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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의 농부시인 서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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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의 농부시인 서정홍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 산을 끼고 구불구불 난 길을 헤맨 끝에 서정홍 시인의 마을에 도착했다. 시인이 마중을 나와 집까지 안내하며 이 마을과 농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타공인 농부시인이다.

그는 참으로 아는 게 많았다. 시인보다는 농사꾼이다. 그는 우리를 마중나와 안내하는 도중에도 양파 농사에 대해 계속 설명했다.


'양파는 11월에 심어 겨울동안 뿌리가 안 죽고 살아 있다가 봄 되면 올라와서 6월 중순에 캐요. 겨울을 이겨내는 거죠. 양파가 사람 몸에 좋아요. 저는 비닐을 전혀 안 써요. 비닐 쓴 양파 20개 먹는 것 보다 비닐 안 쓴 양파 한 개가 더 났대요. 감자도 비닐 안 쓴 감자가 사람 몸에 좋아요.'


집 앞까지 오자 농사 이야기에서 마을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대로 무너져 지붕만 남은 집을 가르치며 얘기도 하고 옆에 보이는 솥을 대문을 해단 제실을 가르치며 설명도 한다. 이 제실은 문중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저 아래 주민이 자기 아버지를 위해 개인이 이렇게 커다랗게 제실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제실의 멋있는 담을 끼고 서시인의 집이 있었다. 그냥 공짜로 멋있는 담을 얻은 것이다.


아래 빈집은 70년 가까이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이란다. 사연이 기가 막히다. 17살에 시집와 25살에 남편 잃고 70년을 혼자 살아 버텼다고 한다. 90세 까진 한 40kg 짐도 혼자 들었는데 그해부터 한 해 한 해 약해지시더니 93세에 확 돌아 가셨다고 한다.


이 '인동할머니'에 대해서 그는 녹색평론106호에 길게 글을 올렸다. 그가 올린 글 중에서 '인동할머니' 시를 여기에 다시 싣는다.

▲ 작은 마을 안에는 긴 세월을 안고 그대로 주저앉아 땅 위에 지붕의 형태만 남은 집도 있다. 이 곳 역시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아흔살, 인동할머니
겨울 햇살에 앉아 하루 내내
떨어진 곡식 포대를 깁고 있다.

거저 가져가라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포대를
돈으로 따지면
새 것이라도 칠팔백원밖에 하지 않을 포대를
그리운 자식처럼 끌어안고.

할머니 살아온 세월만큼
여기저기 닳고 헤진 낡은 포대는,
생각보다 기운 자리가
더 많은 낡은 포대는
어느새 할머니 동무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겨울 햇살에 스르르 잠이 든다.
할머니 품에 자식처럼 안겨.


그와 같이 그의 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그의 집을 소개한다.


그의 집은 황토벽돌 한 장씩 쌓아 간단하게 지었다. 그래서 겨울엔 웃풍이 있어 귀가 시리단다. 이 집은 아는 목수(우리가 저녁자리에서 만난 정상평씨)가 있어 목수일을 해 주어 싸게 지었다고 했다. 지붕 아래 황토를 깔았는데 이게 여름엔 습기도 잡아주고 선풍기 역할을 한단다.


그는 자기 집 만이 아니라 개인 집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들여 온 마당 저 쪽에 따로 지은 화장실을 보여줬다. 똥과 오줌을 분리 저장하여 삭히는 시설이다. 냄새도 안 나고 물을 100배쯤 타서 논밭에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는 아궁이로 우리를 데려 갔다. 굴뚝을 가리키며 연기가 여길 지나가며 물방울을 떨어뜨리는데 이걸 모은 것이 농약 대신 쓰이는 목초액이란다. 나무에서 재까지, 거기서 나온 목초액까지 자연에서 받은 걸 다시 거름과 자연농약으로 자연에게 돌려주는 모양이다. 인간들의 지혜가 끝이 없다.

