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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분리를 거부한다

[김상수 칼럼] 베를린과 서울을 잇는 'PLATOON'의 실험

작년 독일 베를린에 체재할 때, 옛 동독지역 베를린 미테(Mitte)에서 보았던 컨테이너 건축물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가 서울 강남 논현동에도 1년 전에 세웠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선박용 컨테이너 28개를 쌓아 만든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은 2000년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의 현대 문화예술의 정형성(定型性)에 저항하고, 문화예술에 동태성(動態性)과 활력을 일깨우는 서브컬처(subculture) 문화예술운동에 앞장서는 두 명의 독일인 크리스토프 프랭크(Christoph Frank)와 톰 뷔셰만(Tom Bueschemann)의 아이디어와 실행이 드러난 아트 커뮤니케이션(Art Communication) 그룹 '플래툰 PLATOON'이 서울에 세운 복합문화공간이다.

독일 베를린 미테에 본부를 둔 <플래툰>은 전 세계 3,500여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들과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서브컬처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플래툰 베를린 본부의 대표인 크리스토프 프랭크와 아시아지역 대표인 톰 뷔셰만을 4월 21일 오후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만났다. (필자)


건테이너 건축의 상징성, 자유, 기동성(機動性), 가변성의 융합으로 도시문화

김상수: 컨테이너를 조립해 세운 건축은 시선을 끕니다. 완고하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와 빌딩들의 구조물로 꽉 채워진 서울 강남의 건축 환경에서 당신들의 시도는 퍽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톰 뷔셰만: 일상품 보관과 수송에 사용되고 구조가 가변적인 선박 컨테이너는 그 어떤 건축물보다 이동이 자유롭고 세계 어디든지 옮겨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 건축물들의 특성인 고정된 공간이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 형태가 바로 컨테이너 박스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서브컬처 운동의 성격과도 잘 맞는 건축소재이기도 합니다.

김상수: 컨테이너 박스가 건축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20년 전부터인데, 2005년에 종이를 건축 재료로 기둥을 만들고 컨테이너 박스를 미술관의 건축 자재로 사용한 뉴욕의 노매딕 뮤지엄(Nomadic Museum)을 건축 설계하고, 그 이전인 2000년 하노버 엑스포에서는 종이재료로 일본관을 설계한 시게루 반(Shigeru Ban) 등의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건축의 소재로 이용하면서부터 컨테이너 박스는 새롭게 건축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서브문화를 주요 대상으로 문화운동을 한다는 취지와 컨테이너박스는 제대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트플랫폼(Art platform)을 운송(container)하는 컨테이너 박스

크리스토프 프랭크: 우리가 만든 이 공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흥미로운 예술적 화두가 제시되고 비판적 메시지가 반영됩니다. 또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과 논쟁적인 요소를 이끌어내는 '현재의 공간'임을 우리는 실험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우리 '플래툰'의 관심의 중심에는 서브 컬처가 있습니다. 고전적 개념의 순수 예술 범주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창조적인 예술표현을 포괄하는 서브 컬처를 우리는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는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예술인 스트리트 아트나 그래픽 디자인, 클럽문화, 음악, 비디오아트, 프로그래밍, 패션, 정치적 액티비즘 등, 정형적인 순수 예술과는 다른 영역에서의 창조적인 문화 예술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욕구들과 우리의 활동은 같이 하고자 합니다. 이 건축 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 역시 이러한 개념을 반영하려고 합니다. 전시, 영화 상영, 공연,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워크숍 등 일상생활속의 예술적 흐름을 선보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사람들 간의 만남의 장소이자 토론의 공간으로, 또 다양한 문화 행사를 선보이는 플랫폼(platform)으로서의 역할을 여기서 해나가고자 합니다.

김상수: 컨테이너박스를 통한 서브컬처 문화의 전파라? 재밌습니다.

▲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 SEOUL)

크리스토프 프랭크: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을 담은 컨테이너 박스를 전 세계에 자유롭게 옮겨다 놓는 것이 어쩌면 우리 자신을 대표하는 아트워크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김상수: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베를린에 이어 서울에 설립한 이유가 있는가요?

톰 뷔셰만: 처음에는 일본에다가 제 2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만들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만나진 한국인 지인의 소개로 서울을 여행할 수 있었고, 서울이 주는 역동적인 모습,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는 지리적 입장에서의 한국, 특히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유감스럽게도 미국문화에 깊이 침식되어있는 서울의 문화 등이 묘한 감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특히 소비문화가 창궐하고 있는 이곳 강남 한 복판에,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세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결정했습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 아시아 기지는 싱가폴에도 세울 예정이고 최근에는 전라남도 광주에도 설립을 위한 준비를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상수: 광주에도요?

