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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모르고 깨달음을 모르는 정권이란

[김상수 칼럼] 한국사학자 조광 교수와의 대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 3.1절 아침, 무심코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명박이 3·1절 기념사를 하고 있었다.

"대립과 갈등으로 국민이 분열되어서는 선진화의 길을 갈 수 없다...",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지양하고, 서로를 인정·존중하며 상생적인 실천방법을 찾는 중도주의...",

"작은 차이를 넘어 더 큰 가치 속에서 화합하는 공화의 정신...",

대체 뭔 말을 기념사로 할까 지켜보다가, 나는 이내 스위치를 눌러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한국사 전공인 조 광(趙 珖) 고려대 교수이자 고려대박물관장을 어제 오후 고려대박물관에서 만났다. 최근까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조 광 교수는 오늘의 우리사회 현실에 대해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러나 희망이란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나 현재 눈앞에 보이는 기이한 현상들이 계속될 거라는 체념이야말로 희망을 우리 안에서 내쫒는 옳지 못한 태도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의 역사에서 자신이 전적으로 확신하는 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노력과 작은 행동이라도 끈덕질 때 비로소 세상을 바꿀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역사는 잔인한 죽임의 역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희생과 용기와 승리의 역사였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불의에 대해서는 아무리 작은 방법으로라도 저항을 한다면 역사의 미래는 우리들을 '존중'할 것이기에, 자신은 오늘 이런 현실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국사? '배우든지 말든지' 하라는 국가교육정책

김상수 -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은 좀 상식적인 얘기들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의 성과"에 대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되찾은 일"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거의 30여년 만"에 "국민적 자신감"을 언급했습니다. 뭔 '자신감'을 말하는지, 그의 이야기는 정확하게는 틀렸지만, 맞는 부분도 있더군요. 오늘 이 시대가 전두환 군사독재시대와 그 이전 때인 박정희 시대 때로 사회전반이 30여년 빠르게 후퇴하면서 망가지고 퇴행하고 있는 현실은 맞지요.

조 광 - 30년 전 과거의 우리사회 병리가 고쳐지기는커녕, 도리어 사회적 병리현상이 오늘에 와서 더욱 강화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상수 - 제가 작년에 독일 베를린에 있을 때 들려온 한국 소식 중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뉴라이트'가 요구한대로 바꾸도록 출판사에 압력을 가해 수정하게 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리고 더하여 작년 연말에는 개정 발표된 소위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국사 과목을 고등학교 1학년 선택과목으로 변경했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국사과목을 아예 없애고 동아시아사와 서양문화의 이해를 위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바꾸었다는 뉴스를 듣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명박 집단의 정권은 지금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발표가 의미하는 오늘의 이 교육 현실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조 광 - 2010년부터 시행되는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국사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됨을 말하는 겁니다. 교육부 설명은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의 교과과정이 모두 선택으로 전환되었으므로 국사과목도 선택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사는 다른 사회과목과는 달리 우리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교과목입니다. 그리고 국사는 우리 역사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과목이고요.

돌이켜 보면, 개항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가장 중요시되던 과목이 국어와 국사였습니다. 국사는 나라의 발전을 위한 정신적 기초를 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과목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와 같은 역할 때문에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에도 나름대로 국사교육을 강조했던 겁니다.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정도를 넘어서서,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네요. 참담한 교육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상수 - 자기나라의 역사를 배우려면 배우고, 말라면 마라, 이런 식으로 국사를 필수 교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가르치는 나라가 인류 국가들 중에 어디에 또 있는지? 독일 친구들이 '한국의 교육은 초인류국가를 지향하는 가보다'라는 우스개소리를 하더군요. 이명박 집단의 정권이 들어서서 매일같이 2년 동안 워낙 상식 밖의 황당한 일들을 계속 벌이니까, 많은 시민들이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마는, 도대체 저로서는 이해가 도저히 안 가는 발상인데,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는지요?

