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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군기 잡기'도 여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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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군기 잡기'도 여름까지만?

[이봉현의 신뢰경제] '골프 해금'과 '경제민주화 해제'

요즘 골프장 계산대에는 낯선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고 한다. 라운딩을 마친 뒤 비용을 한 명이 계산하지 않고 4명이 이른바 '1/N'로 나눠서 내는 것이다. 대중골프장이 아닌 고급 골프장에서 자기 돈 내고 운동하는 일은 그간 드물었다. 주말에 이용하려면 이것저것 해서 한 사람 당 30만 원이 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새 정부 들어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퍼져 나갔다는 전언이다. 공직자들이 골프장 출입을 못 하게 되자 기업들도 골프 접대예산을 확 줄였다. 이러다 보니 '모시고 나갈 분'도 '예산'도 없는 비공직자 골퍼들이 '1/N'을 궁리해낸 것이다. 골프 인구가 450만 명이나 된다는 대한민국, 일부 애호가들은 한나절 운동에 쌀 두 가마니 값을 카드로 그을 만큼 골프에 인이 박혔다는 얘기다.

기업체 임직원, 대학교수, 언론인들은 그렇게라도 쳤지만 지위가 있는 공무원이나 군 장성들은 몇 달간 골프장 근처에 얼씬도 못 했다. 골프 금지령이 무슨 문서로 내려온 적은 없지만 이런 때 찍히면 헤어날 길이 없다는 걸 모르면 공무원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근질거리는 몸은 끊임없이 인내력을 테스트한다. 그래서 기회를 엿봐 대통령을 계속 조르게 된다. 이경재 방송위원장 같은 친박 원로에게 '고양이 방울 달기'를 청한다. 언론사 간부들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만나는 타이밍도 놓치지 않는다. 내수활성화니 경기보조원(캐디) 생존권이니를 들먹이니 대통령의 태도도 조금씩 누그러져 간다.

ⓒ연합뉴스

그리고 드디어 청와대가 휴가철을 계기로 골프 해금의 운을 뗐다. 허태열 비서실장은 지난 주 휴가기간에 골프를 칠 수는 있되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할 사람이 (이해관계가 걸려) 문제가 될 만한 상대가 아니어야 하고, 골프를 하더라도 자비로 해라"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말했다. 바로 '휴가'에 '자비로' '문제가 안 될 사람과'라는 3종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뒤집어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남의 돈으로', '이해 관계자와 어울려' 골프를 치는 공직자가 많았고, 국민들 눈치가 보여 골프 금지령을 내린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청와대에서 이 정도로 길을 내놨으니 공직자들은 슬슬 골프채를 꺼내 그 길을 넓혀갈 것이다. 그럼 허 실장의 가이드라인은 지켜질까? 처음 잠시는 모르겠지만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란 데 내기를 걸어도 좋겠다. 올 연말이 가기 전에 공직자든 정치인이든 힘 있는 '갑'들은 거리낌 없이 '을'하고의 골프 약속을 잡을 것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에 엎드려 있던 기업들은 "술대접보다 낫다"며 골프 접대 예산을 팍팍 늘릴 것이다. 이러다 보면 3·1절에도, 6·25에도 이해 관계자와 어울려 골프를 즐기는 공직자가 나오게 돼 있다. 대통령이 정권 초 골프로 고위공직자 군기를 잡았다가 나중에 슬쩍 풀어주면 '도돌이표'가 되는 것은 김영삼 정권부터 익숙히 보아온 풍경이다.

그래서 '군기 잡기'는 문제가 있다. 이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할 분야를 권력자의 기분에 의존하는 '인치'이기 때문이다. 군기를 잡을 때만 '무서운 시늉', '아픈 시늉', '죽는 시늉' 하고 나면 되기에 뭘 제대로 바꿀 이유가 없다. 대통령 기분이 어떻건 결과가 한결 같도록 '제도화'해야 매사 예측이 가능하고 행정과 법에 대한 신뢰도 생긴다.

그 첫걸음은 할 일과 안 할 일을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금지할 일은 법을 엄격히 만들어 적용하면 된다. 개인의 취미인 골프를 대통령이 하라 말라 할 일이 아니다. 공직자라 해도 휴일에 자기 돈으로 친다는데 대통령이 눈치를 준다면 이상한 나라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남의 돈으로' '부적절한 사람과' 치는 '접대골프'는 공직자 윤리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다스리면 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추진한 이른바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100만 원이 넘는 금품수수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골프 접대 서너 번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징역, 벌금형 등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법무부가 "과도한 입법"이라며 반대해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여론의 역풍을 만나 지금은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처벌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직무 관련성은 입증이 어렵다. 법의 실효성이 의심된다.

'군기 잡기 놀이'의 폐해는 정작 골프보다 경제민주화 쪽에 있다. 요즘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여당 고위층들은 "이제 경제민주화는 마무리됐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올봄 대여섯 개의 경제민주화 관련법을 제정한 걸로 이 국면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군기 잡는' 모양새는 보였으니, 이제부터는 '기업인 기 살리기'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김영삼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권 초에 재벌개혁이니 경제민주화니 하다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슬그머니 개혁의 칼을 거두는 일이 반복됐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제법 재벌들과 대립각을 세우던 노무현 정부마저 8월 광복절을 넘기지 못하고 재벌 연구소가 만들어 들이민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이란 성장론을 받아들이며 '군기 잡기' 놀이를 마무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정하고 공평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군기 잡기 놀이' 정도로 생각했으니 추진력이 나올 리가 없다. 마침 이번 주 월요일치 신문지면에 '골프 해금'과 '경제민주화 해제'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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