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의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경기(京畿)'는 경도(京都)와 기전(畿甸)을 합쳐놓은 어휘인데, <기>라는 단어의 뜻이 실은 난해한 쪽이었다. 왕경의 경제력을 충당하고 조달해야 하는 후원지역이었기에 그냥 단순하게 수도의 교외 외곽지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전에서 사는 사람들이 경아리(서울내기) 못지않게 <깍쟁이>에다가 약빠른 <짠돌이>가 되는 까닭이 되었다. 하지만 전국을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으로 가를 적에는 전자의 범위에 들어 국토권력의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근대 이후 정치 경제 환경이 달라졌으므로 '기전'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한 것이 아니지만 '수도권 지역'의 정치경제지리학은 엄청난 변모를 나타내게 된다. 실제로는 서울 중심의 국토일극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서울 예속의 온갖 뒷바라지와 덤터기를 떠맡아야 하고 차별적인 불이익과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난다. 그런데 후기산업사회에서 정보지식사회로 이동되면서 서울권보다는 외려 경기도의 '수도권지역' 인구 유입이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빠져나가는 인구와 전국에서 밀려드는 인구가 쌍방향으로 몰려오면서 경기도의 경제생활 환경을 변모시키고 있다.
안성-평택 지역은 경기도 남쪽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데 인천-수원-화성 일대의 연속되는 신도시개발, 그리고 용인-이천-여주 지역의 난개발에 이어 '투자이익'과 '투기이익'의 물망 대상으로 새삼 떠오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비록 국토의 중심 권력공간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으나 국토 중부지역의 거점 도시로 각광을 받아가고 있는데 안성 집중탐구를 기획해보게 되는 까닭이다. 여기에서 잠깐 <안성의 근대화>를 살펴본다.
18세기의 <안성 윗머리 장(場)>이 어떠하였던가 하는 데 대해서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이 이미 해명해주고 있었다. 대구, 전주와 함께 전국 3대 장시(場市)의 하나이면서도 서울이 가까워 '매점매석'이 성행될 만큼 물산유통의 집산지였음을 밝혀주고 있었는데 21세기 물류 혁명 시대의 안성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교통 요충지의 특성을 찾아내려고 한다. 수도권이기는 하지만 '지역특성'을 살리어 실제로는 자유개방 자족자립의 '환경지리학'을 한껏 누리려 하고 있다. '뉴타운'이니 '보금자리 아파트촌'이니 하는 베드타운 유형의 인공조성 테크노시티와는 전혀 다르다.
안성은 환경지리학으로 살필 때 칠장산-칠현산을 마루금으로 하여 금북정맥-한남정맥이 엇갈리고 북쪽 죽산면 방향의 한강 수계, 남동 방향의 백곡천-미호천-금강 수계, 남서 방향의 진위천-아산천-아산호 수계의 상류지역을 이루어 국토의 멜로디와 리듬이 상쾌하다. 곧 삼태기 형상의 지형에 산자수명의 명산과 호수들을 담아내고 있어 알쏭달쏭한 그 풍광이 전원교향악의 음률을 울려대는 듯싶기만 하다.
U-턴 현상과 함께 J-턴 현상 및 탈서울작전의 전입 인구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늘의 안성시는 <예술문화의 도시>임을 브랜드로 표방하고 있을지언정 경제도시의 발전전략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 바우덕이 남사당 연희의 무형문화라든가 안성맞춤 유기 전승공예를 자랑하고, 그런가하면 박두진 조병화 시인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의 고향임을 알리면서 <장인(匠人)의 혼>이 깃든 고장임을 자부한다. 최근에 이르러 더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고장이 되고 있음을 뽐내고 있다. 안성 거주의 시인 고은, 화가 이반, 그리고 국토학교 예술고문 김억 씨에게 <특강>을 당부하였던 바 이를 수락해주신 데 대해 국토학교를 대신하여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평안한 고을 '안성(安城)'의 신택리지…, 제2 유형의 이중환이 되어 과연 어떠한 고장인지 한껏 눈독을 들여 보고자 한다. 18세기의 인물 이중환은 살만한 곳을 따지는 가거지지(可居之地)의 선택에는 네 가지 필요충분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곧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산수였다. 오늘의 어법으로 하자면 교통-소득-복지-생태의 녹색공간에 해당되는 것일지 안성 땅에서 발품을 팔아보려 한다. <안성 살이>, 어디 한번 나의 삶 자리로 택해볼까 궁리하기도 하면서….
