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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선불교에서 삶은 늘 경이롭습니다"

[알림]선불교학교(교장 박재현) 오는 5월 개교 안내

선불교에서 삶은 늘 경이롭습니다. 삶의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선불교(禪佛敎)의 경이로운 세상을 열어간 사람들의 족적을 살펴보려는 선불교학교가 올봄 문을 엽니다. 교장선생님은 불교철학자 박재현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박 교장선생님은 경북 상주(尙州)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경희대학교 상경계열에 다니면서 철학을 엿보다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철학을 연구하여 석·박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저서에는 <무(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와 <깨달음의 신화>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이 있고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입니다.

박재현 교장선생님은 <선불교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불교는 삶이란 끝내 고단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 사람들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통의 바다[苦海]와 부질없음[無常]은 불교의 영원한 공간적 배경이요 시간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불교(仙佛敎)는 좀 다릅니다. 선불교에서 삶은 늘 경이롭습니다. 새벽닭 우는 소리도 경이롭고, 장작 패는 소리도 그렇고,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조차도 그러합니다. 이런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8세경부터 선(禪)은 중국불교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선은 민감하기 그지없는 깨달음의 문제를 전격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선과 전통 불교의 관계는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선불교도 어차피 불교 아니겠냐는 식의 얘기는 무의미합니다. 선은 좀 다른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인도를 향해 떠나지 않았고, 붓다의 음성을 궁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 삶의 경이로움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선은 파렴치한 세상을 두고 보거나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자들이 모색한 아득한 길입니다. 경전과 형이상학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이들에게 세상은 어쨌거나 일목요연하겠지만, 세상의 속살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한 선사(禪師)들에게 그것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습을 담아내는 선의 언어는 무미지담(無味之談), 아무 맛도 없는 말, 의미가 종잡히지 않는 말로 나타납니다. 선의 언어는 의미가 없거나 의미를 거부한 말입니다. 선은 말과 의미가 구축한 모든 체계를 깡그리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공안(公案)과 화두(話頭)를 통해 열린 경이로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선불교학교에서는 이 경이로운 세상을 열어간 사람들의 족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이 사실의 세계를 보여주는지 마술의 세계를 보여주는지, 저는 아직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만일 사실이라면 더욱 무서운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실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요.

선불교란 무엇일까요?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동아시아인들이 인도에서 불경을 들여와 한역(漢譯)하고 읽기 시작한 시기는 2세기 중반경입니다. 이 무렵부터 시작해서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인 현장(玄奘, 602? ~ 664)법사가 활약했던 600년대 중반까지 무려 400여 년 동안이나, 불법(佛法)을 번역하고 이해하고 흡수하는 일에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적 엘리트들이 총동원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배우고 불경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고, 대부분이 길에서 숨졌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불경의 한역 작업이 일단락되던 시점을 전후해서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은 불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소화해낼 수 있었습니다. 교학(敎學)불교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교학불교의 대가들은 체계 없이 유입된 불경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돌입했습니다.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입니다. 이는 불경에 내포된 철학적 의미를 통찰하고 사상적으로 체계화 해내는 고난도의 작업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이끈 선두주자가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였습니다.

선이 등장한 시기는 당나라 시대로 교학불교 시대와 중첩됩니다. 교학불교 시대와는 달리, 선종에서 종교적 정통성에 집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전과 같은 실물적 근거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실물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心]>의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집요함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나타나 선교(禪敎)논쟁은 물론이고 선종 내부에서조차도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는 분열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이 이론적으로 본격화된 때는 중국에서는 송대(宋代), 한반도에서는 고려 중엽부터였습니다. 송대의 대혜선사(大慧禪師) 종고(宗杲, 1089-1163)는 화두(話頭)를 사용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간화선(看話禪)을 통해 수행자의 능동적 자세와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이후 불교의 주류가 된 간화선은 현재까지 동아시아, 특히 한국불교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011년 봄학기 강의는 5, 6월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6강으로 열립니다.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강[5월6일 금요일] 선불교, 불교에서 갈라서다


불교의 역사는 '충실한 닮기'와 '새로운 원형'의 창조라는 두 가지 욕망이 뒤엉켜 진동하는 가운데 빚어낸 것이다. 선가에서는 부처의 원형을 말이나 글이 아니라 마음[心]으로 설정했다. 그들은 마음속에 부처라는 원형의 완벽한 재생과 새로운 원형의 창조라는 두 가지 의도를 모두 포섭하려고 했다. 이것이 선불교가 불교와 갈라지는 지점이자 또한 이어지는 지점이다.

제2강[5월20일 금요일] 중국 선의 황금기: 돈오(頓悟)의 길


중국 불교사에서 선불교가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7세기경이다. 이후 선은 중국불교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면서 깨달음은 단박에 이루어져야 한다[頓悟]는 입장과 점진적으로 수행해 나갈 뿐[漸修]이라는 입장으로 갈라졌다. 돈오를 바탕으로 선의 주류를 형성한 남종선(南宗禪)은 다시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나눠지면서 발전했다. 이른바 남돈북점(南頓北漸) 논쟁은 선불교가 본격적으로 중국불교의 센터의 자리에 입성(入城)하면서 치러야만 했던 피할 수 없는 충돌이었다.


제3강[6월3일 금요일] 간화선(看話禪)의 수행법: 의심과 자유

간화선은 선수행 과정에서 수행 주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으로, 그 과정이 의심이었다.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수행주체인 <나>는 복권된다. 왜를 묻는 순간 화두와 수행자 사이의 일방통행은 쌍방통행으로 바뀐다. 간화에서 의심덩어리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복권에서 핵심은 그 의문이 반드시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벽암록>에서는 말한다. "간절히 깨치고자 하거든 물음을 가지고 묻지 말라.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고고하고 험준한 것이다."

제4강[6월10일 금요일] 의발(衣鉢)과 법맥: 선의 정통성 겨루기

선에서 법통(法統) 혹은 법맥(法脈)은 자신을 제 안에서 규정하기 보다는, 기존의 구조 속에 잠입하여 마침내 이루어낸다는 문제점이 없지 않지만, 역사는 재단되는 것이고 꾸려지는 것이어서, 결국 자리매김하는 자의 역사이며, 법통 또한 그러할 것이다. 법통은 선포적 사실이다.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명확성이 아니라 강력한 선포성이다. 법통은 개인의 임의적인 조작이 아니다. 법통은 그것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의식의 반영이다. 그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법통은 가장 강력한 사실이 된다.

제5강[6월17일 금요일] 선문답과 교육

선에서는 스승이 교육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가지며 무한 책임을 진다. 교육은 모름지기 그래야 하고 또 그럴 때만 온전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선의 교육관이다. 선 수행은 마라톤이고, 스승은 페이스메이커이다. 주자(走者)의 상태를 기민하고 예리하게 살펴서, 출발선상에서부터 골인지점까지 그의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스승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선문답이다.

제6강[6월24일 금요일] 근대 한국의 선사들

거절할 권리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주어지기는 했지만, 근대는 한 때 박복한 조선 땅의 미개와 혼몽을 깨우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등 떠밀려 들어선 근대는 도심의 바람처럼 계통 없이 마구 몰려왔고, 선은 노비가 수태한 자식마냥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 땅의 불교는 주저앉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는 온갖 방편들이 와글거리는 속에서 근대의 선사들은 맹렬히 화두를 들어 세상을 관통하는 가파른 길을 찾아냈다.

강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리며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이메일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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