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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진부령에서 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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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진부령에서 머물고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한계령~진부령/10.14~10.16

산행 쉰 째. 목요일.

지난 몇 달 간의 산행을 마감하는 날이었기 때문일까. 눈이 일찍 떠졌다. 제법 산행에 단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 먹은 솜처럼 온 몸이 무거웠다. 지난 산행의 피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잠 못 이룬 소청산장의 밤을 보낸 후 공룡능선을 따라 마등령을 넘고 저항령을 지나 황철봉을 건너온 산행에 나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몇 시간을 자고 났음에도 움직일 때 마다 온 몸이 뻐근하고 아팠다. 가볍게 몸을 풀자 뿌드득 뿌드득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녹슨 기계가 움직이는 듯했다. 절로 풀기 없는 웃음 일었다. 풀어 놓았던 배낭을 꾸렸다. 약통, 밥그릇과 수저, 이온음료 2병, 물 1 병, 간식과 도시락을 넣었다.
새벽하늘에 별 가득했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별 자리들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장한 별들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괜찮으세요?"

김 대장이었든가, 신 감독이었든가 누군가 지나며 내게 물었다. 그저 웃었다. 지난 5월 20일부터 시작된 백두대간 남쪽구간 산행을 끝내는 날이었지만 특별한 감회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오늘 가야할 길을 오늘 가는 것뿐이었다. 미시령에서 시작하여 상봉, 화암재, 신선봉, 대간령, 암봉과 마산을 지나 진부령으로 내려서는 약 14.5km 구간이었다. 지리산에서부터 속리산, 조령산, 소백산, 태백산, 두타산, 오대산을 지나 설악산까지 이어온 산줄기는 상봉에 닿아 진부령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산으로 향했다. 별 가득한 새벽이었다.

산으로 들어갔다. 산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깊은 어둠이 산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에 구름 흘렀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달빛 괴괴하였다. 거무스름한 하늘 아래서 산줄기는 검게 빛나고 있었다. 저 너머에서 아침이 오겠지. 바람 세찼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마른 억새들이 파르르 몸을 흔들며 춤추고 있었다. 환호하는 듯 절망하는 듯, 갈망하는 듯 절규하는 듯했다. 회오리바람이 일듯 세찬 바람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며 몸을 감쌌다. 억새들은 바람을 타는 듯 비켜가는 듯, 즐기는 듯 저항하는 듯 온 몸 흔들며 바람 따라 출렁이고 일렁였다.
▲새벽 어스름 속의 동해 ©이호상

바람 따라 흐르고 있는가.

그런지도 몰랐다. 나도 바람 따라 산길 흐를 수 있기를 바랐다. 몸은 부서지듯 아팠다.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힘들었다. 산길마다 마른 낙엽 수북했다. 지친 다리 달래느라 잠시 쉬며 만져보니 부스스 부서져 내리는 놈도 있었고 아직은 물기 머금은 싱싱한 놈도 있었다. 저마다 지나 온 삶의 사연을 담은 채 산길 지나고 있었다.

이 낙엽들로 인해 이 산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이 다시 봄을 맞을 수 있으리라.
고마운 일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 띄우니 가벼워진 몸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바라보니 그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숲길마다 붉은 햇살 드리워 젖은 낙엽들이 빛나고 있었다. 산길을 이었다. 채 산길 돌아들기도 전에 해가 떠올랐다. 길 멈추고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로 붉은 해 몸을 내밀었다. 검은 빛 머금은 구름 사이에서 해는 붉은 빛 한껏 내뿜고 있었다. 장엄하고 찬란했다. 아침이 왔다. 산에서 맞는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바람 불어 나뭇잎 흩날리는 아침이었다.
▲상봉 돌탑 ©이호상

북설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봉(1241m)에 올랐다. 북녘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쌓았다는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돌탑의 한가운데 상봉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다. 첩첩한 산줄기 골마다 운무 가득하여 하늘은 구름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뫼들은 갈 곳 잃고 표류하는 작은 배 같기도 하고 외로운 섬 같기도 했다. 나는 산길 걷고 있는지 구름길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늘길 걷고 있는지 바다길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해를 감싼 구름은 엷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고 햇살은 오로라처럼 구름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황홀했다. 바람 불어 구름 지날 때마다 산줄기 몸을 일으켜 제가 품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산자락에 기댄 작은 마을이 있었다. 산허리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도 보였다. 사람 사는 세상을 이어주고 있는 길이건만 다른 세상에 놓여 있는 길 같았다.

바람 가는 길을 따라 신선봉(神仙峰, 1204m)을 향했다. 지나는 산줄기마다 구름을 품어 구름길을 걷는 듯했다. 돌아보면 구름이 따라와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자 온 몸을 구겨 놓은 듯 밑둥치에 끌어안은 나무가 보였다. 세찬 바람과 눈의 무게로 인해 하늘을 향해 자라지 못한 나무였다. 삶에 대한 갈망이었다. 생명의 모습이었다. 살아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생명의 간절함과 열정이 눈앞에 있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간절함과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신선봉 정상 ©이호상

제 삶 온 몸으로 끌어안은 나무를 품고 있는 숲을 지나자 다시 너덜지대가 시작되었다. 신선봉이 눈앞이었다. 신선봉 주변은 온통 바위였다. 하기야 신선이 되는 길이 어디 쉽겠는가.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고 네 발로 기어오르며 신선봉에 오르니 그대로 탈진하여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식을 꺼내 먹고 이온 음료를 마시고 나니 겨우 몸 추슬러 돌아볼 수 있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구름뿐이었다. 구름의 바다가 두텁게 드리워있었다. 온 세상에 드리워져 있는 듯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신선봉을 내려왔다. 구름의 바다를 향해 가는 듯했다.

