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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감자꽃 스튜디오'의 이선철, 박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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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평창 '감자꽃 스튜디오'의 이선철, 박봉구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9>


▲ 쌈지농부레지던시를 떠나 평창으로 오는 길은 밤도 어둡고 해서 꽤 늦어졌다. 이리저리 헤매다 어둠속에서 감자꽃스튜디오의 꽃 모양이 반짝 나타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두워서야 '감자꽃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4시 쯤 도착해 이곳을 견학 온 다른 팀과 같이 여기 활동에 대해 설명을 들으려고 했으나 허사가 됐다.

이곳도 폐교였는데 7년 전 쯤 이선철씨가 대학로에서 놀던(?) 것을 접고 연 500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내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이 지역의 문화 거점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대학로에서 알고 지내던 메타건축의 이종호가 여기를 리모델링 설계를 해줘 2층짜리 평범한 건물의 앞면을 철골 구조로 파사드를 만들고 벽면을 특수 유리 섬유로 뒤집어 씌어 완전히 대학로에서 볼 수 있는 멋쟁이 건물로 재탄생 시켰다.

▲ 평범한 폐교를 재탄생시킨 건축가의 솜씨가훌륭하다. 철골구조를 활용하여 공간을 더 늘릴수도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실용적이고도 현대적인 멋이 살아있다.

금년 여름 이곳으로 피서를 왔던 박명학 전 처장이 나에게 이 건물의 외관에 대해 몇 번을 말했었지만 실제로 와 보니 더 멋있어 보였다.

▲ 밤이 늦었지만 스튜디오사무실에서 이선철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가 어떻게 이곳 강원도 평창까지 와서 폐교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는 쉽지 않았을 여정을 사람 좋게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를 맞이한 박봉구는 원래 이름은 박용범인데 무슨 이유인지 봉구라고 부른다. 그는 몇 년 동안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인사미술공간'에서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우리가 해임 될 때 사표를 냈다. 그의 전공은 음악 공연 기획 즉 '딴따라'쪽인데 요즘 뜨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획도 다 그의 작품이다. 박봉구는 금년 초에 처음으로 이곳에 스탭으로 들어 왔는데 그가 맡은 첫 일이 내일 가보기로 한 주문진 시장의 문화 활성화 프로그램 '문전성시'의 감독이었다.

곧이어 이선철씨도 나와서 같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유명한 지역 문화 활동가가 되어 처음에 만났는데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종료식' 현수막이 붙어 있는 다용도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는 젊어서부터 연극과 공연 기획으로 뼈가 굵은 사람이다. 특히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기획실장으로 한 10년간 일했다고 하니 그가 놀아도 큰판에서 놀았다고 할 수 있겠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대학로에서 놀다보니 사람들에게 치여 아예 다 버리고 이곳 심심산골로 오게 된 모양이다.


일 년 동안은 지친 몸과 마음도 달래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좀 지내다 보니 평창만이 아니라 강원도, 중앙의 문화부까지 옛날 그의 놀던 가락을 알고 그의 탁월한 기획력을 찾아서 그에게 이것저것을 부탁하는 게 늘어나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평창은 지역이 워낙 넓어 문화 시설과 고급 겨울 스포츠시설인 휘닉스, 용평 리조트 등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 동안 한 일이 너무 많아 그도 무얼 먼저 말할지가 주저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예마네>는 특히 마을 주민들과 문화 예술로 서로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먼저 마을 주민들 중엔 정신지체장애자들이 꽤 있는데 그들의 음악 치유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면서 정신지체장애자인 한 젊은이를 데려왔다. 김상덕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김상덕은 자기 스스로 여길 찾아와 이것저것 참여하기도 하면서 자기치유로 이 사무실의 여러 가지 일을 도울 정도로 지금은 상태가 좋아져 사무실의 중요한 스탭이라고 이선철씨가 소개한다. '음악 치유'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스튜디오 한 쪽에 있는 어린이용 도서관은 동네 어린이들이 좋아해 이젠 완전 어린이 놀이터가 됐는데, 아직도 전체 문화 시설은 동네 분들이 이용하길 꺼린단다.

