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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할미새 부부에게 선물한 아주 특별한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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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할미새 부부에게 선물한 아주 특별한 둥지

[권오준의 탐조이야기]<10> 노랑할미새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리 떨며 흔들어대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복이 달아난다는 것이었다. '재수가 없어'지기 때문에 어른한테 심한 꾸중을 들어야 했다. 영어에서 뭔가 흔들어대는 걸 'wag'이라고 한다. 개가 꼬리 흔들어대면 'wag the tail'이라고 하는데, 새가 꽁지깃을 흔들어대는 것도 'wag'을 넣어 쓴다. 흥미로운 건 영어권 사람들도 흔들어댄다는 뜻의 'wag'을 넣어 농땡이 치거나 땡땡이 친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뭔가 떨거나 흔들어댈 때 야단치는 우리처럼 영어권에서도 부정적으로 쓰는 게 비슷하다.

새 가운데 할미새가 여럿 있다. 노랑할미새, 백할미새, 알락할미새 등등. 할미새는 모두 꽁지깃을 흔들어댄다. 위 아래로 까딱까딱. 가만히 보고 있으면 꽁지깃이 끊임없이 까딱거려 여간 정신없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할미새를 '꽁지 흔든다'는 뜻으로 'Wagtail'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얘기할 새는 할미새 중에서도 노란색이 도드라진 노랑할미새(Grey Wagtail/길이 20센티미터)다.

▲ 노랑할미새 (Grey Wagtail, 길이 약 20센티미터) ⓒ권오준

작년 초여름이었다. 경기도 양평의 한 야산에 청호반새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날아왔다. 청보반새는 멀리 인도 안다만제도에서 날아오는 새로 만나기 쉽지 않은 희귀조다. 카메라 가방을 챙겨 얼른 양평으로 달려갔다.

청호반새는 낭떠러지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현장에 가보았더니 암석 벼랑에 청호반새가 구멍을 뚫어놓고 이미 새끼를 치고 있었다. 새끼들은 어찌나 크게 울어대는지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 쪽으로는 컨테이너 하우스 몇 채가 있었다. 주말에만 집주인이 와서 쉬어가고 있었다. 하우스 옆 우리에는 사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 낭떨어지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짓는 청호반새 ⓒ권오준

촬영 며칠 뒤였다. 컨테이너 하우스 위쪽 참나무 가지에 어치가 나타났다. 처음엔 어치가 청호반새 새끼들 울음소리를 듣고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찾아온 걸로 생각했다. 새끼들 울음소리가 커서 족제비와 들고양이들이 그곳을 자주 들락거렸던 터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청호반새 들락거리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컨테이너 하우스 쪽에서 새들 비명이 들려왔다. 노랑할미새였다. 세 마리가 창문을 향해 '찌지짓 찌지짓-' 소리 지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잠시 뒤였다. 창문에 걸린 조화 꽃바구니 속에서 어치 녀석이 나오는 게 아닌가.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니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노랑할미새 새끼 두 마리가 겁에 질려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치는 적어도 새끼 두 마리를 잡아먹고 달아난 것이었다.

어치가 살코기 맛을 보았으니 다시 공격해올 건 뻔한 일이었다. 서둘러 꽃바구니에 그물망을 씌우고는 노랑할미새 부부가 들락거릴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을 만들어주었다. 한참 뒤 노랑할미새 어미가 벌레를 물어와 그물망을 통해 꽃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물망 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물망을 씌운 덕분에 어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치는 잔머리가 뛰어나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둔 곳에는 잘 접근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불행중 다행이었다.

노랑할미새를 보며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꽃바구니 둥지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구멍이나 돌틈 등에 둥지 트는 노랑할미새가 어떻게 컨테이너 하우스 창문에 걸어놓은 꽃바구니에 둥지 틀 결론을 내렸을까?

▲ 꽃바구니 틈으로 내다보는 노랑할미새 새끼 ⓒ권오준

대개 부부 합의로 결정되는 둥지이고 보면 꽃바구니는 노랑할미새 부부의 마음을 끌었을 게 분명하다. 처마 밑에 있으니 비를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은 바구니 둥지의 장점으로 꼽은 듯 보인다. 컨테이너 하우스 바로 앞에 펌프가 있고 물을 저장해둔 우물이 있었다. 더운 초여름에 시원한 물까지 바로 앞에 있으니 둥지로 삼을 만한 조건이 된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둥지 선택 조건으로 충분치 않았다. 노랑할미새 부부는 무엇인가 더 그럴 듯한 조건을 찾았을 게 분명한데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점심 무렵 노랑할미새 수컷이 사슴우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부리 가득 벌레를 물고 있었다. 사슴우리에는 노랑할미새가 새끼들에게 먹일 벌레들이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어치가 쳐들어왔을 때 세 마리가 함께 소리를 질렀는데, 그 한 마리는 바로 근처에 사는 동료였던 것 같다. 노랑할미새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서로 도와주는 비상 연대 시스템까지 갖춰놓고 있었던 셈이다.

▲ 꽃바구니 둥지에서 나오는 노랑할미새 수컷 ⓒ권오준
▲ 갓 이소한 노랑할미새 ⓒ권오준

두 주가 안되어 노랑할미새 새끼들이 둥지에서 뛰어내렸다. 이소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소 뒤 곧바로 날아다니지 못하는 새끼들을 위해 노랑할미새 부부는 사슴우리를 들락거리며 먹이를 잡아다 먹여주었고, 새끼들은 키작은 풀숲이나 돌틈에 숨어 가며 날갯짓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옛날 어른들은 무엇인가 흔들어대면 야단치고 꾸중했지만, 노랑할미새가 꽁지깃을 까딱거리는 걸 보면 왠지 기분이 좋고 관찰이 즐겁다. 지난 달까지 탄천에서 먹이사냥을 하던 노랑할미새들은 이젠 모두 남쪽나라로 떠나버렸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꽃바구니에 둥지 틀었던 노랑할미새를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제 겨우 겨울 시작인데, 노랑할미새 생각하면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새 생태동화 시리즈 중 첫 권인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이 6월 초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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