조 광 - 선진국이라고 툭하면 인용하는 나라들 중에서 역사교육을 선택으로 하여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하는, 이런 식의 나라는 없지요. 우리나라만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국사를 듣지 않아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는 식인데, 이는 말이 안 됩니다.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등학교 과정에서 국사를 배우지 않는다는 건,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의 이해를 스스로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신자유주의의 체제 아래에서 무자비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잖아요? 우리도 이 세계화의 도전에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대처해나가야 하는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인데,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제대로 국사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면, 우리 사회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은 힘을 상실할 우려가 매우 크지요. 이런 교육정책은 결코 정당하지 못하고 우리의 미래에 먹구름을 가져다 줄 뿐이고 나쁜 정책이므로 폐지되고 바로잡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전망할 때 이런 교육현실은 나라의 정체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김상수 - 그동안 역사교육이 암기위주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흥미를 잃는 교육방식에 문제가 많았는데, 그런 교육방식을 보다 개선하고 실제로 역사가 구체적인 삶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관여되는지, 그리고 오늘처럼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이런 현실이 왜 오게 됐는지,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과거를 통해서 이치를 따지고 묻는 태도에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유럽에서 보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나 마을이 언제 어떤 변화를 가져와 오늘의 모습인가를 어린이 때부터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공부를 시킵니다. 그리고 조금씩 넓혀서 세상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를 되묻는 방식으로 나갑니다.

조 광 - 그렇습니다. 그래서 역사 공부가 살아있는 공부가 되는 것이지요.

김상수 - 역사는 '기억의 공동체'입니다. 정치권력이 일방으로 '기억의 역사관'을 왜곡하여 강요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나라의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하여 역사를 배우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이거나, 교과서가 정권 입맛에 안 든다고 일방으로 밀어붙여서 바꾸게 한다거나, 작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이런 일들은 제가 머물던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역사를 냉정하게 '기억'할 것을 필수과목으로 교육시킵니다. 또한 정치세력이나 권력, 일개 한시적인 정권이 나서서 역사교과서에 관한 내용에 간섭하고 역사교육을 선택으로 하니 마니 하면서 개입하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왜? 오늘 한국은 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나요?

조 광 - 역사적 사실은 단 일회적이요 반복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 사실을 연구하는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권력도 특정 역사관을 학생들이나 국민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국의 역사 교육을 가볍게 여기거나 도외시하는 건 물론 있을 수도 없고요. 그리고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를 기억할 때도 관제 시각이나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억하도록 강요한다는 건 이미 시대착오적입니다. 과거 전제국가나 독제국가에서는 국정교과서 형태로 역사관을 규제하고 특정 사관을 강요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해석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여 특정 사관을 주입시키고자 했고, 특정 사건에 대한 편견을 정론으로 강요하는 상황이 일어났던 사실도 있었습니다. 이는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고 다양한 역사해석의 가능성을 말살하면서 역사와 현실을 모두 병들게 하는 겁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난 20세기 전반기의 우리사회에서 뚜렷하게 경험했습니다.

독일 나치가 잘못된 역사관을 독일국민에게 강요했고 일본 제국주의는 황국사관을 일본국민과 식민지 백성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됐습니까? 치명적이고도 엄청난 비극의 결과를 초래했지요.

뉴라이트 역사관, 문명을 가장한 야만의 역사관

김상수 - 그래서 유럽에서는 역사교육을 시킬 때 냉철한 인식과 엄정성 을 강조합니다.

조 광 - 나치의 역사교육과 일본제국주의 황국사관이란 그 결과가 파괴적인 침략전쟁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식민지나 점령지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무고한 독일 국민들과 일본 국민들도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 무고한 죽음과 고통은 역사의 자유로운 해석을 막고 특정이념만을 수용하도록 요구했던 당시 지배층이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러한 역사경험 때문에 세계의 역사교육계에서는 관제 역사관에 대한 거부에 모두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 조 광ⓒ김상수

김상수 -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박정희 전두환 이후의 역사교과서는 어떻게 달라졌고 또 지금은 어떻게 왜곡되고 있습니까?

