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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 하늘 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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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그 하늘 길에 서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마침 글-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1.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심, 민주주의적 가치 그리고 역사적 진실들을 지키기 위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들끓던 일 년 동안 나는 거의 산에 머물러 있었다. 산길을 걸은 시간은 5개월 채 못 되었지만 산행을 준비하고 글을 쓰며 보낸 시간 내내 나는 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몇 차례 광화문에 나가고 여의도에 나갔을 뿐이다.
나는 산길 걸으며 때로 들끓고 때로 착잡하고 때로 고요했다.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로 인해 들끓었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착잡했다. 산은 때로 들끓고 때로 착잡한 마음으로 들어온 나를 언제나 말없이 따스하게 품어 주었다. 고요함으로 감싸주었다. 평온하게 했다. 마음 가라앉혀 주었다. 고요한 마음으로 산길 걸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

▲숲으로 들어서다 ©이호상

숲은 어느 생명 하나라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보이는 풀 한 포기일지라도, 죽어 썩어가고 있는 나무라고 할지라도 모두 존중받으며 제 자리에서 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숲은 그 어떤 것들에도 소홀하지 않고 골고루 베풀고 품어주었다. 그뿐인가. 숲에서는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나무도 바위도 시내도 나뭇잎도 바람도 구름도 비도 햇살도 다람쥐도 어치도 산수국도 어수리와 궁궁이같은 풀들도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모습의 생명들이 제각기 제 삶을 살아감으로 숲은 생명력 넘치는 풍성한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로의 삶을 조금도 해치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숲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일지라도 존중하는 생명 존중의 사회, 인간 존중의 사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게 되기를 소망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시하지 않게 되기를 소망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서로를 적대시해야 하는 요소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했다.

2. 2008년 5월 20일에 시작된 산행은 10월 16일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백두대간 남쪽 구간을 종주하는데 약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매일 산행을 한 것은 아니다. 혹서기는 쉬기도 하며 며칠 걷고 며칠 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루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약 30~40개씩 넘었다. 산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었고 길 또한 숲 사이로 바위 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었다. 산행의 초기에는 고된 산행으로 인해 산길이 끊어지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길은 결코 멈추어 서지 않았다. 수십, 수백, 수천의 산과 봉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산줄기이고 하나의 산이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수많은 산과 봉우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줄기였다. 높은 산과 낮은 산도 하나이고,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하나이고, 오르고 내리는 것도 하나였다. 산과 골도 서로의 그림자일 뿐 하나의 모습이며, 있음과 없음조차도 그저 하나의 생명이 이루어내는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이었다. 삶과 죽음처럼 말이다. 그 하나하나의 산과 봉우리들이 모여 백두대간이라는 한반도의 큰 산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완성된 퍼즐 그림처럼 말이다. 산과 골, 나무와 풀, 계곡과 물줄기, 비와 구름, 바람 그리고 생명의 온기 있어 하나의 숲은 이루어지듯이 백두대간은 수많은 산과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지나며 백두대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백두산 천지 장군봉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단 한 차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이 땅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몸 기대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만들어준 산줄기이다. 한반도를 남과 북, 북과 남으로 크게 흐르며 수많은 산줄기를 뻗어내었을 뿐 아니라 열 개의 큰 강을 품어 흐르게 하였다.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백두대간에 큰 생명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백두대간이 없었다면 산자락마다 오순도순 모여 마을이루고 살던 산줄기들도, 강들도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백두대간이 솟아오르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땅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백두대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백두대간은 이 땅의 상징이고, 우리는 그 땅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이 이 땅에서 오천년을 살아온 이 민족의 상징이 되었다거나 되어야 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총독부는 자원 수탈을 위한 목적 뿐 아니라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지도에서 지웠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지우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총독부의 그런 노력들은 매우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인 지금도 백두대간을 이야기하면 총독부가 지질 조사를 통해 산맥 이론을 정립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거의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산맥은 지질학적 개념이니 총독부가 어떤 의도로 산맥이론을 정립하였던지 간에 산맥이론은 그것대로 유용하게 쓰면 될 것이다. 문제는 잃어버린 우리의 것을 되찾자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되찾자는데 왜 그렇게 흥분하여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는지 알 수 없다. 일제 강점기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것을 되찾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나아가 백두대간은 사람과 자연의 조화에 기초한 지리 인식 체계로서 우리의 지역적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하고 올바른 지리 인식체계인데 어찌 되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백두대간은 단지 자원을 품고 있는 재화를 얻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보다 편안한 삶을 위해 파헤쳐야 하는 산이 아니다. 이 땅의 수많은 생명 품어 살아가게 한 생명의 터전이며 보고이다. 이 땅의 상징이며 이 민족의 정신이다. 그러하기에 백두대간은 이 땅에 몸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들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산줄기 바라보다 ©이호상

