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황철봉을 그리워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황철봉을 그리워하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한계령~진부령/10.14~10.16

산행 마흔 아흐레 째. 수요일.

눈을 뜨니 새벽3시 50분이었다. 어찌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밤이었다. 밤 9시에 산장 전체의 불이 꺼졌지만 한 칸 건너 방에 들은 이들은 잠들 줄 몰랐다. 너무나 큰 소리로 떠들어 합판으로 겨우 벽을 막아 놓은 방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옆 방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고 발로 차기도 하였건만 개의치 않았다. 옆 방 친구들처럼 나도 오래 잠들지 못했다. 몸 뒤척여 마음 길 서성였다. 그렇게 밤 깊어갔다.
산행 준비를 시작했다. 발가락마다 밴드를 감고 양말을 신었다. 발톱은 이미 다섯 개나 빠져 있었다. 발톱이 빠진 자리에 새 발톱이 자라고 있었다. 옆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처럼 이른 산행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산행 준비를 하고 방을 나서자 불기 없는 통로에서 잠들어 있던 아주머니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합판으로 겨우 막은 방이라고 하지만 난방이 되어 따뜻했다.
밖으로 나왔다. 산은 깊은 어둠에 잠겨 고요했고, 어둠 지나온 바람은 찼다. 옷매무새 여미고 산행을 시작했다.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 아침 식사를 한 후 공룡능선을 따라 마등령으로 갈 예정이었다. 달빛 밝았다. 달빛 흐르는 길을 따라 나무 계단 촘촘히 놓여 있었다. 지난 밤 약수터로 내려갈 때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그 달빛이었다. 간단한 세면과 식수를 구하기 위해 내려간 약수터에는 달빛 가득했다.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에도 달빛 어려 빛나고 있었다. 흐르는 물줄기에 달빛 어린 것인지 흐르는 달빛에 물줄기 어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맑은 달빛에 얼굴 씻고 맑은 물로 마음 씻은 밤이었다.
나무 길 위로 투명한 달빛 흘러 내려 마치 은하수 길 걷는 듯했다.
대피소에 이르렀을 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씨 춥고 바람 차가웠다. 대피소는 번다했다. 공사 중이어서 자재들 쌓여 있고 아침 식사를 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맑은 물 흐르던 계곡은 지난 해 큰 장마에 떠내려 온 돌에 덮여 알 길 없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니 그제야 산행 준비를 마친 듯 몸이 가벼워졌다.

▲아침식사를 하다 ©이호상

'물 나눌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 무너미고개(1060m)를 넘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자연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지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고개였다. 이 고개로 떨어지는 빗물은 동해와 서해로 운명이 갈린다. 산줄기는 이렇게 내리는 빗줄기 품어 큰 강물로 흐르게 한다. 수많은 생명들 그 강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산에 능선이 있고 고개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때로 오르기는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공룡능선(恐龍稜線)을 따라 걸었다. 이 능선의 끝에 마등령(馬等嶺, 1320m)이 있었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마다 산줄기 첩첩하고 거대한 암봉들 솟아나 길 인도하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장쾌함과 힘차게 뻗은 산줄기들이 만들어 내는 장대함이 어울려 자아내는 산은 장엄함에 머물지 않고 아름답고 화려했다. 늘어선 거대한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1275m봉우리가 눈앞에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공룡이 힘차게 용솟음치는 것 같다하여 공룡능선이라는 이름을 얻은 산길을 걸으며 나는 공룡이 힘차게 용솟음치는 모습은 물론 등 비늘조차도 보지 못했다. 그저 깊은 내리막과 가파른 오르막만 있을 뿐이었다.
산길을 걷는다고 항상 산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멀리서 바라봐야 숲을 느끼고 산을 볼 수 있다. 눈길로 산줄기 따라 걸으며 그 모습 마음에 새길 수 있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아야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산을 벗어나서야 비로소 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공룡능선 ©이호상

공룡 능선에는 어제 지나온 산길과 달리 가을이 아직 남아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 아름다웠고 숲은 붉은 마음을 품은 듯 생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풍성함과 가을의 애틋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이어지는 산줄기 바라보며 암릉을 오르고 산길 따라 몸 부대끼다 보니 마등령(馬等嶺, 1320m)이었다.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만분의 1 지도에는 마등령(馬等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옛 기록에는 모두 마등령(麻登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이 너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서 올라야 오를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 고개가 얼마나 험준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잠시 앉아 쉬었다. 바람 불어 고단함을 다소 씻어 주었다.

산길 이었다.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을 건너편에 남겨 두고 상봉을 향했다. 마등령 상봉에 바람 많았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동네 뒷산처럼 상봉은 완만하고 부드러웠다. 그린 듯 이어진 산줄기 눈앞에 첩첩하였다. 깊은 산 중에 홀로 남겨진 듯 아득하였다.
산길마다 낙엽 수북했다. 바싹 말라 오그라들어 있었다. 가지에도 마른 잎 달려있었다. 낙엽을 방석 삼아 앉아 쉬었다. 식사를 하였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 저 홀로 파랬다. 시리도록 눈부셨다. 그 모습 바라보다 마음 다소 슬펐다.

