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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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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43> 댓재~삽당령/9.17~9.19

산행 서른 여드레 째. 수요일.

황장산(黃腸山, 975m)에서 흘러내린 백두대간은 댓재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댓재에서 백두대간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추석을 보낸 산자락은 이미 가을이었다. 하늘 깊고 날씨 맑았다. 햇살 따갑고 바람 시원했다. 촉촉이 젖어있는 대기는 상쾌했다.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두타산(頭陀山, 1352.7m)이 거기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보도블록 깔려 있었다. 두타(頭陀)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불교에서 쓰이는 용어인 두타(頭陀)는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佛道)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과 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으러 들어서는 수행 길에 들어서며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지나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 편치 않았다. 산으로 들어갔다.

두타산은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위치하며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km 떨어져 있는 산이다. 태백준령의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고 있다. 4km 떨어져 있는 청옥산(靑玉山, 1403.7m)을 포함하여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한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이 산은 그 형상도 부처가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탓일까. 이 산은 삼척시의 영적인 뿌리가 되는 산이며 신앙의 대상이기도 한 산이다.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산은 무릉계곡, 조선시대 석축산성인 두타산성,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 오십정(또는 쉰우물)을 비롯하여 많은 명승고적지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빼어난 아름다움도 지니고 있어 옛 선인들은 이 산을 가리켜 '금강산에 버금가는 관동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 칭송하였다.
▲산신각 ©최창남

가을은 이미 숲에 머물러 있었다. 짙푸르기만 하던 숲은 어느 새 말개지고 있었다. 여름 내내 빛을 머금기만 하던 나뭇잎들도 담아 두었던 빛을 내보내며 옅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 불었다. 나뭇잎 바람에 살랑이며 은빛으로 빛나고, 숲은 맑은 눈빛을 지닌 사슴처럼 말갛게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자 두타산신을 모셨다는 산신각이 보였다. 마음 한 조각 내려 놓고 잔돌 발에 차이는 산길로 들어섰다. 신갈나무 숲을 이룬 길가에 쑥부쟁이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소나무들 보이지 않았다. 어린 참나무들과 물푸레나무로 가득했다. 숲의 천이가 완전히 이루어져 있었다. 햇댓등을 지나고 이름 없는 봉우리를 지났다. 바라본 하늘은 아름다웠다. 깊고 푸르렀다. 산줄기 또한 아득하여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김 대장이 말을 건넸다.

"청옥, 두타가 산이 너무나 빼어나서 주변의 좋은 산들이 빛을 보지 못해요."

나는 산을 다니기를 즐겨하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청옥산과 두타산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은 산에 대해서는 무지몽매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들려왔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산들을 보고 싶었다. 그 아름다움들과 맞닥뜨리고 싶었다.

"지나치게 빼어난 것은 좋지 않아요. 청옥, 두타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주변 산들의 아름다움을 가린다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나 아닌 것들을 배려 할 수 없잖아요. 수행의 산인 두타산이 저 홀로 아름다워 다른 산들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이미 수행이 아니지요. 수행이란 저 홀로 피어난 아름다움을 감추고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이지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에요."

꼭 대답이라고 할 수 없는, 혼잣말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길을 이었다. 통골재 지나고 키 작은 참나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조릿대 늘어선 길을 지났다. 두타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야생화도 눈에 띄지 않았고 가파른 돌계단만 이어졌다. 아름답지 않았다. 야생화도 보이지 않은 산길은 여느 산 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재미없는 산길이었고 다소 지루한 산행이었다.
▲두타산 ©이호상

두타산(頭陀山) 정상에 올라섰다. 다른 산들과 달리 넓었다. 마당 같았다. 한 가운데 묘지가 있었다. 한 편으로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었다. 조망이 시원하게 틔워 있었다. 바라보았다. 첩첩히 늘어선 백두대간 산줄기는 서북으로 흐르며 하늘에 닿을 듯 했고, 동북으로 흐르며 신라 파사왕 23년(102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두타산성과 '쉰 개의 우물을 있는 산'이라는 쉰움산(688m)을 품어 안은 산줄기는 동해로 빠져들고 있었다. 산줄기 내린 끝에 바다 있어 물결 출렁이고 있었다. 속이 비칠 듯 푸르렀다.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한 후 청옥산(靑玉山, 1403.7m)으로 향했다.
청옥산은 동해시 삼화동(三和洞)과 삼척시 하장면(下長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타산, 고적대(高積臺, 1353.9m)와 함께 '해동삼봉(海東三峰)'으로 불리는 산이다. 청옥(靑玉)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청옥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청옥'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석이다. 청옥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을 상징하는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이다. 일곱 가지 보석은 금, 은,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 그리고 청옥이다. 그러니 청옥산은 곧 극락이다. 이 땅에 있는 극락의 세상이다. 이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이요 두타행이다. 다시 말하면 두타산을 지나며 부처의 가르침대로 마음과 몸을 닦은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산이 바로 극락의 세계인 청옥산이었던 것이다.
산의 형세도 이와 같아 두타는 울툭불툭하나 날렵한 골산(骨山)이고, 청옥은 완만하여 듬직한 육산(肉山)이다. 하기야 수행자가 가는 고행의 길이 완만할 리 없고 극락 세상을 상징하는 산이 울툭불툭할 리 없다. 두타는 두타답고 청옥은 청옥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두타의 길은 청옥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타와 청옥은 하나이다. 하나의 길이고 하나의 산이며 하나의 세계이다.

