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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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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산을 만나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48> 닭목재~구룡령/9.30~10.2

산행 마흔 사흘 째. 수요일.

산은 어둠 속에 있었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길은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헤드랜턴 불빛이 길을 열어 주었다. 바지에 풀잎들 스치고 바람은 차가웠다. 새벽 산행은 언제나 상쾌했다. 어둠에 잠긴 산길을 지날 때는 어둠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 편안해서 좋았고, 동 트기 전 새벽 어스름의 아스라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동틀 때의 장중한 아름다움이 숲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햇살 받은 풀잎들 바람결에 출렁여 반짝이고, 나뭇잎 수런거리며 몸 뒤집는 것을 볼 때 마다 가슴 설렜다. 순간순간이 아름답고 충만했다. 바람 불고 있었다.
새봉(1060m)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강릉시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다. 구름 사이로 도시의 불빛이 가물가물 보였다. 아름다웠다. 멀리 떨어져 보는 도시의 불빛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는 도시의 불빛은 아스라한 별빛같이 보였다. 그 별빛 아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강릉시를 바라보다 ©이호상

어슴푸레 아침이 오고 있었다. 산길에 억새 가득하고 민들레, 엉겅퀴 피어 한가로웠다. 능선에 풍력발전기들 서 있었다. 거대한 날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안개 짙었다. 가까이서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만 '쉬익~ 슁~' 하고 들려올 뿐이었다. 모든 것이 희뿌옇고 희미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도 나무도 산길도 억새도 산길을 지나는 이들도 모두 희미했다.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듯, 꿈길을 걷는 듯했다.
부슬 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비가 내렸다.
선자령(仙子嶺, 1157m)에 도착했다. 안개 깊어 표지석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자령이란 이름에는 선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계곡에 마음을 빼앗긴 선녀들이 자식들과 함께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선자령(仙子嶺)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관산, 보현산, 만월산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선자령이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고개처럼 '령'(嶺)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지형이 완만하고 다른 길과 만나는 지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산은 길을 만들고 ©이호상

산이 머물러 마음을 닦는 곳이라면 고개란 떠나며 마음을 풀어 놓는 곳이다. 만남의 설렘과 별리의 아픔 등을 남기며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길이다. 그렇게 선자령에 마음을 풀어놓고 길을 이어갔다. 안개 깊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듯 했다. 세찬 바람 불어 안개를 잠시 거둬갈 때에만 숲은 보이고 길은 드러났다. 넓은 길 오른편에는 신갈나무 가득했고 왼편으로는 작은 소나무 빼곡히 심어 있었다. 풍력발전기를 세우느라 숲을 베어 초지를 만든 후 숲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 구간에 작은 소나무들을 심은 것 같았다.

길 가에 곤신봉(1127m) 표지석이 외롭게 서 있었다. 풀잎 가녀린 몸은 바람에 일렁이며 곤신봉을 위로하는 듯했다. 길은 곤신봉 정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산봉우리의 정상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르막이라 할 것도 없이 걸어온 길 때문이기도 했고 초지가 펼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곤신봉 정상은 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초지를 바라보았다. 죽어 부러진 나무 한 그루 깊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바라보았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줄 것 같았다.
▲깊은 안개를 만나다 ©이호상

동해전망대에 이르렀으나 안개로 인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옆에 긴급대피소가 있었다. 커다란 물탱크처럼 보이는 것으로 만든 대피소였다. 밖은 흰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고 창문이 나 있었다. 창문 위에 붉은 페인트로 긴급대피소라고 적혀 있었다. 웃음이 났다. 재미있었다. 나무로 울타리도 쳐 놓았다. 그럴 듯했다. 대피소 들어가는 입구 쪽에는 솟대까지 세워져 있었다. 솟대를 보고 나니 왜소하게만 느껴졌던 긴급대피소가 사랑채 같고 몸 기대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방 같았다. 마음 편안해졌다.
솟대는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염원하며 마을 입구에 세웠던 마을의 수호신이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를 세웠으나 이외에도 기러기나 갈매기 등을 세우기도 했다. 물을 상징하는 물새들을 장대 위에 세움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보장하는 수호신으로 삼은 것이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니 사면이 모두 낙서로 가득했다. 대개 '000사랑해!', '000야, 행복하자!' 등의 내용이었다. 그 낙서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었다. 솟대가 그 소망과 간절한 염원들을 이루어주길 바랐다.
▲긴급 대피소 ©이호상

긴급대피소에서 간식을 먹으며 충분히 쉰 후 산행을 이어갔다. 매봉(鷹峰, 1173m)을 지났다. 매봉에서부터 노인봉까지 비법정탐방로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세운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였다.

