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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피더(bird feeder)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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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피더(bird feeder)를 아시나요?

[권오준의 탐조이야기]<11> 추운 겨울 새들에게 먹이 주는 버드피더

산새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벌레를 찾아 먹다가 가을이 되면 각양각색의 나무열매나 풀씨들로 배를 채운다. 늦가을 감나무 까치밥마저 동나버리고 겨울이 닥치면 새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더구나 폭설이라도 내려 풀과 덤불을 뒤덮어버리고 나면 먹이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

겨울철새 오리들은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수초 뿌리 등을 먹기 때문에 물만 얼지 않는다면 먹이 문제는 없다. 텃새 가운데 까치처럼 동물 사체까지 먹는 잡식성인 경우에도 먹이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은 듯싶다. 하지만 열매나 씨앗으로 연명해야 하는 산새들에게 겨울은 그리 만만한 계절이 아니다. '버드피더'(bird feeder)는 바로 그런 산새들에게 그만이다. 일정한 높이에 걸어두고 그저 새가 좋아할 만한 먹이만 갖추어두면 된다. 서양에서는 나무나 플라스틱, 스틸 등 다양한 재질로 버드피더를 제작, 판매하는데,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우리나라에서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원통형 버드피더가 판매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먹이니까.

우리집에선 베란다 화분대 위에 버드피더를 설치해둔다. 아파트가 6층으로 비교적 높은 편인데, 길 건너 바로 산기슭 경사면이 마주하기 때문에 새들을 불러들이기엔 안성마춤이다. 버드피더를 걸어두면 곧바로 산새들이 찾아온다. 대개 한두 마리 오면 봇물 터진 것처럼 새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버드피더가 아니라, 새가 새를 불러들이는 셈이다.

▲ 정윤수 감독 작업실 버드피더에 날아온 직박구리 ⓒ권오준

재작년 겨울이었다. 영화감독 친구에게 버드피더 얘기를 해주었더니 금방 호기심이 발동한다. 당장 설치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날 친구의 양재동 작업실에 갔는데, 그 빌딩은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양재천에서도 100미터나 떨어져 있는데다 사방에는 빌라와 상업용 건물밖에 없었다. 동네엔 변변한 나무 하나 없었다. 버드피더를 설치한다 해도 새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낮아보였다.

작업실에 있던 소품들로 버드피더를 만들어 창가에 걸어두었다. 새들의 눈에 띄도록 홍시 두 개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지방질이 많은 분쇄땅콩을 버드피더는 물론, 창가에도 뿌려두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새는 한 마리 오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해가 바뀌었다. 웬만한 사람은 포기하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버드피더 위에 빨간 풍선과 노란 풍선까지 매달아두었다. 멀리서 새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한 작전이었다.

연락이 왔다. 정확히 50일만이었다. 새가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흥분해 있었다. 기적처럼 새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제일 먼저 방문한 녀석은 텃새 가운데 비교적 덩치 큰 직박구리였다. 아마 양재천에 심어놓은 메타 세콰이어 나무를 따라 돌아다니다가 풍선을 발견하고는 혹시 먹을거리라도 있을까 싶어 날아온 듯싶었다.

▲ 아파트에 설치한 버드피더 ⓒ권오준
▲ 한 지인의 와인하우스에 걸어 둔 버드피더 ⓒ권오준

이튿날이 되자 두 마리로 늘어났다. 며칠이 지나니까 박새류의 작은 새들도 찾아왔다. 그 새들도 역시 직박구리가 버드피더로 날아가서 무엇인가 먹는 걸 보고 뒤따라왔을 게 분명하다.

가끔 집에 오시는 아버지는 베란다 쪽에 의자를 갖다놓으라고 하신다. 다른 계절에는 하루 종일 TV로 바둑을 보시는데 겨울철에는 새를 보신다.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땅콩을 쪼아먹고, 쇠기름을 뜯어먹는 새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신다. 살아있는 생물이 왔다갔다 하면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고 바둑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새들에게는 먹이가 최우선이다. 먹이는 곧 생존이다. 새들은 뛰어난 시각을 이용, 끊임없이 먹이를 찾는다. 새들은 먹잇감이 있는 곳이라면 날이 밝는 즉시 그곳부터 찾아온다. 굳이 힘들여서 바닥을 뒤져보거나 힘들게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새는 아주 경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새들의 습성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버드피더에 뿌려두었던 땅콩을 없애고 쇠기름도 떼어낸 적이 있다. 그래도 산새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버드피더를 찾아온다. 새들은 아침이면 날아와 먹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날아가버린다. 오후와 저녁에도 한번씩 들른다. 심지어 버드피더에 먹이를 중단한 보름 뒤에서 날아와서 먹이 유무를 확인해보는 녀석들도 있다. 버드피더에 날아왔는데 먹이가 없다 해도 새들에게는 손해볼 게 없다. 어차피 버드피더는 그들에게 보너스이고, 다른 곳에 날아가 평소처럼 먹이를 뒤지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요즘도 산새들이 아파트 6층 버드피더를 찾는다. 덩치 큰 까치와 어치(일명 '산까치')는 쇠기름 걸어둔 첫날 방문해서 덩어리째 한꺼번에 떼어간다. 그보다 작은 직박구리는 먹이 욕심이 대단하다. 이따금 작은 새들이 땅콩이나 쇠기름을 쪼아먹을 때 날아와서 날개바람을 일으켜 내쫓기도 하지만, 버드피더는 대체로 평화롭다.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동고비와 앙증맞은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도 단골이다. 작은 새들은 아파트에 서 있는 메타 세콰이어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순서대로 날아와 먹이를 쪼아먹거나 여러 개를 물어가 저장해두기도 한다.

아파트나 주택 창가에 버드피더를 걸어두면 새가 찾아와 모처럼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버드피더는 겨울철 한정판으로 생각하자. 봄이 되면 새들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그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영상설명: 아파트 6층 베란다 화분대 위에 만들어놓은 버드피더. 한동안 나무집 버드피더를 쓰다가 자연물로 교체했다. 판자 위에 흙을 깔고 돌과 나무 등을 얹어놓고 그 위에 땅콩을 뿌려놓았다. 새들은 쉬지 않고 버드피더를 찾아온다.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우리 새 생태동화 시리즈 중 첫 권인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을 출간했고, 12월에 2권인 <꼬마물떼새는 용감해>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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