▲낙엽 수북한 산길 ©이호상

황철봉을 향했다. 바위길인 너덜지대를 지나니 저항령(低項嶺)이었다. 북주능선(北主稜線)에 있는 고개이다. 동쪽으로는 정고평(丁庫坪)에 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百潭寺)에 이르러있다. 늘목령이라고도 불린다. 저항령이나 늘목령 모두 노루목고개, 목우(牧牛)재와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의미이다.

너무나 힘들었다. 암릉과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길은 바튼 숨을 몰아쉬게 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지쳐갔다. 산길은 일어서 있는 듯 했다. 미끄러지지 않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틱에 몸 의지하고 바위틈을 부여잡으며 올랐다. 내 눈은 발 디딜 곳과 손잡을 곳만 찾고 있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느낄 수 없었다. 가까스로 고개에 올라서자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말 그대로 지쳐 늘어졌다. 바위에 기대 앉아 물을 들이키며 가쁜 숨결을 가다듬었다. 세찬 바람 불고 있었다. 몸이 날아갈 듯 세찼다.
황철봉이 보였다. 아득했다. 황철봉 정상 부근은 온통 다듬어 지지 않은 바위들로 가득했다. 길이 없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바위를 하나씩 건너가야 했다.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면 그곳이 곧 길이었다. 나는 황철봉에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바위 사이로 길이 있는 줄 알았다. 너덜지대를 지나며 그것이 얼마나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황철봉 정상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었다. 거대한 바위들만 있었다. 누군가 위에서 쏟아 부은 듯 무질서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황철봉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장엄하고 장중했다. 당당한 장수의 모습이었다. '어서 오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상을 바라보았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황철봉을 향했다. 바위와 바위를 타고 오르며 조심스레 나아갔다. 바위와 바위 사이 벌어진 틈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크게 벌어진 틈은 바위산에 난 큰 구멍 같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틈도 있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빠지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무저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바위 틈에 간간이 키 작은 나무 자라고 꽃이 피어 있기도 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절로 발걸음 멈추었다. 경의를 표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에게 마음을 담아 감사했다.

▲황철봉을 향하다 ©이호상

황철봉에 올랐다. 풀도 나무도 없는 바위뿐인 산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웠다. 조금도 꾸며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힘차고 장렬하면서도 고요함을 함께 지닌 아름다움이었다. 마치 사람 지나지 않는 고개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바닥까지 들여다 보이는 맑은 호수와 같은 평화로움과 안락함이었다. 순수한 아름다움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바위들은 은은했다.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바위도, 잿빛의 바위도, 거무튀튀한 바위도 저마다 제 빛을 품어 은은했다. '영롱히 빛나는 것은 속된 것이다.'고 말하는 듯했다. 저마다 제 빛 품은 바위들과 은은한 햇살 어울려 황철봉의 늦은 오후는 신비로웠다. 마음 사로잡았다.
바람 들어와 내 영혼 어루만졌다.

한 대장은 길을 서둘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너덜지대를 완전히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밤길이 어둡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 대장으로서는 당연했다.
산 길 지나며 한 대장이 말을 건넸다.

"선생님, 우리가 지금 황철봉을 지나왔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앞에도 황철봉이 또 있어요. 옛날 지도에는 우리가 가는 곳에 있는 봉우리를 황철봉이라고 표기했고, 요즘 지도에는 조금 전 지나온 봉우리를 황철봉이라고 표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이제 만나게 될 앞에 있는 산이 조금 더 높을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산들을 뻗어내고 있거든요. 이런 게 문제입니다. 정리가 안 되어 있어요. 정리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 대장님 말씀이 맞는다면 어려울 것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지도에 나와 있는 황철봉은 그대로 놓아두고 예전 지도에 나와 있다는 황철봉은 황철산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 봉우리가 이 일대에서 가장 높고, 산줄기를 뻗은 종산(宗山)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산으로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요? 봉우리는 산에 속한 것이니까요."
"그런 방법이 있겠네요."
고개를 끄덕였다.

너덜지대는 끝이 난듯하면 이어지고 끝이 난듯하면 이어져 있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숲을 지나면 너덜지대가 나오고 너덜지대를 건너면 숲이 이어졌다. 다시 또 다른 황철봉을 넘었다.
어둠 내리고 있었다. 산은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산행을 이어갔다. 어둠 내린 숲은 괴괴했고 산길 지나는 우리는 잠잠했다.
미시령(彌矢嶺, 826m)에 가까이 이르자 길이 좁아졌다. 조심스럽게 키 높이로 자란 풀과 나뭇가지를 헤치며 내려갔다. 미시령이 눈앞이었다. 미시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철망이 있어 위태했다.

미시령으로 내려섰다. 차가운 바람이 고개를 휩쓸며 지났다. 황철봉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차는 불 밝힌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남권우 프로듀서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내려온 길을 돌아보았다. 산은 어둠에 잠겨 있고 하늘에는 별 빛나고 있었다. 별빛을 따라 지나온 산줄기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산줄기 따라 가면 황철봉이 있겠지...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고 고요한 침묵이 그리웠다. 저마다 다른 모습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빚어내는 순수한 울림이 그리웠다. 홀로 지나는 이들 홀로 머물게 함으로 품어 주던 밋밋한 바위산의 너그러움이 그리웠다. 가슴 깊이 젖어들던 순수함이 그리웠다.
황철봉 가슴 깊이 품은 밤이었다.
그 밤, 황철봉을 그리워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