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산 넘어 집찾아 오는 오리 '삑삑이' 이야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산 넘어 집찾아 오는 오리 '삑삑이' 이야기

[권오준의 탐조이야기]<8> 야생오리와 보낸 100일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 박사의 <야생 거위와 보낸 1년>이란 책을 보면 참 흥미롭다. 인공 부화된 새끼들이 로렌츠 박사를 어미처럼 졸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나, 거위들의 사회가 우리 인간세계와 거의 유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롭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도 내게 그런 기회가 왔다. 6월 중순의 일이다. 당시 부화되지 않은 흰뺨검둥오리(Spot-billed Duck/길이 61Cm/텃새도 있고, 겨울철새도 있음) 알 세 개를 인공부화기에 넣었는데, 그 가운데 한 개가 일주일 뒤에 깨어났다. 하지만 어미는 뒤늦게 부화한 새끼를 참혹할 정도로 부리로 쪼아 죽이려고 했다. 새끼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간주한 셈이었다. 그 죽을 뻔한 새끼를 입양해서 키웠다. 이름은 삑삑이, 몸무게 960g. 며칠이면 인공부화 100일을 맞이한다.

▲ 흰뺨검둥오리 ⓒ권오준

삑삑이는 연못에서 어미에게 무참히 공격당했던 트라우마를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했다. 사나흘 동안 물웅덩이 둘레에서 적응을 시킨 다음 조금씩 물로 밀어넣었지만 어림없었다. 물에 닿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뛰어나왔다. 그걸 극복하는 데 무려 3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45일 쯤 지나자 날개가 부쩍 자랐다. 아파트 뒤 산자락 물웅덩이에서 비행연습을 시켰다. 처음에는 3~4미터 거리에서 웅덩이로 날려주었다. 날기에 익숙해지면서 연습비행 거리가 10미터까지 멀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삑삑이를 공중에 날렸는데, 산 아래 대로 한가운데까지 가서 내려앉았다. 비행거리가 무려 100미터에 이르렀다. 야생오리가 도로 한복판에 서 있으니 버스가 서고, 승용차들도 줄줄이 멈췄다. 모두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삑삑이를 인도로 몰았다. 자칫 교통사고가 날 뻔했지만 운좋게 넘긴 것이다.

한번 비행의 맛을 경험한 삑삑이는 개울에 가서도 날아가버리고, 운동장 산책 중에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삑삑이는 이튿날 아침 개울에서 나를 기다리는 듯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이틀쯤 지나니까 집에서 하루 종일 날개를 퍼더덕 거리며 날려달라고 졸라댔다. 어느 때는 부리로 내 손가락을 물어뜯고 심하게 쪼아댔다. 분명히 날고 싶다는 표시였다.

9월 5일 환경과학원 담당자가 집에 찾아와 삑삑이 다리에 인식표 가락지 두 개를 끼워주었다. 왼쪽 다리엔 붉은색 플라스틱 가락지로 129번이, 오른쪽 금속 가락지엔 100-11431번이 적혀 있었다. 이 가락지만 보면 우리나라 어디에 있든, 설령 세계 어디로 날아가도 삑삑이의 정보를 다 알 수 있다.

가락지를 끼워준 날 밤 드디어 삑삑이의 비행 욕구가 폭발했다. 거실 바닥에서 날아올라 책꽂이며 장식장 위에 앉았다. 당장이라도 날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삑삑이를 데리고 그동안 점찍어놓은 방사지로 갔다. 우리 아파트에서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저수지였다.

▲ 삑삑이 10일 파티 ⓒ권오준
▲ 삑삑이의 베란다집 ⓒ권오준
▲ 인식표 가락지를 낀 삑삑이 ⓒ권오준

케이지에서 나온 삑삑이는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까마득히 멀리까지 날아갔다. 이제 사라지나 싶었는데, 삑삑이가 다시 저수지로 날아왔다. 내가 있는 걸 확인하고선 다시 날아갔다. 삑삑이는 다섯 바퀴나 돈 다음 내 앞에 착지했다. 떠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그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신기하다며 삑삑이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삑삑이는 잡히지 않으려고 날아올라서는 그 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삑삑이는 그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뒤 삑삑이가 아파트 옆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삑삑이가 우리 아파트를 찾으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하고, 적어도 100미터 이상 높이 날아올라야 했던 것이다. 삑삑이는 마치 머리에 내비게이션 장치가 내장이라도 된 듯 정확히 우리 집을 찾아왔다. 삑삑이의 귀환능력에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그 이튿날 다시 서현저수지에 갔다. 그곳에서 날아오른 삑삑이는 서너 바퀴 비행한 다음 정확히 내 앞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내 손에 잡히고 싶지는 않은 듯 요리조리 자꾸 피했다. 내가 무리해서 잡다가 놓치고 말았는데, 그 날 비행을 마친 삑삑이는 내 손을 외면하고 말았다. 자신의 몸을 무리하게 잡은 내 손을 거부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내 손만 외면한 것이지, 다른 신체 부위(예컨대 내 머리를 내밀면 부리로 두피 마사지를 잘해준다) 대해선 여전히 애정을 표시했다. 내 손에 대한 외면은 무려 이틀이나 갔다.

삑삑이가 집을 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중에 트위터와 소설가 이외수 선생 홈페이지(www.oisoo.co.kr)에서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자연으로 보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으나, 이외수 선생은 '사람의 품에서 자라 사람의 집에 살고 있는 오리를 자연으로 보낸다는 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라며 방사 반대 의견을 밝혔다.

▲ 서현저수지 상공 선회비행하는 삑삑이 ⓒ권오준

100일(9월 26일)을 맞이하면서 삑삑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자연과 인간세상을 함께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어느덧 삑삑이는 우리집 식구가 되었다. 이미 베란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고, 간식으로 매일 삶은 달걀 한 개를 먹인다. 틈나는 대로 산책을 하고, 날아가면 날아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놀라운 것은 삑삑이가 어디에서 사라져도 반드시 아파트를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제는 있다. 물가에서 살아야 할 삑삑이가 여전히 물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부화 첫 날 어미에게 당했던 악몽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100일엔 트위터 식구들과 저수지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삑삑이의 성장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본 이들이 모인다. 그날 파티 참가자들은 삑삑이 선물을 가져와야 한다. 달걀 한 개.

자연과 인간세상을 오가며 힘겹게 살아온 삑삑이의 백일이 기다려진다.


영상설명:
- 집안 욕조에서 목욕하는 삑삑이. 베란다에 지렁이와 흙을 쏟아놨다.
- 새들은 흙이나 작은 돌을 먹어야 소화작용이 촉진된다.
- 산기슭 물웅덩이에서 비행연습하는 삑삑이.
- 방사지인 서현저수지에서 이륙하는 삑삑이가 선회비행을 마치고 저수지 둑에 착지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삑삑이는 그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날아갔다가 아파트로 돌아오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엔 아파트 옆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날아와 꼼짝 않고 기다린다. 화단에 고양이 때문인지 비교적 신경 안쓰이는 운동장 한복판을 미팅 포인트로 정한 듯 보인다.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새 생태동화 시리즈 중 첫 권인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이 6월 초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