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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근대적 자아의 탄생: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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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근대적 자아의 탄생: 데카르트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2>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저녁에 듣는 철학 수업

지난 주 첫 시간에 이어 두 번째 강의가 11월 17일(목) 7시 30분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열렸다. 40년 가까이 철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의 눈에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생활인들이 철학사 공부를 하겠다고 늦은 저녁에 모여 있는 그 풍경 자체만으로도 왠지 훈훈하다.

누구는 저녁밥도 못 먹고 퇴근하자마자 땀나게 뛰어왔고, 다른 누구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졸음과 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수강생들의 열의를 반영하듯 강의실에는 간간이 터지는 웃음 속에서도 2시간 동안 팽팽한 진지함이 감돈다. 강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하는 과정과 철학자의 생각에 접근해서 내 생각을 담아내는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니 말이다.

지난 첫 시간에는, 서구 지성사에서 플라톤주의를 타파하고 세계를 귀납적으로 인식하려는 지적 의지가 거대한 문명사적 변화를 태동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데아라는 절대성과 완전성을 상정하여 실재와 본질을 신비화하고, 땅 위의 개체 사물들을 열등한 것으로 보았던 플라톤적 사유를 갈릴레이-베이컨-뉴턴으로 상징되는 근대인들이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살펴보았다.

참된 판단, 확실한 인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맥락에 이어서 이번 두 번째 강의에서는 이병창 교수의 안내로, 베이컨과는 달리 연역적 방법을 통해 근대철학의 토대를 닦은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철학과 그 사상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이 교수는 먼저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종교와 자연과학의 대립이 부상하던 시대였으며", "귀족과 신흥 상업자본가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또한 종교 내부에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30년 전쟁'이 있던 "전환기의 시대"였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전 유럽이 황폐화된 전쟁 속에서 데카르트도 병영생활을 체험했는데, 그는 이러한 대혼란과 대립의 시대를 겪으며 "견고하고 참된 판단",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홀로 생각하는 주체의 견고한 독립성에서 자신의 철학적 초석을 발견한 데카르트는 흔히 이원론적ㆍ합리론적ㆍ기계론적 사유를 정식화시킨 철학자로 얘기된다. 이병창 교수는 데카르트의 문제의식이 "관념과 물질의 대립"이라는 딜레마 위에서 "세계라는 인식 대상을 양화"시키고, 그것에 대한 "인식을 증명가능한 방법론으로 체계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파악한다. 데카르트는 "수학의 공리처럼 자명한 것 위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추론을 통해 인식"되는 명증한 학문, "통일과학으로서의 진리를 발견하는 철학"을 지향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 속에서 확실하고 참된 판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데카르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신을 지도하는 규칙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식의 대상을 한정하려 했고, 직관과 연역으로만 탐구하려 했고, 모호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인간이 가진 감각의 기만을 제거해 나가려고 했다. 집중력과 치열함이 돋보이는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유명한 코기토 명제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라는 '진리'를 그는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의심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는 '생각하는 주체인 나'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가 같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데카르트는 세계와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기나긴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는데, 이러한 방법은 과연 그가 희망했듯이 인식의 오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병창 교수는 데카르트가 근대로 가는 길을 닦으면서 당시 산적한 지적 장벽을 허물었지만, 그 장벽의 잔해들은 "보다 더 많은 과제를 남기며 난제를 제기"했다고 말한다. "산수적 양과 기하학적 양을 통합하여 만물을 좌표 속에 자리 잡게" 만들면 세계는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연속적인 실재 세계를 불연속적으로 구분하고 미세하게 분절"하여 인식할 수 있고, '송과선(松果腺)'이라고 하는 교섭기관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만날" 수 있다면, 물질과 영혼의 화해는 가능해지는가? 관념적 탐구와 정신의 훈육을 통해 "자유의지의 기초"를 밝힐 수 있는가? 후대의 계속되는 물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식을 단단한 지평 위에 올려 놓으려 했던 데카르트의 뜻대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질세계를 움직이는 진리(인과 법칙)를 찾아 그것을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회의하는 인간이었던 데카르트는 근대적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여전히 강력한 종교의 권위와 전제정치 속에서 눈치를 보며 과학연구의 발표를 중단할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을 번뇌에 빠지게 하는 정념과 욕망의 알레고리에서 벗어나 "정신이 대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는 잘 알기 위해 자유로워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유로워지기 위해 잘 알고 싶었을까?

데카르트적 인간과 자유의지

이병창 교수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좌표 속에 넣고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너울거리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거기에 이끌려 살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가 생각한 자유는 물질세계에 대한 명석판명한 관념과 결합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합목적적인 활동으로서의 자유의지"였다. 오늘날 우리 근대인이 가진 관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코기토' 명제에서 출발하는 이론적 난제들 못지않게, 데카르트는 여전히 중요한 실천적 난제이지만 삶 속에서 착종되어 있는 '개인'과 '자유'라는 문제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병창 교수에 따르면, "자신의 삶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데카르트적 삶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삶은 근대인의 삶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초가 되기도 하리라. "감각과 이성 사이에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자극하려고 하는 의지"를 보았기에 데카르트는 인식론에 관한 관념 탐구를 통해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승인 된다고 해서 인간은 고깃덩어리의 상태로 전락하지 않는 존엄한 존재자로서 바로 설 수 있는가.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정념을 버리면 자유가 보인다고?

데카르트는 정념을 제거하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념이 제거되면 어쩐지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아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분노하지 않고서, 사랑하지 않고서 어찌 살아갈까. 며칠 전 국회에서 있었던 '날치기'를 접하면서, 물리적 폭력의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는 한 줌도 안 될 상징권력의 횡포를 보면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생각, 아니 믿음처럼, '명석판명하게 인식되는 것(만)이 모두 참'인 세상, 정념을 제거하여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아니, 얼마나 재미없고 삭막하고 답답할까.

수강생들의 질문이 날카롭고 시선이 다양할수록 강의가 더 재미있어지고 활력이 생기리라. 아직 10번이나 남은 근대철학사 강좌가 세계와 삶을 이해하는 눈을 확장시키고, 인문적으로 좀 더 잘 살기 위한 생각의 주춧돌, 다수 인민의 의지를 확장할 주춧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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