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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의 한 정점, 호랑이예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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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의 한 정점, 호랑이예술 (상)

[김유경의 '문화산책']<7> 경인년 호랑이해를 보내며

경인년 호랑이 해를 장식한 그림들

2010년 경인년 한 해 호랑이 그림을 많이 보았다. 2011년에는 토끼해 신묘년에 들어서는데 올해 토끼 이야기는 지난해 호랑이 기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다.

3층 건물 전체에 현대 미술가들의 호랑이 작품전 '가가호호'를 마련했던 <우림화랑>은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호랑이에 기쁜 소식 전해주는 까치가 어울려 년초에 기분 내기 좋은 전시회였어요. 화가들에게 일찌감치 호랑이 작품을 내달라고 해서 참 열심히 그 전시회를 준비했어요. 토끼는 아무래도 호랑이만큼 인기가 없죠." 라고 했다.

▲ 5-6세기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의 호랑이. 고구려인의 사냥장면을 보여주는 이 벽화에서 혀를 빼물고 눈이 뒤집힌채 쫓기는 절박한 상황의 호랑이가 그려졌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호랑이 그림이다.

10여년째 신년 띠동물 전시회를 여는 민속박물관에도 연속 가보았다. 작년의 호랑이 전시회도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올해 토끼전은 그저 한구석에 명색만 갖춘 소규모이다. 그래도 이런데 가보면 가끔은 귀한 장면 한두개씩은 오리지널로 접할 수 있다.

작년 여기서 정말로 재미난 호랑이그림을 보았다. 산중의 장기대회 같은 게 열린 듯 소나무 밑에서 물구나무 서기 재주를 부리는 어린 호랑이가 있고 그 옆에 까치 둘이 쳐다보면서 '야 잘 한다, 네 재주 좋구나.' 하고 재밌게 노는 분위기다. 정작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저희들만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림이 작지도 않고 엉성한 삽화같은 것도 아니었다. 조선의 어떤 화가이길래 천하의 맹수 호랑이가 이렇게 물구나무 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호랑이와 까치. 재주넘으며 즐거워하는 호랑이- 무서운 맹수를 이렇게 희화화시킨 한국민화는 한국미술사의 한 정점을 이룬다고 미술사가 코벨은 극찬한다.

▲ 자수와 조각헝겊으로 된 작품 아기 호랑이 베개. 색감과 호랑이 얼굴 표저은 아기의 행복감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 어느 엄마가 만든, 한국 호랑이 문화의 산물이다. ⓒ동예헌


인사동 한국 고미술의 자존심이라 할 <동예헌>에서는 호랑이가 있는 한국 고미술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했었다. 꼭 이 전시회에서만이 아니라 수백년 세월에 한국인들 정서에 온갖 형태의 예술로 녹아든 호랑이들은 실로 다양하고 그 깊이와 유머는 끝간 데가 없어 보인다.

전시품을 설명해 주던 화랑 주인은 오랜 동안 골동품을 다루며 알아낸 사실들이 많았다. 사람같은 얼굴을 한 호랑이 그림도 있었다. 신문에서 더러 보는 어떤 원로의 얼굴 표정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 늙은 호랑이는 정말 남의 말과 감정의 켯속을 다 알아낼 것 같아 보였다.

온갖 미술품 중에서도 처음 보는 호랑이 테마의 사랑스런 물건 하나는 각색 헝겊과 수를 놓아 만든 갓난아기용 호랑이베개였다. 얼마나 예쁜지, 그 바느질과 호랑이 얼굴표정과 구성 전부가 천재화가의 작품 못지 않았다. 소장자는 절대 비밀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베개를 사가겠다.' 고 하기 때문이란 것.

엄마는 사랑스런 아기에게 용감하고도 친근한 호랑이 모양으로 베개를 정성들여 만들고 관습대로 좁쌀을 넣어 베어 주었을 것이다. 분명 사내아이였을 베개주인의 아명은 '범이' 정도가 됐을까? 한국의 호랑이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렇게 천진난만한 어린아기에게 맞춰진 색동조각 바느질의 호랑이는 처음 보았다. 호랑이 얼굴 또한 잠든 아기얼굴처럼 마냥 천진한 것이었다.

