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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의 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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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의 박남준 시인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4차 답사

4차 답사는 경상남도의 하동과 합천, 창녕 일대를 돌았다. 먼저 하동 악양의 박남준시인과 악양면에 사는 박시인과 주민들이 만든 '동네밴드'를 찾았다. 그 다음으로 합천의 서정홍시인과 귀농인들이 사는 벽오마을을 찾았고 마지막으로 창녕은 우포늪 옆 동네에서 교회 목회를 하는 정석중목사의 초청을 받아 그 일대의 활동가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었다.

하동 악양은 박남준시인이 사는 모습과 그와 같이 활동하는 '동네밴드'를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그 둘은 따로 또 같이 의미하는 바가 별 다르므로...
합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정홍시인과 우리가 방문한 귀농촌의 이진홍부부와 다른 귀농인들도 대단해 보였다.

창녕의 경우는 우리를 초대한 정석중목사가 우리를 접대한다고 그 지역의 활동가와 창녕의 공무원들, 내가 내려갈 때 연락한 대구의 지인들(영남대 정지창교수, 경북대 김창우교수, '소농이 희망이다'를 외치는 천규석선생 등)이 섞여 원래 계획했던 답사의 취지가 좀 무색해진 듯 하여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루 두루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서대로 답사기를 싣는다.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의 박남준시인

박남준시인은 서울 인사동의 술자리에서도 얼핏 얼핏 몇 번 만났고 실상사의 도법스님이 생명 평화를 기원하며 전국을 도보순례 할 때 제주도에서 여러 일행과 같이 만난 적이 있다.

말수가 적어 특이하게 인상에 남진 않았어도 홀로 사는 괴짜 시인이라고 얼핏 들은 바는 있다. 그런데 재작년인가 오마이뉴스에 그와 그의 동네밴드가 소개되었다. '어라 동네밴드라니!' 시인 보다 동네밴드가 더 반가웠다.
한참 동네나 마을에 대해 소개된 글을 찾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 산비탈마다 작은 집과 계단식 논밭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아름다운 동매마을의 꼭대기 즈음에 시인의 집이 있다. 작은 집 한 채와 손수 만든 정자가 소박하다.

그가 사는 악양은 박경리선생의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를 끼고 있다. 지리산 남쪽 자락이라 경부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 팔팔 고속도로를 거쳐 지리산 서쪽 자락을 빙 돌아 구례를 거쳐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다 화개장터를 지나 악양면으로 접어들어서도 제일 깊숙한 끝자락까지 따라 들어가야 그가 사는 동매리가 나왔다.

그의 집은 동매리 가운데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
그의 집 마당에 겨우 차를 대고 마당으로 나오니 악양면 일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평사리 일대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그는 우리 일행을 우선 뒤꼍으로 데려갔다. 조그만 연못이 있다. 그 옆엔 원두막 비슷한 낡은 정자가 있었다.

▲ 시인은 만나자마자 뒤뜰의 정자와 그 아래 작은 연못, 물고기들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집 뒤 비탈길 위의 매화나무를 가리킨다. 딱 한그루가 피었다고. 일행이 매화를 보고 내려와서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시인답다.
그는 연못을 가리키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버들치 같은 자그마한 민물고기들이 산다며 자기 자신이 먼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연못 안에는 다른 민물고기들은 안 보이고 붉은 금붕어 두 마리만 보였다. 보통 어항 속의 작은 금붕어 보다 꽤 커보였다. 4년 전엔가 조그만 금붕어를 사다 넣었는데 안 죽고 이렇게 잘 큰단다. 그러면서 또 신기로운 표정이다. 그의 표정에 장단을 안 맞출 수가 없었다. '음! 그놈들 꽤 크군.' '두 놈이 암순가? 둘이 짝이 되어 그렇게 잘 살고 있는 모양이군.'

연못 안내가 끝난 뒤 그는 우리를 앞마당으로 끌고 나온다. 제일 처음 내가 그의 연락처를 알고 전화했을 때, 귀가 나쁜 내가 '동... 무슨 마을?'을 외치자 그는 풀어서 동쪽의 매화마을, 즉 '동매마을'이라고 설명해준 바 있다.
그는 앞마당에서 우리 일행에게 손짓으로 집 뒤꼍을 가리키며 비탈 위로 매화가 있다고 올라가 보란다.

▲ 매화가 핀 것을 보니 이제야 봄을 만나는 기분이다. 매화를 보고 둘러보니 바로 아래 시인의 집을 비롯하여 동매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자연과 사람의 삶이 어우러져 절경이다.

시인의 말대로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니 매화가 딱 한 그루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코를 갖다 대니 매화향이 살짝 묻어난다. 서울에서 달려내려 온 피로가 싹 가신다.

