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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중국의 '기미부절' 외교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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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중국의 '기미부절' 외교를 아느냐

[정세현의 정세토크] 5자회담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고?

3차 북핵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로 요즘 북핵 문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는 김영삼 정부 때였던 1993년 3월부터 96년 12월까지 3년 8개월 정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었는데, 당시 업무 수첩을 요즘 다시 뒤져 보고 있습니다. 3차 북핵 위기로 갈지 모르는 요즘 상황과 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당시 상황을 비교해보기 위해서죠.

북한은 93년 3월 12일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는데,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 수습됐는지 내가 적어둔 게 있어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약속했던 북미수교 협상, 경수로 공사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협상, 그 과정에서 한·미·일 3국의 정책과 역할 등등.

김영삼 정부가 93년 3~5월 미국 클린턴 정부를 상대로 벌였던 북핵 외교를 자세히 복기하다보니까 지금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대미 외교의 내용과 흡사한 점이 너무 많아서 놀랄 정도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과거 역사가 꼭 그대로 재연된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건 거의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녜요.

오바마의 부시화, 정곡 찌르는 분석들

다만 미국의 대응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 클린턴 정부는 김영삼 정부의 대북 강경론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자기 행보를 계속했어요. 북한과 양자협상 방식으로 해법을 찾으면서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게 끌고 나갔죠. 그게 94년 10월 제네바합의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의 입장이 16년 만에 거의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오바마 정부는 16년 전 클린턴 정부와는 달리,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상당히 받아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아주 나쁘게 풀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죠.

클린턴 정부 뒤에 들어선 부시 정부 시기, 고농축우라늄 문제로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고 부시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밀고 나갈 때 한국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였어요. 두 정부는 미국이 강경하게 나갈 때 대북 유연노선을 견지하면서 오히려 미국을 끌어 들였습니다. 그래서 2차 북핵 위기가 와도 한반도 상황이 그럭저럭 관리가 됐었습니다.

또 16년 전에는 한국의 강경노선과 미국의 유연노선이 부딪혔지만 그런대로 북미 양자협상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국면으로 갔었죠.

6~7년 전에는 한국의 유연노선과 미국의 강경노선이 부딪혔지만, 역시 6자회담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풀려나갔죠. 그런데 이번엔 한국의 강경노선과 미국의 강경노선이 결합하면서 한반도가 굉장히 어려운 지경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나 비슷하게 된 데는 대뜸 초강수 일변도로 나간 북한의 책임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난주에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프레시안 기고에서 지적했듯이, 부시 시대의 관료들이 아직도 국무부 내에 남아 있는데다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라인이 확립이 안 된 것도 큰 이유입니다.

말하자면 미 국무부 내에 대북정책에 대한 실무 총책임자가 없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이 과거 부시 시대의 관성을 가지고 북한을 판독하고 분석하고, 그런 보고가 자꾸 올라가니까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오바마 대통령도 생각이 자꾸 그쪽으로 끌려간다 이거죠. (☞서재정 교수 칼럼 바로가기)

또, 세종연구소의 백학순 박사가 지적하는 대목인데, 북핵 문제가 풀릴 뻔 하다가 다시 꼬이는 게 세 번 씩이나 반복되는 이유가 뭐냐. 그건 미국에서 소위 북한을 아는 지역전문가들보다 검증 기술자들이 이 문제를 관리하다 보니까 포괄적인 협상보다는 팃-포-탯(tit-for-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기술적으로만 북한을 대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런저런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북한의 선(先) 행동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의 본심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다음 협상을 위해 장외 기싸움을 하면서도 뒤로는 핵이나 미사일 능력을 증강시켜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보려면 전문가들의 정곡을 찌르는 이런 분석을 잘 곱씹어 봐야 할 것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워싱턴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등과 간담회를 하는 장면 ⓒ청와대