"여기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인 이 지역은 핵심 생태 축이자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작은 인위적인 간섭에도 민감한 야생 동물과 식물의 마지막 도피처로 멸종위기 2급인 삵, 담비, 무산쇠족제비, 노랑무늬붓꽃이 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과연 국토 사랑의 올바른 방법일까요? 이곳만은 자연에게 양보합시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참으로 마음 편치 않았다. 마치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것처럼 느끼도록 써 놓았다. 마음 씁쓸했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은 모두 산을 사랑하고 숲을 지키고 생태계 보호를 위해 협력하고 수고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것처럼 느끼도록 묘사 되어 있었다. 출입금지지역을 만들어 놓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한국의 숲은 이들 때문에 파괴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문산악인도 아니고 산을 다녀본 적도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금산이 무너지고 자병산이 무너진 것은 백두대간을 지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금산의 돌을 캐서 철도의 자갈로 쓰고 석회석을 얻기 위해 자병산을 무너뜨린 이들은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숲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다만 홀로 하지 말고 산악인들과 힘을 합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자병산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금산이 더 이상 깎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산악인들과 국민들과 힘을 합해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설득하기를 바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이러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나간다면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반도는 백두대간이 솟아오르며 이룬 땅이다. 백두대간이 솟아오르며 들을 만들고 강을 품어 흐르게 함으로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생명의 바탕이다. 그러하기에 옛 사람들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하늘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백두대간은 단지 산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신앙이며 정신이며 삶의 바탕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두대간을 국민 모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도 확립되고 숲과 생태계에 대한 인식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백두대간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면 숲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보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생각이다.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면 그 길을 벗어나 산행을 할 등산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여전히 짙었다. 끝나지 않는 안개의 숲을 지나는 것 같았다. 안개 속에 나무 세 그루 나란히 서 있었다. 가까운 듯 먼 듯 아스라하기만 했다. 소황병산(小黃柄山, 1430m)을 지났다. 산봉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끝없이 초지가 이어져 있었다. 바람 불어 안개를 밀어낼 때마다 초지는 이어져 있었다. 초지 사이로 한 사람 지날만한 길이 나 있었다. 길에도 풀이 자라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길이 있었다. 길을 따라 갔다. 길가에 구절초 가득했다. 안개에 취했던 탓일까. 걸으면서 졸았다.
노인봉 대피소(1297m)에 도착했다. 노인봉(老人峰, 1338m)에 올랐다. 노인봉은 대간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노인봉은 오대산 국립공원의 권역에 속해 있다. 강원도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유명한 소금강계곡을 산자락에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 화강암 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처럼 보여 노인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노인봉에 오르자 안개가 조금 걷혔다. 하루 종일 안개 속을 지나며 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촬영 팀은 촬영을 하느라고 분주했다.
▲진고개로 향하다 ©이호상

진고개를 향했다. 안개는 거의 걷혀 있었다. 진고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두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지날 수 있는 너른 길 아래엔 완만한 경사를 지닌 골짜기가 있었다. 풀로 덮인 골짜기였다. 초지였다. 구름 지나고 있었다. 풀 덮인 골짜기와 숲과 구름과 산과 길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길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산의 일부가 된 듯했다. 마음 한없이 편안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돌길이 나왔다. 돌길을 내려가자 '여기는 진고개 정상입니다.'라고 쓴 안내판이 보였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져 진고개라 불렀다는 고개에는 도로가 놓여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진고개가 아니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 하였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온 몸이 젖어 있었다. 서둘러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씻고 부엌으로 가다보니 헛간 우리에 눈 맑은 소 두 마리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바라보니 고개를 흔들며 인사를 하는 듯했다. 눈인사 나누고 헛간 옆 부엌을 들여다 보니 김 대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아궁이에 젖은 등산화를 말리고 있었다. 마른 장작 타는 냄새가 구수했다. 아궁이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집에 있는 듯 마음 편안한 저녁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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