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포구에서 멀리 보이는 구럼비는 밧줄에 묶인 걸리버처럼 애처럽기도, 의연해 보이기도 했다. 포클레인을 비롯한 투박한 기계들이 구럼비를 파헤치고 있었지만 참 가소로워 보였다. 문득 구럼비는 인간의 가소로운 힘으로 깨뜨릴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야제가 시작되고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노래가 울려퍼졌다.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바다를 비추고 사람들은 웃기도 박수치기도 또 가슴뭉클해 하기도 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한 가지를 염원했다. 그렇게 크거나 거창하지도 않은 소박한 한가지 바람을.
강정천 옆에 대형 천막을 치고 200명의 사람들이 동침했다. 캄캄한 강정천에 수십명의 남녀가 섞여 내려가, 좀 더 멀리 가세요, 안보이니까 그냥 벗고 씻으세요, 농을 던지고 웃으며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시원하고 평화로웠다. 오랜만에 꿀처럼 단 잠을 잤다.
ⓒ프레시안(손문상) |
첫날. 6시부터 사람들이 일어나 씻고 짐을 꾸리고 주차장에 모였다. 9시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수백명의 사람들이 노란 티셔츠를 입고 노란 깃발을 들고 출발했다. 햇살은 뜨겁고 하늘은 파랬다. 사람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땀범벅이었지만 하얗게 웃고 있었다.
대포리에서 한번 쉬고 약천사 입구에서 또 한번 쉬면서 간식으로 나온 감자를 먹고는 또 걸었다. 지팡이를 짚은 팔순 노인부터 유모차에 탄 세살 아이, 목발을 짚고 가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걷는 여인,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갔다. 예래마을 낯선 길가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길위에 몸을 눕히고 쉬었다. 온전히 햇볕과 땅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또 걸었다. 논짓물 용천수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물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처럼 첨벙거리고 미끄럼도 타며 제주의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을 맘껏 받아들였다.
화순 금모래해변에 도착하니 20미터의 철구조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강정 앞바다에 들어갈 시멘트 덩어리 골격이라 했다. 그 무게가 9000톤에 이른다고도 했다. 숨이 턱 막혔다. 제길. 그렇게 깨끗한 바다에 저런 괴물을 집어넣는다니. 화순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바닷가에 그 괴물이 들어선 이후 사람들이 안 온다고 했다. 바닷가에는 입수금지라는 푯말만 덩드러니 박혀 있었다. 화순 주민들도 그 괴물에 반대하며 치열하게 투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서면 일거리도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에 결국 공장이 들어서고 마을은 죽어버렸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서로 탓하며 원수처럼 지낸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산방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금모래가 거대한 회색빛 시멘트 구조물에 밀려 빛을 잃어버렸다.
둘째 날.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다시 출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그만큼 뜨거운 날씨였지만 다들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제보다 훨씬 짧은 거리였기에. 사계해변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아름다운 여인 둘이 옷을 벗고 바다에 들어갔다. 미리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 옆에서 해병대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인과 군복을 입은 젊은 청년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 전쟁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수영을 끝내고 여인이 갈아입은 노란색 단체티의 등에는 'peace'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소방헬기가 오가며 건축 자재를 나르는 것이 보였다. 또 무엇을 얼마나 파괴하고 시멘트로 덮으려나. 마음을 더 다부지게 먹고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어 걸었다. 산방산 용머리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걸어 섯알오름에 올랐다. 말 몇 마리를 방목하고 있어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오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욱 아름다웠고 바람은 시원했다. 하지만 곧 모두들 숙연해졌다. 오름을 내려가자 수백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한 터와 추모비가 있었다. 일본의 탄약고로 쓰였던 곳. 일본군의 의한 학살. 그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한 학살. 모두가 전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제주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하니.
어두운 마음을 밥이 털어주었다. 알뜨르 비행장 입구에서 시원한 오이냉국에 주먹밥을 먹고 수박도 잘라 먹고 주차장에 텐트를 쳐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 아래로 들어가자 시원했지만 바닥은 뜨거웠다. 찜질 삼아 앉아 쉬기도 하고 잠깐 누워 눈을 붙이기도 했다. 몇몇은 일제시대에 만들어 놓은 격납고에 들어가 쉬기도 했다. 그렇게 불볕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걸어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하모해변에 들어섰다. 다들 입이 귀에 걸렸다. 급하게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고 옷을 입는둥 벗는둥 바다물에 뛰어 들었다. 풍덩첨벙 철썩푸닥 신나게 놀고 샤워장에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밥 어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실컷 드세요! (제주 사투리였는데 기억이...)
촛불문화제를 하는 동안 휘영청 둥근 달이 바다에 길을 내고 있었다. 별빛도 맑았다. 바람에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실렸다. 그리고 촛불을 켜고 조용히 이 걸음의 의미를 살펴봤다. 왜 수백명의 사람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어떻게 보면 비생산적이라고 할수 있는 걸음을 걷고 있을까. 조그맣고 연약한 나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하지만 수백개의 촛불은 흔들림없이 아름다웠다.
셋째 날. 태풍 소식에 5시 반에 기상해서 6시 반에 다시 걸음을 놓았다. 수백 명의 발들이 타박타박 걸음을 놓았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며 한 곳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놓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와 굳건한 땅도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며 우리를 안아줬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행렬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일상에서 펑크난 3박4일은 아마 나의 기억 중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것 같다.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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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 달 29일 시작돼 8월4일까지 제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시작해 제주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5박 6일 동안 섬 전체를 일주하는 일정입니다. 현지에서 이해성 희곡작가와 손문상 화백이 글과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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