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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인과 악양의 동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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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남준 시인과 악양의 동네밴드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그야말로 '박남준과 얼굴들'이다. 내가 이 동네밴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 밴드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오마이뉴스>가 소개했을 때였다. 농산물 직거래장터였든가?

동네에 주민들과 함께 모여 잔치를 벌였는데 그 중 중요한 행사가 이 밴드의 공연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숭악한 시골에 주민들이 만든 동네밴드가 있단 말인가?' '웬 관객들이 저렇게 많아?' '저렇게 신이 날 수가 있나?'

신기함과 호기심이 마구 피어올랐다. 그 다음부턴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이 '동네밴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마치 내가 직접 악양에 가서 이 동네밴드의 공연을 보고 온 것처럼.

▲ 박남준 시인과 함께 자리를 옮겨 동네밴드를 만났다. 기대했던 대로 동네밴드 멤버들은 활기차고 마을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이 동네에서 만든다는 막걸리를 마시며, 정치·사회 문제와 더불어 생태·예술·마을에 대한 이야기까지 왁자지껄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가 도착한 날 저녁 악양면의 솔봉식당으로 박시인은 우리를 안내했다. 그 식당에 우리 일행과 동네밴드 단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박남준 시인, 옻칠공예를 하는 베이스 성광명, 리드보컬이라는 김선웅, 아줌마 보컬 신희지, 저녁자리 중간 쯤 나타난 공무원신분의 드러머 정대영과 그 아줌마 보컬의 남편인 시인 이원규 등이 합세했다.

박남준 시인은 '동네밴드'가 만들어진 사연을 이렇게 얘기했다.
"동네 주민들이 나에게 동네 축제에 강산에, 장사익, 한영애 같은 유명 가수들을 좀 불러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 사람들 초청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되는지 아냐? 동네 축제에 들어가는 돈 다 가지고도 안된다."
주민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걸 보고 박시인이 한마디 던졌단다. "주민들이 모여 밴드를 만들면 안될까?"

그래서 밴드를 할 만 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귀농인들 가운데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거기다 절대 필요한 드러머를 공무원인 정대영씨가 맡아 주었고 하동여고에 다니는 절대음감의 소유자 최나현양이 키보드를 맡게 되었다.

박시인은 자기도 끼고 싶어 보컬을 자청했는데 오디션에서 떨어졌단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딱 한번 불었던 하모니카를 찾아 내 후배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모양이다. 실력은 있었는지 한대수의 '바람과 나'를 컴퓨터로 3번 듣고 악보를 보지도 않고 훌륭하게 연주를 맞췄다나....

동네밴드 얘기를 하다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난 시인 이원규(그는 상당히 마력이 큰 오토바이를 몰고 장소불문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곤 한단다. 그의 부인이자 밴드보컬인 신희지씨가 옆에 있는데 얘기 도중 언제 사라졌는지 없어졌다. )가 갑자기 유인촌장관 얘기를 꺼낸다.

내일 섬진강 마라톤대회에 온다는 것이다. 우리 숙소를 최참판댁(드라마 '토지'를 찍기위해 만든 세트장인데 지금은 완전 관광지로 변했다) 한옥체험관으로 정하려고 했는데 유장관이 다음날 와서 잔다고 하여 이쪽에서 모양새가 안 좋아 보여 예약을 철회했다고 한다.

▲ 밴드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동네밴드가 만들어진 과정과 활동들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들을수록 감탄스럽다. 마을에 남아 고향을 지킨다는 청년이 가져온 신선한 고로쇠물을 달게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이 합천으로 가는 중간에 산청의 어떤 고택에 들려 가려고 했는데 주차장엘 차를 대자마자 한 공무원이 쫒아와 여기에 유장관 일행과 산청군수 등이 곧 차를 대려하니 저쪽 다른데 차를 세우라고 하여 우리는 차를 돌려 나왔다. '한지붕 두 위원장' 사태로 인한 유장관과의 악연이 여기 지리산 밑에서도 계속된다. 아 징글맞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살리기'의 성토로 이어졌다. 지리산학교를 중심으로 '생면연대', '만인보' 등의 악양과 구례의 문인과 예술인들, 주민들이 먼저 불을 땡기면 이 불이 4대강 사업 반대로 이어질 거라고 기세가 만만치 않게 기염들을 토했다.