▲칠장사 |
답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7월 24일(토)
07:00 서울에서 출발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여행사 경기76아 9111호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08:30-09:30 : 칠현산 칠장사 일대 탐방 (안성 죽산면 칠장리)
속리산 천황봉에서 연원하여 청주 상당산성을 지나쳐 충북 내륙지방을 동서로 가르며 북상하는 산줄기는 안성 칠장산에 이르게 되는데 '한남금북정맥'이라 한다. 이로부터 정맥은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한 줄기는 다시 서북쪽으로 거슬러 올라 황새울(용인)-바래기산(이천) 등의 한강 이남 지역을 훑어 인천 계양산-김포 문수산에 이르는데 이를 '한남정맥'이라 한다. 남서쪽으로 내리뻗는 산줄기는 칠현산-덕성산-서운산으로 흘러 천안의 성거산과 태조산을 거쳐 공주 차령고개를 넘어 보령 성주산을 지나 태안반도의 안흥에 닿아 서해로 흘러드는데 이를 '금북정맥'이라 한다.
칠장산(七長山, 492m)은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금강 이북과 한강 이남의 산경(山經)과 수경(水經)을 갈래 짓게 한다. 이 일대는 국토문화지리학으로서도 여러 사적과 사연, 민중담론들을 쌓아놓고 있다. 후삼국시대에 궁예의 미륵신앙을 배태시킨 곳이었고 광혜원 백정 출신이었다는 일곱 명의 도적을 개과천선케 하여 일곱 현인이 되게 한 산자락이라고도 했다. 칠정산(七丁山)이라 부르다가 칠현산(七賢山, 516m)이란 산명을 갖게 됐다는 사연이 그냥 심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하는 곳이 칠현산 칠장사인데 백정 출신의 갖바치가 병해대사로 도통을 하여 임꺽정 무리들의 아지트가 되도록 해주고 있었다. 칠장사 명부전의 벽화가 이채로운데 혜소대사와 7인의 도적, 궁예의 활쏘기, 병해대사와 임꺽정 일행의 그림들을 그려놓고 있어 속세와 탈속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영웅과 호걸은 저리 물러나라 하고 백정 출신 장정들과 현인이 어울려 주인 노릇하는 골짜기라 하니, 이 산과 절이야말로 예술도시를 지향하는 안성시의 랜드마크일 것이다.
칠현산 기슭에서 칠장사로 올라가는 골짜기는 특히 <칠장사 계곡>이라 하여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계수미(溪水美)를 찬탄하게 하였는데 최근에 이르러 환경이 흐트러지게 된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국보 296호인 5불회 탱화를 비롯하여 보물 1256호인 3불회 탱화, 보물 488호인 혜소국사묘탑비를 간직하고 있는데 '묘탑비'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산악인들은 칠장산-칠현산-덕성산으로 이어지는 릿지 등반의 묘미를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09:50-10:30 : 안성목장 (안성 공도읍 신두리)
현재의 안성은 구시가지보다는 북쪽의 용인 접경지대라든가 경부고속도로에 인접된 남쪽의 공도읍과 진천 방향 지역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역전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신개발지대에 안성농협이 직영하는 안성목장이 <그림 같은 초원>의 풍경을 보여준다. 129㏊(약 39만평)의 초지를 포함해 전체 면적은 159㏊(약 48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그린필드인데 이 목장은 자체 변신을 통해 자연자원(녹색환경)과 팜랜드(관광목장)와 사파리(야생 자연공원)를 결합하는 농촌 어메니티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낙농업의 선진국인 독일의 지원을 받아 1969년에 <한독 시범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는데 호밀밭과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는 가운데 실내승마장, 옥외승마장, 목장체험관, 농촌스쿨 및 농축산물 전시 판매와 바비큐 식당을 마련한 <농협팜랜드>의 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주변의 가볼만한 곳 : 안성맞춤박물관> (안성 대덕면 내리)
안성유기는 <장내기>와 <맞춤>의 두 종류가 있는데 후자는 '특별제작 주문'을 받아 인간문화재의 자존심으로 정교한 찬연함을 십분 발휘하는 특화 브랜드이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77호>로 지정 받은 유기장 김근수(金根洙) 옹을 1986년 가을에 그의 공방으로 찾아 면담하고 아울러 그 공정과정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 기록은 <국토학교 카페>에 올려놓기로 하고 여기에는 '안성맞춤'의 유기제품 중에서도 <칠첩반상기>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하는 것만 밝혀놓는데 전통시대의 웰빙문화를 되찾고 싶어서이다.
