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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에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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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에서 바라보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33> 저수령~마구령/8.26~28

산행 스무여드레 째. 화요일.

다시 저수령(底首嶺, 850m)을 찾았다. 오랜 벗을 만난 듯 정겨웠다. 다큐멘터리 '백두대간 공존의 숲' 촬영과 달콤한 휴식을 보낸 후 맞이하는 3주 만의 산행이었다. 산으로 들어가자 마음 편안해졌다. 절로 '나도 산 꾼이 되어가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끝에 찾은 숲은 달라져 있었다. 처서(處暑) 지나 가을을 맞고 있는 숲의 햇살은 따가웠으나 대기는 차가웠다. 산으로 들어가며 몸 선뜩하여 옷깃을 여몄다. 나무들도 달라져 있었다. 나무들은 여름 내내 큰 비와 모진 태풍에도 떨어뜨리지 않던 나뭇잎들을 떨어뜨리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 있는 동안 숲은 그렇게 변하며 성숙해지고 있었다.

마음에 품어 늘 가보고 싶었던 소백산(小白山, 1439.5m)을 향했다.
저수령부터는 소백산 줄기이다. 저수령부터 소백산 비로봉을 잇고 있는 봉우리들은 마치 하나의 산인 듯 서로 부르며 다가서고 있다. 봉우리들은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 1439.5m)을 향해 있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줄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이다. 즉 '부처의 진신(眞身)'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저수령에서 소백산으로 가는 산줄기의 봉우리들은 모두 부처님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머리 고개인 저수령에서 고개를 숙이고 산길로 들어서면 불 밝혀 길 인도하는 촛대봉(1081)을 만나게 되고 하룻길 애써 땀 흘리면 묘적봉(妙積峰, 1148m)과 도솔봉(兜率峰, 1314m)을 오르게 된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산길은 그저 산을 지나는 길이 아니라 수행길이기도 하다. 불 밝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촛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 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면 바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우리를 틔운 연화봉(蓮花峰, 1394m)이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 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향해 가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산줄기는 비로봉으로 흐르고 ©이호상

숲으로 들어가자 마음 편안했다. 산 아래서는 간간이 불어오던 바람이 산으로 들어서자 행여 산행 길 막아설까 염려한 탓인지 불어오지 않았다. 바람이 없는데도 간간이 나뭇잎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는 나뭇잎들을 나무가 스스로 떼어내고 있었다.
여름 지나고 가을 되면 나무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열량의 생산과 소모가 같아지는 것이다. 나무들은 다시 성장 할 수 있는 새로운 봄을 온전히 맞이하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낼 준비를 한다. 가을은 바로 그런 삶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산 아래 사람 사는 세상은 아직 여름이었지만 산은 이미 가을이었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숲에 깃드는 가을을 따라 걷다 보니 이내 촛대봉(1081m)이고 투구봉(1080m)이었다. 촛대봉과 달리 투구봉은 표지석조차 없었다. 그저 소백산 투구봉이라고 투박하게 써 있을 뿐이었다. 앉아 쉬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지나는 구름 산줄기에 간간이 걸려 노니다 가곤 했다.

"저기 구름 많은 곳 아래 삐쭉 삐죽 솟은 산이 보이시지요? 그곳이 바로 도솔봉입니다. 그 앞이 묘적봉이고요. 그리고 저기 보이는 송전탑 앞이 흙목재입니다."

한 대장은 가야 할 봉우리들을 집어주고 있었다. 오늘 산행은 길었다.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가는 약 18.5km의 거리였다. 겨우 산길에 단련되었던 근육들은 3주의 휴식으로 풀려 있었다. 오랜만의 산행을 제대로 해낼지 한 편으로 염려되었다. 하지만 그리움 품었던 소백산으로 가는 길이어서 인지 마음 가볍고 즐거웠다. 가을을 느끼고 산을 느끼며 산행을 즐겼다. 너무 제 기분에 취했던 탓이었는지 잣나무 숲에 시계를 풀어 놓고 와 오늘 처음 산행에 합류한 송동일 조감독이 다녀오느라 고생 하였다. 모두들 잣나무 숲으로 달려간 조감독을 기다리며 신고식 확실하게 치른다고 웃었다.
유두봉(1059m)과 싸리재를 지났다. 산길에 짙은 분홍빛깔 엉겅퀴 피어나 지나는 우리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좁은 길 곁으로는 신갈나무 무성하고 간간이 핀 구절초 흰 잎이 슬픈 듯했다.
흙목산(1033.5m)에 올랐다.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몇 평정도의 좁은 공간인 정상에는 허술히 생긴 바위 곁에 바람이라도 조금 세차게 불면 떨어질 것 같은 이정표가 서 있었다. 글씨도 지워져 알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안 되어 보였던지 산길 지나던 마음 고운 이가 싸인 펜으로 백두대간 가는 방향을 표시해 놓았다. 백두대간이라고 쓴 후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잡풀 무성했다. 잡풀이라지만 아름다웠다. 백설처럼 흰 꽃 피어 아름다웠다. 참으로 민초들의 삶을 닮아 있었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청초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결코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었다. 위로되었다.
▲©이호상

