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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毘盧)의 세계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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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毘盧)의 세계에 머물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35> 저수령~마구령/8.26~28

산행 스무아흐레 째② 수요일.

제1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초지와 숲이 조화를 이룬 연화의 세계였다. 진창에 핀 한 송이 연꽃처럼 청초하고 정갈하였으며 순결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진 초지는 별천지였다. 천상세계에 들어선 듯했다.
소백산의 아고산대(해발고도 1300m~1900m)는 참으로 놀라운 비경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그것은 비움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었다. 모든 것을 비워 내려놓은 자기 비움의 아름다움이었다. 소백산의 봉우리들은 자신을 비웠으나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장엄하였다. 연화봉에서부터 시작하여 비로봉, 국망봉, 상월봉을 거치는 소백산의 고원은 다른 산과 달리 큰 나무와 바위 등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저 야생화 바람에 흔들리고 출렁이는 고원의 평야일 뿐이었다. 풀만 가득했다. 이름 모를 풀, 아무도 관심 기울여 주지 않는 풀들만 그 땅 덮어 지키고 있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포기 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연화세계는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그윽한 아름다움의 향기 가득했다. 마음 평온했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움의 아름다움 ©이호상

자연의 조화요 신비로움이었다. 고도와 기후와 지질 등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였다.
소백산의 지층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화강암과 편마암은 오랫동안 수평 침식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표고를 가지고 있는 능선자락과 해발고도 1300m 이상의 지대에 평탄한 지형을 형성했다. 아고산지대는 아한대 기후 특성을 지니고 있어 비나 눈이 자주 내리고 세찬 바람이 자주 분다. 기후의 영향으로 키 큰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하고 신갈나무나 철쭉 같은 바람과 추위를 잘 견디는 양생식물들이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또한 낮은 기온과 원활한 배수는 초본류가 잘 번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형성된 초지는 야생화가 만발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비로봉을 향했다. 아름다운 참나무 숲이 보였다. 숲의 초입에 연리목(連理木)이 서 있었다. 두 그루 나무가 서로 몸 비벼 하나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연리목같은 인연이 어디 있을까.'
낯 모르던 이들 서로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욱 대단한 인연이다.
김 대장이 말을 건넸다.
"저 꽃이 무슨 꽃이에요?"
흰 꽃이 피어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쥐오줌풀 같기도 하고 개당귀같기도 하고..."
산행이 지속되며 꽃에 대한 나의 자신감은 점점 옅어졌다.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저 홀로 키운 자신감은 사립문 사이로 바람 빠져 나가듯 사라졌다. 나는 꽃도 나무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머리와 가슴에 들어왔던 잘못된 지식들과 생각을 버리려고 애썼다. 입 열어 말하지 않고 느끼려고 마음 기울였다.

사라져가는 풀이라 희귀종으로 보호하고 있는 자주솜대가 숲 길가에 피어있었다. 노랗고 여린 잎 품어 안은 꽃이 너무 청순하고 아름다워 애처로웠다. 애처로움 달래 품고 구름 따라 산길을 걸었다. 능선을 따라 펼쳐진 초지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의 어디쯤에 대피소가 있었다. 바라보았다. 초지 한가운데 자리한 대피소는 그림 같았다. 아름다운 별장을 찾아드는 것 같았다. 대피소는 아담했다. 마당에 이질풀 가득했다. 야생화들 만발했다.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야생화 가득하여 천상의 세계에 온 듯했다.
비로봉을 향했다. 비로봉을 향해 나 있는 나무 계단을 올랐다. 계단 곁에 주목 군락지가 있었다. 수령 500년 된 3,400여 그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던 계단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이 오름의 끝이 비로봉이라는 것을 아는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비로봉에 서다 ©이호상

마침내 비로봉(毘盧峰, 1439.5m)이었다. 저수령에서 고개를 숙이고 산으로 들어온 이후 촛대봉을 지나고 묘적봉과 도솔봉을 올랐다가 연화봉에서 꽃 핀 수행자의 삶이 부처를 만나는 봉우리였다. 비로봉은 부처를 의미하는 산이다. 비로(毘盧)란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준말이다. 본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법(法)이 세상에 몸을 입어(身) 드러난 법신불(法身佛)로 '공(空)의 인격화된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존재로,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비로봉은 그 이름만으로도 부처의 산이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많다. 주로 큰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이 이름을 지니고 있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오대산 비로봉(1563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과 소백산의 비로봉이다. 모두 부처의 산이다. 부처의 법을 드러내어 사방팔방으로 온 누리에 퍼지게 하는 산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이 '비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의 빛이 막힘없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산이니 말이다.

