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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봉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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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봉에 서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삽당령~닭목재

산행 마흔 하루 째. 화요일.

날씨 흐렸다. 이른 새벽 서울을 떠나 삽당령으로 가는 내내 하늘은 낮게 드리웠고 대기는 축축했다. 비 내릴 모양이었다. 삽당령에 도착하였을 때 하늘 저 편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촬영 때문에 모두들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촬영 안하면 되지 뭐. 비오는 날의 숲은 너무 멋지잖아. 즐기면서 갑시다."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 10시였다.

강릉과 정선을 잇는 이 고개는 조선시대에는 제법 큰 고개였다. 오지 마을인 임계 주민들은 강릉에서 소금, 해산물과 곡식 등을 구입한 후 이 고개를 넘어왔다. 삽당령이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이런 내력에서 나온 것이다. 장을 본 물건을 지고 지팡이에 의지해 고개를 넘은 후 지팡이를 버려두거나 땅에 꽂아 놓고 내려가는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정으로 '꽂을 삽(揷)'자를 써서 삽당령(揷唐嶺)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게를 지고 고개를 내려가는데 지팡이를 버려두고 갔을 것 같지는 않다. 지게를 지고 내려가는 길이 오르는 것 보다 훨씬 힘들 것인데 말이다.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다.

▲ 산행을 시작하다. ©이호상

숲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닭목령이 쓰여 있었다. 정겨웠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작은 숲길이 있었다. 산길은 편안해 보였다. 나무와 풀 우거진 산길에 키 낮은 이정표 홀로 서서 가야할 길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갔다. 들미재(810m)로 향했다. 들미골과 용수골을 넘나들던 고개로 농기구나 그릇 등을 만들 때 쓰이는 들미나무가 많아 들미재라는 이름을 얻은 고개이다.


숲은 이미 젖어 있었다. 손을 뻗어 움켜쥐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나뭇잎도 나무도 모두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몸도 비에 젖은 듯 구덕구덕 했다. 비에 젖은 숲은 바람 불어 흔들리고 출렁였다. 출렁이는 숲에 몸을 맡기고 걷다보니 수령이 수 백 년은 되어 보이는 굵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들미재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빗방울 떨어지며 지열에 의해 그대로 기화되었다.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지랑이 같고, 구름 같기도 했다. 숲은 순식간에 운무 가득하여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나 온 삶으로 들어선 듯 왈칵 그리움 몰려 왔다. 앞서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숲을 지나면서도 숲은 멀리 있는 듯 아스라했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의를 꺼내 입었다. 우의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어린 날 뒤뜰 장독대에 떨어지던 소리와 닮았다.

비 내리는 숲의 운치에 마음 뺏긴 채 산길을 걸었다. 978.8m 봉우리를 넘으니 바로 석두봉(石頭峰, 982m)이었다. 정상 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머리에 바위를 올려놓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슬며시 웃음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이름과 달리 석두봉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나뭇가지 한편에 슬그머니 걸려있는 자그마한 표지판 외에는 정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지여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이기 때문이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가을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장마 비 같았다. 식사를 위해 참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수령이 오래된 참나무 아래 둘러 앉아 식사를 하였다. 도시락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빗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빗물에 밥 말아 먹고 반찬은 씻어 먹는 형국이었다.
"이런 재미를 언제 또 누릴 수 있겠어?"
"맞아요."
우리는 호기를 부리며 밥을 먹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후식으로 참외도 나눠 먹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 소나무. ©이호상

