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단 일원이었던 노회찬 의원을 5일 밤에 만났다. 그는 방북단의 성과 중 하나인 북측의 남북적십자회담 재개의지 표명과 관련해선 "북한의 2인자나 다름없는 사람의 이야기인 만큼 북한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면서도 "북측에서 민노당에게 선물을 주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며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다.
노 의원은 "북한은 남한이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것을 보고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 같다. 다른 더 큰 지원이 끊어진 것보다 이것이 북한으로선 모욕당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고 전하며 정부의 쌀, 비료 지원 재개를 촉구했다.
노 의원은 또한 "6자회담에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고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 등) 선행조치가 있으면 (북한도 핵 폐기 쪽으로) 좀 더 진도가 나아갈 것"이라며 "이번 6자회담은 금융제재와 관련된 문제를 의제로 합의한 만큼 북한도 이 논의가 잘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노 의원은 한편 핵실험 유감 표명의 수위와 관련한 당 안팎의 논란에 대해선 "상소리를 하느냐, 외교적 언사로 표현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톤으로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당은 우리가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했느니 안했느니 이야기하지만, 정말 북한을 만나서 유감을 전달한 당은 민노당뿐이다.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어느 당이 직접 만나서 말한 적 있느냐"고 항변했다.
노 의원은 특히 "한나라당은 오직 2007년 12월만 보고 있다. 국민의 안보 위기감이 고조돼야 얻을 것이 많다고 오해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실험 했을 때 한나라당은 아마 화장실 가서 웃었을 것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당이다"고 불쾌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한 만경대 방문 논란과 관련해 "통일부가 가지 말라고 한 곳도 아니었다"면서 "만일 우리가 만경대를 가지 않았으면 다른 것으로 빌미를 잡았을 것이다. '음식이 맛있었다'고 하면 '핵실험을 한 북한에서 음식이 넘어가더냐'는 식으로 색깔시비를 했을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의 핵실험 문제를 둘러싼 당내 계파 분란과 관련해 "북핵 반대에 대한 유감 표명의 톤을 강하게 하자는 것과 덜 강하게 하자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니다"면서 "그러나 자위를 위해선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노 의원은 소위 '일심회' 사건 논란과 관련해 "70년대부터 가장 많이 보아 왔던 간첩단 사건의 유형"이라며 국정원의 기획 의도를 의심했다. 그는 "북핵 위기에서 공안정국을 조성해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세력이 일부 언론, 공안기관 내부, 일부 정당에 있는데, 나는 이들을 공안정당-공안언론-공안기관의 '3공 세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둔 시기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전개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 재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프레시안 : 북한 방문은 처음인가?
노회찬 : 세 번째 방문이다. 처음 갔던 것은 2000년 10월이다. 그 때는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첫 민간 초청 방문이어서 그랬는지 북한에서 비행기까지 보내주는 등 매우 환대받았었다. 지난 6년 동안의 역사가 헛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에 북한을 가 보니 외관상 남북관계가 많이 후퇴한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프레시안 : '찬바람'을 느꼈다는 뜻인가?
노회찬 : 분위기도 차갑고…. 핵실험까지 했으니 질적인 면에서 관계의 후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일단 남북적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되겠나?
노회찬 : 우리가 선물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는 우리가 했던 이야기에 대한 그림자 정도일 뿐 큰 선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뭔가를 주려고 갔지 받으러 갔던 것은 아니었다. 핵실험에 대한 유감과 비판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갔던 것이다. 남쪽 국민의 우려 정서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내용적으로는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사실 좋은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우리의 도착과 동시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의 방북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의 방향이 맞았다는 것은 확인했다. 핵실험에 대한 유감과 비판은 어쨌든 이야기를 했다. 처음 말을 꺼냈을 때 거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프레시안 : 적십자회담 재개 등의 실현 가능성을 낙관하긴 이르다는 뜻인가?
노회찬 : 저쪽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한 이야기다. 하지만 민노당에게 선물을 주려고 준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인도적 지원과 연결돼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답변만 했었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부분은 인도적 지원과 남북대화를 연계하려고 하지 말고 공동의 노력을 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엔 우리가 북측을 밀어붙이다시피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산가종 상봉 재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좋겠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북한의 2인자나 다름없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북한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겠나.
프레시안 : 결국 쌀이나 비료 지원을 재개하지 않는 이상 이산가족 상봉 재개는 난망하다는 뜻인 것 같다.