선조(宣祖)의 만시지탄을 되풀이할 것인가

그리고...22일 월요일 아침 모 일간지에 저명한 국제문제 대기자의 분석기사 하나가 실렸어요. "지난 주 한미 정상회담 속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에 근거해 쓴다"로 시작하는 기사였는데, 미국은 앞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북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고, 북핵 해결에는 정권교체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은 미국의 그런 판단이나 대응이 옳다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그 소식통의 말대로라면 한반도 장래가 걱정스럽다는 거고, 그래서 한국 정부라도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취지의 당부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기사 내용이 아니라, 그 '정통한 소식통'의 관점이나 의도에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미국도 대북강경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해 온대로 계속하면 북한은 확실히 손을 들게 돼 있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옳다'는 식으로 국민들한테 인식시키기 위해 미국도 정권 교체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건 아닌지, 그게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왜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는가? 미 국무부에서 오랫동안 최고위급 통역을 맡았었고 지금도 워싱턴에 살면서 국무부나 백악관이 돌아가는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김동현(미국명 통 킴) 교수가 지난 6월 17일자 <시사저널>에 쓴 글 때문이에요.

김 교수는 미국 정부가 기본적으로 북한을 협상 마당으로 끌어내려 한다고 전하면서, 그럴 수 있는 묘수를 찾으려고 요즘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썼어요.

'정통한 소식통'이지만 미국에 잠깐 다녀온 사람하고, 워싱턴에 살면서 흐름을 체크하는 사람의 말 중 어느 것이 실제 상황에 가까울까? 문제는 미국의 분위기란 것을 누가 전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통한 소식통'이라니까 정부 당국자일 것 같은데, 정보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먼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엔가, 일본에 가서 당시 일본 최고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만나고 돌아와서 각각 다른 정세보고를 했던 황윤길과 김성일의 고사가 생각났습니다.

당시는 이미 동인·서인 하면서 당쟁이 시작된 뒤인데, 서인 계열인 정사 황윤길은 도요토미가 침략해 올 것 같다면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보고한 데 반해, 동인 계열인 부사 김성일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고를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시 실세 재상이었던 동인 유성룡은 김성일의 손을 들어주었죠. 그랬다가 2년 후에 진짜로 왜적이 쳐들어오고 난 후에 선조는 자기가 김성일의 말을 따른 것을 크게 후회했다는데....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정세 판단에 중대한 차이를 불러왔던 거지만, 힘 있는 쪽 사람의 정세 판단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례입니다.

두 기사를 보면서 딱 그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정통한 소식통'은 "지금 미국에서도 대북 강경책이 주류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동안 옳았고 곧 힘을 받을 것이고 큰 성과를 낼 것이다"는 식으로 국내 여론을 조성해 보려는 게 아니냐...그래서 친절하게도 언론에 그런 서비스를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정보에 근거해 분석기사를 쓴 분은 정부가 8.15에는 북한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의 제안을 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라고 주문을 했지만...

5자 연대? 동서양 국제관계 이론과 실제를 보라

오바마가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고 소위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밖에 해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면, 오바마는 진짜 부시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시는 6자회담을 열기 전까지는 김정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북한은 협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고 따지면서 레짐 체인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죠. 그러면서 대북 강경·압박정책을 밀고 나갔어요.

고농축우라늄 문제로 압박을 시작하더니 클린턴 때 핵동결 대가로 시작한 중유 공급을 중단하기까지 했어요. 그러자 북한은 2002년 말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추방으로 맞대응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는 폐연료봉 재처리를 시작합니다. 6~7월 경에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이미 확보했다고 공표도 하죠.

그래놓고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6자회담에 못이긴 척 나왔습니다. 미국의 대북 압박 기간 중에 협상카드를 이미 만들어 놓고 나서 회담에 나온 겁니다.

그런데 6자회담이 열리니까 미국은, 그런 사정을 알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북한을 제외한 참가국들에 5대1로 북한을 포위하자는 얘기를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참 미국 사람들이 너무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동북아라는 데는 미국 마음대로 그렇게 되는 데가 이미 아닙니다. 유럽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소련이 망했기 때문에 유럽은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겠죠. 그런데 여긴 중국 때문에라도 5대1 포위가 안 됩니다. 의장국인 중국한테 5대1 대북포위망에 끼라니 말이 됩니까? 또 중국이 그렇게 나오면 러시아도 협조하기 어려워요.

더구나 중국이란 나라는 전통적으로 자기네와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을 다루는 독특한 방법이 있어요. 전통적으로 중국은 완전히 자기들한테 복종하지 않는 주변국이라도, 자기네들한테 적대적이거나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의 편에 서기 전에는 절대로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적절하게 편들어 주고 적절하게 도와주면서 영향력을 유지했었습니다.