▲ 스튜디오 한 쪽에 자리잡은 감자꽃 어린이도서관. 지인의 동화책에서 이름을 따온 감자꽃 스튜디오의 싹이 튼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배고픔을 호소하자 이대표는 우선 자기들이 잡아 놓은 숙소, '700고지 빌리지'로 이동하자고 한다. 해발 700m에 있는 펜션이다. 이대표 말에 의하면 자기네들에게 오는 손님은 무조건 이 펜션으로 보낸단다. 아마 이 펜션과 '감자꽃 스튜디오'는 공생(?) 관계인 모양이다. 여기서 자고 간 방문객들은 너나없이 좋아들 한다고 한다.

급한 경사지를 돌고 돌아 700고지에 도달했다. 하늘엔 오늘 따라 달이 밝고 별빛도 총총했다. 고지에는 다른 집들은 없고 오직 펜션만 몇 채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펜션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엔 목탄화로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고 일행인 듯 한 네 사람이 먼저 식사와 반주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보니 '감자꽃 스튜디오'를 견학하려고 저 멀리 경상남도 창녕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들도 자리를 잡고 식사와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배가 돌고 나자 곧 옆 자리의 창녕 사람들이 인사를 청해온다. 그들은 창녕시 문화관광과 공무원과 한 마을의 이장과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만들기 추진위원장, 그 마을의 목사님 해서 4명이다. 그들은 생태 늪으로 유명한 '우포 늪' 옆 동네에 사는데 그 마을에 생긴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가 여기 '감자꽃 스튜디오'의 명성을 듣고 견학을 왔다고 한다. 내일 몇 군데를 더 들릴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도 지역의 마을이 활력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마을을 답사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들이 반색을 한다. 내가 화가라고 하니까 자기네들 마을로 모시겠다고 야단이다.


지난 10월에 내가 유홍준 답사(창작과 비평사에서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200쇄 기념 '명사초청 답사'로 창녕의 가야고분에 갔었다)로 창녕에 갔었고 그 당시 고분에서 나온 순장된 처녀 얘길 꺼내니 그들은 더욱 반색이다.


그들과 감자꽃의 이선철 얘기가 마구 섞여 돌아갔다. 창녕 사람들과는 기회를 봐서 우포늪도 볼 겸 우리들의 마을답사코스에 넣고 꼭 한번 들리겠다고 약속했다.


공무원과 주민들이 이렇게 답사까지 다니니 그 마을이 뭐가 돼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다.
숙소로 올라가 2차로 좀 더하다가 내가 먼저 자리를 파하고 방으로 들어가 그야말
로 곯아 떨어졌다.

▲ 이름도 700고지인 펜션에 가려면 경사가 급하고 좁은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한다. 험준하고 높은 강원도의 산 꼭대기 즈음에 자리한 숙소에 도착하니 하늘엔 이미 별과 달이 가까이 떠있었다. 옆의 사진은 다음날 아침 내려가는 길에, 밤에 미처 몰랐던 급한 경사길에 놀라워하며 찍은 것.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었다. 펜션 사장이 어젯밤에, 아침 6시 반까지 나오면 그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하늘 트레킹 길을 갈 수 있다고 했었는데 놓쳐버렸다. 매일 아침 5~6km를 걷는 운동도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생략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창녕사람들과 몇 차례 창녕 방문을 약속하고서야 헤어졌다.

우리는 다시 이선철의 '감자꽃 스튜디오'로 내려왔다. 박봉구의 안내로 스튜디오의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2층엔 스탭들 숙소도 갖추어 놓고 커다란 홀도 있었다. 주로 공연 음악 프로그램은 여기서 진행을 한다고 한다. 웬만한 녹음도 여기서 가능하다고 했다.


옆 동네에 '정선아리랑'이랑 민요를 잘 부르는 노인들 팀을 꾸려 여기서 연습도 하고 공연을 하게 했는데 이들이 요즘 강원도의 대소 축제에 출연하느라 시간이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또 아주 기량이 좋은 할머니들 소리를 녹음해 CD를 구워 드렸는데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 스튜디오 2층에는 공연장 겸 녹음실이 갖추어져 있다. 이런저런 교육과 공연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녹음기능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여기서 평창고등학교 학생 밴드부를 전문가들을 붙여 가르쳤는데 이들이 커서 다시 마을로 돌아와 문화 예술교육에 봉사하는 순환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고도 한다. 층계 벽에 이들을 소개한 지역 신문이 스크랩 되서 붙어 있는데 이 '고딩' 밴드부의 얼굴들이 하나같이 밝고 명랑하다. 이들 밴드의 이름이 '대일밴드'다. 재미있다.

