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도감이나 전문서적에는 새들의 생태에 관해 아주 분명하게 쓰여 있다. 독자들은 새들이 책에 나온 대로 행동할 거라 당연히 믿게 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적어도 되지빠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되지빠귀를 촬영하는 동안 내 상식에 일대 혼란이 온 것이다. 여름철새 되지빠귀는 4월 초순경 남쪽나라(여기서 말하는 남쪽나라는 베트남 북부 또는 중국 남부 등 월동지를 가리킨다)에서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하고 가을에 되돌아간다. 노랫소리가 꾀꼬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름답다. 주황색의 옆구리 깃털도 아주 예쁘다.
▲ 되지빠귀(학명: Turdus hortulorum, 영문명: Grey-backed Thrush, 몸길이 약 23cm) ⓒ권오준 |
재작년 여름, 환경부 DMZ 습지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수십 명의 참가자들은 내로라하는 새전문가들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밤에 술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새 알껍데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품던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어미가 알껍데기를 먹어치운다, 내다 버린다로 의견이 나뉘었다. 내가 끼어들었다.
"어느 한쪽도 답이 아니다. 답은 두 개다."
순간 참가자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 해 봄 되지빠귀 둥지를 촬영하면서 겪었던 일을 꺼냈다. 되지빠귀 어미는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났을 때 알껍데기를 물어 내다버렸다. 처음엔 그 행동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되지빠귀 어미가 또다른 알껍데기는 아작아작 씹어 삼키는 게 아닌가. 어, 이거 뭐야? 내다버리기도 하고, 먹어치우기도 하고. 되지빠귀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자생존 논리에도 탈이 났다. 작년 봄, 되지빠귀 둥지를 관찰할 때였다. 4~6개의 알 부화에 시차가 있는데, 하루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있었다. 세 차례 체중을 조사해보았다. 부화 후 첫 조사에서 제일 큰 새끼가 19g, 가장 작은 새끼의 무게가 7g, 그러니까 세 배 가까운 중량차를 보였다.
제일 작은 새끼는 여러 마리 형제들 사이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큰 녀석은 더 커질 테고, 작은 녀석은 결국 도태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런 예상은 다행스럽게도(!) 빗나갔다.
마지막 체중을 재보았을 때 3배 가까이 차이 났던 1차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무게 차이가 2배 이내로 성큼 좁혀진 것이다. 실제로 가장 어린 녀석도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되지빠귀 부부는 덩치 큰 녀석에게만 지렁이와 애벌레를 집중적으로 먹여주지 않은 것이었다. 수치로 봐서는 양육에 골고루 신경썼음을 알 수 있었다. 상식과 법칙이 깨진 것이었다.
되지빠귀를 관찰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영역이었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영역을 갖는다. 새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자 자신들의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되지빠귀도 짝짓기 이전에는 분명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노래를 부른다. 다른 수컷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실제 숲에서 되지빠귀 노래를 MP3로 들려주면 수컷이 금방 나타난다. 다른 경쟁자가 있다고 판단하는지, 안절부절 못하며 난리를 친다).
어느 날 조팝나무 둘레 찔레나무에 둥지 틀었던 되지빠귀를 촬영하는데, 다른 수컷의 노래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하도 이상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어른 열 걸음 정도 거리의 버드나무에 다른 되지빠귀가 알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그 옆 키작은 참나무 줄기에도 둥지가 있었다. 그 둥지는 며칠 뒤 천적의 공격을 받아 알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영역치고는 너무나 좁았다. 그건 '영역 공유', 달리 말하자면 영역이 따로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 갓 부화한 되지빠귀 새끼들 ⓒ권오준 |
▲ 이소 직전 버찌 주는 되지빠귀 수컷 ⓒ권지은 |
둥지를 떠난 새끼들은 한동안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간다. 되지빠귀의 경우 포란은 전적으로 암컷이 담당했고, 수컷은 암컷에게 먹이공급만을 해주었다. 알이 깨어난 뒤부터는 공동육아 시스템이 가동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횟수가 수컷이 훨씬 많았다. 이소 뒤에는 수컷의 역할이 더 커졌다. 둥지 떠난 새끼들에게 수컷이 먹이를 공급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암컷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소한 지 일주일 뒤 이해 못할 일이 또 벌어졌다.
숲을 걷고 있는데 낯익은 되지빠귀 새끼가 눈에 띄었다. 녀석은 막내였던 것 같았다. 높이 날지 못해 여전히 바닥에서 통통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미도, 형제들도 보이지 않았다. 새끼는 길을 잃은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산기슭을 따라 올라갔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파다닥 파다닥-'
길 잃은 녀석 앞에 어디선가 되지빠귀 새끼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사뿐히 내려앉았다. 덩치로 보아 분명 맏이였다. 맏이는 방황하던 동생을 이끌고 산 아래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따금 휙 날아오르기도 하고, 동생에게 위로를 하려는지 통통거리며 같이 뛰어가기도 했다. 새끼들끼리 이런 형제애를 보여주다니. 정말이지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새도 아닌, 형제가 동생을 챙겨 내려갔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소를 하면 형제끼리도 자연스레 경쟁관계가 된다는 이론과 상식에 다소 혼란이 왔다. 하지만 최근 이소에 성공한 멧비둘기 형제가 무려 보름 이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다소 이해가 되었다.
되지빠귀를 만나고 나서 인간의 잣대로 자연을 판단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연에는 예외가 넘친다. 상식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둥지를 떠나기 직전의 새끼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먹이를 주고 있는 되지빠귀. 이 새는 새끼들의 똥이 땅에 떨어져 냄새가 나면 천적으로부터 위험해질 수 있어 그것을 먹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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