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와 혁신은 다른 생각들이 섞일 때 왕성하게 발휘된다. 여행이 좋은 것은 늘 다니던 길에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두산의 박용만 회장은 격의 없이 사람들을 만나기로 유명하다. 트위터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평사원·대리급들과 점심, 저녁에 시장골목의 맛집을 찾거나 '치맥'을 함께 하기를 즐긴다. 재벌 회장이지만 진보 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는데 인색하지 않다고 한다. 그가 5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서로 다른 생각들을 두루두루 섞는 데 적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누구랑 어울려 식사하는지를 보면 그가 가진 생각의 폭과 판단력을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다.
새 정부의 핵심 국정의제인 창조경제가 여전히 난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창조경제'를 열심히 설명했다지만 국내에는 아직도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모델이라더니 최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독일과 영국을 합친 것이 모델이라고 말을 바꾼다. 대체로 국민의 정부 시절 강조했던 지식기반경제나 벤처산업 육성 정책 정도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정책이 늘 새로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장에 비해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 '사회혁신 국제대회의 2013'에 참여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발을 벗고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래서 이참에 박근혜 정부가 창의성과 관련해 생각의 폭을 넓혔으면 좋을 것 같다. 창의성은 사실 기업이나 대학의 실험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를 본 뒤 인문학 붐이 가열됐는데, 이윤에 봉사할 때만 융합이나 창의성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편협하다. 우리의 일상에도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가 아주 많다. 풀리지 않는 지역사회의 현안을 새로운 접근으로 해결하고 삶을 윤택하게 한 성공사례들이 많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달동네를 밀어 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짓는 기존 도시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택했다. 미로 같은 골목을 살리고 미술작품으로 마을에 스토리를 부여했다. 부산의 새 관광명소가 된 이곳을 며칠 전 <CNN>은 "아시아에서 가장 예술적인 마을"이라고 보도했다. 로컬푸드 사업으로 도시민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론 높인 전북 완주도 비슷한 혁신의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고장 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생활 현장에서의 혁신, 즉 사회혁신으로 모이고 있다. 외자를 끌어들여 성장하면 낙수효과로 윗목까지 뜨듯해 지리란 기대가 신기루였음을 깨달은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공유경제와 같은 사회적 경제는 사회혁신이 일어나고 확산하도록 하는 텃밭이다. 적어도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런 새로운 접근법이 지역주민의 복지와 행복을 높이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사회혁신이나 사회적 경제가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 중심 창조경제'의 국정과제로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 활성화로 따뜻한 성장도모'를 제시해 사회적 경제 활성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서 이쪽에서 추진된 것은 거의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영논리에 얽매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나 사회혁신이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의 지자체장들이 열심히 추진하는 의제여서 자칫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협동조합법이 모처럼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잊고 지자체의 협동조합 육성사업에 계속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무상보육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새누리당과 여권은 강력한 야권 주자인 박원순 견제의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필름의 거인 코닥에 이어 휴대전화의 맹주였던 노키아가 몰락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해 두고도 필름시장을 지키려다 무너졌고, 노키아 역시 많은 모바일 특허를 갖고도 피처폰의 성공에 안주하다 애플이나 삼성전자에 뒷덜미를 잡혔다. 창조경제를 대표상품으로 내걸면서 '여기까지만'이라고 금을 긋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박원순의 사회혁신이 버무려질 때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들이 손뼉을 칠 것이다.
'이봉현의 신뢰경제'는 한겨레경제연구소 누리집(http://heri.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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