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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재로 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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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재로 내려서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42> 화방재~댓재/9.9~9.11

산행 서른 이레 째. 목요일.

아침 햇살 눈부셨다. 하얀 개망초 푸른 풀 사이에 피어 아름다웠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달맞이 노란 꽃 애잔했다.

이제 꽃잎을 닫아 아름다운 모습을 감추겠지.

밤 내내 활짝 피어 달을 바라보는 달맞이꽃은 아침이 되면 꽃잎 오므려 제 모습 감추는 꽃이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가 사랑하는 달에게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그래서 꽃말 또한 '말없는 사랑, 기다림'이다. 달만을 사랑했던 어느 요정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는 꽃이다. 이름 그대로 밤이 되면 활짝 피어 '달을 맞는 꽃'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제가 사랑하는 임에게만 제 모습 보이려고 뭇 사람 지나는 낮 시간에는 제 몸 감추는 꽃이다. 언제나 변치 않는 깊은 사랑으로 임을 볼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꽃이다. 꽃말 그대로 말없는 사랑이요, 깊은 기다림이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달맞이꽃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돌아보자 함초롬히 핀 달맞이꽃 가슴에 젖어들었다.
▲달맞이꽃 ©이호상

자암재로 올라섰다. 오늘 산행은 자암재에서 시작하여 큰재를 지나고 황장산을 넘은 후 댓재로 내려서는 약 8km 조금 넘는 거리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산행을 시작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왔다. 풀들도 눈부셨고, 떨어진 나뭇잎 위를 지나는 긴 다리를 지닌 거미의 등도 반짝거렸다. 푸른 숲은 햇살 가득해 은빛으로 빛나고 향기는 은은했다. 잔바람 불어 왔다. 나뭇잎 가볍게 흔들렸다. 속닥이는 듯 수런거리는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연리목(連理木)을 다시 만났다. 큰 소나무 두 그루 밑둥치가 붙어있었다. 서로 다른 뿌리와 몸을 지닌 채 성장했지만 이제 한 뿌리로 살아가게 된 나무이다. 밑둥치는 붙어 있었으나 기둥부터는 떨어져 있었다. 한 뿌리에서 살아가지만 두 개의 마음 두 개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무이다.
연리목은 두 개의 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특성 때문에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원래는 다른 두 개의 몸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일심동체(一心同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람이 나무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무는 원래 두 개의 나무였을지라도 종내는 하나의 나무로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사랑하여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심이체(二心二體)일 뿐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한 마음 한 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심이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심이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서로의 공간을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기둥들이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햇살 부서지는 아침 숲은 지나는 길손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랭지 채소밭이 보였다. 산은 깎이고 패이고 잘리어 온통 밭이었다. 이편 산도 건너편 산도 모두 밭이다. 산은 이미 벌거숭이였다. 여느 밭은 배추 풍성하고 여느 밭은 수확을 이미 끝내 황량했다. 지나는 산길마다 숲이 사라지고 있는 곳이 많았다. 돌을 캐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파헤쳤고, 석회를 얻겠다고 산을 통째로 무너뜨리기도 했고, 농사를 짓는다고 숲을 갈아엎기도 했다. 숲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땅의 등줄기이며 이 땅의 산소 공장인 백두대간의 숲이 여기저기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산이 황량해진다는 것은 이 땅이 황량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황량해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수확이 끝난 채소밭 곁 길가에 노란 민들레 피어 반가웠고 바람에 홀씨 날린 민들레 정겨웠다.
▲고랭지 채소밭 ©이호상

백두대간은 이 땅이 생겨난 그 때부터 있었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1800년 경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일제강점기를 맞아 다시 그 이름을 잃어 버렸을 때에도, 불과 이삼십년 전부터 사람들이 다시 백두대간을 찾고 걷기 시작했을 때에도 백두대간은 변함없이 이 땅에 있었다. 사람들이 잊고 있을 때에도 이 자리에 의연하게 머물러 숲을 키우고 강을 품어 흐르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수많은 생명들 깃들어 살게 하였다. 백두대간은 늘 이 땅에 우리 곁에 있었다.
백두대간이 제 이름을 잃고 여러 개로 찢기어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산맥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때에도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또한 백두대간 잊히어 산길 걷는 이들이 없었을 때에도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것은 백두대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었다. 우리의 정신이었다. 수 천 년 이 땅, 이 산줄기에 몸 붙이고 살아온 우리의 영혼이었다. 오늘날 백두대간의 산이 파헤쳐지고 산줄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나는 전문산악인도 아니고 산을 오래 다닌 사람도 아니지만 산을 사랑하게 된 사람으로서 산을 지나는 동안 때로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산을 사랑하고, 백두대간을 사랑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백두대간을 지키기 위해 제 마음을 먼저 지키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백두대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산악인들이 산을 잘 모르는 이 시대와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삶을 내어 놓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산이 전문 산악인들을 받아들이고 품어 주었듯이 이제 그들이 처음 산길을 가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품어 주어야 함에도 왜 제 권위만 내세우는지 알 수 없었다.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겸허하게 들으려고 하지 않고 왜 제 말만 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산길은 마음으로 지나야 하듯이 산을 지키는 것 또한 마음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밭 길 지나다 ©이호상

큰재를 지나 황장산으로 향했다. 좁은 산길에 분홍물봉선 가득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몸에 부딪쳐 꽃잎 떨어졌다. '날 건드리지 마세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물봉선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떨어지는 꽃잎 허공에 휘날리며 아름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데데하던 밭길 지나던 발길이 호사를 누렸다. 산길은 그대로 꽃길이었다.
황장산(黃腸山, 975m)으로 오르는 길은 숲 사이로 겨우 나 있었다. 지날 때마다 나뭇가지들 얼굴을 때리고 할퀴었다. 허리를 찌르고 가로 막았다. 가는 발걸음 더디게 하였다. 조록싸리, 국수나무, 물푸레나무 보였다. 소나무와 참나무 제각기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억새 우거져 발걸음 멈추었다. 잠시 마음 내려놓고 쉬었다.
황장산에 올랐다. 올려 본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

댓재로 내려섰다. 산경표에는 죽현(竹峴), 대동여지도에는 죽령(竹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장 작은 대나무인 조릿대가 많다고 하여 죽현 또는 죽치령(竹峙嶺)으로 부르는 이 고개는 강릉 지방과 원주 지방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걸어 넘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어려 있는 고개이다. 지금은 1984년 10월 도로가 개통되어 많은 차량들이 왕래하는 번다한 고개가 되었다.
▲댓재 ©이호상

도로로 내려섰다. 고개에 세워진 댓재 안내판이 보였다. 지난 밤 잠들었던 댓재 휴게소도 보였다. 조금 걸어 내려가자 다음 주에 지나게 될 두타산 안내판이 보였다. 두타산 정상까지 6.1km 라고 쓰여 있었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 한다'는 의미를 지닌 산이다.

참으로 저 산을 지나며 오랜 세월 묻어온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낼 수 있을까.
터지고 아물고 터지고 아물며 마를 날 없었던 깊은 상처를 씻어낼 수 있을까.
미움 없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두타산 지나며 마음 씻어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두타산으로 접어드는 길은 아늑하고 편안해 보였다. 낮 시간이었음에도 차분했다. 열기 느껴지지 않았다. 들어서고 싶었다.
산 그립고 산행 날이 기다려졌다.
햇살 뜨거운 정오였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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