안성맞춤박물관 바로가기 : http://museum.anseong.go.kr/main/
칠첩반상기 (그릇과 뚜껑까지 합하여 32개를 제대로 모아야만 한 벌이 된다)
① 식기(밥그릇), ② 국탕기(국그릇), ③ 대접(물대접)-쟁반(물대접 받침), ④ 조치기(탕, 생선찌개 그릇), ⑤ 보시기(일명 옥화; 김치 그릇), ⑥ 쟁첩(반찬 접시), ⑦ 종지(간장, 초장 그릇) 및 뚜껑(15개).
10:50-12:00 : 고은 시인 대림동산 특강
고은 시인이 서울 생활을 접고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로 주거지를 옮긴 것은 그의 나이 50세 되던 1983년의 일이었다. 본디부터 정주민 아니라 유목민이었다고 할 그가 파란만장한 떠돌이생활을 청산하고 아울러 숨이 가뿐 노릇도 특별하기만 한 경도(京都) 시민 역할에서도 탈출하여 기전(畿甸) 은일 거사로 정착한 것이 벌써 4반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시인의 후반기 문학과 그의 안성 신택리지가 어떠한지 특강과 함께 패널 디스커션을 갖는다.
안성 시대 고은문학의 새로운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라는 시편을 천거하는 문학연구자들이 많은데 여기에 전문을 소개한다. 이 시편을 특강의 화두로 삼아 고은 백발문학 노성(老成)의 경지에 관한 그의 육성을 듣는 기회를 마련한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¹)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서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 (1) 칠현산은 칠장사를 받아주고 있는 산자락이다. 시인은 진천군 광혜원면과 이월면 쪽에서 안성 금광면과 죽산면 쪽으로 이동하면서 덕성산 자락을 지나 칠현산의 남쪽 기슭 쪽으로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어찌하여 광혜원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을 서슴없이 지향했을까. 당연한 일이지만 칠현산은 안성에 있을지언정 가령 서울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시인이 발견해낸 칠현산 자작나무 시편은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다.
12:20-13:00 : 점심 식사 (안성시 영동 안일옥의 한우 곰탕)
13:10-13:40 : 안성시내 둘러보기, 구포동성당 (안성시 안성동)
안성 중심가에는 당연히 안성장터가 놓여 있으나 옛날의 번성과 영화를 다 놓친 채 뒷골목 거리가 되고 말았지만 상반되는 두 가지 풍경을 목도한다. 시장 거리 일대에는 유난스레 다방이 많은데 이는 안성이 여전히 '농촌에 포위된 도시'임을 보여주는 풍경이고 교통혼잡이 교통대란에 이를 지경인 것은 '대도시에 포위된 중소도심'임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다. 그러나 농촌자본과 도시자본의 교차로 풍경만 아니라, <한옥 구조의 천주교 성당>이 제3의 풍경을 유서 깊게 보여준다.
1922년에 건립된 건평 97평의 구포동성당은 목조 기둥-서까래-기와 등의 한옥 건축구조에다가 서양식 성당 건물을 들여놓은 것인데, 물론 건축의 외양이나 내부공간은 가톨릭 성당의 기능에 맞추었다. 이 성당의 연원은 1866년의 천주교 박해 당시에 안성, 죽산, 미리내 등지에서 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던 것을 계기로 하여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안토니오 콩베르(한국명, 공안국) 신부가 민가를 매입하여 1921년 2월 안성천주교회 본당을 설립하였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건물 전면의 정문과 종탑은 1955년에 로마네스크풍의 벽돌 구조로 개조하였고 성당 내부는 좌-우로 마루를 얹어서 2층의 다락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절충하여 이루어진 이 성당은 초기 천주교회사 연구는 물론이려니와 안성지역 근대민중운동 전개를 살피는 데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4:00-15:00 : 서운산 청룡사/남사당패 바우덕이 유적 (안성 서운면 청룡리)
<서운-청룡>이라 했다. 상서로운 구름을 휘감은 멧부리에 하늘에서 내려온 청룡이 머문 자리에 절을 짓게 된 것이라는 전설에 따라 그 산은 서운산(瑞雲山, 547m)이라 부르고 그 절 이름은 '청룡사'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청룡사 중창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다. 칠현산의 칠장사 못지않게 서운산의 청룡사 또한 '민중메시아니즘'의 사적(事蹟)들을 간직하고 있다. 토속신앙과 외래종교의 접합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 아래의 청룡 저수지와 육산(肉山) 위의 온갖 산야초의 만화방창으로 수도권 근교 산행 나들이 애호 코스가 되고 있기도 하다.