조 광 - 우리의 경우에도 국사의 국정교과서 체제가 상당히 오랜 동안 지속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바뀔 수 있었지요. 그러나 갑자기 작년 말부터 뉴라이트의 도전으로 역사교과서 파동이 일어났고, 그들은 역사의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지 않고 아마추어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왜곡된 역사관에 입각하여 기존의 중등학교 역사교과서들이 역사학계의 진지한 연구결과로 제시한 역사해석들을 일일이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또한 일부 국회의원들 가운데서도 국사과목을 다시 국정교과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는 모두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며 현대 역사학의 성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민적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거부하는 일이면서 국정교과서적 사고방법에 고착된 사람들, 혹은 식민지시대를 미화시키고자 하는 신판 식민사학자들, 이들은 일종의 역사반동을 저지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다양한 해석에 쇄기를 박고, 문명을 가장한 야만의 단계로 역사를 되돌리고자 하는 사상적 폭거가 뉴라이트에 의해 자행되었던 겁니다.

계속되어온 역사왜곡

김상수 -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일본무력에 의한 침탈인 '병탄(倂呑) 100년' 입니다. 이명박은 올해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래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드러나는 '내일의 시간'입니다. 과거사를 외면하고 무조건 미래 운운이란 어불성(語不成)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냉철한 인식과 대화를 통해서야만 비로소 미래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한,일 관계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조 광 - 물론 역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역사를 망각하고서 미래로만 나가려는 것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 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제3의 물결을 지은 엘빈 토플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비례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미래로 나아가는 탄탄한 길을 닦아줍니다. 과거에 대한 해결 없이 미래로 나간다는 것은 구멍 난 배를 끌고 대양을 항해하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과거에 대한 냉철한 반성만이 올바르고 건강한 미래 관계를 맺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한일관계의 미래에도 여지없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일본과 해결해야 할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는 일본의 중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지니고 있는 왜곡된 한일관계사 인식에 대해 발언할 책무가 있습니다. 건전한 역사교육을 해야만 미래의 건강한 관계를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상수 -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대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인가요?

조 광 - 일본 중등학교의 한일관계사에 대한 왜곡은 여러 주제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학에서는 객관적이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초를 토대로 한 해석상의 다양성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일 양국 간의 역사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도 있지만, 동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한국은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동일문명권내의 국가를 식민지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해 왔습니다. 이러한 전력(前歷)이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198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중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일부 검정교과서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왜곡된 사실과 해석이 수록됨에 따라 이 문제가 한일 간에 제기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안 사항으로 남겨져 왔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중등학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특히 문제되는 것으로는 2001년도 이후 오늘날까지 후소샤(扶桑社)에서 간행하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나 2009년도 지유샤(自由社)에서 간행한 교과서입니다.

원래 역사교육의 목적 가운데는 인접국 상호간의 이해증진과 평화공존 및 공동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되는 교과서들은 쇼비니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역사이해를 통해서 주변국에 대한 편견을 조장시키고 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에 한국 측은 일본의 교육 당국에 강력한 항의를 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특히 근현대사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근현대사 문제 이외에도 각 시대에 걸쳐 고루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고대사에 있어서는 한반도 남쪽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 삼한과 삼국이 일본에 조공했다는 삼한 삼국 조공설 등이 있으며, 일본 고대사회의 발전에 미친 한반도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는 데에는 아주 인색합니다.

중근세사에 있어서도 조선의 연해민이 '왜구'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주장, 임진왜란의 일본군 침략을 미화시키려는 시도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은 근현대사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운요호(雲揚號) 사건과 조선 개항에 관한 문제, 한일병합의 정당성 문제,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의 문제, 을미사변, 러일전쟁의 성격 문제 등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큽니다.