슬쩍 시사 얘기를 동네 밴드 얘기로 돌려놓았다. 단원 중에 리드보컬 김선웅이 이때다 싶어 나선다. 2회 공연 때 박남준시인이 '악양에 산다'라는 곡을 작사하고 베이스 성광명이 작곡 편곡을 했다. 내용은 대충 악양에는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색시집도 없고 당구장도 없고 뭐 이런 가사로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원규시인이 악양에는 '비닐하우스도 없고 섬진강 모래 팔아먹는 것도 없다'고 덧붙인다. 다른 시군의 견제도 있지만 이젠 섬진강 모래의 귀함을 알아 지자체장들이 아예 팔아먹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한다. 구례에는 모래 다 팔아먹은 군수가 보를 하나 만들었는데 모래도 안 생기고 관광객들도 다 하동으로 빠지니까 지금은 보를 다시 없애자고 한단다.

▲ 동네밴드에서 베이스를 맡은 성광명씨의 옻칠공예 작업장 옆에 밴드의 연습실 '풍악재'가 있다. 이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연습실은 관이나 여타 다른 곳의 지원 없이 뜻이 맞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져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동네밴드는 작년에 연습실을 하나 만들었다. 이 밴드 연습실을 만들게 된 경위가 걸작이다. 또 '후배'타령이다. 후배들은 그를 돈 들어갈 사업은 안 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의 대표를 시켜놓고 떡하니 총회에서 동네밴드 연습실 만드는 사업안을 올려놓았단다. 박시인이 후배들로부터 연습실 짓는 책임을 옴팍 뒤집어 쓴 것이다.

제일 처음엔 컨테이너박스로 시작했는데 컨테이너 안에서 연습하면 귀가 다 나간다하여

7평짜리 시멘트 블록 집으로 변경되었다가,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생태환경모임인데 친환경 소재로 바꾸어 ALC라는 소재를 쓰자면서 9평으로 늘렸다가, 이왕에 짓는 거 좀 더 키워.... 그래서 12평....좀 더 15평.... 마지막엔 지금의 18평으로 결론이 났단다.

비용도 박시인을 비롯한 밴드 단원들과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봤더니 돈이 없어서 나눠서 내겠다는 이도 있고, 돈 대신 다른 일으로 돕겠다는 이도 있고 다양했단다. 그 얘기를 마침 연재하고 있던 신문 칼럼에 썼더니 그날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자꾸 오더란다. 받아봤더니 기사를 보고 후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었단다. 그렇게 기금 2500만원이 마련되어 관의 지원 1원도 안 받고 완공을 했다고 한다.

▲ 복층으로 된 내부는 제법 널찍해서 밴드 연습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어보였다. 젊은 부부들로 이루어진 기타 동호회도 이곳을 사용하는데, 그때 복층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공부방 겸 놀이방이 된다고 한다.
이 연습실 이름은 박시인이 붙이고 글씨도 직접 써 붙였다. 이름하여 '풍악재'다.

이 동네밴드는 계속 소문이 나 인근에서 공연을 초청 받기도 하고, 동네 어린이들도 자기네들 밴드를 독자적으로 만들겠다고 하여 박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온 '구멍 난 양말'이라는 주니어 동네밴드를 만들었단다. 그들과는 이미 합동공연도 했다고 한다.