노회찬 : 조금 다른 각도로 말하고 싶다. 이종석 장관은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장본인이다. 동시에 이 장관은 6자회담 재개의 전망이 보이면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이야기를 직접 하기도 했다. 6자회담을 통한 합의의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회담 자체의 재개는 이제 결정됐다. 이종석 장관은 이제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것은 물질적 상실감 이상의 정신적 타격을 북한에 준 것 같다. 다른 것에 대한 지원 중단은 충분히 이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남한에서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것을 보고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 같다. 다른 더 큰 지원이 끊어진 것보다 이것이 북한으로선 모욕당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결국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간 것 같다.
노회찬 : 그렇다.
"6자회담서 일괄타결 여부가 관건"
프레시안 : 북한에 가서 핵실험에 대한 강한 비판을 했다고 했는데, "북한 핵실험에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정도의 언급이 충분한 것이었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노회찬 : 강하게 한 것이다. 그 자리에 한두 명이 앉아 있던 것도 아니다. 말을 붙이거나 뺄 상황도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북쪽 사람들은 면전에서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이다. 북한은 현 상황을 '국가적인 위협', '5000년 만의 위협'이라고까지 받아들이더라. 북한을 정면에서 비판한다는 것이 그 자존심 강한 사람들에게는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성현 대표는 말이 논란이 될까봐 아예 준비를 해 둔 성명을 읽었다. 분위기는 삭막했었다. 중간에 말을 끊기도 했으니까. 한국에서였다면 우리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실제로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쪽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진행했다.
프레시안 : 충분한 비판이라고는 하지만, 민노당 내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놓고 논란이 있다.
노회찬 :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상소리를 하느냐, 외교적 언사로 표현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 실린 뜻은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톤으로 했다고 본다. 방북 전에 한국에서 민노당이 했던 이야기도 다 북한을 향한 것이었던 만큼 북한에도 다 전달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은 북한의 반응을 핵개발에 대한 책임을 국제사회에 전가하고 남한의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보더라.
노회찬 : 북한의 핵실험 직후 한국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사태에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여론이 30%를 넘었다. 이것은 우리의 방북 전에 조성된 국내의 여론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은 60%가 넘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인식처럼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의 책임으로 돌리고, 북한을 굴복시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은 극소수다.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높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의 이야기는 국민 극소수의 의견이다. 국론을 양분한 것은 한나라당이지 민노당이 아니다.
프레시안 :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한 북한의 의도는 어떻게 느꼈나. 금융제재가 일정 부분 숨통이 트이면 핵포기 수순을 밟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나?
노회찬 : 금융제제를 해제하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북한이 직접 언급한 바는 없다. 그러나 곧 열리게 될 6자회담은 지난 9.19 공동성명 이후 최초로 열리는 회담이다. 베이징 6자회담은 사실상 공동성명이 실현되지 않아 무산된 것이라고 본다. 공동성명의 첫 번째 항목은 북한은 일체의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일체의 공격행위를 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의 추가 제재가 있어서 무산된 것이다. 9.19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여러 종류의 제재가 북한의 핵무기와 교환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9.19 공동성명의 한계가 바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방식이라는 것이다. 한 사안을 받으면 상대방도 한 사안으로 응하는 식이다. 이것은 공동성명의 치명적 약점이다. 상대방 때문에 안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열릴 6자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와 북한의 핵 포기가 일괄적으로 타결되지 않으면 어렵게 합의는 됐으나 이행되지 못한 지난 9.19 공동성명의 함정에 또 다시 빠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중국의 탕자쉬엔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을 때 "비핵화 선언은 김일성 주석 유지다. 미국의 강압적인 정책만 없다면 우리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핵이 좋아서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불가피하게 가졌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털고 싶다"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제재를 해제하는 것과 체제보장일 것이다. 체제보장이라는 말을 이번 방북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라이스 장관이 "현재의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가. 미국이 그런 정책을 지속한다면, 강압을 통해 정권 교체를 꾀한다면 문제의 해결은 어렵다.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번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된다는 것은 6자회담을 통한 핵무기의 폐기가 합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6자회담에서 이것을 못하면 6자회담 자체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프레시안 : 우리의 기대사항은 그렇겠지만, 6자회담이 실제로 그런 경로를 밟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인 것 같다. 다만 회담 재개를 앞둔 북한의 공기가 어떠했는지가 궁금하다.
