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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청춘 카메라>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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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청춘 카메라>를 시작하며...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53> 청춘카메라#1

그 동안 연재했던 <꿈꾸는 카메라>는 소년원친구들과 사진으로 함께한 시간의 기록이다. 그녀들의 사진과 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소박하게 기록한 작업이 어느 새 5년이란 시간의 배를 타고 함께 가고 있다. 여전히 그녀들과의 사진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을 가르치겠다고 했던 나의 생각은 결국 오만이었음을 고백했다. 사진을 가르친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그녀들을 통해 인생을 다시 배웠고, 그녀들을 통해 사진을 다시 배웠다. 그녀들과 같이 보낸 혹은 보내고 있는 시간은 그동안 무지하고 둔탁했던 나의 감성의 촉수들을 끊임없이 찌르고 자극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난 그녀들의 사진을 보면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몸짓은 '몸의 언어' 이고 눈짓은 '눈의 언어'이다.

눈 말함은 타인과 관계맺음을 위해서 영혼의 팔다리를 뻗는 행위이다. 눈짓은 몸짓보다 더 강렬하고 열절함이 담겨있는 침묵의 언어이다. 그래서 봄seeing은 아름다운 관계맺음의 씨앗이다. '바라보아야 할 사랑의 대상이 밖에 있기 때문에 눈이 생겨났다.'라고 어떤 시인은 노래한다.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년 겨울, 나는 일본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를 보게 되었다. 스나다 마미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모습을 습관처럼 계속 카메라에 담아왔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죽음을 함께 마주하고 있는 가족을 보면서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주고자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스나다 마미 감독은 딸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슬픔을 절제하며 아빠의 마지막을 그려내 더욱 깊은 감동을 선사하였다. 너무 감동적이고 사실적이라 영화의 여운은 그 해 겨울 내내 묵직하게 나의 가슴에 남아있었다. <엔딩노트>를 보고 뭔가에 홀린 듯이 어르신들과 사진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사진작업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아모르Amor, 송포유Song for You, 콰르텟Quartet등 죽음을 명상할 수 있는 내용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0세 시대의 초고령화 시대가 우리 눈앞에 또 다른 신세계처럼 펼쳐지고 있다. 청년. 중년·장년·노년에 대한 개념은 빠르게 균열되기 시작했다.

'동안'이 사회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70세에 빨래판 근육을 만드는 젊은 오빠가 생기기 시작했고, 빨간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은발의 노신사, 70세에 춤을 배우며 인생의 재미가 생겼다는 젊은 언니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노인'이라는 호칭은 결례이다. 배낭 여행가는 '꽃할배', '꽃할매'들은 이제 예능의 대세 되었다. 점점 젊게 살려고 하는 70-80대는 늘어나는데 실상 우리사회는 '나이 많음'에 대한 철학이나 사고가 모자라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되든지 썩든지 두 가지 상태로 남게 된다. 잘 늙고, 행복하게 죽음을 준비가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그 준비를 '사진'으로 함께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점점 나이가 든다. 어쩌면 발효의 준비를 어르신들과 함께하면서 배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염원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드디어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작년겨울부터 시작한 <꿈꾸는 청춘 카메라>는 60세 이상 어르신들과 사진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사진으로 쓰는 개인의 역사이자 자서전의 형식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난 또 그들에게 인생을 배운다. 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타인에 의해 내 삶이 성숙되어지고, 내 삶이 더욱 가치가 생긴다면 난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 갈 것이다. '노인'이라고 분류되는 부류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변방에 있는 그룹이다. '노인'이라는 명사는 이미 그 단어 안에 '힘없음, 늙음, 돈 없음. 능력 없음'이라는 내용이 함축된 단어가 된지 오래다. 반면 '어르신'이란 단어는 여전히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사람들의 압축된 단어이다.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비주류의 사람들, 변방에 있는 사람들, 국가가, 혹은 타인에 의해 마음에 트라우마가 가득한 사람들에게 가 있다. 사진은 끊임없이 나에게 숙제를 준다. 치유, 힐링, 치료라는 이름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상품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치유는 병을 고치고 병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병과 함께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돌아보자. 이 험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상처의 깊이는 물론 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처 속에서 오늘이 아물고, 상처 속에서 내일을 맞이한다. 사진으로 그 상처에 대한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내가 사진을 공부하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사진'을 통하여 나의 불안감, 나의 좌절, 나의 욕망, 나의 상처, 나의 아픔을 치유하고자하는지도 모른다.

한 조각의 이미지는 홀연[忽然]히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씨실과 날실로 천천히 뽑아 올린다. 때론 은밀하게, 때론 위대하게 내 지난 시간의 '돌아봄'을 기꺼이 허락한다. 그렇게 '찰나'들이 겹겹이 쌓여진 시간들은 어떤 이미지와 만났을 때, 혹은 어떤 사물과 만났을 때, 무언가를 먹었을 때, 어떤 장소에 갔을 때, 향기를 맡았을 때, 홀연한 이끌림으로 불현듯 우리의 곁에 서성거리며 또 다른 존재로 날숨을 쉰다.

기억은 그렇게 오감의 회로를 통해서만 더부살이로 생성되어진다. 수많은 과거의 기억과 트라우마(trauma)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재의 내가 만들어져 있다. 기억의 회로를 따라 걷다 만난 '또 다른 나'와의 내밀함과 소통하면서 '치유'는 스스로 시작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흩어졌던 지난 시간의 파편들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져오는 경험을 하게한다. 그 기억들은 깊은 바다의 품 속 같은 포용력으로 내 몸을 감싸 안으며 스며들면서 번져온다. 그 번져옴의 경험이 많을수록 아픔이나 상처에 직면할 수 있다. 사진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다. 지난 시간들의 경험이다.

이제 또 다시 소통을 위해, 내 자신의 치유를 위해 카메라를 사용할 것이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진을 보면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낼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사진의 힘을. 그 힘은 아마 사진을 통해 그 어떤 사람이라도 치유는 스스로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진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두 번째로' 활짝 꽃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사진가 고현주 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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