그리고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 종군위안부 문제 등도 뜨거운 주제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현대사에 있어서도 동해 표기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전후 배상 문제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인접국 간의 역사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당사국 간의 꾸준한 노력이 요청됩니다. 오늘날 한일 양국 NGO에서는 상호 이해와 우호를 증진시켜 공동발전과 번영을 이루고 동아시아의 평화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도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역사교육이 오도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에 그치지 말고 역사교과서에 대한 검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 당국의 성의 있는 노력이 최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또한 독도 문제도 영토문제임과 동시에 역사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양국의 학자들은 역사학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국 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역사교과서에도 반영되어 역사교육 현장에서도 당연히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던 일본 사회와 교과서 정책을 수립하는 일본 정부 당국의 각성이 요청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짧은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토론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아마 한일 양국 간에 역사문제는 발생하지도 않았겠지요.

이 일에는 꾸준한 연구와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대화에 있어서는 상당한 인내심도 함께 요청되고요. 그러나 역사문제로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역사문제를 법정에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진지한 연구와 상호 토론을 통한 설득과 합의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바른 역할은

김상수 - 선생님께서는 2002년 한,일 정부간에 합의되어 양국의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1기에서는 간사로 참여하셨고, 1기에 이어 2007년 시작된 2기부터는 한국 측 위원장이셨습니다. 작년 2009년 12월 5일에 2기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일단 종료됐습니다. 이번 달에 최종 연구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근현대사에 이르러 많은 부분에서 일본 측과 견해가 엇갈렸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진 견해 차이가 1965년에 있었던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와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징용과 농산물 등 강제공출 건입니다. 일본 측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강제징용, 강제공출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일본에 의한 '전쟁범죄'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비를 삼는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는 강제동원, 강제공출이 아니라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조약 개정에 관한 논의는 일본 측 주장이 "일한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었고, 지금 한국 측의 조약개정 주장은 정치적 주장, 실망이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1965년 당시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에서 한국 측의 청구권 문제는 대부분 검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전혀 언급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의 개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반드시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측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한국 측의 대안은 어떻게 수립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조 광 - 근현대사분야에 대해서는 이견차가 컸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분쟁과 관련된 주제는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서 합의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여전히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경우에는 이 모든 문제를 다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양국 학자들은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는 초기에 공동으로 연구할 주제부터 상호 협의하여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문제에 관해서만 상호 연구하고 토론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많은 역사문제에 있어서 이견의 폭과 깊이가 너무 넓고 깊어서, 위원회가 지속되는 2년 정도라는 회기 안에 이를 전부 다 다룰 수가 없는 시간상의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큰 이견(異見)의 주제는 공동연구의 주제에서 일단 제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독도문제나 청구권 문제 등이 그렇지요. 이는 분명 양국 간에 의견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합의된 연구주제에 대해서도 상호 합의된 공통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연구를 통해 그 주장을 합리적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바쳐집니다.

이런 과정에서도 서로 의견의 합치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문제입니다. 고대사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이 문제에 관해서 양국의 학자들이 거의 의견을 일치시켜, 임나일본부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데에 함께 동의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우선 서로의 의견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데에 이 위원회의 부차적 목적도 있습니다. 양자 간의 차이점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그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도 결코 낮추어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유럽에서 간행된 공동역사교과서의 경우에도 서로 의견의 합치를 이루지 못한 부분에 관해서는 함께 병기(倂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라도 문제되는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에서 한일양국의 학자들이 합의된 결과를 도출해 냈다 하더라도 이를 교과서 집필에 반영할 반한 강제력을 위원회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현재 중등학교 교과서는 국정교과서 체제가 아닌 검인정체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그 연구 성과를 교과서집필자, 역사교육자, 교육관계 행정가를 비롯하여 출판사 등에 배포해서 그 연구 결과를 교과서집필에 참고하도록 제공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다른 견해에 대하여 본격적인 학문적 논쟁을 통해서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일본 측에서 전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현재로서는 합리적 연구 성과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조 광ⓒ김상수