노회찬 : "6자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 우여곡절을 겪을지는 전적으로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는 북한의 분명한 언급이 있었다. 북한의 지금까지 방침은 먼저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것 아니었나. 지금은 그게 아니다. 북한이 줄 것이라고는 핵무기 폐기, 핵 개발계획의 폐기뿐이다. 이것 외에는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을 더 키운 것이다. 그 전 상황으로는 교환이 안 되니까 지불 수단을 더 키운 것이다.
그러나 단지 북한의 선전용 발언이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핵은 공격용이지만 우리의 핵은 방어용일 뿐이며 남한을 겨냥한 것도 아니다. 내일이라도 폐기할 수 있다"고 누누히 강조했다. 북한으로서는 남들이 믿든 그렇지 않든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이라는 말이다.
프레시안 : 지불수단이 커진 만큼 체제보장을 포함한 일괄타결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기대치가 높다고 봐도 되나?
노회찬 : 북한이 체제보장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꾸로 보자면 아주 초보적인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제재는 총을 쏘지 않고 목 졸라 죽이는 것 아닌가? 6자회담에서 어느 정도 신뢰를 쌓고, 또 선행조치가 있으면 좀 더 진도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론 NPT 복귀까지 가야 한다. 이것은 핵 포기를 제도화 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다. 진행이 순조로울 경우 논의해야 하는 문제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도 마찬가지 문제라 본다.
프레시안 : 역으로 묻자면 미국에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추가 핵실험도 하겠다는 분위기인가?
노회찬 : 북한에서 추가 핵실험 문제를 언급한 바는 없다. 우리도 언급하지 않았다. 1차 핵실험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에 녹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가 핵실험은 이번 6자회담의 추이에 따라 발생할 상황이지 6자회담 전에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이번 6자회담은 금융제재와 관련된 문제를 의제로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지금까지를 보면 북한도 이 논의가 잘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만경대 아니었으면 다른 일로 꼬투리 잡았을 것"
프레시안 : 논란이 되고 있는 만경대 방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방문 자체보다 민노당이 그 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북한 방송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오해를 살만한 여지가 있었던 것 같다.
노회찬 : 다른 곳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만경대만 빼고 이야기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환담했던 이야기만 하고 어디를 갔다는 일정 이야기는 전혀 안했다. 환담이 중요했지 어디를 가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들키면 곤란한 곳에 갔다는 생각도 전혀 안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개성 춤 사건'이 있었지 않나. 그래서 북한에 가기 전에 정부당국으로부터 엄청난 주문을 받았고 민노당 스스로도 조심했다. 개성에서 춤을 춘 일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덤터기 쓰지 말자는 식의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통일부의 요구도 있었다. 과거 같았으면 민노당은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은 자존심 문제 아닌가. 그런데 이번엔 구태여 가지 말라는 곳에 갈 생각은 당초부터 없었다. 북핵문제 때문에 가는 것이니까 그랬다.
만경대에 갔을 때도 방명록에 아무 것도 안 썼다. 뭐라고 쓰겠나? 하늘이 맑다고 쓸까? 곤란한 것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북한 방문이었다. 굳이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나?
프레시안 : 통일부 가이드라인에 만경대는 없던가?
노회찬 : 없었다. 만경대, 만수대 모두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노당 입장에선 "하나하나 따지면 왜 가지 말아야 하는지 할말이 많지만, 통일부 가이드라인은 지킨다"고 결정한 것이다. 어디어디는 가지 않는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는 가기 전부터 결정한 것이다. 우리도 북한에 이러이러한 곳은 아예 부르지 말 것을 요청했다. 준비단도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이다.
프레시안 : 김근태 의장 춤 파문도 사실 중요한 논란거리도 아닌 것이 논란이 됐다. 만경대 방문을 갖고 트집을 잡는 것이 우습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어쨌든 빌미를 준 셈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나?
노회찬 : 만일 만경대에 가지 않았다면 다른 것으로 빌미를 잡지 않았겠나? "음식이 맛있었나, 잠은 잘 잤느냐"고 묻는다 치자. 그럼 "맛있었다, 잠도 잘 잤다"고 답하겠지. 그럼 그걸 갖고 "핵실험을 한 북한에서 음식이 넘어가더냐, 편히 잠이 오더냐. 정신상태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색깔시비를 할 사람들이다.