그는 이 마을에 살면서 자연히 귀농 안내인이 되었다. 우리가 그를 찾아 간 그 시간에도 2,3명의 예비 귀농인이 그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창령의 귀농학교를 작년에 졸업하고 이 곳 저 곳의 귀농인들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 황토벽돌 한 장을 올려쌓아 간단하게 만들었다는 시인의 집 전경. 서시인은 농가는 방이 클 필요가 없고 집 보다 건축비가 적게 드는 창고를 큼직하게 짓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서시인의 삶과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듣기 위해 그날도 귀농을 준비하는 손님들이 오셔서 우리 일행과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서시인은 지난해 '녹생평론'에 '생태 귀농을 꿈꾸는 모든 벗들에게'라는 귀농 안내를 기고한 바 있다. 인간관계부터 시작해서 귀농 전 도시에서 준비해야할 사항, 지압, 수지침도 배우고 요가도 배우고, 농사는 몸으로 해야 되는 거라 이런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 살림 등 생협조직에 가입해서 여기 저기 농사 현장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고..... 등 등.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그의 '귀농지침서'(녹생평론 107호)를 읽어 보니 정말 귀농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이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귀농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는 여기 저기 기고에서 거대 도시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고 자기 인생을 하루하루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농사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농사를 적게 지으면 적게 짓는 대로 거기에 맞추어 먹으면 고만이라는 것이 그의 귀농관이다.


그래서 자기 아이들도 월급 없는 직업(그는 이런 월급 없는 직업이 농사밖에 없단다)인 농사를 짓고 좀 더 자유스럽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금은 그러기로 큰소리를 뻥뻥치지만 다 크면 그걸 지킬지는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단지 부모로서의 희망사항일 뿐이란다.

▲ ⓒ차와 감주를 마시며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는 서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1996년부터 마창노련에서의 일을 접고 생명공동체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가톨릭농민회, 우리밀살리기경남부산지역본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경남생태귀농학교, 농촌총각장가보내기대책위원회 등 지역의 농촌조직은 두루두루 다 거쳤다. 그 사이사이에 생활협동조합운동을 배우느라 일본에도 다녀왔고 쿠바를 다녀와 '도시 농업'의 희망을 보기도 했단다.


젊은이들과 덕유산자락에다 공동체로 집을 짓고 공동으로 농사일도 하면서 자기를 조금씩 알아 갔다고 한다.


2005년부터 도시의 인연을 조금씩 정리하고 거의 빈손으로 여기 황매산 기슭으로 들어왔다. 그는 여기에 정착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가 도움을 받은 것 이상으로 지금 귀농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내일 우리가 가 보기로 한 귀농촌은 그의 안내와 도움으로 정착한 귀농인들이다.

서시인이 사는 마을은 합천 가회면 목곡리다. 순수하게 우리말로는 나무실마을이다. 바로 황매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내가 작년에 '창작과비평'사가 주관하는 '유홍준과 함께하는 명사 문화유사답사'에 명사(?)가 되어 여기 황매산 아래 있는 그 유명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국보?)'을 보러 왔었는데 이 마을은 바로 그 영암사지 아래 마을이었다. 이 산골 마을을 일 년에 두 번씩 찾아오다니 그것도 묘한 인연이다.


우리는 서시인이 안내한 무슨 오리집에서 서시인 때문에 귀농한 귀농촌의 촌장 정상평씨(서시인의 집도 지어주고 다른 귀농인들의 집도 다 지어준)와 장류 공장을 하는 '콩살림'의 김성환사장이 우리와 같이 저녁을 했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정상평씨와 그가 촌장으로 있는 귀농마을(그를 포함해 달랑 4집이 사는 마을이다)에 대한 안내와 소개가 주를 이루었다. 아! 그 외에 정상평씨의 꽁지머리와 그의 독특한 이력이 화제에 올랐다. 그와 귀농마을에 대해선 따로 다음 회에 쓸 것이다.

▲ 저녁을 먹기 전, 하얀집 펜션에 짐을 풀고 함께 식사를 하러온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부터 정상평, 김성환, 서정홍

서시인이 미리 잡아 놓은 하얀집 펜션(이 펜션은 웬만해서는 빌려 주지를 않는데 서시인의 압력으로 빌리게 되었다. 이 펜션은 미술계의 원로인 하종현선생의 누이동생이 집주인이었다)에 숙소를 얻게 되었다. 너무 편안한 잠자리와 그 다음날 아침 바깥주인과 같이 갔던 가회면 주민 복지회관의 목욕탕과 안주인이 준비한 보름 음식(그 날이 마침 정월 보름이었다)과 우거지국은 그 전날 과음한 취기를 깨끗이 날려 버렸다.


나무실마을에서 보면 황매산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있다. 아침햇살을 받으면 마치 지혜가 빛나듯 황매산 바위에 정기가 서린다. 이 마을의 주민들과 서정홍시인과 귀농인들이 황매산의 정기를 받아 지혜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며 이 마을을 떠난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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