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청화산은 맑은 기운을 품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청화산은 맑은 기운을 품고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50> 청화산. 구룡령~한계령/10.7~10.9

산행 마흔 닷새 째. 화요일.

청화산을 향했다. 오늘 아침 산행이 변경되었다. 원래 계획은 오대산으로 올라가 구룡령에서부터 조침령까지 가는 것이었다. 오대산 지역에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이었다. 비가 오면 촬영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원도로 가야할 차는 충청도로 향했다. 우천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변경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누더기처럼 이어진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는 누더기처럼 이어져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진부령까지 가지런히 뻗어간 것이 아니라 천방지축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겨우 겨우 이어져 있었다. 백두대간은 오로지 올곧게 뻗어 올라 있는데 백두대간을 지나는 우리는 지리산에서 백두산을 향해 가고 있는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오고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종횡무진 했다. 나는 늘 전문산악인들에게 묻고 싶었다. '참으로 이런 것을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백두대간을 오랜 세월 잃어버리고 살아온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 땅의 현실일 뿐이다. 제 땅을 있게 한 마음의 고향 백두대간을 제 나라 백성이 마음껏 걷지 못하는 현실이다. 걸으면 범법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이 무서워 이리 저리 피해 산을 타는 내 모습이 때로 너무 참담하여 스스로 낯부끄러웠다. 가슴 너무나 아팠다.

늘재(380m)로 향했다. 늘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으로 힘차게 뻗어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구간에서 깊은 산줄기와 온갖 기암괴석을 만들며 재주와 멋을 부린 후 내려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 곳이다. 백두대간은 이곳 늘재에서 다시 청화산(靑華山, 984m)을 향해 치솟아 올라 조항산(953.6m), 대야산(930.7m), 장성봉(916.3m), 희양산(999m) 등으로 산줄기를 뻗어 나가고 있다.

날씨 맑고 싱그러웠다. 차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상쾌했다.

'이번에는 길을 열어줄까...?'

차창 밖에 늘어선 산줄기를 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지난 6월 말과 7월 초에 오르려고 했으나 두 번이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 산이다. 산길 열어주기를 기도했다.

▲성황당 ©최창남

청화산(靑華山, 984m)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며 괴산군에 위치해 있다. 조릿대 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게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수십리 밖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산 모양이 맑고 깨끗하며,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청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훌륭한 인문지리 학자였던 이중환(李重煥)이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말했다고 하니 청화산과 이 일대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청화산은 빼어난 경관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복된 땅(福地)을 품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란(戰亂), 질병(疾病), 기근(飢饉) 등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땅이다. 이른 바 십승지(十勝地) 가운데 하나인 땅이다. 바로 청화산 아래 마을인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가 그곳이다. 실제 그 마을은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한 형상을 하고 있다. 시루봉, 청화산, 문장대, 천왕봉, 형제봉, 갈령, 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 뿐이다. 참으로 우복동의 형세라 아니할 수 없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십승지나 우복동은 힘없어 이리저리 내몰리며 살아온 가난한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가진 것 없는 고단한 그들의 현실이 산을 보고 땅을 보게 만든 것이다. 산이나 땅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결코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산을 보고 땅을 찾아 십승지를 말하고 우복동을 꿈꾼 것이다. 전쟁, 질병, 기근 등의 삼재 뿐 아니라 어떤 천재지변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안전한 땅, 복된 땅이다. 바로 그들의 이상향(理想鄕), 희망의 땅이었던 것이다.

늘재에 도착했다. 지난 초여름 찾아온 늘재는 달라져 있었다. 나뭇잎 떨어져 이미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곳이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도 그대로였고, 백두대간 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성황당과 성황당유래비도 여전히 제 자리에 있었다.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은 맑았다. 푸르른 산은 깊어지고 깊은 산줄기는 뚜렷했다. 모든 것이 분명하게 제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맑은 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조릿대 가득하고 소나무 많은 산이라서 이렇게 맑은 기운 가득한 것일까.

▲청화산 ©최창남

산으로 들어갔다. 산 오르는 길에 밧줄 매여 있고 나무 곁에는 돌탑이 차곡차곡 정성스레 쌓여 있었다. 참나무들은 나뭇잎 붉고 노랗게 물들어 울긋불긋했다. 산길에 나뭇잎 수북하였다. 산허리를 지나자 많이 보이던 소나무들이 드문드문했다. 참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도 소나무 숲이 참나무 숲으로 천이되고 있었다.
참으로 자연이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생명이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흐른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바람 불어 날씨 선선했다. 가을 깊어가는 청화산은 가을의 청명함과 어울려 시린 듯 맑았다. 잠시 시야가 열린 바위에 올라 하늘을 보니 가슴 보이도록 맑고 산줄기 청청했다.

청화산에 올랐다. 커다란 바위 위에 서있는 표지석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오목하게 파인 청화산이라는 글씨도 파란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맑고 푸른 산이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전체적인 구도도 보기 좋았다. 표지석을 만들고 설치한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표했다.

산 내려오는 길에 단풍나무 붉게 물들어 타는 듯했다. 산길 전체가 울긋불긋하여 잔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잔치가 별것이겠는가. 한 세상 잘 살았으니 이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몸단장 한 번 그럴 듯하게 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말이다. 마음 가벼웠다. 앞선 이들 멀리 보내고 천천히 산행을 즐겼다. 조릿대 무성한 숲을 지나기도 하고 떨어진 낙엽을 주워 들고 바람에 날려 보기도 했다. 쪼그리고 앉아 길에 떨어진 참나무 잎들을 세어 보기도 했다.

마음 편안했다. 홀로 걷는 산길이 행복했다. 산길 걸으며 이런 저런 마음의 생각들과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 비울 수 있었다. 빈자리에 청화산의 맑은 기운이 지났다. 마음 상쾌하고 홀가분했다. 청화산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빈 마음자리로 들어왔다. 비우려고 떠난 산행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 가는 것 같았다. 조금 저어되었으나 염려하지 않았다. 그저 산을 느끼고 걷는 것을 즐겼다. 산과 숲과 나무와 풀과 새와 바람과 구름과 하늘과 모두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산을 홀로 지나며 함께 있음의 소중함을 다시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굴참나무 ©최창남

청청하던 산줄기 파랗게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다 내려선 산길 바위 곁에 구절초 한 송이 홀로 피어 있었다.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었다. 갓바위재를 지나 상궁마을을 향했다. 보이지 않던 굴참나무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길에는 밤송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입 벌리고 있는 것도 있었다. 고개 기울여 들여다 보니 밤 두 알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탐스러웠다.
내려선 상궁마을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고요했다. 넓은 밭 사이로 집이 드문드문 보였다.
햇살 눈부시게 내리고 있었다.
구룡령으로 향했다.
그리움 가득해지는 오후였다.

최창남/글, 사진
chamsup@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