귀족정으로, 다시 군주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정부가 타락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로서 정부가 주권을 찬탈할 경우, 국가는 무정부 상태로 변질되는데, 그때 민주정은 중우정치로, 귀족정치는 과두정치로, 왕정은 참주정치로 타락하게 된다고 루소는 보았다.

양도될 수도 분할될 수도 없는 주권이 평등을 지향하는 인민 전체의 의지인 '일반의지'라면, 표명된 그 의지는 주권의 행위로서 '법률'을 제정한다. 반면 인민의 일부에 국한된 의지라면 그것은 특수한 이익을 반영하는 '특수의지'에 불과하며 행정기관의 행위로서 기껏해야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양자가 일치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루소의 주권 개념을 설명하며 김광호 선생은 "법률의 구성과 법률의 적용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주권은 항상 '최고의지'를 전제로 하여 그것의 집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주권은 인민의 권리이자 동시에 자기통치(자치)의 원리이다.

이러한 '일반의지(la volonté générale)'를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루소는 그것을 '전체의지(la volonté de tous)'와 대비시켰다. 한 마디로 일반의지가 공동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라면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특수의지들의 합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루소는 인민은 부패하지 않지만 흔히 기만을 당하기 쉽기 때문에 일반의지와 인민의 결의에도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특수의지를 서로 상쇄시키면 그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게 된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집단들의 이익과 의지가 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어느 하나의 의지가 다른 모든 집단들의 의지를 압도하게 되면, 일반의지는 사라지고 그 지배적인 의지는 순전히 특수의지가 된다. 따라서 "일반의지가 충분히 표명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에 부분적 사회가 없어야 하고, 각 시민이 오직 자기의 의지만을 따라 행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후대에 루소는 홉스주의적 모델을 이어 받은 전체주의자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또한 루소의 정치사상을 민주정 모델이 아닌 군주정 모델의 한 형태로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의지에 근거한 이러한 사회계약설은 루소식 공화주의의 중요한 기초가 되기도 한다.

선거 때만 자유로운 인민들에겐 투표보다 추첨이 차라리 낫다

루소는 이러한 계약의 근거를 '일반의지'에서 찾는데, 이것을 찾는 과정은 구성원 전체가 가진 공동의 힘으로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며, 각 개인은 전체에 결합되어 있지만 그것에게만 복종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개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결합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루소에 따르면 시민의 집합체인 단체만이 주권자로 간주되며, 각 시민은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개인이라는 단위로 간주된다.

그래서 국가의 크기가 커질수록 시민의 자유는 감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의 크기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진 많은 정부 형태가 존재하며, 그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부형태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소는 국가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정부는 주권자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정부를 위해 인민을 희생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정부를 희생시킬 수 있느냐가 이제 루소에게 관건이 된다. 물론 일반의지를 그 정부를 통해 실현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고 복잡한 일이기도 하다.

대의제에 반대하는 루소에게 주권은 어떻게 지속성을 가지고 유지되는 것일까? 루소의 주권자는 입법권 이외에는 어떠한 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법률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다. 그는 인민의 정기적이거나 임시적인 집회에서는 주권자들인 그들이 정부의 재판권이나 집행권을 넘어 투표를 통해 최고의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인민이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는 순간부터 "가장 비천한 시민이라도 최고행정관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신성불가침의 것이 된다." 김광호 선생은 루소에게 있어서 "주권은 양도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권은 일반의지에 속하므로 대표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루소도 일찍이 "대의제를 시행하는 영국의 인민들이 자유로울 때는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기간일 때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루소는 대표자나 행정관의 선출에 대해서도 민주정에서는 '투표'가 아니라 '추첨'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민주정치가 행해지는 곳에서 행정관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나 이익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과 부담이기 때문이다. 권한은 막강하고 책임은 약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실질적으로 막중한 업무를 소화하는 대표, 자신의 권력유지가 아니라 인민의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대표자 말이다. 그렇기에 루소는 오늘날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다시피 한 투표가 군주정에서나 적합한 것이라고 보았다.

나는 국가 기관이 항상 전체 인민의 행복을 지향하는 그러한 목적을 향해 나가도록, 주권자와 인민이 오직 하나로 일치되는 이해(利害)를 갖는 나라에 태어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현명하게 조화된 민주적인 정부 아래 태어나기를 바란다.(『제노바공화국에 부치는 글』)

인민의 자유를 위해 대표자와 행정관의 수는 줄여야 한다

이처럼 루소에게 정부를 수립하는 행위는 홉스나 로크와 달리, 계약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구성에 핵심이 있다. 물론 그 법률을 논의하고 세우는 것은 주권자인 인민들이며, 그 법률에 효력을 부여하고 집행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표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통치자는 위임받은 권리를 확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공공질서의 유지 차원에서 인민의 회합이나 집회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정부와 대표자의 월권을 방지할 수단이 필요하다."

루소는 정부의 행정관이 개인의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의지', 통치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체의지', 인민의 의지 또는 주권자의 의지인 '일반의지'라는 세 의지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일반의지가 가장 약하고, 단체의지가 다음으로 약하고, 개인의지가 가장 강하므로 정부의 구성원은 사회질서가 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경향성의 의지를 갖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루소는 행정관의 수가 늘어나면 정부의 힘은 약해지고 인민을 통제하는 힘도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루소는 "국가가 커질수록 정부는 축소되고 인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통치자의 수도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루소는 '일반의지'라는 것에 근거한 국가와 정부의 구성 원리를 제시했다. 이 '일반의지'는 개별자들이 가진 의지의 총합인 전체의지와 구별되며,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루소는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구상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를 일반화된 진리로 여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루소의 주장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에 상상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발전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협의 민주주의, 작업장 민주주의, 소통 민주주의' 등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여러 이론들의 다양한 사유실험 과정에서, 주권의 절대성에 기초한 루소의 주장은 어떤 방식이든 직접민주주의의 가치와 가능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근대철학사 여행의 종착지, 칸트와 헤겔

베이컨과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근대철학사 수업을 함께 해온 수강생들은 조금 지쳐있거나 갈수록 더 아리송한 의문의 상태에 빠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심호흡을 하고 강좌 후반부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힘을 낼 필요가 있다.

경험론과 합리론으로 대비되는 인식론적 문제에서 출발한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여러 조류들은 이제 칸트와 헤겔이라는 두 거대한 호수로 흘러들게 된다. 앞으로 남은 4번의 강의는 그 독일관념론의 두 호수 사이를 안내자의 도움으로 가볍게 걸어가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다음 강의는 1월 12일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 - 근대철학의종합 : 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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