톰 뷔셰만: 광주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많이 살아있는 곳이면서 그 고장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무척 개방적이란 인상을 받습니다.

김상수: 서울에는 많은 장소가 있는데 왜 하필 여기 이곳 강남에 세웠나요?

크리스토프 프랭크: 서울에 서브컬처 장소의 대명사인 홍익대학교 앞에 이런 문화공간을 만약 세웠다면 그냥 희한한 건물이 하나 들어섰구나 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그런데 상류 소비문화의 중심인 강남 도산대로 옆에 있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되는 효과도 고려한 겁니다.

<PLATOON>, 새로운 뉴플럭서스(Neo Fluxus) 문화예술운동

김상수: 그랬군요. 그런데 당신들이 얘기하는 문화예술 운동이란 정확하게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 문화예술운동을 말하는 겁니까? 서브컬처라고 얘기하면, 그 말도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미인데 말입니다. 1950년에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처음 사용한 서브컬처의 의미는 아시다시피 '주류문화에 반대하는 문화'라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서 서브 sub란, 사회적 메이저리티의 문화와 가치관으로부터 일탈하는 의미를 뜻했고요. 더구나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신들한테 있어서 서브컬처란, 어떤 의미로는 1960년대에 독일에서 일어났던 문화예술운동인 플럭서스(Fluxus) 운동과도 연관되는, 또는 그보다 더 적극적인 어떤 새로운 의미나 해석을 띄고 있나요?

크리스토프 프랭크: 서브컬처는 플럭서스보다는 의미가 더 넓은, 사회적인 의미로 저는 이해합니다. 플럭서스가 예술이 중심이 되는 운동으로 일상의 삶과 예술에서 '우연'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긴 예술가들의 운동으로 창조성을 폭발시켰습니다. 플럭서스가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듯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플럭서스의 예술운동적인 개념에 서브컬처라는 문화적인 요소들을 운동으로 접목시키고 융합하는, 보다 더 적극적인 입장의 복합 매체(intermedia) 예술운동으로, 특히 퍼포먼스, 영화, 비디오 아트 영역에서 여러 가지 현대적인 혁신을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꾀하자는 것입니다. 플럭서스 운동이 1962년 독일 헤센주(州)의 비스바덴 시립미술관에서 '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운동이 이후 베를린, 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주요 도시들과 뉴욕, 파리, 런던, 스톡홀름, 프라하, 도쿄 등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로 빠르게 파급되어 전 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이는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국제적으로 여행과 서신교환 등을 통한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 SEOUL)

톰 뷔셰만: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은 인터넷 시대로 1960년대 플럭서스 예술운동 시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네트워크의 세계가 활짝 열려있고 정보의 교류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거의 동시적인 글로벌리즘 시대가 됐습니다. 저희가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 전 세계 3500여명의 각 부문 문화 예술전문가들과의 커뮤니티도 차원이 달라진 새로운 펄럭서스 운동인데, 플럭서스가 처음에는 미술에서 출발하였지만 곧 예술의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콘서트, 이벤트, 출판물 등 각 영역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脫)장르적인 예술운동으로 발전하였듯이, 우리의 '플래툰 문화예술그룹 운동'은 정신적인 면으로는 다다와 네오다다, 아방가르드와 플럭서스를 뛰어 넘어서려고 하는, 탈플럭서스 차원의 새로운 예술문화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통일 20년의 독일 베를린정신 - 자유, 창조성의 신장

김상수: 작년에 베를린에 있을 때 제가 느낀 건데, 독일 통일 20년의 수도 베를린이 문화예술에서 다시 유럽의 중심도시가 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빠른 도시변모를 보이고 있다고 보였습니다. 파리에 있던 미술 화랑들이 베를린으로 옮겨온다거나, 뉴욕에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이 베를린으로 지점을 내거나 집결한다는 느낌도 들었고, 수많은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 연극, 영화 예술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이고 있는 걸 봤습니다. 저 역시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작년에 사진 작업등 예술작업을 했고 또 본격적으로 앞으로도 진행할 계획들을 가지고 있고요.