또 악양에 있는 50명 남짓의 옥종고등학교에서도 밴드부를 만들어 이 동네밴드 단원들이 가서 지도를 한다. 재작년 동네밴드 공연 후 신문 등에 소개되자 다른 지역에서 연락들이 많이 온단다. 자기네 마을에도 동네밴드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자기네들도 밴드가 있는데 교류를 하고 싶다 등 등. 동네밴드는 계속 유기체처럼 살아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저녁 후에 같이 성광명의 옻칠 공예공방 옆에 있는 '풍악재'로 옮겼다. 동네 집들과는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주민들과 멀리 떨어져 자연스럽게 '방음'이 된다고 자랑이다.

18평 크기의 연습실은 아주 적당해 보였다. 드럼이 놓여 있는 무대가 있고 뒤 쪽에는 다락 식의 2층 관객석도 있었다.

다들 둘러앉자 성광명의 조수라는 젊은이가 지리산 고로쇠 말들이 통을 가지고 들어 왔다. 원래 나는 어떻게 나무의 피 같은 수액을 마실 수 있는가? 싶어 고로쇠 물을 싫어했다. '동의보감에도 몸에 좋다.' '한 사람이 반말은 먹어야 효험이 있다.''이게 노폐물을 빼줘요.' 등등의 이야기에 넘어가 나도 계속 퍼 마셨다.

여기서 인도전통음악, 도법스님 등의 공개강좌도 가지고 금요일마다 모여서 밴드연습을 한다고 한다.

▲ 3개월 넘게 합주를 못 해서 꺼려하는 동네밴드를 조르다시피 해서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박남준 시인이 작사한 곡에 베이스 성광명이 작곡한 노래 '악양에 산다'는 박시인이 직접 불러주었다. 밴드는 이 노래가 악양 전체에 울려퍼질 날이 올거라고 장담한다. 그 역시 기대된다.

고로쇠물과 우리가 가져온 '화요'라는 소주도 다 떨어져 다음 순서로 갈 수밖에 없다. 다음 순서는 당연히 그들의 '공연'이었다.

드러머인 정대영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드럼을 몇 번 치는 동안에 벌써 베이스 성광명, 리드보컬인 김선웅이가 기타를 치고 곧 이어 보컬인 신희지가 마이크를 잡는다. 박시인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마이크를 잡는다.

▲ 아마추어밴드라지만 실력이 만만치 않다. 신명나는 연주에 맞춰 막춤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그날 밤은 아주 달게 잠들었다.
이렇게 신나게 치고 두드리는데 나 또한 춤으로 응답할 수밖에. 그 동안 '막춤'을 최신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만든 춤을 신나게 추었다. 내 춤은 사실 지인들과 그리스 여행을 갔을 때 소위 '조르바 춤'으로 시작되었다.

조르바(영화에서는 '안소니 퀸')가 그의 주인과 나눈 대화다.

'주인님, 저것들(돌맹이, 빗방울, 들꽃)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한 가지 있읍죠. 말로는 잘 못 하겠수. 허지만 나는 그걸 보고 느낄 수 있을 뿐이우. 그런데 그걸 당신에게 말을 하려고 하면 그만 잡치고 마는 거요. 언제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 그걸 춤으로 보여 드리겠수.'

그리고 어느 날 해변가에서 조르바는 미친 듯이 춤을 춘다.

나는 춤을 추는 동안에 모든 것을 잊고 자유스러운 느낌을 갖는다. 언젠간 인사말이나 축사도 춤으로 보여주고 싶다.

▲ 동네밴드의 공연을 보고 숙소로 떠나기 전, 연습실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맨 왼쪽의 필자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희지, 성광명, 정대영, 박명학, 박태이, 김송희, 박남준, 김선웅.

한바탕 공연이 끝났다. 몇 명 안 되는 관객이지만 그들은 동네밴드의 자존심을 걸고 공연을 하는 듯했다.

마을마다 이런 밴드가 만들어지면 한 10년 후에 평사리 공원에서 동네밴드페스티벌, 제2의 우드스탁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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