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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기자, '전쟁터'에서 '다윗'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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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기자, '전쟁터'에서 '다윗'을 만나다

[현대차 희망버스 동승기] 나의 첫 희망버스, 마지막 희망버스이기를

난 <프레시안> 인턴 기자다. 난 살아온 날의 반 이상을 부산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어떤 유형의 집회에도 참가한 적이 없었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도 마찬가지다. 당시 살던 곳 근처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통행에 불편을 겪는다는 이유로 피눈물 흘려가며 싸우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이번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는 다소 아니,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희뿌연 소화기 분말로 뒤덮인 거리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전쟁터의 공포 그 자체였다.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던 현장

20일 오후 5시 30분께 울산 현대차 공장 인근에 내렸다. 생각했던 분위기와 정반대였다. 날씨는 맑았고, 주변에서는 참가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면, 그래서 이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얼마나 서글픈지 짐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7시 정도였을까. 한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쫒아가 보니 이미 용역들이 쏴댄 소화기 분말이 참가자들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입과 코를 막고 만장을 휘둘렀다. 그러나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의 벽은 높아보였다.

처음엔 사태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이내 소화기 분말이 기자의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용역들이 던진 돌과 쇳조각에 머리가 찢기고 피 흘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경찰까지 합세해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댔다. 물대포는 용역들이 소화전을 이용해 쏘던 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참가자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고 어둠이 찾아오자 '전세'는 기운 듯했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자본의 힘이 어떤 것인지, 경찰과 용역이 여실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희망버스 기획단이 지난 17일 희망버스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희망버스와 현대차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들이 말하는 '희망'의 목소리…희망버스 문화제

오후 10시 30분께 대치 상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자 참가자들은 문화제를 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처절한 싸움을 벌였던 참가자들이지만 문화제에서만큼은 밝은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 속 어딘가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혹시 몰라 가방 귀퉁이에 넣어온 여분의 티셔츠, 질끈 여민 운동화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절망하고 포기하고 있는 걸까?
바람이 고인 자리 냄새 고인 자리
거기 그림자는 무슨 빛깔일까?
문득 당신이 떠오를 때 당신이 내게 묻는 걸까?
내가 당신에게 묻는 걸까?
밀려오는 철탑의 진동은 당신의 심장에게 무슨 말을 하나?
당신의 심장은 철탑을 두드려 무어라 하나?
우리의 우주가 이제 함께 움직이나요?"

김 모(32) 씨가 심보선·김소연 시인을 비롯한 참가자들과 함께 지은 시를 낭독했다. 울분에 차 있던 것인지, 낭독하던 김 씨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참가자들은 문화제가 진행되는 내내 한목소리로 철탑 위를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현장을 지나는 열차도 힘찬 경적 소리로 그들을 응원했다. 최병승·천의봉 씨는 그렇게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다.

놀라웠던 것은 참가자들 중 대학생들도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연행되고 누군가는 다쳤지만, 그들은 여느 비정규직 조합원들 못지않게 싸웠다. 그래서인지 그들 대부분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일부는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태풍이 오기 전 철탑 위 동지들이 내려와야 한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反) 신자유주의 선봉대' 고 모(22) 씨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인터뷰에 응한 고 모 씨를 비롯한 대학생들은 모두 눈빛을 빛내며 철탑 위 두 농성자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또 다른 따뜻한 응원, 희망 밥차

문화제가 시작된 시간은 대략 오후 10시 30분경.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참가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힘들게 투쟁하는데 우리가 조금이나마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꼭 승리할 테니까 무사히 건강히 내려왔으면 한다." 김은주 '희망 밥차' 대표의 말이다.

이날 문화제 현장 한쪽에서는 희망 밥차에서 운영하는 '행복 포차'가 자리해 참가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먹으며 그네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다들 행복해 보였다.

김 대표는 "힘겹게 투쟁을 하는 모든 동지에게 따듯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그들의 노동은 힘겨워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또 다른 한편에서 들려오는 문화제의 음악 소리가 마치 시끄러운 전통 시장을 연상케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희망버스는 2011년 처음 운행되었다. 2년 동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누군가는 다윗이 되어 골리앗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고 누군가는 그들을 우습게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외치는 정의로운 세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면 누군가가 피 흘리고 눈물 흘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번 희망버스가 마지막으로 운행되는 희망버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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