1919년 건축가 그로피우스가 바이마르에 창립한 종합 조형학교 및 연구소인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우고 건축을 주축으로 하여 기능적이고 합목적적인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면서 근대 기술의 대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론적 교육과 실제적 교육을 행하면서 예술과 기계 기술, 인간과 기술, 예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예술과 생활 형식의 균형을 꾀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민중들이 학교, 공원, 주택, 일상의 가구가 부족했을 때, 우리 예술가들은 무엇을 했던가 말하면서, 예술가들 스스로 반성하면서, 사회 공동체가 지니고 있던 어려운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같이 살고 있는 사회 공동체와 새로운 창조자로서 예술가 개인 사이에서 조화 있는 상관관계를 탐색하고 실천하면서 사회 공통의 발전을 자신들 작업의 의미로 명확히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운동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인간 그 자체의 창조성에 바탕을 두는 사상운동이었는데, 이는 히틀러 나치의 국가주의 이념과는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우하우스는 탄압을 받고 폐쇄되었고, 예술가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미국의 시카고에서 다시 뉴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다가 훗날 시카고 디자인 연구소가 되었고, 미국이나 남미 등으로 흩어졌지만 사상이나 이론은 세계 각 나라 여러 도시로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인 그로피우스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배격하고 인간 생활을 위한 예술창조를 목표로 했듯이, 1950년대 서브 컬처에 대한 이해나 196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플럭서스 운동이나 오늘 독일 통일 이후의 베를린의 '리 르네상스'(Re Renascence) -제가 붙인 표현입니다마는- 운동의 기운이 한편으로는 여러분 <플래툰> 과 같은, 예술문화의 '아트 컬처 컨테이너 운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톰 뷔셰만: 전통이나 역사는 새로움을 계속해서 자극합니다. 동서양의 문화는 오랫동안 교차하고 만나졌습니다. 오늘 우리들 실험의 장소가 <플래툰> 본부가 있는 베를린에서 시작됐고, 독일의 서브컬처 예술문화를 일단 서울에 소개를 하기 위해서 서울에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을 만들었고, 서울의 서브컬처 예술문화를 베를린 쿤스트할레에 소개하는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새로움은 또 어디서든 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플래툰>은 서로 만나고 접촉하고 행하고 성과를 나누어서 세계가 골고루 풍요해지기를 기원합니다.

크리스토프 프랭크: 확장된 문화예술로의 개념을 저는 계속 생각합니다. 삶과 예술이 토막 쳐지고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플래툰>의 운동과 지향성은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플래툰>은 의의를 확대하고 넓힙니다.

배제와 분리를 거부한다.

김상수: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서울과 베를린에 있습니다. 베를린은 독일 에서 수도이자 400만 인구가 사는 큰 도시이고 서울은 1,100만의 인구가 사는 한국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메가시티입니다. 현대 도시문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권력과 지식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문명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시 주변부로 자꾸 밀어냅니다. 소식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도시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최근 한국에서는 '용산참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조금씩 양태는 다르겠지만 재벌등 대기업, 부동산 개발업자들에 의해서 시민들의 구역은 재정비되고, 예전 거주자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갑니다. 획일적인 대형빌딩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삶은 도시에서 자본주의식 도시화에 길들여져 살아갈 것을 강요받습니다. 영리한 도시계획가와 건축가들은 자본의 편에 동원되어 자본의 필요조건에 의해 도시를 재정비하는 데 앞장섭니다. 말이 재정비이지 거의 파괴와 같은 것입니다. 삶의 리얼리티가 배제되고 역사성이나 지역성과 개성 등은 실종되고 표준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특히 공공 공간의 가치를 표면적으로는 강조하지만 본질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재개발, 재정비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과거흔적들은 깡그리 부서지는 지경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삶 자체가 위협받고 뿌리뽑혀나갑니다. 사회갈등이나 문제는 깊숙하게 안으로 곪아갑니다. 곧 재개발은 원래 살던 거주민들이 살던 장소에서 쫓겨남을 말합니다. 잔인한 불균형과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이 이 도시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서브컬처를 대상으로 하는 <플래툰>의 문화예술운동은 대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문화예술 운동으로 이런 문제에 있어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의식하고 있나요?