한당(漢唐) 이래 대부분의 중국 조정은 주변국가들을 '기미부절(羈縻不絶)'방식으로 관리했어요. 동이, 서융, 남만, 북저라고 약간 야만시하면서도 다 그렇게 관리했어요. 소나 말에다가 굴레(羈)를 씌우고 고삐(縻)를 느슨하게 매어놓고 놓아먹이듯이 한 겁니다.

그러다가 소나 말이 고삐 길이보다 먼 곳으로 나가려고 하면 슬그머니 잡아 당겨 놓죠(不絶). 최악의 경우에는 정벌도 하지만 대체로 화친(和親) 외교를 했지요. 예컨대 경제적 지원도 넉넉하게 하고, 딸이나 여동생을 왕비로 삼으라고 보내서 신하국가나 사위국가를 만드는 식으로 주변국들을 관리했습니다.

나는 중국이 오늘날 북한을 다루는 데서도 그런 전통적인 방식을 상당히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컨대 중국은 대북지원 등 중북관계를 지렛대로 대북압박을 가해달라는 미국 등의 요구를 번번이 거절해왔습니다. 북한이 자기 영향권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잘 못하다가는 중국이 입는 전략적 손실이 이득보다 더 커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은 안하겠다는 겁니다. 대신 설득(굴복 아닌)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식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에다 대고 5대1 포위를 하자고 했으니...미국국제정치학계의 차이나 스터디가 그렇게 빈약한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부시 시절 5대1 포위 전략은 그래서 안 됐어요.

중국에 대한 연구가 없어도 서양 사람들이 잘 아는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개념에 입각해 봐도 그건 성공하기 어려운 얘깁니다. 지금 중국의 경제가 승승장구하면서 정치군사적 발언권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중국이 미국의 말을 그대로 듣겠어요?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단 세력균형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동북아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점차 키워나가려고 하지 않겠어요? 5자 포위전략이 실패한 역사가 불과 몇 년 안돼요.

그런데 이번엔 우리 정부가 나서서 5자 통일전선을 구축하자고 했다던데, 동북아 국제정치 역학관계상 실행이 잘 될지 의문입니다. 부시도 그러다가 핵폭탄을 맞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왜 또 그런 아이디어를 꺼냈는지 참 이상합니다.

작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북한이 90년대 초부터 절대 못 받겠다고 선을 그어버린 남북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거론하도록 해가지고 대통령 망신시키더니, 이번에는 또 5자회담(사실상 5대1 전략) 얘기를 하도록 했단 말입니다.

물론 오바마를 부시로 만들고 미국 힘을 빌려 중국이 동참하도록 하면 러시아도 따라 오지 않겠는가, 일본 우익 정권은 기본적으로 한국 편 들 거고...거꾸로 러시아부터 끌어들이면 중국도 별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5자 통일전선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볼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어쨌든 이것저것 다 제쳐 놓고, 그건 중국 때문에 잘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서 5자회담 얘기를 오바마한테 했다는데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그 표현이 안 나와요. 그건 미국도 그냥 듣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하나의 아이디어로 얘기하면 외교적인 용어로 '경청했다' 정도의 표현이라도 들어 있어야 되는데, 그것마저 없었단 말이죠. 또 한미 정상회담 바로 다음날 중·러 정상들은 모스크바에서 '6자회담을 빨리 하자'고 했어요. 그건 한국이 제안한 5자회담을 완곡하게 거부한 걸로 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은 이라크가 아니다

