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는 사납고 성깔 있는 새이기도 하다. 작년 봄 직박구리 부부가 키 작은 아카시 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데, 그 둘레로 까치가 날아왔다. 까치는 평상시처럼 영역을 순찰중이었는데, 잠시 아카시 나무가 내려다보이는 참나무 꼭대기에 앉아 서성거리고 있었다. 까치는 덩치가 크고 사납기 때문에 직박구리가 쥐죽은 듯 가만히 있을 거란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순식간에 수컷이 나타났다. 직박구리는 까치에게 다가가 큰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가까이 다가서서 요란스레 울어대는지 까치가 결국 항복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숲속의 조폭이자 헤비급의 까치가 웰터급에게 직박구리에게 쫓겨나간 순간이었다.
작년 초 폭설이 계속되어 산새들 먹이가 눈에 덮이자 남한산성 새들이 일제히 비상식량으로 남겨두었던 고욤나무 열매를 따먹은 일이 있었다. 산새들은 비상식량 고욤을 매우 공평하고 평화롭게 쪼아먹었다. 제일 작은 오목눈이부터 곤줄박이, 박새가 무리지어 날아왔고, 물까치와 노랑지빠귀, 개똥지빠귀에 직박구리까지 날아들었다. 모두 차례대로 고욤을 쪼아먹고는 양지바른 나뭇가지에 앉아 씨앗을 토해내느라 바빴다.
나무에 매달린 고욤이 동나자, 눈바닥에 떨어진 수백 개의 고욤을 독차지한 새도 바로 직박구리였다. 직박구리는 경계병을 세우고 바닥에 떨어진 고욤을 애워싸고는 다가오는 새들을 내쫓아버렸다. 직박구리의 먹이욕심이 얼마나 크고, 먹이에 대한 집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열매를 따먹는 직박구리 ⓒ권오준 |
새들도 자신들이 더 좋아하는 열매가 있다. 딱새나 동고비는 가을철 주홍색의 목련열매를 무척 좋아한다. 비둘기는 여름에 까맣게 익어가는 뽕나무 오디를 좋아한다. 곤줄박이는 주목나무를 하나 골라 겨울나기를 할만큼 주목열매 광이다. 그런데 직박구리는 감이나 고욤, 목련열매 등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열매도 있지만, 다른 새들이 먹는 거의 모든 열매도 다 즐겨먹는다. 그뿐만 아니다. 등산객이 먹다버린 음식찌꺼기도 직박구리 차지다. 귤도 좋아하고 바나나나 사과도 그냥 내버려두는 법이 없다. 바나나는 껍질에 붙어 있는 살을 발라내고, 사과는 씨앗 하나 안남기고 모조리 먹어치운다. 등산로 환경미화원 역할까지 도맡은 셈이다. 직박구리가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하며 번성하는 이유에는 다양한 먹이와 먹성도 한 몫 한 듯 보인다.
몇 년째 필자의 아파트 6층 화분대에 설치해온 겨울철 버드피더(bird feeder)에 매일 날아오는 새도 직박구리다. 먹이가 충분하지 않은 늦가을 버드피더에 땅콩 조각이나 쇠기름을 올려두는데, 직박구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와 막강한 식욕을 과시한다. 며칠 동안 일부러 먹이를 올려두지 않는 경우에도 직박구리는 아침 일찍 버드피더를 찾아와 먹이가 있는지 확인하곤 사라진다.
직박구리를 촬영하면서 도무지 이해 안가는 사건도 목격했다. 작년 봄, 그러니까 5월 하순경이었다. 영장산 가장자리에서 직박구리 둥지를 촬영할 때였다. 며칠 동안 위장막을 쳐놓고는 알 품는 장면을 찍었는데, 새끼 다섯 마리가 알에서 깨어났다. 잿빛 직박구리는 깃털 색깔로 치자면 그리 매력적인 새는 아니다. 하지만 새끼들은 다르다. 직박구리만큼 예쁘고 앙증맞은 새끼도 없을 것이다. 새끼들이 빨갛고 기다란 모가지를 파르르 떨며 둥지 위로 내미는 장면을 그야말로 예술이다.
▲ 태어난지 4~5일 된 직박구리 ⓒ권오준 |
▲ 물마시는 직박구리 ⓒ권오준 |
사건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난 뒤 닷새쯤 뒤에 터졌다. 아침 일찍 둥지를 찾았다. 현장에 도착하면 위장막을 치기 전 둥지나무를 살짝 건드려본다. 그러면 새끼들이 파르르르 모가지를 떨며 어미에게 먹이 달라고 난리를 친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이 없었다. 더군다나 매일 마주치는 어미들의 요란스런 경계음도 뚝 끊겼다. 오로지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경사진 곳에 올라가 둥지를 살펴보았다. 빨간 새끼들 모가지가 보였다. 이 어찌된 일인가. 나는 둥지 옆 나무에 올라갔다. 둥지를 보는 순간 내 몸은 얼어붙고 말았다. 놀랍게도 새끼들이 죽어 있는 게 아닌가! 뻣뻣이 모가지를 세운 채 말이다.
새들은 알을 품을 때 매우 민감하다. 대체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위장막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일단 위장텐트 안에 몸을 숨기고 30분 정도 가만히 있으면 새들은 위장막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평상시 활동에 들어간다. 문제는 직박구리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났다는 점이다. 알을 품고 있을 때 천적이 닥치거나 놀라면 알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들어왔다. 하지만 새끼들을 기르고 있을 땐 여간해선 포기하는 새는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직박구리는 그렇지 않았다. 직박구리 새끼 다섯 마리는 모가지를 꼿꼿이 세운 채 죽어 있었다. 새끼들은 왜 죽었을까? 왜 모가지를 세운 채 그대로 죽었을까? 직박구리 부부에게는 새끼들을 버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각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어미들이 천적에게 공격을 당했던 것일까? 도대체 그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텃새 직박구리- 그렇게 우리 둘레에 살고 있어도 그들의 삶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몇 년 동안 지켜본 직박구리는 그저 알다가도 모를 새인 것이다.
영상설명:
- 등산객이 먹다버린 사과를 차지, 자신의 먹이임을 선언하는 직박구리.
- 밤에 알품는 직박구리. 이 둥지에 다가온 까치는 수컷에게 호되게 당하고는 도망쳤다.
- 둥지 떠나는 마지막 새끼 직박구리. 어미가 나오라며 난리다.
- 게걸스럽게 고욤을 통째로 먹어치우는 직박구리.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새 생태동화 시리즈 중 첫 권인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이 6월 초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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