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목이 마른 자, 즉 절박한 사람이 우물을 파기 마련이다. 서울시 무상보육 이야기다. 이달 말 예상되는 양육수당 미지급 사태를 피하고자 서울시가 2300억여 원의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이들의 해맑은 미래를 놓고 더는 중앙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서울시가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서울시에서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은 1조656억 원이지만 시에서 책정한 예산은 6948억 원이다. 서울시는 지방채 발행과 추경 편성을 통해 2353억 원을 마련하고 국비 1423억 원을 지원받아 연말까지 무상보육 예산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보육지원정책은 주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제공됐으나 점차 확대돼 2013년 3월부터 전 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2008년 2조3000억 원에 그쳤던 보육예산이 2013년에 약 8조 원으로 3배 이상 증액됐고 중앙정부 예산 증가에 따라 지방정부의 예산도 자동으로 증가했다.
자연히 지방정부가 감당하기엔 버거워졌다. 서울시는 2013년 추가로 확보해야 할 예산이 2012년의 2배인 3700억 원에 이르자 정부와 국회에 지속해서 추가지원을 요청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정부의 국고보조금 법정 분담비율은 20%에 불과하다.
▲ 박원순 시장이 5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보육예산관련 서울시 입장 및 대책을 발표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
"국가의 보육정책에 국민 불만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가 그간 정부에 국비 지원 요청을 줄기차게 요구한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시가 타 지자체보다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이유와 추경 편성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무상보육 정책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우선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은 서울시가 타 지자체보다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이유로 지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이 주장을 뒤집어보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방정부의 부채는 늘어나도 상관없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와 같이 보육사업 추경예산 편성을 둘러싼 갈등은 법적, 재정적 상황 외에 국회, 중앙정부, 지자체 간 불신으로 장기화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국가의 보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무상보육 재정 부족에 대한 무책임한 책임공방 대신 국비지원 확대를 위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키고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해 보육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공
결국 두 손을 든 건 서울시였다.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은 2009년 금융위기 때 6900억 원을 발행한 이후 4년 만이다. 지난해 서울시 부채 규모는 2조9661억 원으로, 3년 만에 2조 원대로 내려갔으나 이번 지방채 발행으로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으로 올해 무상보육 비용은 겨우 마련됐으나 문제는 내년이다. 박원순 시장은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지만 지금처럼 열악한 지방 재정으로는 내년에는 정말 어찌할 수가 없다. 서울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중앙 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라며 영유아보육법 처리를 촉구했다
서울시의 재원 부담 비율을 80%에서 60%로 낮추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가 여당과 정부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10개월째 계류 중이다.
이제 공은 여당과 박근혜 정부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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