평양 단고기집에 갔었다. 마지막에 종업원이 노래를 부르려 했다. 북한에서 그건 기본적인 서비스다. 하지만 대변인이 나가서 못 부르게 했다. 고개 숙이고 밥만 후다닥 먹고 나와 버렸다. 그런 상황이었다. 민감한 정세를 감안해서 오해를 자초할 행동은 극히 조심을 했다. 조심한 결과 그것이다.
프레시안 : 민노당은 오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2000년에 만경대를 방문했다고 했다. 확인된 것인가?
노회찬 : 이영순 의원이 그랬다고 하던데 나는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자가당착이다.
프레시안 : 총평하자면 이번 방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노회찬 : 정치적 이해득실로 따지자면 민노당의 입장에서는 손해로 평가될 수도 있다. 주변사람들도 괜히 가서 비를 맞을 필요가 무어냐 하더라. 하지만 나는 정치를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방북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정당이다. 한반도의 이 위기상황에 정치인이 하는 일은 위기를 해결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 아닌가.
한나라는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위기가 증폭될수록 기뻐하는 것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긴장의 고조를 통해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것은 곧 국민의 불안을 정치에 이용하는 일이다. 열린우리당?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집권여당이 분당이니, 통합이니 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민족의 생존권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몇 안되는 정치인들의 생명연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했느니 안했느니 이야기하지만, 정말 북한을 만나서 유감을 전달한 당은 민노당뿐이다.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어느 당이 직접 만나서 말한 적 있나?
만약 우리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다 대표단, 혹은 정부의 대표단이 갔으면 성과는 더 컸을 것이다. 왜 안 갔나? 누가 막았나? 못 오게 했나? 한나라당이 방북했더라면 북한은 더 환영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노당의 방북을 놓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반도의 상황이 한나라당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은 재개됐고,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리는 것 아닌가. 이에 맞춰가고 있는 것은 민노당뿐이다. 그래서 당장 간첩단 사건과 얽혀 오해를 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해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북한에 갔던 것이다. 민노당은 그런 일을 위해서 창당한 당이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이 북한과 미국의 대결 국면을 통해 노리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
노회찬 : 한나라당은 가깝게는 이번 핵 위기, 중장기적으로는 남북의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과 열의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한나라당은 오직 '2007년 12월'만 보고 있다. 12월에 국민의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어야 얻을 것이 많다고 오해하고 있다.
대선주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관료들도 안하는 이야기, 미국의 강경파 이야기를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 손 모 전 경기도지사라는 분도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해 PSI에 참여하자"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서도 똑같이 이야기 할 것인지는 지켜볼 생각이다. 어떻게 지금 무장검색을 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나. 국지전 등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피하지 말자는 것이 일전불사론인데, 전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인가. 북한을 제거하겠다는 부시 노선에 부합되는 이야기들이다. 미국 공화당보다 더 강경하다.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보다 한나라당이 더욱 강경하다. 한나라당 눈으로 보면 제임스 베이커도 친북이다. 당의 대변인, 주요 인사들, 정책위 등의 발언을 놓고 보면 결국 한나라당은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원하지 않고 있다.
아마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가장 큰 박수를 친 것이 한나라당일 것이다. 민노당은 곤혹스러워 했다. 열린우리당도 난감했을 것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은 아마 화장실에 가서 웃었을 것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당이다.
정책이나 이념이 다를 수는 있지만 평화적인 해결에는 모두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의 이야기는 미국의 책임 있는 당직자는 하지 못하는 말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극우편향이 굉장히 우려스럽다.
"북핵, 자위권으로 보는 건 문제"
프레시안 : 방북 전부터 민노당이 곤혹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당 내부에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자는 기류 때문이었는데.
노회찬 : 민노당은 다른 당과 달리 이런 문제를 갖고 평당원까지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좋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 덕에 실제보다 논쟁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쟁점이 혼재된 측면도 있다.
하나는 북핵에 대한 우리의 유감 표명의 톤 문제다. "강하게 하자"는 것과 "덜 강하게 하자"는 견해가 있었다. 이 두 견해의 뿌리는 같다. 강한 톤은 원인이 어디 있든 핵실험은 잘못이라는 것이고, 약간 덜 강하게 하자는 의견은 미국 때문에 이 사태 온 것이기 때문에 한 쪽으로 책임을 모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견해차이는 큰 차이가 아니다.