'바우덕이'는 본명이 김암덕(金巖德; 1848-1870)이라 하는 실존했던 여인이었는데 비록 22세의 짧은 생애였으나 안성 남사당패의 전성시대를 장식하는 꽃구름 같은 전설과 풍설 속에 휩싸여 있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공사에는 노동력 동원만 아니라 울력의 노고를 달래줄 '위로 공연'의 딴따라패 동원도 요청되었는데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우두머리)가 사내가 아니라 꽃나이의 여인이었다는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진기록이었다 하기도 한다. 일세를 풍미했던 인기스타 바우덕이와 관련된 민요가 전해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小鼓)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바우덕이의 무덤과 함께 그를 기리는 사당(祠堂)이 청룡사 인근에 있는데 천민예술가를 이처럼 섬기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라 한다. 남사당패의 마음의 고향인 불당골(사하촌)과 청룡호반 일대의 풍광만 아니라 청룡사 대웅전 건축이 또한 허례허식의 축조가 아니다. 삐뚤빼뚤한 배불뚝이 목재들을 전혀 다듬지 않고 그대로 앉혀 놓고 있어서 조선 건축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는데 서산 개심사와 비교된다. 사찰 경내에는 삼층석탑과 함께 괘불석주가 특이하게 조영되어 있고 명부전과 산신각을 대웅전 측면에 배치하여 규모를 크게 자리 잡게 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불교문화와 한국기층문화의 결합과 조화를 보여준다. 요즈음 표현으로 하자면 부르주아 신도보다는 프롤레타리아 신도를 배려한 '불교산수'의 디자인인 것처럼 보인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조선 후기 유랑가무단인 걸립패 출신자들의 의적활동을 그려 보이는데, 청룡사가 주요 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2012년 8월에 열리는 <세계민속축제> 개최지로 안성시가 선정됐는데 청룡사 일대에서 '축제'가 펼쳐지게 된다. 60개국에서 2,000여명 이상의 공연단이 참가할 것이라 한다.
15:30-17:00 : 화가 이반 특강 및 고삼호수 산보 (고삼면 월향리)
전원장무 호불귀 (田園將蕪胡不歸)
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기자이 심위형역 (旣自以心爲形役)
더구나 지금까지는 나의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기만 했었노라.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이렇게 시작되는데 둘째 구에 나오는 '심위형역(心爲形役)'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타향의 도시에서 '나의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리기만 하는 삶을 보내왔는데, 더구나 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고 있으니(田園將蕪) 어찌 귀거래를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신의 해방, 따라서 육신의 해방, 그리고 황폐한 고향의 해방이라는 3위일체 해방이 곧 귀거래사가 되는데 화가 이반의 '안성 귀거래사'가 과연 어떠하였던지 탐방코자 하면서 이를 되새기게 된다.
