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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쫓아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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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쫓아와도

[한윤수의 '오랑캐꽃']<229>

택시를 모는 친구한테 배운 게 두 가지 있다.
아주 유용해서 소개한다.

첫째, 항상 기름을 만땅 채우라는 것.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폭설이 내려 오도 가도 못할 때 그 덕 좀 봤다. 제설차가 올 때까지 히터를 빵빵 틀고 느긋하게 기다렸으니까.

둘째, 교통이 쫓아와도 천천히 가라는 것. 예를 들어 교차로에서 신호위반을 했다 치자. 교통경찰이 보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서 빨리 도망가려다가 사고 난다! 생각해보라. 사고 나는 것보다 벌금 무는 게 낫지 않은가? 그 덕도 보았다. 벌금은 솔찮게 물었어도 아직 무사고니까.

정리하자.
친구의 가르침은 한 줄로 요약된다.
"기름 만땅 채우고 천천히 가라."
헌데 이 가르침은 자동차 운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인생을 운전하면서 기름 만땅 채우고 천천히 가는 인도네시아 인이 있다.

인도네시아인 중에는 아구스라는 이름이 많다.
내가 아는 아구스에는 ABCD가 있는데,
그는 아구스 B다.

▲ ⓒ한윤수

B는 인도네시아에 약혼녀가 있다.
한국에 오기 3개월 전에 약혼했다.
이 여자가 좀 성질이 급한 편이라 빨리 결혼해줄 것을 강력히 그리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러나 B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
"돈 벌어놓고 결혼해야지, 돈 없이 결혼해서 뭐하나?"
맞는 말이다.
그는 기름을 만땅 채울 때까지 절대로 웨딩카를 출발시키지 않았다.

어제 그가 센터에 왔다.
내가 물었다.
"왜 왔어?"
"이제 가려구요."
"집에?"
"예, 결혼요."
"아, 결혼! 한국 온 지 얼마나 됐지?"
"3년 다 채웠어요."
그는 약혼한 지 무려 3년 3개월 만에 결혼하러 가는 것이다.
"언제 가는데?"
"내일요."
"뭘 도와줄까?"
그가 종이를 내밀었다.
"이 액수가 맞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B는 회사를 퇴직할 때마다 나한테 와서 퇴직금 액수를 맞춰보는 습관이 있다. 액수가 안 맞으면 안 떠날 사람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계산해보니 틀림없다.
"맞아."
얼굴이 비로소 환해졌다.

악수를 하고 천천히 돌아서는 B의 모습을 보며,
"교통이 쫓아와도!"란 말이 떠올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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