백두대간은 하늘 세상이었고 하늘 길이었다. 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 장군봉에서부터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까지 이어진 이 길은 말 그대로 하늘 길이다. 하늘의 못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하늘의 봉우리에서 끝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백두대간의 남쪽 구간 시작점인 천왕봉에 오르려면 반드시 개천문(開川門)이나 통천문(通天門)으로 들어서야 했다. 하늘 문을 열고 들어서야 했던 것이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줄기이며 생명을 품어 안은 땅이다. 골짜기를 품고 강줄기를 품어서만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삼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 대륙과 연결 되어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길로 많은 생명들이 오고감으로 우리나라의 생태계는 풍성해지고 있다. 백두대간은 말 그대로 생명의 통로인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명의 터전이고 통로인 백두대간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끊어져 있다. 이미 산의 절반이 헐려나간 금산은 지금도 철길에 사용할 자갈을 얻기 위해 파헤쳐지고 있고, 석회석을 얻기 위해 파 들어간 자병산은 이미 다 무너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금산과 자병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지리산과 백두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과 조금도 다른 말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하나의 산줄기이고 하나의 산이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무너지면 백두대간 전체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자랑이 되어 우리 국민들에게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할 산줄기가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끊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대간 길은 막히고 끊어져 있다.

나는 이 모든 길이 완전히 열리고 또한 온전히 회복되기 바란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금산과 자병산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백두대간 길을 정비하여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도록 열어 놓기 바란다. 그리하여 이 땅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3. 나는 지난 해 10월 16일 이른 저녁 백두대간 남쪽 구간의 끝인 진부령으로 내려섰다. 더 이상 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었다. 길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진부령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길이 머물고 있는 진부령에 섰다. 백두대간 산줄기는 굽이굽이 뻗어 있었지만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나는 그 길, 그 산줄기를 바라보며 오랜 날들 동안 식어 있던 내 가슴 속에 다시 순수한 열정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날처럼 다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다시 길을 흐르게 하고 싶었다. 진부령에서 머물고 있는 길을 다시 흐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백두대간 길을 이어 향로봉을 지나 백두산까지 가고 싶었다.

지금은 길 끊어져 남과 북으로 나있는 길이 서로 다른 길이 되었지만 본래는 하나의 길이다. 지금은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민족이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눈물로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야 할 하나의 민족, 한 형제이다. 오천년 동안 한 형제,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온 것이다.

나는 길이 머문 진부령에서부터 백두산까지 산줄기 따라 흘러가고 싶다. 남과 북의 정부가 나서서 길을 열어 주기만 한다면 이 땅, 이 산줄기, 내 이웃 형제들을 위해 끊어진 산줄기를 잇고 싶다. 무엇보다 산을 사랑하게 되고 이 땅을 사랑하게 된 나 자신을 위해서도 걷고 싶다. 더 나아가 온전히 이어진 백두대간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오랜 세월 끊어진 산길 이으며 걷고 싶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끊어진 허리를 다시 잇고 싶다. 남과 북의 끊어진 길을 잇고 싶다.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리산에 서다 ©이호상

4. 감사해야 할 분들이 참으로 많다. 가장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은 숲 지키고 산길 정비하느라 늘 수고하고 계신 국립공원 관리공단 및 산림청의 관계자들이다. 백두대간 산길을 열어주신 한문희, 우주환, 김남균님과 산길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한다. 백두대간 산길을 걷던 아름답고 가슴 벅차던 순간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프레시안에도 감사의 말 전한다. 더더욱 감사한 것은 이 글이 연재되는 동안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이다. 읽고 의견을 달고 때로는 메일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산은 생명의 요람이다.
산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백두대간 큰 산줄기 흐르며 이 땅을 이루었다는 것 또한 큰 축복이다.
그 땅에서 우리 민족이 오천년 동안 살아왔다는 것 또한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이다.
백두대간을 걷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다.
저는 다리로 열 몇 시간 씩 걸어야했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온 몸 부서질 것 같던 괴로움에 잠 못 이루던 밤들도,
빠진 발톱 아래서 부끄러운 듯 자라나던 새 발톱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순간들도,
모두 잊지 못할 시간들이다.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걸을 수 있었던 모든 순간들에 감사한다.

걷는 동안 함께 해 주었던 풀포기, 야생화, 나무, 바람, 비, 구름 등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숲의 은총, 생명의 숨결이 모두에게 함께 하길 바란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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