다른 차원의 쟁점이 있다. 자위를 위해 핵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이 쟁점 때문에 앞의 쟁점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됐건 것이다. 일단 말을 한 사람이 실언이었다고 사과했다. 남은 건 전자뿐이다. 전자도 최고위원회를 통해 '분명한 유감'으로 정리됐다.
민노당은 북핵이 남쪽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핵을 반대한다. 한반도에 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민노당은 원자력발전소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체르노빌의 경우도 있고, 원자력발전소에 미사일을 쏘면 그게 핵폭탄이 아닌가.
미국의 핵은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 핵으로 북한을 정밀타격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은 그런 측면에서 "자위권이다, 협상으로 플겠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을 잘 봐야 한다. 자위를 위해선 핵을 계속 보유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북은 협상이 잘되면 핵을 폐기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자위라는 것도 협상을 위한 한시적 자위, 위협이 상존하는 속에서의 자위란 이야기이다. 이것을 단순히 핵주권의 문제, 자위를 위해선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3대 공안세력이 일심회 사건 배경"
프레시안 : 이른바 일심회 논란이 일고 있다. 민노당의 방북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분위기가 긴밀하게 얽혀 있기에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회찬 : 신중한 입장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확인된 사실만 갖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래야 하지 않나. 근거도 없이 일방적, 주관적 희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볼 때 간첩단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일심회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도 의문이다. 70년대부터 가장 많이 보아 왔던 간첩단 사건의 유형이 이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간첩단 사건으로 발표한다. 그런데 핵심인물이 간첩인지 단순히 북한에 밀입국했던 사람일 뿐인지 불확실하다. 임무-지령-행위 등이 실존하는 실제의 간첩인지, 친북성향의 인물일 뿐인지도 확실치 않다.
현재까지는 국정원도 정확하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구심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해외에 나가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마이클 장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지위에 있는 북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할 기회가 있다.
특히 국정원 발표에 대해 굉장히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 사무부총장 건이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사무부총장이었다면 그 정도의 증거로 영장 발부하고 체포했겠나? 아무 증거도 없이 공당의 사무부총장을 그 정도의 심증만으로 잡아갈 수 있나? 얼마든지 불구속 수사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해 버렸다. 이것은 수사의 양극화다.
프레시안 : 공안당국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뜻인가?
노회찬 : 과대포장 했다고 본다. 어디까지가 사실인가를 확인한 것이 아니니까 이렇게 말하겠다. 국정원 전체를 욕하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 내에도 반대론자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프레시안 : 사건이 나온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노회찬 : 중층적 배경이 있다. 전해 듣기로는 국정원 관계자가 오래전부터 "민노당에서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데 국정원이 존재할 필요성을 하나 보여 주겠다"는 이야기를 언론인을 만난 자리에서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배경에는 북핵 위기에서 공안정국을 조성해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세력이 일부 언론에도 있고, 공안기관 내부에도 있고, 일부 정당에도 있다고 본다. 나는 이들을 공안정당, 공안언론, 공안기관의 '3공 세력'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정권이 바뀔 것을 예상하고 국정원과 언론에서 줄서기를 하고 있다?
노회찬 : 당연하지. 지난 정권교체기 때도 그랬다. 정권교체기 때마다 국정원에서 이당 저당에 정보도 주고 녹취록 주고…. 분명한 것은 공안정국에 편승해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곳곳에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어쨌건 이번 일로 당 내에도 상처가 많이 났다. 내부의 감정의 골을 메울 방도가 있을까?
노회찬 : 의견에 심각한 차이가 있다면 만사 제치고 논쟁하는 게 맞다. 좀 더 긴 시간을 갖고 점검할 사안과 당면한 현실에서 크지 않은 차이를 넘어서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지금처럼 온 세상이 오른쪽으로만, 제1공화국으로만 달리는 상황에서 민노당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화세력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또 한미 FTA, 사회의 양극화, 부동산 정책 등 중심을 잃은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 확실히 서민의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 해결방안과 대안을 계속 내놓고 관철시켜 나가고 국민의 참여를 키우는 이런 일이 민노당에 가장 요구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민노당으로서는 어려운 시기이지만, 다른 편으론 큰 역할 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민노당은 우리가 살자고 만든 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사회의 좋은 변화를 위해 만든 당이 아닌가. 국민의 요구, 국민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