다시 말하는데, 미국이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레짐 체인지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정보 소스의 관점이 가미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간 게 아닌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부시가 추구했다가 포기한 북한의 정권교체를 오바마와 그 참모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느냐 이겁니다. 까맣게 먼 과거사가 될 정도로 시간이 흘러갔다면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미국이 정권을 교체시킨 이라크랑 북한은 다릅니다. 이라크가 가지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해 이라크를 정권 교체 시킨다고 전쟁을 벌여 놓고 지금 6년째 저러고 있는데, 북한은 그런 이라크하고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개인숭배가 강한 나라입니다. 외부 작용에 의해서 지도자가 바뀔 경우, 주민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게 북한 사회의 특징이에요. 게다가 이라크에는 중국 같은 배후국가랄까, 미국 일변도의 지역 국제질서가 구축되는 걸 막아야만 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어요. 그러니까 미국 혼자서 일방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부시도 처음엔 레짐 체인지를 시도하다가 점차 레짐 트랜스포메이션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점점 변화시켜서 미국과 협조하는 관계를 만들겠다는 거였죠. 그것 역시 못하고 부시 시대가 끝났는데...결국 초기 세팅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북한의 레짐을 체인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데...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보고 싶다면 그건 별개 문제입니다. 하여튼 내년에 NPT 검토회의를 해서 비확산 체제도 재정비해야 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북한의 정권 교체나 완전한 체제 전환을 전제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오바마의 본심이라면, 아마도 그건 오바마 임기 내에 어려울 겁니다.

정권교체 즉, 급변사태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습니다. 중국이 가만 안 있죠. 미국이 군사작전을 벌이거나 공작을 해서 북한이 친미국가로 되는 걸 방관 하겠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미국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인 정권교체나 체제전환에 주력하지 말고, 북한이 핵보유를 포기하고 대신 핵을 카드로 써서 챙길거나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게 훨씬 빠를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제네바합의나 9.19 공동성명 등 북한한테 익숙한 방식이고, 미국한테도 사실 익숙한 방식이에요. 동북아 6국이 다 동의했고.

그리고 북한이 아무리 욕심을 부린다 해도, 북한의 핵보유나 핵국가 지위 인정은 중국 때문에도 안 돼요. 중국으로서는 일본이 핵무장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니까. 그런 중국을 활용해서 핵무기 포기 쪽으로 끌고 가는 게 훨씬 효과적인 해법입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4차, 5차 북핵 위기만 와요.

미국 정부 내 일부 사람들이 부시 초기처럼 '보상은 없다'는 오바마의 한 마디에 고무되어 북한 정권 교체까지 꿈꾸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뒷받침 해주니까 그 방식으로 해결될 걸로 착각할지 모르지만, 중국 변수 때문에 그건 안 될 거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통 킴 교수가 지적했듯이 인준 절차를 마친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취임하면 곧 대북정책 실무진 라인업이 끝날 거고, 그렇게 되면 미국도 북미 양자접촉이나 6자회담 복원 방향으로 나갈 겁니다. 이건 시간의 문제이지 가부의 문제가 아녜요.

중국과 미국, 어디가 문제인가

미국 일부에서는 중국 책임론도 나오는 것 같아요. 북한이 계속 저렇게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국제사회 상대로 도발을 하는데 중국이 적극 안 나서니까 문제가 저렇게 꼬였다고.

그러나 중국은 뭐라고 하느냐...미국 책임론을 얘기합니다. 내가 지난 5월에 비슷한 얘기를 이미 소개했지만, 중국은 '미국이 북한에 신뢰를 주지 못했고, 그래서 북핵문제가 이렇게 꼬였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꼭 풀어야한다고 생각하면, 미국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물고기 뒤를 쫓아다니면서 잡으려고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해요. 그렇게 하면 더 안 잡혀요.

물고기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내다보고 미리 거기에다 둑을 쌓든지 막든지 해야 합니다. 나는 어릴 때 동네 형들 따라 다니면서 막고 품는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보고 배운 적이 있어요. 낚시질이나 어항을 묻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확실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가 정보 많겠다, 시나리오 방식의 상황 예측 노하우는 세계 제일이겠다, 북한이 어디까지 나갈 건지 몇 단계로 미리미리 예측하여 그 지점에 둑을 막아 놓고, 그 다음에 미끼를 충분히 던지면서 몰아가면 갈 데가 없어요.

그런데 막으라는 건 고사시키라는 게 아녜요. 보상을 해가면서 단기-중기-장기 비전을 확실하게 주면서 북한을 미국의 목표지점으로 몰아가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발 큰 틀의 정치외교적 협상해놓고 검증 기술 실무자들이 판을 좌우하도록 하지 말고, 북한의 정치문화나 행태에 밝은 북한전문가들이 합의 이행과정을 주도해 나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다람쥐 쳇바퀴를 안 돌리려면.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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