너덜지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숲을 물들인 붉은 단풍이 남아 있는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헤어질 제 삶이 아쉬운지 단풍은 더욱 붉었다. 올려보니 하늘도 온통 붉은 빛이었다. 바람 불어 붉은 단풍잎 흔들리자 푸른 하늘이 보였다. 붉은 빛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지나는 길마다 억새 가득하고 조릿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길 지나는 이들마다 마음 담아 쌓아 놓은 돌탑이 아름다웠다. 새이령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대간령(660m)이었다. 옛날에는 진부령, 한계령과 함께 동서교통의 주요통로였던 고개이나 이제는 산 지나는 이들만 찾는 잊힌 고개가 되었다. 몸 풀어 놓고 쉬었다. 바람 시원하고 몸 가벼웠다.

"선생님, 나무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칠팔 년 쯤 되었을까. 나무의 울림을 듣게 된 사연을 들려 준 후로 김남균 대장은 잊을 만하면 이 이야기를 꺼냈다.

"별 거 아니에요. 경험적 인식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자신만의 진동, 즉 울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되요. 그 다음에는 정말 간단해요. 마음을 비우면 되요. 마음을 열면 되요. 나무의 진동, 상대만의 고유한 울림을 느끼면 되요. 그게 다에요. 마음을 열고 울림을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도움이 되는 훈련 방법이 있기는 하지요. 김 대장이 아주 잘하는 것이에요. 걷는 것이지요. 걷는다는 것은 오감(五感)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지요. 오감이 열린다는 것은 육체적인 장애나 생각의 지배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렇게 자유로워지면 마음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지요. 자신만의 울림을 듣게 되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제 마음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의 울림도 자연히 들을 수 있게 되지요. 그 후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마음 기울이면 나무의 울림도, 꽃들의 울림도 느낄 수 있고 들을 수 있지요. 그런데 걷는 것에도 종류가 있어요. 백두대간 종주하듯이 내쳐 달리는 걸음은 오감을 열 수 없어요. 발바닥으로 흙길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걸어야 하지요. 새 소리 바람 소리 나무 소리 다 들리도록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걸음이어야 하지요. 발로 걷지 말고 마음으로 걸으세요. 그러면 숲의 울림을 들을 수 있어요. 천천히... 느리게 걸으세요."

다시 너덜지대를 지났다. 백두대간 남한 구간의 마지막 너덜지대였다. 병풍바위에 오르니 머무를 사이도 없이 세찬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빈 가을 하늘이 높았다. 숲으로 들어가자 때 늦은 가을을 보내고 있는 듯 숲은 온통 붉었다. 이제야 가을을 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듯 단풍이 붉었다. 작은 새이령을 지나니 마산봉(1052m)이었다.
▲ 흘리 마을 뒤로 멀리 마산봉 보이다 ©이호상

흘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다. 말 등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마산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금강산의 끝줄기이다. 여기서부터는 금강산줄기인 것이다. 이 산줄기 붙들고 산 흐르는 데로 따라 흐르면 금강산이다. 갈 수 없는 땅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정상에 바위 하나 있었다. 금강산을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이 뾰족했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였다. 백두대간 남쪽 구간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였다. 내려서면 진부령이었다.
바위에 올랐다. 부는 바람에 몸 맡겼다. 지나 온 길이 눈앞에 있는 듯 바라보았다. 바람 시원하고 하늘 푸른 날이었다.
모두들 바위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잘 지어지지 않았다.

마산봉을 내려와 진부령(陳富嶺, 529m)으로 향했다. 진부령으로 가는 길은 편안했다. 알프스스키장의 눈 없는 슬로프를 지나 낙엽송 늘어선 숲길을 지나니 이내 마을이었다. 길마다 억새 가득했다. 잔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산 지나온 이들을 반기는 듯했다. 마을로 들어섰다. 흘리였다. 길옆에 군부대가 보였다. 정문에 '강한친구 향로봉대대 흘리소대'라고 써 있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모두들 건강하기를 바랐다.
길가에 개망초 가득하고 민들레 홀씨 외롭게 피어 있었다. 코스모스 피어 한들거렸다. 길을 벗어나 숲을 지나자 진부령 표지석이 멀리 보였다. 돌계단이 놓여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내려섰다. 드디어 진부령이었다.

진부령은 한계령, 미시령과 더불어 설악의 준령으로 손꼽히지만 다른 고개와 달리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은 탓에 이런 저런 가게들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고갯마루가 아니라 여느 작은 도시의 읍에 들어선 것 같았다. 장이라도 열리면 장터에 들어선 듯 착각을 할 정도로 번다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흘3리'라고 부르는 이 마을은 예전에는 '조쟁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지난 날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곡물이 마주 올라와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선다.'는 내력으로 인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번다한 마을에 들어섰기 때문이었을까.
모두들 차분하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백두대간을 아홉 번째 종주했다는 한문희 대장은 진부령에만 내려서면 눈물 난다면 울음을 터뜨렸고 신 감독은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마음 허전하고 쓸쓸했다.
▲진부령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이호상

길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길은 진부령에서 머물러 있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흐르며 이 땅을 품어 수많은 생명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준 백두대간 하늘길은 그대로 이어져 있건만 길은 더 이상 이어져 있지 않았다.

머무는 것은 떠나기 위함이니 이 길 흐를 날 있으리라.
흐르고 흘러 산줄기 시작된 백두산에 이를 날 있으리라.

언젠가는 길이 이어지기를 기도했다.
언젠가는 길 이어져 이 길을 따라 백두산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생명의 땅 백두대간이 끊어진 남과 북을 다시 이어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너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기를 소망했다.

흘리 마을에 저녁이 오고 있었다.
노을이 마음 적시어 아름다웠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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