크리스토프 프랭크: 베를린도 비슷한 문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서울시가 겪고 있는 문제만큼 공권력이 폭력적이거나 자본의 입장에 서서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고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등, 그런 식의 문제까지는 아니었고, 또 한국만큼 문제가 심각하진 않았습니다마는, 특히 1990년 독일 통일 직후 동베를린이나 동독지역에서 도시 재개발에 따르는 여러 문제와 사회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커뮤니티가 활달하고 시민사회가 살아있고 법질서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본의 폭력이나 공권력의 폭력으로 도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도시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말씀처럼 조금씩 모습은 달리해도, 심각한 문제로 계속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모든 시민들을 위한 교육, 문화, 보건, 교통, 복지, 환경 등, 공공재의 가치들을 지키고 가꾸어나가야 하는 실질적인 능력을 과연 시민들이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 자꾸 캐묻고 질문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합니다.

톰 뷔셰만: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셨네요.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과 '플래툰 쿤스트할레 베를린'을 도시 중심에 세우고 위치시킨 이유가 바로 그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도시에서의 개인의 자유로운 도시생활을 확보하는 문제와 사회적 공공재의 가치를 확대하는 문제가 바로 <플래툰>의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부터 대규모 도시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토론 등이 활발했습니다. 오늘 이 문제들은 이제 베이징이나 상하이, 마닐라, 도쿄, 멕시코 등, 전 세계 대도시들의 문제이자 세계의 문제가 됐습니다. 서울은 아주 심각해 보이고요. 결국은 도시를 사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여하히 갈등을 줄이고, 사람이 살만한 문화적인 도시환경을 만들어 가는가에 집중할 역량이 있는가, 이런 문제로 요약됩니다. <플래툰> 문화운동이 도시 공동체(Community) 삶의 문제를 근본으로부터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프로젝트의 중요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을 계층으로 나누어 배제하고 분리하는 어떤 책동도 우리는 당연히 거부합니다.

밀리터리 컬처(military culture)의 요소 - 속도, 명확성, 기동성을 수용한다.

김상수: 여러분의 '플래툰'이 아트커뮤니케이션 그룹이라고 표방하는데, 왜 그룹의 명칭부터 군대에서 사용하는 명칭인 소대(小隊, Platoon)라는, 군대 단위 용어인 '플래툰'이란 명칭을 차용하고, 밀리터리 컬처(military culture)적인 요소를 당신들은 많이 끌어들인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나요?


톰 뷔셰만: 저는 문화의 전복(顚覆)을 많이 생각합니다.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겁니다. 전쟁에 동원되는 군사문화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긍정적인 요소들로 뒤바꾸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기 컨테이너박스도 애초에는 그 용도가 군사물자를 운반하는 박스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건축자재로 이용한 것과 같은 측면이기도 합니다.

김상수: 군사적 요소인 속도, 명확성, 기동성 같은 특징과 요소를 말하는 건가요?

톰 뷔셰만: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현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하고 빠르고 확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군사문화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화예술의 소통에서도 이런 개념들을 의식합니다.

'명박산성'과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의 컨테이너
▲ 촛불집회 때 등장했던 '명박산성' ⓒ프레시안

김상수: 같은 물건도 쓰임새에 따라서 완전히 개념과 용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세운 이 건축물의 주재료인 컨테이너박스가 2년 전에 한국에서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 의사표현인 가두시위를 진행할 때, 소통을 틀어막는 고약한 방법으로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톰 뷔셰만: 아, 세계적으로 그 유명한 '명박산성'을 말씀하시는 거지요?(웃음) 2년 전에 저도 광화문 현장에서 그걸 직접 봤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김상수: (웃음)'명박산성'을 봤다고요? 광화문에 한국의 이명박 정권이 경찰을 동원해서 설치했던 컨테이너 바리게이트를 실제로 봤단 말입니까?

톰 뷔셰만: 봤습니다. 황당한 '베를린 장벽'이 21세기 서울 한 복판에 설치된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웃음)

김상수: (웃음) 21세기 베를린 장벽이요?

톰 뷔셰만: 그래요.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21년 전인 1989년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평화로운 서울시내 거리인 광화문으로 거대한 장벽이 그대로 옮겨와 있더군요. 저희는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전시의 공간을 제공하는 기능적인 건축 소재로 종합예술공간을 만들기 위해 컨테이너 박스 건물을 올렸는데, '명박산성'은 같은 재료인 컨테이너박스를 올려 담을 쌓았고, 단절과 배제, 격리와 소통불가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김상수: 어떻게 느꼈습니까?

