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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잃은 멧비둘기, 그 구슬픈 울음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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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잃은 멧비둘기, 그 구슬픈 울음소리가…"

[권오준의 탐조이야기]<1> 멧비둘기의 봄날

새 전문 사진가이자 생태동화 작가인 권오준 작가의 <탐조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이지만, 촬영에 임하는 권 작가의 인내와 감수성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새들만의 감동의 세계를 들여다 봅니다. '스토리'가 있는 '새 이야기'는 글과 사진은 물론, 하단의 동영상을 통해 감상하시면 더욱 생생합니다. 자녀가 있는 독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편집자>

산새들은 날씨가 포근해져야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육식성의 수리부엉이처럼 2월에 알을 낳거나 오목눈이처럼 이른 봄에 번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새들은 나무 이파리가 크게 자라 둥지 은폐가 유리하고 벌레 먹이 구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에 5월은 되어야 본격적으로 새끼를 친다.


▲ 멧비둘기 ⓒ권오준

지난해 3월 중순이었다. 봄은 왔어도 여전히 봄이 아니었다. 꽃샘추위로 찬 기운이 뼈 속까지 스며든다. 분당 영장산 전나무 숲을 지나가는데 산비둘기, 즉 멧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 멧비둘기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아, 비둘기가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뒤로 물러나 판초 우의를 꺼내 임시 위장을 하고는 몸을 숨겼다.

비둘기는 한 시간 내내 꼼짝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퍼드덕-' 소리와 함께 다른 멧비둘기가 날아온다.두 마리는 마치 업무 인수인계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이고 있었다. 곧 둥지에 있던 비둘기가 날아가버리고 새로 온 녀석이 자리를 잡았다. 멧비둘기는 약 4시간마다 교대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잔뜩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적이 볼까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한참 만에 멧비둘기 부부가 자리를 비웠다. 이때다 싶어 소형 캠코더를 막대기에 매달아 둥지 확인에 들어갔다. 둥지에는 알 두 개가 있었다. 알은 어찌나 하얀지 어두컴컴한 숲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멧비둘기는 그 추운 날씨에 번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소복소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튿날 오후 전나무 숲을 찾았다. 눈 덕분에 빽빽한 전나무 숲이 훤해졌다. 그런데 웬일인지 둥지가 조용했다. 알 품고 있어야 할 어미가 안보였다. 나무 위로 올라가보았다. 아, 둥지에 알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주먹 크기의 눈덩이가 둥지에 들어앉아 있었다. 눈폭탄을 맞은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멧비둘기의 번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숲 바로 옆 참나무 꼭대기에서는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4월 하순 어느날이었다. 3월 폭설로 줄기가 부러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소나무 옆을 지나는데, 솔잎 사이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멧비둘기가 거꾸로 매달린 줄기에 수북이 잔가지를 쌓아올려 둥지를 틀었다. 아이디어 번뜩이는 둥지였다.

그곳은 사방이 확 트여 멧비둘기도, 나도 조심해야 했다. 나는 혹시라도 다른 천적에게 들킬까봐 아예 4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망원 스코프로 비둘기를 관찰해가며 촬영을 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걱정거리 천지였다. 일명 '산까치'로 부르는 숲속의 폭군 어치가 그 주위를 날아다녔고, 이따금 새들의 천적인 들고양이와 청설모도 소나무 주변에서 기웃거리곤 했다. 그 무렵 바로 옆 골짜기에서는 흰뺨검둥오리가 매의 기습공격을 받은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오리는 더불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바람에 다행히 목숨은 구했다.

소나무 둥지도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소나무를 찾았을 때 둥지가 또 비어 있었다. 둥지는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알 한 개는 멀쩡한데 다른 한 개는 깨어져 있었다. 나는 즉시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다.  

오후 늦게 둥지에 가보니 깨어진 알껍데기가 사라져버렸고 알 하나는 여전히 무사했다. 테이프를 되돌려보니 범인이 찍혀 있었다. 어치였다. 어치는 평소 저공비행하며 둥지를 찾아 새알과 어린 새끼들을 잡아먹는 습성이 있는데, 1미터 높이밖에 안되는 소나무 둥지는 결국 어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어치는 한번 와서 알을 파먹고, 다시 와서 껍데기 먹는 식으로 네 번에 걸쳐 멧비둘기 알을 해치우려한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언덕 소나무 둥지도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날따라 비둘기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권오준

이틀 뒤 건너편 산에서 여름철새 호랑지빠귀 촬영을 하다 우연히 잣나무 숲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곳에서 멧비둘기 둥지를 또 만났다. 둥지는 이파리로 완전히 가려져 있었고, 멧비둘기 어미는 이미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노란색 깃털로 치장한 새끼 두 마리는 알에서 깨어난 지 열흘 가까이 되어 보였다. 새끼들은 이미 눈도 떴고, 기다란 모가지를 흔들며 어미에게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다. 오후에 거칠게 봄비가 내렸다. 멧비둘기는 몸을 배구공만큼 부풀려서 새끼 두 마리를 꼬옥 품어주기 시작했다.