한국문화예술계는 1990년대에 이르러 일부에서 새로운 경향을 나타내게 되는데 근대산업화 시대를 지나 탈근대(포스트모던) 정보화시대로 접근하고 있으니 '거대담론'이 더 이상 소용에 닿는 것이 아니며 난쟁이 대중의 소비문화에 걸맞는 '미시담론'의 문예로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동의하지 않아왔던 화가 이반은 안성 고향 귀거래 이후 더욱 '거대담론'의 창작 작업을 전개하여 자신의 미술세계를 새롭게 구축해온 바 있다. 2007년에 그는 고삼호수의 호안(湖岸)에 거대 판각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현장에서 그의 미술담론 특강을 듣는다. 그는 스페인 유학시절 프란시코 고야로부터 피카소에 이르는 역사화, 인물화, 현실고발 입체화 전통의 미술세계를 섭렵했는데 귀향한 이후로는 한국근대사를 이끈 역사인물화 연작의 창작에 더욱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반 작 <군상(群像) 목탄화> 연작 |
17:20-18:00 : 숙소 도착 (금광면 흰돌마을 한옥팬션) 저녁 식사 (마을 뷔페식)
18:20-20:30 : 남사당 공연 관람 (안성 보개면 북평리)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은 '토요상설공연'을 갖고 있는데 신명의 어울림놀이판으로 전체 구성은 여섯 마당을 펼쳐 보인다.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농악놀이, 접시돌리기, 재주넘기, 줄타기, 탈놀이, 인형극 등 여러가지 놀이를 제공하던 유랑 예인집단이었다. 연희패의 구성은 꼭두쇠(단장), 골뱅이쇠(부단장), 뜬쇠(각 연희분야의 조장), 삐리(연희 수련생, 일명 '가열'이라 부르기도 한다) 및 등짐꾼으로 이루어진다. 영화 <왕의 남자> 덕분에 토요상설공연장에는 바글바글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고도 하는데 여섯 마당 공연은 다음과 같다.
① 풍물놀이 살판(땅 재주 놀이; 제대로 하면 살판이고 잘못하면 죽을판이 된다는 뜻), ② 버나 놀이(접시 돌리기), ③ 무동놀이, ④ 상모놀이, ⑤ 어름(줄타기; 얼음 위를 밟듯이 조심스럽게 줄타기를 한다는 뜻), ⑥ 뒷풀이(관객 한바탕 어울림 난장)
안성 바우덕이남사당 풍물단 바로가기 : http://www.namsadangnori.org/
21:00 뒤풀이 및 숙박 (금광면 흰돌마을 한옥팬션)
7월 25일(일)
07:00-07:40 : 아침 식사(흰돌마을에서 한식)
08:00-09:00 : 서운산 석남사-마애여래입상 아침 걷기 (안성 금광면 상중리, 석하리)
서운산 석남사 위쪽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여래입상(높이 4.5m, 너비 2.8m/ 경기 유형문화재 109호)이 있다. 이러한 석불의 남쪽에 놓인 사찰이라 하여 '석남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안성시는 '서운산 숲 쉼터 조성사업'을 추진 중인데 이 산의 역사 및 자연 자원의 우수성을 살려나갈 것이라 한다. 산 아래의 마둔저수지는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위쪽의 석남사 골짜기는 특히 여름 피서의 명소가 되고 있다. 석남계곡은 승방골, 주왕골, 험한골, 대밭골, 방아골 등 열두 굽이가 있어 계곡을 따라 산행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하는데 이 일대에서 청산녹수의 취미를 누려본다.
09:20-10:20 : 김억 목판화 작업실 탐방 및 토론
국토의 명소와 명장면들을 입체적으로 수확해놓고 있는 김억 목판화에는 국토미학 담론들이 수북수북 저장되어 있기도 한데 그 담론들을 작가의 입을 통해 듣고자 한다. 영상기기와 마이크를 준비해놓는다. 특히 그가 사는 서운산 일대의 풍경과 이를 형상화한 작품을 비교 확인하고 아울러 목판 작업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살펴본다.
국토학교 예술고문을 맡고 있는 그가 안성 땅에 발을 딛게 된 것은 무슨 '탈서울 작전' 같은 생활설계에 의해서는 아니었다고 한다. 동료 화가와 함께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 미술 작업실을 마련하였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윽고 서운산 석남사 아래 기슭에 터전을 장만하여 스스로 토목건축 설계자에 노동자 노릇으로 살림집, 화방을 차려놓고 자작농의 농민이 되었다. 서울의 시민에서 국토의 시민으로 시야가 트이어 눈의 높이와 함께 넓이가 넓게 되어 국토목판화 작업에 매진하게 되었다. 화실이라 하기 보다는 공방(工房)에 가깝다고 해야 할 그의 작업실에서 목판화 작품 감상 및 토론의 기회를 갖는다.
▲김억 작 <서운산 석남사> |
10:40-11:40 : 천주교 배티성지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금북정낵의 서운산 일대 고갯길은 동쪽의 배티재에서 접근하여 이 산을 넘어 서쪽의 엽돈재로 내려가게 되는데, 특히 배티재는 안성에서 진천-음성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요처로서 오늘에는 313번 지방도로가 되어 있다. 배티재는 고개 마루 동네에 돌배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이런 지명을 얻었다 하기도 하고(梨峙), 조선 영조 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면서 도망을 치다가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전하였던 고개라는 데에서 <패티(敗峙)>라 불리다가 바뀌었다 하기도 한다.