묘적봉(妙積峰, 1148m)으로 가는 길에는 야생화 만발하여 마음 설렜다. 여린 물봉선 가득하였다. 분홍빛, 노란빛, 흰 빛깔의 물봉선 피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물봉선 군락지를 지나자 백당나무 꽃 만발하여 마음 빼앗더니 이내 만지면 찢어질 것만 같은 가녀린 이질풀 한 송이 외롭게 피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녀린 모습이 참으로 애틋하여 한 동안 이질풀 곁을 떠나지 못하였다. 꽃에 취하고 마음에 취해 주저앉으니 나처럼 꽃에 취하고 마음에 취했는지 무당벌레 한 마리 풀잎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벗을 만난 듯 반가웠다. 정겨웠다. 그렇게 마음 빼앗긴 채 앉았다가 가야 할 길에 쫓겨 발걸음 떼니 어수리 흰 꽃들 화려하게 피어 꽃을 두고 떠난 내 마음 위로해 주었다.
참선을 통해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오른다는 묘적봉에 오르니 하늘 푸르렀다. 맑았다. 그러나 동으로 만들어 놓은 표지판을 바위에 박아 놓은 정상의 모습은 삼매경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상 한 편에 세워져 있는 돌탑을 쌓은 마음들만 아련할 뿐이었다. 은방울 꽃 피고 구절초 피어 묘적봉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었다.

도솔봉(兜率峰, 1314m)으로 가는 동안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숲이 어두워지자 바위틈에 핀 노란 양지꽃과 흰 구절초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눈부셨다. 마음을 뺏긴 채 걸었다. 긴 나무계단이었다. 도솔봉으로 오르는 계단이었다. 올려다 보았다. 계단은 도솔봉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도솔봉에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하늘에 이르는 계단이었다. 하늘 계단이었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대로 도솔천(兜率天)에 이를 것 같았다.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전 머물며 수행했다는 곳,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산다는 곳,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정토(淨土)인 곳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도솔천에 드는 길은 고행길이라는 듯 검게 변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헬기장을 지나 도솔봉 정상을 향했다. 가파르고 좁은 길 오르며 바위에 몸 부비고 나무뿌리 부여잡으며 올랐다. 가파르게 나 있는 돌계단 어렴풋이 오르는데 나란히 핀 바위구절초 세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부는 바람에 꽃대가 살랑 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어깨 나란히 하고 피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두 송이는 다 자랐지만 나머지 한 송이는 아직 어린 꽃이었다. 한 가족 같았다. 그 모습이 그대로 가슴에 들어왔다.
▲바위구절초 ©이호상

나를 위로하느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산행에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마음 길 따라 살아가지 못해 고단하고 지친 내 삶 위로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도솔봉 정상에 올랐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도솔봉은 그대로 도솔천인 듯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검은 구름 덮인 하늘 사이로 붉은 해 노을 드리우며 지고 있었고 그저 아득하기만 한 산줄기 위로 구름 지나고 있었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움조차도 붉은 해 품어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 불었다. 점점 세차게 불어왔다. 도솔봉에 둘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지는 노을 바라보았다. 노을은 시리도록 붉어 가슴이 타는 듯했다. 아름다웠다. 마음 그득 행복했다. 시리도록 붉어 가슴 태우는 깊은 아름다움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산줄기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 내려서게 될 죽령도 내일 지나게 될 연화봉과 비로봉도 보였다. 그 너머에 국망봉도 있었다.
산줄기 끝없이 이어지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산줄기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듯 아득했고 사랑을 말하고 있는 듯 깊었다.
산줄기 위로 구름 흘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도솔봉에 노을지다 ©이호상

도솔봉에 마음 두고 내려오니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은 점점 험해지고 산행은 느려지기만 했다. 죽령을 4.3km 남겨두었을 때 어둠은 숨결처럼 다가왔다. 숲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헤드랜턴의 불빛만 보였다. 불빛에 의지해 삼형제봉을 힘겹게 넘었다.
도솔천의 세상인 도솔봉에서 속세로 나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오르고 내리기를 수없이 거듭한 후에야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竹嶺, 689m)에 내려 설 수 있었다. 밤은 깊어 있었다. 10시 50분이었다.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지친 몸을 차에 실었다. 지나 온 산길 돌아 볼 사이도 없이 차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별 마음에 담지도 못하고 잠든 밤이었다.
마음 깊이 담아 두었던 도솔천, 또 다른 세상 흘려 보내지도 못하고 잠든 밤이었다.
그 밤 고요하고 적막했다.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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