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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운영은 의사 맘대로? 영국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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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병원 운영은 의사 맘대로? 영국에서 배우자

[복지국가SOCIETY] 공공 의료 전략의 두 가지 핵심

진주의료원 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나는 의료가 그 자체로 공공적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의사는 공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언뜻 서로 다른 입장처럼 보이지만, 실상 의도하는 바는 동일하다. 의료에 국가나 공공 기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의사는 그 자체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의료가 공공재가 아니므로 국가 개입의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재와 공공적인 것

'공공재'와 '공공적인 것'은 동일한 의미일까? 흔히, 공공재와 공공적인 것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공공재라는 것은 경제학 용어로 흔히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갖춘 재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비배제성은 그 재화를 소비하는 데 누군가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비경합성은 다른 사람이 소비를 하더라도 자신의 소비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 서비스를 여기에 적용해보면 엄밀하게 공공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공공재가 아니면 공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특히 국가의 의료에 대한 개입이나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에 불만이 많은 이들에게서 그러한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의료는 경제학적 공공재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적 재화'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의료는 엄밀한 경제학적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공적이어야 할 무엇인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에 나름의 근거를 제공하는 경제학 용어가 필수재 또는 가치재일 것이다. 필수재는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 이상이 공급되어야 하는 재화로 식량, 의료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치재는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재화나 서비스를 의미하는데 의료, 교육, 주택, 교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소비하지 못하는 계층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또는 권위 있는 기관이 직접 공급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필수재 또는 가치재라고 해서 국가가 전적으로 공급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 또는 공적 기관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공급을 담당하는가는 전적으로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적 입장에 좌우된다. 그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일정 수준'이라는 기준 역시 국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공공 의료와 의료의 공공성

의료가 엄밀하게 경제학적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공적인 것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의 성격 자체가 공공적이라고 해서 제공되는 모든 의료 서비스가 공공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적 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가 모두 공공적인 것도 아니며, 사적 기관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가 모두 사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서비스 제공 주체 중심에서 서비스 기능 중심으로 공공 의료 개념 전환을 이끌어냈고, 최근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공공 의료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현행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공 보건 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 의료 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과거의 동일 법률에서 정의하고 있었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 단체가 설립·운영하는)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을 개정한 것인데, 그 핵심은 공공 보건 의료 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보건 의료 기관으로 주체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즉, 그 공공 보건 의료의 운영 주체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관계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 보건 의료 활동을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함으로써 일반적 보건 의료 활동과 공공 보건 의료 활동 간의 차이가 사라졌다. 현행 보건의료기본법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성별, 나이,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하며(제10조 제2항)", 보건 의료인은 "보건 의료 서비스의 제공을 요구받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제5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자 진료 거부 금지는 의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법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급여 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민의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결국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정의는 일반적 보건 의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공공 보건 의료의 정의가 형평성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형평성은 보건 의료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의료 기관이 잠재적인 공공 보건 의료 활동 기관이 되는 것이므로 지방의료원 한 개쯤 없앤다고 공공 의료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물론, 가시적 성과와 결과의 창출을 강조하는 공공 기관의 신공공관리 전략과 국민건강보험의 불충분한 보장성이 지방의료원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 병원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타당성 있는 '공공 의료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 진주의료원. ⓒ프레시안(김윤나영)

공공 의료가 가야 할 길, 하나: '공적 권위성'의 중요성

현재의 우리나라 의료 공급 체계에서 공공 의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공적인 '서비스 기능' 그 이상의 기준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의료 공급 체계에서 공공 의료의 공적 권위성을 인정받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운영에서 절차적 그리고 내용적 민주성의 실현이다.

공적 권위성의 인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기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민간 의료 기관 역시 권한 위임과 계약을 통해 공적 권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역 거점 병원의 개념을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법률에서 지역 거점 병원은 주로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에만 적용하는 등 그 범위와 역할이 협소하다. 이렇게 되면 공공 병원은 항상 민간 병원의 보완적 역할만 하게 될 뿐이며, 지역 거점 병원의 지위는 찾지 못하게 된다. 즉, 민간 병원에 비해 열등한 기관으로 비치게 된다는 것이다.

거점의 의미에는 '중심' 과 '선도'의 개념이 함께 있어야 한다. 민간 병원이 기피하는 환자에 대한 진료 기능만을 집중적으로 담당하게 된다면, 거점 병원이 아니라 취약 계층 전담 병원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지방의료원이 의료 공급 체계에서 차지한 지위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사실, 미국과 같은 민간 의료 보험 체계도 아닌 국민건강보험 체계에서 저소득층, 취약 계층에 대한 진료는 특정 병원이 아니라 모든 병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의 진료를 보면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의료 수가 방식'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지역 거점 병원들이 의료 공급 체계에서 '공적 권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들 병원들에 대한 중앙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이에 따르는 특단의 공적 투자가 불가피하다. 중앙 정부의 강력한 개입은 이들 지역 거점 병원들 간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가의 개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입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공공 의료가 가야 할 길, 둘: '절차적·내용적 민주성'의 실현

공공 의료 운영에서 절차적 및 내용적 민주성의 실현이 매우 중요하다. '공적 권위성'으로 인한 관료화 등의 부작용은 기관 운영의 민주성을 통해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현행 '공공 보건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주민 참여를 통한 사업 계획 수립", "투명한 재정 운용과 회계의 공개"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사회에 소비자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1명 정도로 주민 참여가 보장되어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이를 통해 민주성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예컨대, 영국의 병원들에서는 해당 병원을 이용한 적이 있는 환자들과 진료권 내 주민들이 병원 이사회(Governing body)의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런던에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병원의 이사회는 3년 임기의 선출직 이사(23명)와 지명직 이사(10명)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출직 이사 중 4명은 일반 주민, 13명은 병원을 이용한 적이 있는 환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회는 병원의 일상적 경영에는 개입하지는 않지만, 병원의 중장기 계획을 승인하고 중요 의사 결정에 대한 심의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각 병원에서는 주민들과 환자들에 대하여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병원의 회원이 될 수 있고, 이들 회원들이 이사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민주적 운영을 통해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역 주민을 위한, 환자를 위한 병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 의료가 주민과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의료 공급 체계에서 '공적 권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의 '민주성 실현'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좋은 의료 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의 맥락에서 병원의 공공 의료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하며, 공공 의료의 핵심적 역할을 할 지역 거점 병원들에는 이러한 전문가가 반드시 배치되어야 하고, 훈련된 전문 인력 공급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의료는 단순히 민간 의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화된 의료 공급 체계에서 의료의 공공성이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한 첨병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 의료의 보완적 개념으로서 의료 서비스의 공적 기능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공공 의료가 의료 공급 체계에서 '공적 권위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의료 기관의 운영에서 실질적 주민 참여와 민주성이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공 의료를 강화하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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