민화호랑이가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다. 조선왕가의 후손 이구씨 부인 미국인 줄리아 李 여사가 1980년대에 패치바느질 소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호랑이누비도 있었다. 그 호랑이는 꽃과 나비랑 어울려 있지만, 근본적으로 맹수로서의 일차적 모습에서 크게 변신하지는 않았다.

▲ 조선왕가의 후손 이구씨 전 부인 줄리아 이여사가 1980년대에 조각보바느질(패치워크)로 만든 호랑이 이순희9736



▲ 현대화가 안윤모 작 줄타기. 2010년 호랑이전에 나왔다. ⓒ우림화랑사진

현대회화 속의 호랑이로는 안윤모작 보름달밤에 줄타기하는 호랑이 그림도 있었다. 그림 속 이 호랑이는 조심스럽게 줄위에 서서 민속촌에서 줄타기 하는 문화재인물처럼 들고있는 부채로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 같다.

여러 화가와 조각가들이 호랑이를 주제로 그렸는데 여기서도 맹수 본연의 사실적인 그림과 어떤 존재로서 해학을 담은 두 부류가 있었다. 전통만이 아닌 현대적인 생각도 볼 수 있어 상쾌했다. 그런데 오늘날 다른 나라 화가도 이런 호랑이전을 마련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일까?

여러 전시장을 들러 호랑이가 나온 도록을 사던 사람이 있었다. 일찌감치 미국에 이민간 친구가 '호랑이가 보고싶다.' 면서 전시회 도록이라도 모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도록에선지 씩 웃고 있는 돌호랑이는 건치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 같다. 무덤앞에 서있던 건 아니었기에 이렇게 웃음 띈 표정을 하고 있는 건가.

민간화랑이 벌이는 호랑이전 규모가 이만한데, 한국 전체의 호랑이 관련 미술세계를 모아 본다면 - 그 자료는 천문학적일 것 같다. '호랑이야말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 호랑이 박물관이 없나.' 하던 미술사학자의 말이 저절로 떠오르던 호랑이해 1년이었다.

연초에 그렇게 걸작 호랑이 예술품을 몇 개나 보고난 뒤 호랑이 얘기를 써보고 싶어 여기 저기 자료를 찾아보았다.

장련의 눈 덮인 산에서 호랑이를 보다

호랑이를 직접 본 분이 있었다. 법학자이자 역사가 최태영교수(1900-2005)는 1916,7년경, 당신이 17세 전후 해 황해도 구월산 아래 장련에서 오리포로 가던 산길에서 다 늙은 호랑이를 마주쳤다고 했다. 늙어서 이빨도 없는 그 호랑이를 실아손(시라소니)이라고 불렀는데, 분명 구월산에 살다가 먹을 것을 찾아 장련 읍내로 가끔씩 내려오곤 해 동네사람들은 모두들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읍내로 내려오는 '실아손' 호랑이는 가끔 밤에 뒤보는 사람 궁둥이를 할퀴거나 닭을 물어가는 정도였다. 소년이 산넘어 오리포를 향해 길을 가던 저녁무렵 그가 산중턱 눈쌓인 길 나무 뒤에 화등잔 같은 눈을 번쩍이며 서있었다. 놀라지는 않고 가만히 서있으니 호랑이는 사라져 버렸다.

장련 사람들은 읍내에서나 오고 가는 산길에서 그 늙은 호랑이를 자주 마주쳤다. 먹을 걸 주기도 하니까 사람을 따르기도 하던 그 호랑이를 두고 황해도 천주교사를 쓴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나 성스런 가톨릭 신자의 길 안내를 했다.' 고 한 적이 있었다.

최 교수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말이 여러 손을 건너가 맹랑하게 각색된 것' 이라 하고 "오리포에서 장련으로 산넘어 오가던 그 카톨릭 신자도 나처럼 어느날 그 실아소니를 본거지. 그걸 여러 손을 거쳐 들은 남들이 과장해서 호랑이가 길안내 했다고 말하는 거지. 그 가톨릭 신자는 나도 아는 장련 사람이고 호랑이는 내가 본 실아손이 분명하니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된건지 내가 잘 알아요. "

"그놈 실아손이는 나중에 구월산 자기 굴에 들어가 혼자 죽었을 거에요. 멋있는 놈이었어."

▲ 호랑이와 까치. 지혜로운 원로의 얼굴을 한 호랑이가 까치를 상대하고 있다. 동예헌에서 추천한 그림중 하나이다. ⓒ동예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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