김상수 - 일본 측 학자들의 주장은 1905년의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정당했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통상적 의미의 조약이 아닌 일제의 강박이 결과한 '늑약'입니다. '조약'도 아닌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일본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조 광 - 일본의 연구자들은 을사늑약이나 한일강제병합조약 등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약을 계기로 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가 진행되었고 강행되었음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그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역사는 사실을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학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측 연구자들은 조약이 일본의 강압과 당시 조선의 조정을 요사스러운 속임수로 속인 일본의 사술(邪術)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약은 원인무효임이고 식민 지배가 부당했음을 말합니다. 만약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인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저항, 즉 독립운동은 역사적으로 불법적 운동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 지배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저항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본 측 연구자들에게 식민 지배의 부당성을 객관적인 사실 논증을 들어서 그들의 그릇된 주장이나 논리의 허점을 들추고 부셔나가는 것입니다.

영악하고 더러운 머리들의 지식부역

김상수 - 지금 한국사회가 마치 사술(邪術)과 사술(詐術)이 판쳤던 100년 전 상황과 유사하다고 저는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회언어 또는 사회용어의 용례나 쓰임에서 일대혼란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중 언어를 동원하거나 언어의 위선과 거짓과 기만,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넘치고 공공연합니다. 저는 '더러운 머리'라고 얘기합니다마는, '영악하고 더러운 머리들'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어 정권에 지식부역(知識賦役)을 하는 건 용서하기 어려운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흔히 잘못 쓰는 역사용어 또한 큰 문제입니다. 우리 스스로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한다든지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 이라든지, 이처럼 역사용어의 오용도 심각합니다. 이런 현실은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조 광 - 언어를 남용하는 것은 개념상의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사실의 실체를 근본으로부터 왜곡시키는 짓입니다. 을사보호조약이란 용어는 일본 측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용어입니다. 그 '조약'은 침략을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 이를 '보호'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수법이지요. '식민지근대화론'이란 용어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근대화란 경제의 산업화만 뜻하지 않고 정치의 민주화나 사회의 평등화, 문화의 합리화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식민지는 민주화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또한 경제적 산업화가 극히 어느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일본본토나 한반도에 살았던 일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한민족을 위한 경제의 근대화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식민지 아래에서 가해졌던 각종 착취와 탄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신고(辛苦)의 세월이 근대사회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는 신판 식민사관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할 것입니다. 식민사관이란 역사를 통해서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강요하려던 그릇된 사관이었고, 해방 이후 우리 역사학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했습니다.

이제 그 식민사관의 망령이 우리내부 인사들에 의해서 다시 일어나는 이런 식의 괴이한 현상은 역사의 퇴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과거를 직시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용어의 오남용은 우리 사회가 확고하게 민주주의로 진전된다면 더 이상은 계속되기 어려울 겁니다.

왜 한반도는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김상수 - 한일역사공동위원회에서 일본 측은 한국의 항일운동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항일운동이 활발했다면 왜 한반도가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느냐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엄청 치욕적인 얘기입니다. 우리 내부의 뉴라이트 또한 비슷한 얘기를 주저 없이 합니다. 마치 일본의 극우익 측을 대신해서 역사왜곡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지경입니다. 일본을 설득시키는 문제만큼 우리 내부의 역사왜곡을 정리하는 문제도 너무나 시급합니다. 우리 내부의 역사 몰이해의 혼돈을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끊임없이 우리 내부의 적(敵)들과의 싸움

