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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과 씨름하지 마라

[이태경의 고공비행] "박근혜 정부, 부동산 경기부양 희망 접어야"

박근혜 정부가 4.1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100일이 지났다. 공공분양주택 공급량 축소 및 임대시장 활성화를 내용으로 하는 공급정책, 생애 최초 주택구입 시 취득세 혜택 및 금융규제 완화, 올해 중 주택구입 시 양도소득세 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수요정책, 하우스푸어 대책, 렌트푸어 대책, 행복주택사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주거복지 대책 등을 포함하고 있는 4·1대책은 박근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을 거의 망라했다.

박근혜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4·1대책 발표 이후에도 부동산 시장은 별다른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4·1대책의 효과가 하반기에 본격화하리라 예측하는 모양인데 시장이 기재부 기대대로 움직일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경제의 세계화가 진행되기 이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부동산 관련 정책수단들과 자원은 매우 다양하며 그 효과도 심대하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을 결정짓는 힘까지는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생산가능 인구, 산업구조의 변화, 각종 거시경제(금리, 환율, 무역수지,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질 GDP, 실업률 등)지표, 토지 및 주택 수급 등의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한다. 정부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부동산 시장이 위에서 열거한 장·중·단기적 요소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은 실증적으로도 자명하다. 가격 억제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참여정부가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 탓에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저지에 실패했다는 사실, 토건지상주의적 사고로 손톱까지 무장하고 한결가이 부동산 가격상승에 집중했던 이명박 정부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사실이 생생한 증거다.

박근혜 정부에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들은 대부분 가격 하락 쪽에 가깝게 분포되어 있다. 생산가능 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이고 금리를 제외한 실업률 등의 거시지표도 부동산 시장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객관적 조건이 이러하다면 박근혜 정부가 취할 정책 방향이 분명해진다. 가망 없고 부작용만 극심할 부동산 경기 부양책(기실 더 내놓을 부양책도 없다)을 고민하지 말고, 부동산 가격결정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그것이다. 건설업의 위기가 근심된다면 임대주택 확충에 전력하면 된다. 정부가 임대주택 확보에 예산을 먼저 투입하면 건설업 업무현황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전·월세난 해소에도 이바지할 것이며, 정부가 별다른 부작용 없이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지렛대도 마련된다. 한 마디로 '일석삼조'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가격과 씨름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건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고, 설사 이긴들 국가 차원에서 재앙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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