톰 뷔셰만: 왜 하필이면 컨테이너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컨테이너란 원래는 전쟁 물자를 우송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저희는 그것을 문화, 평화, 예술, 그리고 소통과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쾌한 뒤집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컨테이너 설치예술가로서 제가 찾았던 이순신 동상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깔았던 광화문 현장은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 컨테이너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가로막는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컨테이너였습니다.

김상수: 촛불집회는 직접 본 소감이 어땠습니까?

톰 뷔셰만: 2년 전, 72시간 연속집회가 한창이던 어느 날 금요일, 세종로를 찾아갔습니다.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강력하고 인상적인 평화집회였습니다. 춤, 음악, 평화로움이 가득 찬, 평화 혁명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로거리를 가로막고 선 권력이 동원한 컨테이너는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리게이트로 독창성은 있을지 몰라도 -그건 전혀 자랑할 만한 독창성은 아닙니다- 컨테이너의 바른 쓰임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벌이는 공연장과 전시장, 작가들이 입주하는 스튜디오, 미술품 판매 코너와 식당, 바 등을 하나로 묶었다.


건물 4층에 12m 컨테이너 28개로만 조립된 쿤스트할레는 모양도 구조도 특이하다. 건물의 기본은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의 해상 수송용 컨테이너. 10피트(4개), 20피트(5개), 40피트(19개)짜리를 필요에 따라 개조해 용접하고 계단과 다리, 출입문을 붙였다. 기본은 40피트짜리(12×2.6×3m). 1.6㎜ 두께 요철강판과 4.5㎜ 사각 강관으로 만들어진 컨테이너가 주재료로 사용됐다.

컨테이너 공간은 플래툰 설립자인 톰 뷔셰만과 크리스토프 프랭크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외부에서 보면 컨테이너 상자들을 쌓아놓은 더미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공연과 행사가 가능한 넓은 공간과 각종 전시 공간 등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별도의 출입구를 정하는 대신 길을 지나는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컨테이너 박스를 사방으로 열어 두었으며 바닥을 건물 밖 도로처럼 아스팔트로 처리해 안과 밖을 하나로 잇는 효과로 열린 공간, 스트리트 문화의 연결 장소라는 의미를 담았다.

1층 메인 홀에는 커피와 맥주, 칵테일 등의 음료와 간단한 독일 가정식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바가 위치하며 한쪽에는 매달 새롭게 리부스되는 쇼케이스, 미니 갤러리가 꾸며져 있다. 외벽이 통유리로 이루어져 건물 밖에서도 감상이 가능한 갤러리는 총 4개의 부스로 구성, 미디어 아트부터 그래픽, 그래피티 등 다양한 형태의 서브 컬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메인 홀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바와 레스토랑, 이벤트 공간, 쇼케이스 공간.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밤에는 'dj night' 시간이 펼쳐진다. 서로 다른 음악 배경을 갖고 있는 dj들이 그들의 다양한 최신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인다.

이벤트 홀은 독립영화 상영, 퍼포먼스 스테이지,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 등이 열리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서브컬처를 경험할 수 있다.

쇼케이스는 메인 홀에서 정기적으로 전시가 열리는 중심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서브컬처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매달 네 명씩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쇼케이스의 아티스트와 작품들은 한 달에 한번씩 바뀐다.

2층에는 총 네 개의 아티스트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컨셉과 방향에 맞는 서브컬처 아티스트들을 선정, 6개월 동안 무료로 작업실을 제공하고(artist-in-residence), 이후에는 1층의 쇼케이스에서 전시가 이루어진다. 아티스트 스튜디오와 마주보고 있는 공간에는 라이브러리가 있다.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아트 서적들과 사진집, 디자인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라이브러리와 트롤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사진집 <북한 사람들(the north koreans)>등이 있다.

3층에는 플래툰 멤버 14명이 근무하고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 4곳과 세미나, 워크숍 등을 열 수 있는 공간 'think tank'가 위치해 있다. 기획, 관리, 디자인 팀의 모든 멤버들이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운영에 따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

바에서는 커피와 음료는 물론, 선정된 소수의 와인과 칵테일을 마실 수 있으며 오리지널 독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도 운영한다. 레스토랑에서는 독일식 돈가스인 슈니첼과 직접 만든 커리소스를 뿌린 소시지인 커리 부어스트, 감자 샐러드, 불레떼(미트볼)와 수프 등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 PLATOON cultural development headquarters Christoph Frank & Asia headquarters Tom Bueschemann

자세한 행사 전시일정은 홈페이지(www.kunsthalle.com)에.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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