스튜디오 앞마당엔 '배상면주가'에서 내년에 1개 마을 1개 양조장 계획에 따라 자그마한 양조장을 만들고 막걸리 체험장을 만들기로 했단다.


이선철대표는 양조장이 들어서면 마을주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마셔대 건강을 상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다.

▲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해서 만든 문전성시 전시장. 유리로 처리한 벽면이 시원하다. 사람들이 많이다니는 바닷가 주차장에 위치해 있어, 우리가 구경하는 동안에도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주문진시장 프로젝트(이선철 대표가 PM-Project Manager-을 맡아서 진행했다고 한다)를 볼 겸 점심을 그 곳 수산시장에서 먹기로 했다.

▲ 귀신고래라고 일컬어지는 커다란 고래 조형물을시장 입구에 설치해 놨다. 이 곳 주문진 시장에서귀신고래가 멸종 되었다고 한다.
주문진 시장은 컸다. 원래의 재래시장, 수산시장, 건어물시장, 어물난장, 등 등. 물동량이 많아서인지 시장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문진시장 프로젝트는 재래시장 활성화 계획에 따라 수원 '못골시장 프로젝트'와 함께 문화부에서 발주한 시범사업이다.

우리는 큰 고래를 랜드마크(이 시설은 중소기업청이 발주한 시장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간판 업자의 수준이다)로 세워 놓은 시장 입구로 들어가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시장 옥상에 만들었다는 공연장을 보러 갔다.


옥상에 무대와 관람석을 그런대로 배치를 해서 이 장소에서 여러 공연들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특히 상인들이 자체 팀을 만들어 축제에서 공연 한 것이 이채롭고 그중 '꽁치' 아줌마 팀은 자기들끼리 아직도 여기서 놀면서 즐긴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옥상은 상인들 조합(주문진 시장은 11개의 조합이 있다고 한다)과 그 안의 조합원들 사이에 옥상의 지분문제로 이리 저리 얽혀, 임시 천막이 아직도 철거 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완전한 공연장으로의 면모를 못 갖추고 있었다.

▲ 주문진 시장 옥상에 차려진 꽁치 극장 전경. 상인들이 스스로 팀을 만들어 공연을 하며 즐기는 곳이 되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아직 완성된 모습은 아니다.

▲ 규모도 크고 일정도 빠듯해서 다들 엄두를 못 내고있던 차에, 젊은 시절 극장 간판 그리는 것이 직업이던 어르신께서 7일 만에 혼자 완성했다는 벽화.기존의 스케치를 살리면서도 나름대로 응용하여 멋진 벽화가 완성되었다. 그 엄청난 노력과 탁월한 실력에 지역 신문에도 기사가 났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것이야말로 삶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술이 아닐까.

옥상 공연장에서 나와 우리들은 건물 옆에 그려진 벽화를 보러 갔다. 꽤 잘 그려진 그림이다. 시원한 물고기와 해조류를 그렸는데 이곳의 간판을 몇 십 년 그리던 이 곳 주민의 솜씨라고 한다.


우리는 벽화가 있는 건물 아래층, 이대표가 미리 잡아 놓은 '충남상회'로 들어가 겨울 특산물인 동해의 복 회를 안주로 여러 뒷담화를 나누었다.


주로 지역 문화공간의 운영에 대한 얘기였다. 이대표는 '감자꽃 스튜디오'를 사회적기업으로 만들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정부나 강원도, 평창군의 지원에 많이 의존해 왔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마을과 지역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자리를 파했다.

▲ 화창한 다음 날 아침, 주문진 시장으로 떠나기 전에 감자꽃 스튜디오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왼쪽부터 김송희, 장윤주, 이선철, 필자, 박명학, 채은영

감자꽃은 감자처럼 무덤덤한 꽃이다.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를 뚫고 올라온 감자꽃은 약간 어두운 흰색이다. 슬쩍 보라 빛을 띠기도 한다. 피었는지 말았는지 무덤덤한데 벌써 땅 아래서는 감자들이 영글어 간다. '감자꽃 스튜디오'도 이렇게 꽃을 피우고 지역과 주민들 속에서 문화를 영글게 하고 있었다.

이번 2차 답사는 나에게 좀 벅찬 일정이었던 모양이다. 좋은 공기와 좋은 사람들과 만났음에도 서울에 돌아와 감기 몸살로 앓아누웠다.

(예술과마을네트워크 까페 http://cafe.naver.com/y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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