잣나무 둥지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멧비둘기는 어느새 내 휘파람과 위장복을 알아보고는 친구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들은 하루 몇 번씩이나 내 앞에서 교대식을 거행했다. 볼 일을 보려고 둥지 옆을 지나가도 멧비둘기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멧비둘기는 내게 가장 비밀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었다. 갑자기 어미가 가슴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곧 새끼 두 마리가 어미 품에서 나왔다. 어미는 컥컥거리면서 먹이를 토해주었다. 새끼들은 이때다 하면서 기다란 부리를 어미의 주둥이에 쏙 밀어넣었다. 어미는 아주 고통스럽게 먹이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액체는 바로 '피존 밀크'(Pigeon milk)였다. 껍질이나 열매를 주로 먹는 멧비둘기가 그것들을 액체로 만들어낸 일종의 육아식이었다. 멧비둘기가 알을 두 개만 낳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미 주둥이에 부리를 집어넣고 피존 밀크를 빨아먹는데는 두 마리가 가장 이상적인 숫자였던 것이다.

잣나무 멧비둘기를 촬영하다 불행한 일이 터졌다. 한 사진가한테 연락이 왔다.피존밀크 먹이는 장면을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소 안면도 있고 생태 지식이나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라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사진가는 득달같이 달려왔다. 멧비둘기는 즉각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새끼들이 먹이 달라고 아무리 보채도 요지부동이었다. 이방인에 대한 차가운 반응이었다. 2시간이나 지나도 냉랭한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가 났는지 눈동자도 더욱 빨개져 있었다. 사진가는 결국 피존밀크 장면을 포기했다. 대신 새끼들이라도 찍어야겠다고 말했다.

위장막 안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데 사진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잣나무 가지가 너무 우거져 사진이 좋지 않겠다며 가지치기를 조금 해야겠다는 말이었다. 그가 둥지나무에 올라서자 멧비둘기 어미는 혼비백산하며 날아가버렸다. 잠시 후 위장막에서 나온 나는 비명을 질렀다. 사진가는 둥지만 달랑 남겨둔 채 둘레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렸다.새끼들의 안위일랑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키 큰 소나무 꼭대기에서 어치 한 마리가 멧비둘기 둥지를 내려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가는 아무런 소득 없이 잣나무 숲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방문 대가는 혹독했다. 이튿날 아침 잣나무 숲에 왔을 때 새끼 두 마리는 모두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한 마리는 모가지가 잘린 채 둥지에 엎어져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끔찍하게도 반토막이 나 있었다. 살점을 뜯어먹은 지 얼마 안되는 듯 새끼들 몸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양지 바른 곳에 새끼 두 마리를 묻어주었다. 자책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둥지 잣나무에서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모두 내 책임이었다. 낯선 사람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쿠구구구-'하며 멧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멧비둘기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멧비둘기는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사람 곁에 다가와 있다. 어느 멧비둘기 부부는 몇 년 동안 생태공원 관리인과 친분을 유지하며 천적으로부터 보호도 받고 있다. 친화력이자, 진화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추운 날씨 속에서 번식을 하며 다른 산새들과 먹이경쟁하지 않는 것도 매우 이상적인 일이다.

요즘 겨울 끝자락이 되면서 멧비둘기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이 스멀스멀 부풀어오른다. 내 실수로 멧비둘기에게 상처를 안겨준 것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미안할 뿐이다, 멧비둘기에게.





권오준은 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그를 바탕으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보리출판사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탑마을 언덕의 호랑지빠귀 부부', '용감한 꼬마물떼새, 마노', '홀로 남은 호랑지빠귀', '곡릉천에는 백로가 살아요' 등을 발표했다. 현재 성남 아름방송(ABN)에서 새 생태뉴스를 보도하고 있고, 2010년 5월에는 꼬마물떼새가 멧비둘기를 공격하는 희귀 장면 촬영한 것이 MBC 뉴스데스크에 특종 방영되기도 했다. 그동안 발표된 생태동화 다섯 편이 5월중순부터 DVD를 포함한 단행본 시리즈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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