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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세계를 만나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34> 저수령~마구령/8.26~28

산행 스무아흐레 째① 수요일.

죽령(竹嶺)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연화봉(蓮花峰, 1394m)으로 향했다. 연화봉으로 가는 초입은 시멘트로 도로를 놓아 산길 같지 않았다. 시멘트 길은 소백산 천문대까지 7km 정도였다. 한 대장은 이 길을 걷는 것이 너무나 지루하다고 차를 타고 천문대까지 올라갈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길은 막혀 있었다. 차는 올라갈 수 없었다. 다행이었다. 백두대간 처음 걷는 길을 시멘트 깔려 걷기 힘들고 지루하다고 차를 타고 올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도로에는 동물 발자국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 있었다. 시멘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지나간 자국이다. 발자국은 길을 따라 또렷하게 나 있었다. 마치 산길에 시멘트를 깔아 놓는 사람들을 비웃는 듯했다. 시멘트 길을 걷는다는 삭막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가드레일 위로 다람쥐 한 마리가 오고가며 놀고 있었다. 산길을 오르는 이들에게 얻어먹었던 경험 때문인지 한 동안 따라 왔다. 귀여웠다.
▲생명의 흔적 ©이호상

길 양 옆으로 꽃 만발했다. 작은 꽃다발처럼 보이는 하얀 개당귀는 함초롬했고 어수리는 우아했다. 그뿐인가. 샛노랗게 핀 달맞이 꽃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구름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흘렀다. 둘러보니 구름 속을 걷고 있었다. 구름 지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구름은 구름대로 제 갈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내 길을 갔다. 길마다 야생화들 가득했다. 둥근이질풀 만발하였다. 개당귀, 금마타리, 억새, 넓은잎잔꽃풀(개망초), 쑥부쟁이 피어 마치 천상의 꽃길에 들어선 듯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은 저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는구나.

그렇게 꽃길에 넋을 잃고 꽃에 취해 걷다보니 제2연화봉(1357.3m)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전망대에 서니 골마다 피어 오른 운무가 산을 덮어 눈 아래는 구름의 바다였다. 바람을 따라 구름은 빠르게 능선을 넘고 있었고 산은 지나는 구름이 흐르는 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걸었다. 산을 지나 온 구름들도 저 홀로 흐르는 것이 외로웠던지 따라왔다. 구름을 따라 온 바람이 세찼다. 바람 속에서 구름비가 내렸다. 얼굴에 작은 빗방울들 부딪쳤다. 구름과 함께 걸었다. 함께 걷고 있었지만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있었다. 구름은 하늘을 따라 흐르고, 나는 구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 잔잔했다. 노란 물봉선, 금마타리, 둥근이질풀, 은방울꽃, 초롱꽃, 구절초와 이름 모를 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풀잎과 꽃들은 바람을 타고 노는 듯 했고 바람은 풀잎과 꽃잎 사이를 지나며 흥겨운 듯 했다. 함께 어울려 노는 듯했고 정을 나누는 듯했다. 민들레 홀씨 피어 있었다. 좀 더 세찬 바람 불어오기를 갈망하고 있는 듯 씨앗들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야생화 만발하고 ©이호상

바람 불면 제 몸 바람에 띄워 보내 새로운 생명을 틔우게 되리라.

새로운 생명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신비로운 일이다. 내 삶도 새로운 생명을 틔울 수 있기 바랐다. 깊은 사랑과 다함 없는 희망과 마르지 않는 열정으로 수많은 생명 품어 틔울 수 있기 바랐다. 아무리 어렵고 척박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연꽃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소백산 천문대를 구경삼아 바라보다 평원 같은 초지를 지나니 연꽃처럼 핀 연화봉이었다. 연화봉에 올랐다. 너른 공간에 잘 다듬어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메마른 내 삶도 연꽃처럼 피어날 수 있을까.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연꽃은 진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함초롬히 꽃을 피운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정갈한 자태를 지키고 있는 꽃이다. 그러하기에 연꽃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연꽃의 의미가 어디 그뿐이랴. 물속에 떨어진 연꽃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터 꽃을 피운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처의 심성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부처로 꽃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연꽃은 그런 꽃이다. 그러기에 불교의 상징이 되고 부처를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이다.

