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 한 벌판에서 난데없이 여름 새벽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위위위윙 위위위윙-'
전기톱 소리였어요.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이 나무를 자르고 있었지요. 여느 산의 솎아베기, 즉 간벌이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 소리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죄악의 서곡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전기톱 소리가 울리면서 벌판 숲에 서 있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와 동시에 나무에서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어요. 새들이었습니다.
'꽈과 꽈과-'
나무에는 백로들 둥지가 있었어요.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수십 개도 아니었어요. 무려 수백 개나 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나무가 쓰러지자 둥지가 쏟아져내렸어요. 얼기설기 나뭇가지로 엮어둔 백로들의 둥지는 힘없이 뭉개졌어요. 문제는 따로 있었어요. 둥지에는 알도 있었고, 어제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도 있었어요. 물론 다 자랐지만 아직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어야 하는 새끼들도 있었고요. 알이든, 새끼들이든 모조리 둥지와 함께 떨어져버렸어요.
평화롭게 알품고 새끼들을 키우던 백로들의 숲은 하루 아침에 아비규환,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지옥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었어요.
▲ 백로 번식지 파괴현장 ⓒ고양환경연합 |
▲ 굶어죽은 새끼 백로 ⓒ권오준 |
전기톱은 그치지 않았어요. 인부들은 쫓기듯 톱질을 했어요. 나무들이 계속 쓰러지면서 둥지도 계속 쏟아졌어요. 백로들은 한 나무에 여러 개의 둥지를 짓기 때문에 나무 하나가 넘어지면 둥지 재료들은 나뭇가지 여기저기서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어린 새끼들이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무와 나뭇가지에 깔려버렸어요. 하얀 색의 알들은 충격으로 깨져 사방에 나뒹굴었고 말입니다.
새끼들이 비명이 더욱 커졌어요. 수십 그루의 나무가 넘어지면서 새끼들이 뒤섞이고 나니까 상상도 못할 문제가 터졌어요. 어미들이 제 새끼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었어요. 새들은 새끼의 소리나 둥지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데 수십 마리씩 바닥에 나뒹굴며 뒤섞여버리고나니까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젠 새끼들을 찾는 어미들의 소리가 터져나왔어요.
어떤 어미들은 전기톱질하는 인부들에게 날갯짓을 하며 대들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역부족이었어요. 인부들은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백로들을 쫓아냈어요. 새끼에 대한 애착이 강한 어미들 가운데는 쓰러지는 나무에 뛰어들거나 인부들에게 달려들다 부상을 당하기도 했어요. 여기저기서 날개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숲에서 백로(좀 더 자세하게 분류하면 중대백로, 중백로가 있고, 백로 중에서 가장 작은 쇠백로도 있다. 뿐만 아니라, 노란 깃털이 있는 황로와 해오라기, 특히 흔히 볼 수 없는 흰날개해오라기 같은 귀한 새들도 있었다)들의 살육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 숲은 키큰 가로수에 가려 있었으니까요. 길 건너 사설 동물원이 있었지만, 새벽 작업이어서 이것을 눈치챈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 백로 살육은 나무베기 작업이 끝난 점심 무렵 한 시민의 신고로 알려지게 되었어요. 고양시 환경단체에게 사람들이 달려왔을 땐 이미 1000그루나 되는 나무들이 모조리 바닥에 쓰러진 뒤였지요. 수백 마리의 새끼 백로들은 어미를 찾느라 울어대고, 어미는 어미들대로 근처 가로수와 비닐하우스에 앉아 애타게 새끼들을 찾았지요. 모든 게 끝장이었습니다.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현장에서 깔려죽고, 수백 개의 알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그 숲은 조경용으로 조성한 것이었는데,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그 자리에 비닐하우스를 짓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우스를 지으려면 나무가 있어선 안되었던 것입니다. 땅을 팔려는 조경회사는 매매를 위해 나무를 베어내기로 결정했는데, 백로들이 집단으로 번식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백로가 수리부엉이처럼 천연기념물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무를 베면 새들이 죽고, 그렇게 되면 시민단체들이 와서 반대할 것이 분명하니까 이른 새벽에 전광석화처럼 나무를 베어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의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 나무에 깔린 새끼 백로 ⓒ고양환경연합 |
▲ 새끼 구조하는 박평수 고양환경연합 위원장 ⓒ권오준 |
▲ 가락지 인식표 부착 ⓒ권오준 |
부랴부랴 시장과 시의원들이 나오고 언성을 높였지만 쏟아진 물을 되돌릴 순 없었습니다. 그나마 환경단체가 나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서 살아남은 새끼들을 보호해주자고 했습니다. 나무를 벤 업체에선 반성의 의미였는지 매일 미꾸라지 한 통을 현장에 보내왔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길 건너 있는 쥬쥬동물원 원장님이 달려와 비맞아 죽기 직전까지 갔던 50여 마리의 새끼를 회복실로 데리고 가 살려준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틀 뒤부터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끼들이 다 자라 방사할 때까지 거의 매일 분당에서 고양시까지 달려갔습니다. 우리 인간이 해서는 안될 참혹한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지요.
올해 이른 봄 백로들이 다시 고양시에 찾아왔습니다. 작년에 새끼 48마리에게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인식표 가락지를 채워주었는데, 과연 다시 고양시를 찾아올지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봄부터 지금까지 가락지 백로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생존확률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지난 달 13일 고양 백로 번식지 파괴사건 1주년이 되었습니다. 조경업체는 여태껏 단 한번도 공식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TV에서는 사건 당일 반짝 뉴스만 내보내고 다시는 그곳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사 1주년이 되니까 새들에게 더욱 미안해지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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