조 광 -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연구 성과는 예정보다 조금 늦게 3월24일 한일양국에서 발표됩니다. 그 발표를 보시면 합의된 연구주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뉴라이트의 한국근대사에 대한 주장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확대하고, 일본 극우세력에서 간행한 일본교과서에서 서술하고 있는 일본극우 논리와 바로 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뉴라이트들이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일부는 일본 극우파가 사용하는 용어와 동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학사관(自虐史觀)이란 용어가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한국사학자들은 일본 극우 세력의 교과서왜곡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뉴라이트의 견해가 사회를 오염시키는 현실에 대해서도 싸워야 하는 이중의 싸움을 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우리 내부의 적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특히 젊은 층이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자 하는 진실한 노력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한국사교육의 공교육을 축소시키고 견제시키고자 하는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국민의 한국사 교육을 텔레비전 사극이 담당한다 할 정도이니, 그러나 텔레비전 연속극은 픽션의 세계이지 역사가 아니잖습니까? 제대로 된 한국사 교육의 기회는 자꾸 축소되어가고 있는 통탄스러운 상황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김상수 - 일본은 자민당 55년 체제가 종식되고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됐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서 일본 수상 하토야마는 '과거역사를 직시하겠다'고 말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상대이자 당사자인 한국입니다. 하토야마가 일본의 과거역사를 반성하고 직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집단은 계속 엇박자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겠다면서 허상 같은 미래만 강조합니다.

조 광 - 역사에는 반드시 기회란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과 역사의 대화를 좀 더 본격적으로 추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이 기회를 상실하게 되면, 한일 양국 간에 역사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수반되는 수고가 따릅니다. 우리는 지난 5,6년 동안에 한일 역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 왔고, 이 노력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분쟁의 해소를 위해 한걸음이나마 더 나갈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정리 없이 미래로 나갈 때에는 탄탄대로가 아닌 사막의 모래밭을 나침반도 없이 걷는 것과 같으며 곧 길을 잃게 될 겁니다.

역사는 절망에서도 희망의 근거가 되는가?

김상수 - 오늘 날 한국의 최대과제는 분단 극복이고 남북 통일국가수립입니다. 동시에 이는 탈 식민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단의 극복도 탈 식민의 숙제도 점점 요원한 현실입니다. 절망적일만큼 비감도 듭니다. 우리들 안에 절망만이 아닌, 희망 찾기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희망이 있다면, 과연 그 희망은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

조 광 - 우리 역사를 보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을 비롯한 대륙세력의 압제에서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희망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절대빈곤을 극복했습니다. 엄혹한 독재 시대에서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꿈꾸었고 이를 실현시킨 저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우리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動因) 가운데에는 희망의 DNA가 있는 듯합니다. 역사는 희망을 말합니다.

현실은 일견 분단체제가 다시 고착화되는 듯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불을 보듯이 빤하게 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우리가 걸어왔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결코 절망하거나 비감에 잠기기보다는 희망을 생각하면서 이를 위해 자신이 결단하고 투신할 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상수 - 우리는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집단의 등장처럼 과거로의 반동적 회귀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역사를 인식하는 기초조차 내부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들과 싸워야 하는 지경입니다.

조 광 - 역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법칙은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는 낙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낙관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요청됩니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과정을 살펴볼 때, 당장은 역사의 퇴보로 볼 수 있는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긴 안목에서 볼 때는 더 큰 발전을 위한 진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대외적으로 일본과 역사문제로 인해 갈등하고 있고 또 대내적으로도 여러 어려움이 겹쳐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두 가지 중첩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먼저 대내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우리들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서 먼저 우리를 다져나가야 합니다. 역사분쟁의 해결에 있어서도 우리의 입장이 정당하고 올바를 때 대외적으로도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때에만 평화롭고 정의로운 삶을 살 수 있고 그런 미래를 말할 수 있습니다.

▲ 조 광ⓒ김상수

김상수 - 역사를 모르고 깨달음을 모르는 정권이란 종내는 비참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역사의 정신을 짓밟고 있는 집단의 정권이란 철저하게 외면당할 것이라고 저는 내다봅니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언론의 정론'입니다. 대중의 생각을 계속 오도하면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목숨까지 빼앗는다면, 우리는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절실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조 광 - 역사는 침묵을 강요받은 사람들과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싸워온 역사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당당하게 행동했던 선인들의 시대와 장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권력과 돈에 완강하게 집착하는 자들이 압도적인 힘을 계속 누린다는 보장은 역사 어디에도 없습니다. 도덕적 우위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열정은 지혜와 용기를 통해 행동할 힘을 얻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능력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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