두타산에서 내려와 박달령을 지나고 문바위재를 지나니 청옥산이었다.
김 대장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두타와 청옥이 아름답다고 하더니 하나도 아름답지 않네. 경치도 별로고, 야생화도 거의 보이지 않고... 산길을 지나는 재미가 없잖아요."
"두타와 청옥의 비경은 계곡에 있어요. 또 명승고적지도 많고요."
"어쨌든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길은 너무 무심한 것 같아요. 아무 것도 없잖아요."
▲능선을 따라오다 ©이호상

웃으며 나눈 이야기였지만 정말 그랬다. 두타와 청옥은 무심(無心)했다. 산길 지나는 이들에게 마음 드러내지 않고 속살 보여주지 않았다. 비경(秘景) 드러내어 지나는 길손들의 마음을 내려놓게 하지도 않았고, 야생화 만발하게 피어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알아서 흘러가라는 듯 무심하기만 했다. 무심함으로 비어있었다. 보여줄 것도 나누어 줄 것도 아무 것도 없다는 듯했다. 수행도 깨달음도 오직 그대들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산길은 때로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은 부처의 손 같기도 했다. 빈 손바닥 같기도 했다. 한량없는 자비와 보시(普施)가 오고가지만 결코 머물지 않는 무심의 세계 같았다. 무심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무심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부처의 빈 손바닥에 있고 청옥과 두타에 있었다. 우리가 지나는 산길에 있었다. 마음 설레고 기뻤다. 눈물 날 것 같았다.
산길 둘러보았다. 야생화 한 송이도 피어있지 않은 산길이 살갑게 느껴졌다. 다정했다. 웃음이 났다. 울다가 웃었다. 행여 김 대장이 알까 저어되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자꾸만 눈물 흐르고 웃음 나왔다.

가을 햇살 쨍쨍했다. 숲으로 햇살 드리웠다. 햇살 드리운 숲에 운무가 스며들고 있었다. 기묘하고 신비했다. 운무는 숲으로 햇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햇살에 부딪혀도 사라지지 않았다.

무심한 산이 마음의 한 자락을 보여주는 것인가.

일곱 험준한 산등성이 일곱 별처럼 연이어 있다 하여 이름 붙은 연칠성령(連七星嶺, 1184m)을 지났다. 고적대(高積臺, 1353.9m)로 향했다. 골마다 운무 일어 산자락을 타넘고 있었다. 잠시 전까지 비어 있던 골들은 그대로 구름 바다였다.
지나는 길 바위 곁에 구절초 몇 송이 피어 발걸음 멈추게 했다. 고적대로 오르는 길은 두타와 청옥을 지나왔으니 이제 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듯 좁고 가팔랐다. 솜씨 좋은 장인이 겹겹이 쌓아 올린 것 같은 바위 길을 오르며 산과 하나가 된 듯했다. 나무뿌리와 밧줄도 나를 산과 하나 되게 했다.
고적대에 오르니 바람 세차고 골에 머물던 구름은 살같이 산자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장관이었다.
▲고적대에서 바라보다 ©이호상

별천지란 이런 것이 아닐까.
두타와 청옥을 지나 왔으니 이제 도솔천과 같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인가.

절벽 바위에 걸터앉아 망연히 지나는 구름 바라보았다. 구름 흘려보내는 산줄기 바라보았다. 산줄기는 골을 품어 바람을 불러오고, 세찬 바람은 구름을 밀어내고 있었다. 구름은 산줄기를 밀어내려는 듯 세찬 바람에도 능선을 넘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도 이런 비경을 보았을까.
갈미봉(曷味峰, 1260m)으로 가는 길에 해 기울었다. 나뭇잎 사이로 붉은 해가 걸리었다. 나뭇잎 사이로 붉은 햇살 비추었다. 찬란했다. 나뭇잎도 숲도 산길도 모두 붉어졌다. 붉은 숲이었다. 아름다웠다. 신비로웠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던 산줄기는 두타와 청옥을 지나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숲 어둠에 잠겼을 때 갈미봉을 지났다.

이기령(耳基嶺, 810m)으로 내려섰다. 밤 깊어 있었다. 밤 9시가 지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해동삼봉(海東三峰)을 넘어온 백두대간은 이기령에서 잠시 몸을 낮춘 후 상월산(970.3m)을 향하고 있었다.
가야할 길을 따라 바라보니 산줄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하늘에 별 쏟아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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