비 내리는 숲은 언제나 고요했다. 새들도 제 집에서 숨 죽여 비를 피하고 있었다. 깊은 적막이 숲을 감싸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빗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운무 가득한 숲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바람과 어울리며 수 십, 수 백 가지의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마치 수백 명의 합창단과 교향악단이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는 수백 수천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고 줄기에 부딪히는 소리가 달랐다. 굵은 참나무에 부딪히는 소리와 조록싸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르고, 돌계단에 떨어지는 소리와 흙길에 떨어지는 소리가 달랐다. 풀잎에 부딪히는 소리와 꽃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르고, 빗물 고인 웅덩이에 떨어지는 소리와 움푹 파인 바위 구멍에 떨어지는 소리가 달랐다. 모자에 부딪히는 소리와 우의에 부딪히는 소리 또한 달랐다. 그 모든 소리들이 때론 순차적으로 때론 동시에 울려나며 숲을 수많은 울림으로 채웠다. 그 빗줄기가 바람을 만나면 우르르 몰려가며 말 달리는 듯도 했고 북소리를 내기도 했다. 때론 거문고를 타고 가야금을 타는 듯도 했다.
그 소리에 취해 숲길을 걷는지 마음길을 걷는지 알 수 없었다. 비 내리는 숲길은 거대한 연주회장 같았다. 비 오는 날의 산행은 길 미끄럽고 몸 구덕구덕하여 조심스럽고 힘들었지만 빗줄기와 바람과 숲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울림 속에서 나는 행복했다.

"촬영을 못해서 어떻게 해요?"
신범섭 촬영감독의 말이었다.
"촬영은 잊어 먹어요. 산행을 즐기세요. 우중 산행의 묘미를 즐기세요."
나의 대답에 신 감독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조릿대 숲을 지나 화란봉 가는 길에 두릅나무와 옻나무 등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산길은 오르막으로 이어져 봉우리에 닿아 있었다. 조릿대 숲을 지나며 봉우리를 넘고 넘으니 굵은 참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소나무와 잣나무도 많았다. 화란봉(花蘭峰, 1069.1m)에 올랐다. 화란봉이라고 쓰여 있는 나무 표지판이 나무기둥에 달려 있었다.

▲ 숲을 나서다. ©이호상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위치한 산이다.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다. 산행기점인 벌마을에는 용수골이 있는데 재미있는 전설을 전한다. 오랜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 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의 삶이 담겨 있는 듯했다.
비 내리는 화란봉은 기암괴석을 품어 신비로웠다. 수령이 수백 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웅장했고, 뿌리를 드러내고 줄기가 굽은 소나무들은 오묘했다. 숲은 아름다우면서도 장엄했고,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신비했다. 절로 마음 바로 잡고 옷깃 여미게 했다.


정상에서 내려와 전망대에 서니 수백 년 된 큰 소나무들이 가지를 협곡 쪽으로 내려 뻗은 채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가지 부러진 나무들도 있고 불탄 나무들도 있었지만 그 하나하나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어 깊은 숲에 들어선 듯했다. 마음 여몄다. 운무로 가득 찬 골짜기는 바람 불 때마다 바다처럼 일렁였다.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닭목령(706m)에 내려섰다. 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닭의 목에 해당하는 지역이기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 고개에는 지나는 이들 보이지 않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만이 지날 뿐 이제는 잊혀져 가는 고개가 되어 있었다.
숙소로 들어갔다. 푸른 고원 민박집이었다. 샤워를 한 후 저녁 식사를 하였다. 2층의 주인장 댁 식탁에서 식사를 하였다. 산행 중 처음 먹는 가정집 식탁이었다. 배추와 가지무침, 김치, 제육복음, 생선구이 등 진수성찬이었다.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 푸른 고원 민박집. ©이호상

저녁이 오고 밤이 깊어가자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마음을 적셨다. 마당으로 나갔다.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바람이 선뜩했다. 처마 밑 의자에 앉으니 어둠 속에서 산줄기 보였다. 산은 하루의 고단함을 씻으려는 듯 몸을 뉘여 잠들어 있었다.
산줄기를 타고 바람이 내려왔는지 빗줄기가 처마 밑으로 들어왔다. 시원했다.
비 내리는 밤 깊었다.
빗소리 요란한 밤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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