진천군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위치한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를 내었던 곳이고 최양업 신부의 옛 성당 터와 14인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있다. 안성의 고삼저수지 위쪽의 미리내 성지와 함께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찾아보아야만 하는 곳이다.
12:00-13:20 : 점심 식사(진천 장터에서 자유식) 진천 5일장 난장 구경
매순 5일과 10일에 열리는 진천 5일장은 도시 공산품 위주 아니라 여전히 농촌 농산품 노점상들과 먹자판 가게들로 난장을 벌이고 있는데 거간꾼과 말감고와 구경꾼이 북새를 떠는 장마당 풍경을 한바탕 보여준다. 안성장의 재래시장 모습도 시들해지고 가령 성남시의 모란민속장도 '도시 속 농촌시장'의 풍물을 놓치어 허전해진 마당에 진천 5일장은 전국 5대 재래시장의 하나로 꼽히고 특히 근기(近畿) 지역에서 찾아가고 싶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13:50-14:30 : 진천 농다리-초평저수지 산보 (충북 진천군 문백면-초평면)
초평저수지는 다른 이름으로 미호저수지라 불리기도 하는데 충북에서 충주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행정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의 북쪽인 청원군 합강리에서 금강과 합류되는 미호천의 최상류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진천 농다리(籠橋)이다. 이처럼 수로와 육로의 중요한 교차로에 세워진 이 다리의 '치산지리학'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는 100m가 넘는 돌다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길이 93.6m, 너비 3.6m, 두께 1.2m, 교각 사이의 폭 80㎝ 정도의 돌다리가 보존되고 있는데 작은 낙석들을 모아 다리를 쌓은 방법이나 장마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축조한 기술이 견고하기만 하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에 속한다. 다만 오늘에 이르러 교량의 역할은 마감을 고하여 부박한 관광지로 전환되고 있으나 기호지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던 이 돌다리의 생태주의 역사문화와 전통 축조술을 천착해볼 수 있어야 한다.
15:00-15:30 : 죽주산성 5층석탑, 석불입상(태평미륵) (안성시 죽산면 죽주리-매산리)
안성평야 지역이 평안한 고을(안성)일 수 있었던 것은 북쪽 들머리에 죽주산성이 방어의 요새가 되었던 덕분이었으니 안성의 '성'은 곧 죽주산성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만들었다는 미륵불들이 산재하고 고려 몽골란 시대에 송문주 장군의 승전과 김윤후의 처인성(용인) 승리의 기틀이 되었던 곳이었다. 삼남 교통망의 요충지를 이루어 시인묵객들의 길노래가 처연하기도 하였다. 산성은 3겹 석성으로 본성 1,688m, 외성 1,500m, 내성 270m에 이르는데 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봉업사 터의 5층석탑과 태평미륵은 비록 세련된 것은 아닐지라도 평화세상 염원의 평민문예를 소박하게 표상해주고 있다. 산성 들머리의 성은사는 일명 <꽃절>이라 불리는데 상춘 신록 나들이로 인기를 모은다.
안성 신택리지…, 국토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의 3간이 이 고을에서 더욱 안녕히 평안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박두진의 대표시 <해>의 한 구절을 새삼스레 되뇐다.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15:30 : 서울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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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학교 16강 답사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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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학교의 국토 강좌는 개교 2년째에 이르도록 매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2009년>
제1강 (4월):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 (10월): 낙동강 따라 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제8강 (11월): 만추의 호남 단풍길, 침엽수길 (대자연 소자연 합자연)
제9강 (12월): 동해에서 묵은해 보내기(동해용왕과 수로부인과 해신당)
<2010년>
제10강 (1월):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
제11강 (2월): 얼쑤! 대보름 달마중 가세(봄맞이 카니발 : 아산 공주 청양 부여)
제12강 (3월): 순천만에서 섬진강으로(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제13강 (4월): 남한강 상류 녹색체험(주천강, 영월 동강, 정선 아우라지)
제14강 (5월): 북한강의 흐르는 강물처럼(홍천강-소양강-파로호-내린천)
제15강 (6월): 호남평야 황톳길 순례 (동학의 지평선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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