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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가 '마마도' 보다 나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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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가 '마마도' 보다 나은 이유

[이봉현의 신뢰경제] 남성들이여, '회사형 인간'으로 살지 말자

tvN <꽃보다 할배>는 "노인이 나오면 채널이 돌아간다"는 방송가 통념을 뒤집었다. 막내가 일흔인 네 명의 할아버지(이순재 79, 신구78, 박근형 74, 백일섭 70)가 유럽을 다니며 겪는 일화에 웃음이 나오다 때론 마음이 찡하다. 여기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KBS는 '꽃보다 할매' 버전을 내놨다. 지난달 29일 처음 전파를 탄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이하 마마도)는 김영옥, 김용림, 김수미, 이효춘 등 원로 여배우가 전남 완도의 작은 섬 청산도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그렸다.

'짝퉁'이라서 그런지 <마마도>는 확 끌리는 맛은 없었다. 인생의 굴곡을 다 겪은 여배우들이 진솔한 얘기 보따리를 푼다는 게 기획의도였으나, 인터넷에 나도는 시청자의 반응은 "그저 그렇다"는 정도다. 나이가 들었어도 우아해 보이고 싶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려 하는 여배우들의 본능이 시청자의 공감과 몰입을 방해하는 건 아니었을까? 이와 달리 <꽃보다 할배>에서는 얼마 전까지 재벌회장으로 카리스마 있게 나오던 박근형을 보고 "아! 저 양반, 그래… 할아버지였구나" 하게 하는 장면들이 자주 노출된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마마도>의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는 좀 더 깊숙한데 있다. 단순히 '할아버지'를 '할머니'로 바꿔치기했을 뿐이지만 시청자가 자극받는 공감판의 폭은 많이 다르다. <꽃보다 할배>에서 네 할아버지의 추레한 모습은 우리 이웃 중·장년 남자들의 맨얼굴이다. 무게를 잡으려 하지만 계속 철이 없고, 젊어서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불만투성이고, 혼자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다. 화면 속에서 신구나 백일섭은 '짜파게티'를 끓여 한 끼를 때우는 것도 서툴러 어리바리하다. 반면 <마마도>의 여배우들은 나이들 수록 거침이 없고 안팎으로 옹골차지는 현실의 중년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강해만 보이던 '아버지'가 풀죽고 쪼그라든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동정하는 포맷에 현실의 강자 '아줌마'를 배치했으니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tvN

평범한 가정의 중년 남편과 아내를 봐도 구도는 선명하다. 은퇴한 남정네는 '다 쓴 건전지'처럼 처져있다. 반면 아내는 40, 50대로 나이가 들어가며 바빠진다. 수다로 맺은 친구들이 즐비하다. 아이가 자란 뒤에는 종교, 취미, 봉사활동 등 밖으로 본격적으로 나돈다. 당연히 집에 앉아 세 끼를 기다리는 '삼식이' 남편과 생활 리듬에서 엇박자가 나게 돼 있다. 최근 아내의 한 지인은 바깥 활동이 뜸해졌다. 이유는 전남 여수에서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던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내 지인은 "남편이 도무지 집 밖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이러다 보니 중년 남자를 조롱하는 아내들의 농담 시리즈가 끊이질 않는다. 아내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내게 전해주며 깔깔거리기를 좋아한다. 같이 웃고 있다 보면 "정말 자기 마음이 그렇다"는 것인지 아닌 지 헷갈리다 서운하다 그렇다. 며칠 전에는 이런 얘기를 듣고 왔다며 전했다.

"여자가 나이 들면 필요한 게 세 가지 있다는데 뭔지 알아?" (아내)
"글쎄…" (나)
"돈, 친구, 그리고 딸 이래"(아내)
"당신은 딸이 없어서 어떡하냐?" (나)
"딸만 없나? 근데 사실 없어야 하는 것도 있데"(아내)
"그게 뭔데…?" (나)
"남편, 하하하"(아내)
"허…" (나)


베스트셀러는 노력보다는 우연히 만들어진다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한 사회가 얘기하고 싶은 바닥의 정서가 만드는 것이 베스트셀러라는 시대현상이란 것이다.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끌고 은퇴한 남편을 조롱하는 농담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사회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아내들의 끊임없는 농담은 현실의 경제사회적 여건변화를 반영하면서, 새로이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권력관계를 재편하는 담론의 역할을 한다. 불행하게도 담론들 속에서 중년 남자는 '내구연한이 지난 잉여인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하여, 남자들도 지금처럼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불가피한 걸 알지만 돈과 승진의 사다리에 얽혀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간 벽장 속 구형 컴퓨터 모양으로 여생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수명도 길어져 은퇴 뒤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 유럽인들은 은퇴한 날부터 행복 지수가 급상승하나 한국이나 일본은 행복도가 오히려 뚝 떨어진다. 은퇴 다음 달부터 연금이 나오고 아니고의 차이가 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친구, 취미, 그리고 적당한 소일거리를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자. 직접 요리도 좀 해보고 다림질, 바느질도 해보자. 맘에 맞는 동업자를 찾아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이들도 최근 많아졌다.

요즘 고등학교, 대학동창 녀석들이 부쩍 연락이 잦아졌는데, 혹시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신뢰경제는 한겨레경제연구소 홈페이지 (http://heri.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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