정상에는 표지석도 보이고 마음을 담아 쌓아 놓은 돌탑도 보였다. 구름 걷히자 산 아래 사람 사는 마을과 저수지 등이 보였다. 첩첩이 이어져 있는 산줄기도 보였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야생화 넘실대는 능선 길을 따라 국망봉(國望峰, 1420.8m)을 향했다. 구름 따라와 내 몸 쓰다듬으며 지났다.
종일 구름 속을 거닐고 있었다. 구름과 함께 걷고 함께 쉬었다. 내가 멈추면 구름도 멈추고 내가 앞서면 구름 뒤따라와 제 갈 길 가면서도 언제나 함께 했다. 나는 나대로 흐르고 구름은 구름대로 흐르면서도 구름과 나는 매 순간 함께 걷고 함께 머물렀다.

이런 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도솔천 세계이고 연화장 세계가 아닐까.

▲구름과 함께 걷다 ©이호상

모든 것이 각기 제 삶을 살아가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세계 말이다. 각자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조화로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 말이다. 그 어느 누구도 제 생명, 제 마음, 제 뜻을 잃어버리거나 꺾이지 않고 살아가지만 다른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세계 말이다.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제 마음 잃어버리지 않고 제 삶 온전히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무와 풀과 구름과 비와 바위와 계곡을 흐르는 물과 벌레들과 새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그들이 제 모습 그대로 지키며 제 삶 살아감으로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숲을 이루듯이 말이다. 풍요로운 생명 세상을 이루듯이 말이다.
까실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길 곁에 가득하였다. 소백산에 많은 이질풀도, 억새와 금마타리도 바람 따라 구름 속에서 흔들렸다. 함께 흔들리며 꽃향기에 취하고 마음에 취해 걷다 보니 국망봉이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 흘렸다는 곳이다. 왕건으로부터 신라를 회복하려다가 실패한 후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입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고 하니 그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 마음 얼마나 시렸을까.
그 몸 얼마나 춥고 괴로웠을까.

산길에 핀 야생화들이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었기를 바랐다. 하늘은 옥빛으로 깊어지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몇 조각은 여유로웠다. 꽃잎 떨어진 쓸쓸한 철쭉 숲을 지나 상월봉에 올랐다가 늦은맥이재로 내려갔다. 지나온 길과 달리 깊은 숲이 거기 있었다. 숲길에 큰 신갈나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가지의 끝에만 잎 몇 개 달고 있을 뿐 죽어 있었다. 그 잎도 곧 떨어질 듯 보였다. 나무는 속이 다 파여 빈껍데기만 남은 듯했다. 몸을 돌려 나무 기둥 속을 들여다 보았다.

"아~!"

▲생명을 품어 키우다 ©최창남

놀라웠다. 죽은 나무의 몸 안에는 무수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제 몸 비워 무수한 생명들을 품어 키우고 있었다. 잎 무성하여 또 다른 숲이 그 안에 있는 듯 했다. 비로의 세계가 죽은 나무속에 있었다. 부처의 세계가 껍데기만 남은 나무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죽은 나무는 새로운 생명을 품어 키우는 생명의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가슴 설레어 발걸음 뗄 수 없었다.

늦은목이재를 지나 연화동 삼거리에서 잠시 쉰 후 1031.6봉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어두웠다. 이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28분이었다. 마당치(991m)를 지나 고치령(770m)에 내려섰을 때 밤 깊어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11시 50분이었다. 15시간 30분의 긴 산행이었다. 산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래 걸은 날이었다. 몸 무겁고 다리는 뻐근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가벼운 설렘과 흥분이 산행이 끝난 후까지 남아 있었다. 비로(毘盧)의 세계에 머물다 내려 온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보고 온 비로(毘盧)의 세계가 아직도 내 안에 있는 듯 했다.
별빛 자비로운 밤이었다.
마음 스러진 밤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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