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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비행하는 똑똑한 새 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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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비행하는 똑똑한 새 어치

[권오준의 탐조이야기]<9> 어치

새들 가운데 똑똑함은 단연 까마귀과다. 대표종인 까마귀야 말할 것도 없고, 까치도 만만찮게 똑똑하다. 그에 뒤지지 않는 까마귀과 녀석이 있다. 이름하여 어치(Garrulus glandarius/전장 35Cm)다. 예부터 '산까치'라 불러왔는데, 어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똑똑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 어치(일명 산까치, Garrulus glandarius/몸길이 약 35cm) ⓒ권오준

촬영을 위해 위장막 안에 들어가 있으면 풀벌레 소리부터 크고 작은 새소리가 빠짐없이 들려온다. 특히 날갯짓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데, 박새나 곤줄박이처럼 아주 작은 산새들의 날갯짓도 '파다다다-' 소리를 내면서 들려오기 마련이다. 눈을 감은 채 귀만 열어놓고 있어도 어느 새가 어느 방향으로 지나가는지 알 수 있는 것도 다 날갯짓 소리 덕분이다.

봄에 호랑지빠귀를 촬영하는데 계속 둥지의 알이 털리고 있었다. 호랑지빠귀는 여느 새와 달리 확 트인 참나무 갈래 줄기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천적의 눈에 아주 잘 띈다. 어느 날 이른 번식에 실패한 호랑지빠귀 한 쌍이 참나무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다. 호랑지빠귀는 대개 2-3미터 높이의 나무줄기에 둥지를 틀어 관찰이 쉬운 편이다. 그런데 그 호랑지빠귀 부부는 무려 6미터짜리 고공 둥지를 마련했다.

둥지를 높은 곳에 마련하면 유리한 점이 적지 않다. 고양이나 너구리, 족제비 같은 산짐승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실제 호랑지빠귀 부부는 장마철 중에도 새끼들을 잘 키워냈다. 하지만 둥지가 높아 호랑지빠귀 부부는 아주 힘겹게 지렁이를 부리에 물고 날아올라가야 했다. 둥지까지 날아오르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지빠귀과 중에서 가장 덩치 큰 녀석인데, 하루 수십 차례나 부리 가득 지렁이를 문 채 둥지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 둠벙에서 목욕하는 어치 ⓒ권오준

새끼들이 곧 이소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치 한 마리가 호랑지빠귀 둥지 근처에 날아왔다. 둥지에는 호랑지빠귀 암컷이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어치가 둥지나무 쪽으로 날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새 한 마리가 급강하하며 날아들었다. 수컷이었다. 호랑지빠귀 수컷은 평상시 높은 가지에 앉아 둥지 주변을 망보는데, 가만히 기다렸다가 어치에게 기습공격을 가한 것이다. 어치는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놓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얼마 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서너 마리의 어치가 다시 호랑지빠귀 영역으로 들어왔다. 마치 호랑지빠귀한테 한 대 얻어맞은 걸 복수하려는 듯 보였다. 어치들은 둥지 나무를 중심으로 뱅뱅 돌았다. 심리전이었다. 둥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둥지에서 새끼들과 있던 호랑지빠귀 암컷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수컷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치 한 마리가 호랑지빠귀 둥지 나무에 내려앉을 때가 되어서야 호랑지빠귀 수컷의 공격이 감행되었다. 어치의 집단공격은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어치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른 새보다 더 깊이 생각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녀석의 날갯짓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치는 신통하게도 비행을 할 때 날갯짓 소리를 내지 않는다. 수리부엉이처럼 일종의 스텔스 기능이 있는 것이다. 비행고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까치나 멧비둘기처럼 큰 새들은 비교적 높이 날아다닌다. 풀씨 등을 쪼아먹는 작은 새들은 바닥을 따라다니거나 낮게 비행한다. 그에 비해 어치는 사람 키 높이의 저공비행을 즐긴다. 사람 키 높이 비행은 진화의 산물이자, 총명함의 절정이다. 그 높이가 바로 산새들의 둥지 높이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녀석은 산새들 둥지, 예를 들어 멧비둘기나 되지빠귀, 흰배지빠귀, 호랑지빠귀와 같은 새들의 번식 둥지 높이에 맞춰 꾸준히 자신의 비행고도를 개발해온 셈이다. 날개소리도 들리지 않은데다, 둥지 높이로 날아다니다 보니 산속의 둥지 알과 갓 깨어난 새끼들이 어치의 눈을 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공격하는 어치 ⓒ권오준

한번은 소나무 부러진 가지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는데, 둥지 높이가 꽤 낮아 걱정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치가 자주 돌아다니고 있어 신경 쓰였는데, 하필이면 낮은 곳에 둥지를 틀었으니 말이다. 며칠 뒤 망원경으로 멧비둘기 둥지를 살펴보았다. 어미가 둥지에 없었다. 어미가 없으면 십중팔구 천적의 침입을 당했다는 뜻이다. 둥지에 가보니 알 2개 가운데(멧비둘기는 다른 산새와 달리 알을 2개 낳는다.) 한 개가 깨어져 있고, 누군가 내용물을 먹어치웠다. 알 한 개가 남아 있어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보았다. 몇 시간 뒤에 가보니 알이 또 깨져 있었다. 물론 범인은 저공비행 전문인 어치로 밝혀졌다. 어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둥지에 들어와 나머지 알 한 개도 먹어치우고 가버렸다. 서두르지 않고 똑똑한데다 주도면밀한 성격까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어치가 다른 새의 소리를 흉내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때는 꾀꼬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까치나 까마귀 같은 소리도 낸다. 그렇게 여러 가지 소리를 흉내낼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머리가 좋기 때문일 거다.

숲속에서는 저공비행과 흉내내기의 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치. 녀석은 가을이면 도토리와 밤을 곳곳에 저장하여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산새들이 배고픔에 떨고 있을 때 어치는 숨겨두었던 식량을 하나씩 꺼내먹는 것이다. 식량 보관능력까지 있으니 여간내기가 아닌 셈이다.

몇 년 전 관찰하던 어치의 둥지가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새끼 여섯 마리가 알에서 깨어난 지 사흘만이다. 귀엽게 생긴 어치 새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 어치 깃털이 떨어져 있는 걸로 봐서 어치도 상당히 저항을 한 것으로 보였다. 산속에서는 그렇게 어치 자신도 다른 천적의 희생자로 눈물 흘리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치가 비록 다른 새들의 둥지를 털어가며 살아가고 있으나 그걸 탓할 수는 없다. 그걸 약탈로 보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점일 뿐이다.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새 생태동화 시리즈 중 첫 권인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이 6월 초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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