(그는 우리를 예약해 놓은 악양면사무소 근처의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거기는 '동네밴드' 단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그와 동네밴드 이야기는 따로 이 뒤에 싣는다)

그 이튿날 그가 우리에게 손수 굴밥을 지어 대접하겠다하여 펜tus에서 우리 일행은 다시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얼마 전 동네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를 절고 있었다. 다리까지 불편한데다 그의 움직임은 눈에 뛸 정도로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 시인이 손수 차려준 소박한 밥상은 정말 맛있었다. 느리게 식사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시인은 재즈 음악을 틀었다. 늦은 아침이지만 오감이 맛있는 식사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올라 왔는데 그는 급할 게 없다는 듯이 그제서야 천천히 움푹 파인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어제 마신 고로쇠물 때문인지 다리가 한결 편해졌다면서...

우리 일행이 거들고하여도 좀처럼 밥이 되는 것 같지가 않다. 오래 걸린 밥이 맛있었는지, 그가 혼자 사느라 제법 솜씨가 있어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굴밥'은 맛있었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그가 이 집에 들어온 기구한(?) 사연을 풀어 놓았다. 그는 다 후배 잘 둔 덕이라고 했다. 그는 전주의 모악산의 움집에서 오래 살았다는데 나도 그의 괴이한 살림살이를 얼핏 얼핏 들은 바 있었다.

어느 날 원래 이 집에 살던 후배가 연락이 왔단다. 후배는 이집을 빨리 처분할 사람을 구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박물관회 같은 고급사교 모임에 나가고 여유가 있는 지인에게 그런 모임에서 별장(?)식으로 이런 집을 이용할 '싸모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어렵게 부탁을 했는데 그 뒤 이 사람한테도 그렇고 급하다고 했던 후배한테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냥 없었던 일로 지나가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날 그 집이 당신께 됐으니 그리로 이사를 가라고 연락이 왔단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알고 보니 박시인이 부탁한 그 사람이 박시인의 다른 지인들과 마음을 모아 그 후배한테 집값을 내주고 이 집을 박시인에게 사준 것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집이 그의 몫이 됐다. 후배들한테 부탁해 모악산의 토굴 같은 그 집에서 지게로 책만 몇 상자 싸들고 이리로 오게 되었다. 그는 후배들 없으면 못사는 모양이다. 모든 이야기에 후배들이 꼭 들어갔다.

▲ 작은 흙집 한 채를 조금씩 고쳐서 사는 시인의 작은 삶은 그의 말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낮고 느리게 그러나 따뜻하고 진실하게. 그는 이곳에 온 이야기부터 이웃집 사람들, 동네밴드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조금 살다 떠나려던 계획과 달리 아무래도 이곳에 남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애정이 묻어난다.

이 집을 지금처럼 그럴 듯하게 고친 이야기에도 후배들로부터 시작된다. 뒤쪽에 붙은 서재 겸 글방이 다 허물어져가는 토담으로 돼 있었는데 습기가 하도 차, 여기에 창문을 달겠다고 후배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집짓는 일을 하는 후배들은 어디서 쓰다 남은 자재로 쉽게 창문 하나 내 주겠다고 큰 소리는 쳤는데, 벽에 구멍을 내려고 손을 대자 그 벽이 워낙에 낡아서 뒤로 다 허물어 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은 점 점 커지는데 이 후배들은 다른 일거리가 생겨 날라버리고, 다른 사람을 시켜 이 일을 완성했는데 창문 하나 낸다는 게 거의 조그만 집을 하나 짓는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후배들이 큰 도움도 됐다가 가끔가다 예상치도 않은 덤태기도 쓰는 모양이다. 세상일이 모두 새옹지마(塞翁之馬)다.

그는 정말 양지바른 이 산방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같다. 세상 사는데 뭐가 그리 급할 손가? 그는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듣는다. 시인의 감성으로 세상을 사유한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지면서 또 흐른다.

우리가 떠날 때 쯤 해서 그는 마당에 딱 한 송이 핀 홍매화를 가리킨다. 정말 밤사이에 그 많은 봉우리 중에 홍매화가 딱 한 송이 피어 있었다.

▲ 시인의 집 마당가에 있는 홍매화가 고맙게도 밤사이에 딱 한 송이 피어줘서 보고 떠날 수 있었다.
그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아주 미세한 변화도 알아차린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서 동네 사람들, 특히 도시를 버리고 찾아든 귀농인들과 많은 일들을 한다. '동네밴드'를 같이 만들고 같이 공연활동을 하고,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섬지사)'과 '지리산 학교'를 만들어 같이 운영하고, 섬진강 옆 꽃길을 4차선으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이끌어 그대로 아름다운 꽃길을 보존하기, 지리산 둘레길 걷기 등 하는 일이 만만치 않게 많다.
그가 이 마을에 들어 온 것은 7년째 된다. 잠시 있다 어디로 또 떠나겠지 한 게 벌써 7년째 된단다. 아마도 그는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 이끌려 계속 여기에 살지 않을 까 싶다. 동네밴드도 그렇고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 다 여기 주민들과 같이 한다는 게 그는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동매마을, 매화, 새소리, 박시인, 동네밴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우리는 작별을 고하고 악양면 넓은 들판을 가로 질러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 이곳 하동 악양에는 귀농인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듣지 못했으나 무엇보다도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소박하고 느린 삶이 이곳에서 계속 그 평온함을 지켜가길 바란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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