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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만 좋아하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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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만 좋아하는 목사

[한윤수의 '오랑캐꽃']<129>

오후 한적한 시간. 상담실장이 가만히 다가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사님, 태국인만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세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영문을 알아보니, 직원들이 보기에 일요일날 상담이 몰릴 때 내가 유독 태국인만 챙긴다는 것이다.
"태국 사람 전부 이리 와요!"하며.
기가 막히다. 이게 사실일까?
기가 막히지만 사실이다.
그럼 왜 나는 태국인만 챙길까? 어려운 문제가 태국인에게 가장 많은데도 도와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우리 센터의 예를 보자.

상담실장 U씨는 미국에도 오래 살았지만 영어를 특히 잘해서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영어권 노동자들은 걱정이 없다. U실장이 애정을 갖고 다 챙겨주니까. 또한 K대리는 베트남에 오래 살다 온 사람으로 베트남어를 잘해서 베트남 노동자들은 든든하다. K대리가 *애정을 가지고 다 챙겨주니까.

반면에 우리 센터에는 태국어 잘하는 직원이 없다. 그러니 태국인이 소외될 수밖에. 일요일날 센터를 둘러보면 의자와 복도 층계에 걸터앉아 탁한 숨을 내뿜으며 지루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노동자는 거진 다 태국인으로, 그들은 숫자도 가장 많고 골치 아픈 문제도 가장 많지만 애정을 가지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일요일 하루는 태국어 통역이 있지만 통역만 가지고는 안 된다. 애정과 책임을 가지고 챙겨주는 직원이 꼭 필요하지!
그래서 내 딴에는 안타까워서 다른 외국인에게는 눈이 한 번 갈 걸, 태국인이라면 두 번 가게 되고, 사무적으로 말하게 될 것도 사근사근하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워낙 딱하니까!

그러면 내가 왜 태국인에게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실례를 보기로 하자.
태국 노동자 사쿤(가명)은 퇴직금 132만원을 못 받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사장님에게 퇴직금을 달라고 말을 꺼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왜냐하면 그는 사장님을 무서워해서 그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기 때문이다.
하여간 사쿤은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 물론 사장님은 주지 않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노동부로 넘어가서 사장님과 사쿤에게 각각 출석요구서가 날아들었다.

첫 출석은 9월 2일 10시 30분.
회사쪽에선 사장님이 나오고 우리 센터에선 내가 미리 노동부로 출근해서 사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쿤이 오지 않아서 전화해 보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나 못 가요. 사장님 무서워."
나는 감독관에게 다시 출석일을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철수했다.

2차 출석은 9월 10일 오전 10시 30분.
혹시 몰라서 하루 전날 사쿤에게 전화했다.
"내일은 꼭 나와야 해. 내일도 안 나오면 이제 돈 못 받아."
"알아요."
다시 다짐을 두었다.
"꼭 나올 거지?"
"아니요."
당황해서 물었다.
"왜?"
"나 돈 안 받을래요. 사장님 무서워."
이 소식을 들은 L감독관은 혀를 찼다.
"아까운데요. 사장님은 *돈을 줄 의사가 있다고 했거든요."
그걸로 사건이 종결 처리되었다.

태국 사람이 이렇다. 자, 여러분도 생각해보시라. 내가 어찌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태국만 좋아하는 목사>는 이래서 생긴 것이다.

*애정을 가지고 :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면 그 나라 사람에게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말이 통하면 아무래도 친숙해지니까.

*돈을 줄 의사 : 노동자가 두 번 다 출석하지 않으면 <미출석>으로 사건이 종결 처리된다. 사건이 종결되면 사장님은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돈을 줄 의사가 있던 사장님은 사쿤의 계좌로 퇴직금을 넣어주었다. 태국만 좋아하는 목사도 있거늘, 태국만 좋아하는 사장님이 왜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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