나도 연꽃처럼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제 삶 지켜 나갈 수 있을까.
나도 연꽃처럼 제 삶 지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옥빛이었다. 보랏빛 여린 붓꽃 피어 마음 떨리고 바위틈에 자란 바위구절초 애절하여 마음 잔잔했다. 바위구절초 곁에 핀 쑥부쟁이를 보며 마음 달래고 이질풀을 보며 위로 받았다. 저렇게 여린 잎을 지니고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 불어 옷깃 펄럭이고 비 부슬부슬 내렸다. 안개비였다.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에는 나무계단 촘촘하게 깔려 있었다. 마가목도 층층나무도 소나무도 참나무도 있었다. 숲의 바닥에는 풀들 자라 자유로웠고 곁으로 어린 관목들도 자라고 있었다. 숲의 빈자리마다 조릿대 무성하고 쓰러진 나무들에는 녹조류 가득하였다. 숲은 생명 풍성하였고 생태적으로도 조화로웠다. 둥근이질풀 군락지에 마음 빼앗겨 잠시 머물다 끝없이 펼쳐진 초지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올려 보았다. 구름 지나고 있었다. 계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구름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마음 아득했다.
▲©이호상

둘러보자 백두대간 안내판이 보였다.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곳곳에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판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연화봉 오르는 길에도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국토 전체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토의 젖줄인 강물의 발원지이며 대륙과 이어진 야생 동물, 식물의 생명 통로이자 주요서식지라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또한 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총 길이가 1400km라는 이야기와 함께 대간과 산맥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산맥이라는 말은 땅 속의 지질의 형성연대나 생성방법을 추정해 그린 가상의 지질도이며 이는 일본에 의해서 왜곡된 역사다."

너무 간단하게 설명을 하는 바람에 오해를 살만한 부분도 있어 보였다. 산맥에 대한 설명 등은 올바르나 '일본에 의해서 왜곡된 역사다'라고 말한 대목이 그렇다. 일제강점기의 총독부가 백두대간의 맥을 끊어 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정책을 썼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정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총독부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총독부가 조선의 자원 침탈을 위한 목적으로 지리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에게 조선의 지질을 연구하도록 했고 그 결과 산맥의 개념이 나왔다고 할지라도 '산맥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좀 곤란해 보인다. 왜냐하면 아무리 고토분지로라고 할지라도 없는 산맥을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맥은 안내판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질의 형성연대나 생성방법을 추정해 나눈 개념일 뿐이다.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부르지 않던 간에 그러한 지질의 성질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산맥은 그저 산맥일 뿐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산맥 이론은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이니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의 골간을 이룬 백두대간의 의미와 정신 등을 회복해야 한다. 생명 길이었던 그 하늘 길을 우리 가슴에 되살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백두대간은 백두대간이고 산맥은 산맥이라는 것이다.
▲탐방로 ©이호상

소백산 국립공원은 여러 가지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야생화에 대한 안내판도 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탐방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백두대간 길 역시 잘 정비되어 있었고 안내판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숲과 초지는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백두대간 길을 잘 정비하여 온전히 열어 놓고 있었지만 숲이 훼손되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백두대간 길이나 탐방로 등을 잘 정비하여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훼손되었던 초지와 숲이 오히려 복원되고 있었다. 다른 국립공원 등에서도 본받을 만해 보였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숲과 사람을 분리시키지도 않았고, 사람으로부터 숲을 폐쇄시키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숲과 함께 살아가며 숲을 즐기고 사랑하게 함으로써 숲을 소중히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것이 소백산 국립공원이 보존 상태도 좋고 더욱 아름답고 풍성한 숲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로 보인다. 사람과 숲은 격리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이 품어 안아야 할 생명이기 때문이다.
▲구름 속에서 나오다 ©최창남

눈앞에 아고산지대가 만들어 놓은 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초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지고 있었다. 골을 지나 흐르던 구름이 우리를 따라오려는 듯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마치 구름 속에서 나온 듯 먼저 눕는 풀인 신범섭 촬영감독과 안도현 군이 구름 속에서 걸어 나왔다. 마치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인 청정과 광명이 충만한 땅, 불자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이상적인 세계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가 거기 있는 듯했다.
초지를 넘어 오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장엄했다. 아름다웠다. 지나는 비 조금 내렸다. 나는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연화봉이 품은 아름다운 세상에 젖어 그저 황홀할 뿐이었다. 수많은 말들이 들려왔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슴에 담겼다. 구름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눈부시도록 푸르른 날이었다.
그리움 사무쳐 그리움 잊은 날이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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